의자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313
이정록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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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날과 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환기를 시키고, 메일을 확인하고, 다시 밥을 먹으려고 밥솥에 취사 버튼을 눌렀다. 읽고 있던 책이 있었지만, 그 책을 덮고 이정록의 시집 『의자』를 든 건 소란스러운 내 마음 때문이다. 수록된 시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세어보니 <어린 나무의 발등>부터 <풀뿌리의 힘>까지 모두 61편의 시였다. 알고 있었던 <의자>처럼 한결같이 따뜻한 시들이었다.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는 사물들이 시의 소재였다. 곧 우리의 삶을 시라는 이름으로 마주한 것이다.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차분해졌다. 모든 건 마음 먹기에 달려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마음 먹기가 참 쉽지 않다. 이런 시는 나를 웃겼다가 끝내 울리고 말았다. 어느 집 수저통에 한 벌쯤 있을 젓가락을 소개로 한 시다. 처음엔 똑같았을 젓가락들이 어느새 한 쪽만 닳아버렸다. 어머니와 주고 받는 농 비슷한 말들이 우스워서 웃다가 마지막 연에서 그 웃음이 울음으로 변해버렸다. 한 쪽만 닳아버린 젓가락이 집집마다 남겨진 수많은 어머니 같아서, 연인을 떠나버리고 홀로 남은 그 누군가 같아서 말이다.

 

 옻나무 젓가락

 

 십 년도 더 된 옻나무 젓가락

 짝짝이다. 이것저것 집어먹으며 한쪽만 몰래 자랐

나? 아니면

 한쪽만 허기의 어금니에 물어뜯겼나?

 

 어머니. 이 젓가락 본래부터 짝짝이였어요? 그럴

리가. 전 그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간데요. 저런 싸

가지를 봐. 같은 미루나무라도 짧은 쪽은 네 놈 혓바

닥처럼 물  질질 흐르는 데서 버르장머리 없이 크다가

물컹물컹 제 살 아무 데나 쓸어 박은 것이고, 안 닳은

쪽은 산 중턱 어디쯤에서 나마냥 조신하게 자란 게지.

출신이 모다 이 어미라도 동생들 봐라. 물컹거리는 녀

석 있나? 장남이라고 고깃국 먹여 키웠더니, 뭐? 그

럴 리가가 아니고  전주 이가라고? 배운 놈이 그걸 농

이라고 치냐? 젖은 혓바닥이라고.

 

 저녁밥 먹고

 어머니와 나란히 바깥마당으로 나오며

 짝짝이 젓가락처럼 발끝 머리끝을 맞춰보는데

 솥바닥을 뚫고 나가 불길이 되고 싶었나?

 서러워라, 어머니 쪽에서 불내가 솟구친다.

 숟가락 내동댕이치고 서둘러 떠난 식구들

 저 밤하늘 어디에서 늦은 저녁밥을 먹고 있나?

 녹슨 양철 지붕 위로 옻칠 부스러져 내린다. (p. 40~41)

 

 사는 건 참 별 게 아니라고 하는데, 누구나 같은 생을 산다고 알고 있는데, 사는 건 왜 이리 힘들까. 철물점에서 마주한 톱날에게서 투명한 물결을 본 시인은 이런 시로 삶을 위로한다. 하는 일이 맘에 들지 않는, 고난한 일상이 힘겨운 누군가에게 ‘누구나 톱날 하나쯤은 악다물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내가 가진 톱날은 과연 하나뿐일까. 그 톱날로 자르고 싶은 건 무엇일까. 내 마음 속 톱날이 무뎌지기를 바라야 할까, 더 강해지기를 바라야 할까.

 

 결

 

 철물점에 갔다가

 톱날 묶음을 보았다

 톱니들이 물결처럼 보였다. 손을 대면

 물방울이 튀어 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톱날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다

 누군들 자르는 일에 몸담고 싶으랴

 톱날을 어루만지며, 나는

 얼음집에 가면 톱으로 엉킨 물을 푼다고 말했다

 믹서의 톱날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러자 이빨을 번뜩이며, 자기는 정말 파도를 닮아서

 크게 한 번 출렁이면 천 년 묵은 고목도 순간이라고

으스댔다

 누구나 톱날 하나쯤은 악다물고 살아간다고

 내가 아는 실패한 친구에 대해 말해주었다

 너는 토막 난 쇳조각에 불과할 뿐이라고

 녹슬 줄밖에 모르는 불쌍한 말년이 될 뿐이라고

 타일러 주었다. 일생 억눌려 사는 바위도

 결만 좋으면 구들장이 될 수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그러자 톱날에 껴 있던 파도 한 줄기가

 내 마음의 얼음장을 톱질하기 시작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물결 소리가 들려왔다

 시린 철새의 발가락도 보았다

 깃털 속으로 햇살 들이쳤다 (p. 56~57)

 

 겨울이니 <겨울밤>이란 시에 눈이 간다. 옥탑방에 살았던 기억 때문일까. 옥상에 보일러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게 하는 가족, 살 부비며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 식구들이 모여 앉은 모습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다. 각양각색 빨래집게처럼 저마다 색을 지닌 가족들. ‘내가 저 보석 지붕을 받들고 선 주춧돌이다’란 구절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든든한 남편, 좋은 아빠이고 싶은 사내의 마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겨울밤

 

 보일러를 녹이려고 옥상에 오른다.

 

 하루 내내 이가 시리도록 일한 빨래집게들. 서걱거

리는 옷가지들을 다 건네주고 빨랫줄 한가운데에 모여

있다. 빨랫줄에도 아랫목이 있나? 오목하게 모두 모

여 찬바람을 비끼고 있다. 언 뼈를 부닥뜨리며 겨울밤

을 건너가고 있다.

 

 손전등을 밤하늘에 비춘다. 어리둥절 비틀거리던

기둥 하나가 허공에 선다. 그 불기둥을 따라 추운 별

들이 내려온다. 내가 저 보석 지붕을 받들고 선 주춧

돌이다. 별도 달도 다 따주겠다던 약속이 있었지, 한

사내가 쓴웃음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아이 방 한가운데 작은 이불 속에도 빨래집게 같은

다리들이 아랫목을 만들고 있다.

 차갑지? 내 시린 무릎을 디민다.

 별꼴이야.

 별꼴이라고? 그렇지. 가족이 무릎을 맞대면 별꼴이

되지.

 

 그 누가 빨래집게들의 가슴마다 목걸이 하나씩을 채

워줬나? 깊은 밤  한 사내가 누군가의 목덜미를 쓰다

듬는다. 빨래집게는 그 팽팽한 철사 목걸이의 힘으로

이 악물고 일만 하나?

 끄응, 별꼴이 돌아눕는다.

 기름 떨어진 보일러처럼, 거칠게 바람이 빠진다. (p. 92~93)

 

 이 시집에는 유쾌하고 정겨운 시들이 많다. 그 유쾌함은 절대 가볍지 않고, 그 정겨움엔 많은 것들이 박혀 있었다. 지나온 삶을 돌아보는 마음, 자연과 사물에 대한 애틋한 마음, 앞으로 살아갈 우리 생에 필요한 위로와 격려가 함께 있었다. 그래서 더 좋았고 그래서 더 따뜻했다.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p. 10~11)

 

 우리는 서로에게 고단한 삶은 쉴 수 있는 의자가 된다면 좋을 것이다.  의자가 된 풍경을 함께 바라본다면 더 좋을 것이다. 지금 나를 받히고 있는 의자에게 고맙다. 흔들리는 나를, 넘어지지 않게 잘 잡아준, 앉을 수 있는 ‘의자’란 이름의 당신에게 고맙다. 나도 당신에게 의자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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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2012-01-1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자, 시 좋네요.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겠어요.^^

자목련 2012-01-20 11:32   좋아요 0 | URL
진즉, 엄마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못한 게 아쉬워요..
참 따뜻한 시들이 많아서, 좋았어요.^^
 
핸드메이드 픽션
박형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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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일의 처음은 언제나 설렘과 걱정이 함께 한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처음 접하는 작가의 소설은 특히 그렇다. 어떤 글을, 어떤 방식으로 들려줄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접하는 박형서의 소설 『핸드메이드 픽션』도 그랬다. 이 책에 대해 한 마디로 말한다면, 흥미롭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다양한 장르의 글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소설은 정말 재미있고, 어떤 소설은 정말 애닯고, 어떤 소설은 기상천외한, 어떤 소설은 정말 놀라웠다. 그러니까 박형서란 작가는 실로 대단한 글쟁이라 할 수 있겠다.

 

 8편 모두 독특한 개성을 지녔지만 내게 강한 인상을 남긴 소설은 <신의 아이들>이다. 화자인 나는 시인이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소설에는 두 명의 제자가 등장한다. 한 명은 언어를 자유자재로 선택하는 재능을 타고난 시인 지유였고 다른 하나는 재능이라곤 전혀 찾을 수 없지만 열심히 시를 쓰는 설기다.  자신의 재능을 아는 지유는 그로 인해 시인과 부딪히고 서로에게 상처를 남긴 채 어긋나고 만다. 지친 육신을 달래기 위해 찾은 시골 마을에서 만난 설기는 매일 시를 써서 시인을 찾아온다. 설기에겐 재능이 없었느니 결국엔 그 사실을 일러줘야 했다. 분노하는 설기를 보며 시인은 지유를 떠올리며 시와 재능의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신은 인간에게 재능을 주면서, 까닭 모를 심술에 그 계약서를 감춰놓았다. 때문에 우리 대부분은 평생 저만의 가치를 찾아 헤매다 죽음의 경계 바로 너머에서야 비로소 신과 맺은 약속을 알아차린다. 이는 무수한 비극을, 어쩌면 사람이 감당해야 할 거의 모든 비극을 잉태한다.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신과의 계약을 발견했다는 증거는 없다. 달변의 재능을 받았지만 도서관 사서로서의 고요한 생활에 만족할 수 있다. 사냥의 재능을 받았지만 수의사라는 직업에 만족할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구나 원하는 분야에서 최고가 되도록 노력할 자유가 있다’는 말은 하늘이 내린 재능을 찾지 못한 불행자들을 위해 고안된 위로의 수사일 것이다.’ p. 107~108

 

 제목처럼 둘은 신의 아이들였다. 지유는 신이 시를 주었고 설기는 조각 예술의 재능을 주었던 것이다. 설기는 시가 아닌 나무를 깎고 매만지는 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둘 다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소설의 구절처럼 우리는 저마다 신에게 재능을 받았을까. 받았다면 어 재능일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어쩌면 소설가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슬픈 소설도 있다. 작은 마을을 떠나 큰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으나 그 때마다 어떤 사건에 휘말려 고향에 남겨진 화자의 이야기 <너의 마을과 지루하지 않은 꿈>과 댐으로 인해 거대한 물 속으로 가라앉은 정류장과 아버지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지만 가슴 한 구석에 남은 그곳에 대한 기억으로 아파하는 <정류장>속 인물은 전혀 다르지만 낯설지 않다. 그건 마치 갈망하는 무언가를 놓쳐 절망하거나, 목적 없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은 아닐까.

 

 ‘나는 내 속도를 남들과 비교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게 정상적인건지 어떤지 알지 못했다. 정류장이 보이면 잠시 멈추었다가, 그곳에서의 날이 다했거나 다했다고 느껴지면 망설임 없이 출발했다. 그게 바로 내가 한 일이었다. 다음 정류장은 뭐지? 바로 이다음은? 나는 매일같이 나 자신에게 물었다. 무언가 생각이 나면 곧바로 거기에 덤벼들었다고, 생각이 나지 않으면 지어내서라도 덤벼들었다. 그러는 동안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엷어져감을, 대신 다른 것들이 그 빈자리로 속속 밀려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건 조금 쓸쓸한 일이긴 했다.’ p. 48

 

 우연하게 술자리에서 만난 청년이 들려주는 이야기 <갈라파고스>엔 성범수라는 이름의 고양이가 나오는데, 이 이름은 가난한 연인의 일상을 담은 <자정의 픽션>에서 같은 이름의 멸치로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한분태 뼈다귀 해장국집>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인 <나는 『부티의 천년』을 이렇게 쓸 것이다>라는 소설엔 ‘부티’라는 인물이 온갖 풍파를 견뎌 전 세계를 돌고 돌아 ‘한분태’란 이름으로 남은 과정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로 시작은 곧 끝이었던 거다. 

 

 작가 박형서는 어떤 소재가 주어지든 어떤 장르를 요구하든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핸드메이드 픽션』이라는 제목과 ‘여기 실린 이야기 하나하나가 전부 나다. 내 손으로 썼다.’ 란 작가의 말을 통해 스스로 증명하려 한다. 그의 증명은 당당하고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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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이 지났고, 2012년이 되었다. 벌써 넷째날이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읽었던 책, 리뷰를 쓴 책에 대한 기록이다. 2011년에 읽고 리뷰를 쓴 책은 125권이란다. 알라딘이 아닌 (알라딘에서도 그런 통계가 있을지도 모르다. 허나 나는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른다. 구매 목록을 찾는 일도 한참 걸리니 말 다했다) 모 서점에서 알려주었다. 그러니까 한 달에 10권 정도 읽은 셈이다.

 

 한국문학을 주로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목록을 살펴보니 그렇지도 않다. 내 마음에 우선적으로 한국문학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작가들의 신간은 언제나 내 책 읽기보다 앞선다. 해마다 새로운 작가가 나오니 더욱 그렇다. 거기다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분야에 대한 책에도 눈이 가고 혹시나 해서 참여하지만 역시나로 돌아오는 리뷰 대회에 대한 미련도 버리지 못한다.

 

 2011년의 첫 책은 <윈터홀릭 두 번째 이야기>였고,

 

 

 

 

 

 

 

 

 

 

 

 

 

 

 

 

 

 

 

 

 

 

 

 

 

 

 

 

 

 

 

 

 

 

 

 

 

 

 

 

 

 

 

 

 

 

 

 

 

 

 

 

 

 

 

 

 

 

 

 

 

 

 

 

 

 

 

 

 

 

 

 

 

 

 

 

 

 

 

 

 

 

 

 

 

 

 

 

 

 

 

 

 

 

 

 

 

 

 

 

 

 

 

 

 

 

 

 

 

 

 

 

 

 

 

 

 

 

 

 

 

 

 

 

 

 

 

 

 

 

 

 

 

 

 

 

 

 

 

 

 

 

 

 

 

 

 

 

 

 

 

 

 

 

 

 

 

 

 

 

 

 

 

 

 

 

 

 

 

 

 

 

 

 

 

 

 

 

 

 

 

 

 

 

 

 

 

 

 

 

 

 

 

 

 

 

 

 

 

 

 

 

 

 

 

 

 

 

 

 

 

 

 

 

 

 

 

 

 

 

 

 

 

 

 

 

 

 

 

 

 

 

 

 

 

 

 

 

 

 

 

 

 

 

 

 마지막 책은 김미월의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다.

 

 2012년에는 계획적인 책읽기를 하고 싶은데 어찌될지 모르겠다.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기록하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 충동구매보다는 곁에 둔 책을 먼저 읽기를 바란다. 한국문학과 더불어 세계문학, 그리고 시를 읽는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 책을 읽고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 좋겠다. 그리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든 말이다.

 

 *늦었지만 이 서재를 다녀가시는 모든 분들께 인사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평온하시길!!

 부족한 이웃이지만 언제나 고마운 나의 이웃님, 올 한해도 마음을 나누고 인연을 이어나가길 바라요. 잘 부탁드립니다.

 

  고. 맙. 습. 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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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별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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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미경의 장편은 『장밋빛 인생』,『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에 이어 세 번째다. 그녀의 소설은 아름답고 간절하다. 그게 슬픔이든, 절망이든, 사랑이든 그랬다. 문장은 왜 이리 유려한지, 책 속으로 빠져드는 건 당연하다.

 

‘정오의 사막은 붉은 분홍이다.

 이 시간엔 부러 그렇지 않아도 눈을 가늘게 뜨게 된다.

 천지는 고요하고도 소란하다.

 와랑와랑.

 햇빛은 빛나는 동시에 속삭이며 부서진다.

 모래가 잔뜩 삼킨 열기운을 붉게 토해내면 대기는 부옇게 산란하며 뒤챈다. 더는 못 견디겠다는 듯.

 끝이 부러져나간 붉은 사암기둥. 무너진 벽과 돌더미 들. 폐허는 장엄해서, 은성했던 시절을 상상하는 게 어렵지 않다. 시간의 지층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원형 경기장의 돌기둥 사리로 검투사든 굶주린 사자든 거친 무언가가 금세라도 달려나올 것 같다.’ p. 7

 

 사막의 정오를 상상한다. 붉고 뜨거운 기운이 감도는 사막, 이처럼 황홀하게 묘사했지만 숨이 막힌다. 소설은 사막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 그곳의 매력에 빠져 몰려드는 사람, 잠시 머무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사막의 풍경과 그들의 일상을 보여준다.

 

 죽음의 광장이라 불리는 모나코의 자마 알프나 광장을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소설은 바바, 보라, 승, 로랑의 네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생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해도 좋을까. 승은 아내와 친구에 배신을 당한 뒤, 한국을 떠나 딸 보라와 함께 그들을 찾아 이곳으로 왔다. 승의 삶엔 오직 분노와 복수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흔적을 따라 사막을 헤매는 승은, 때때로 사막의 모래폭풍과 사막의 밤 하늘에 위로 받고 있었다.  그러나 돌아보면 자신을 가득 채운 건 여전하게 증오였다. 그런 아빠를 바라보며 보라는 어떤 질문도, 어떤 투정도 하지 않는다. 낯선 곳에서 그저 살아갈 뿐이다. 열 여섯, 보라에게 삶은 아무런 대답도 들려주지 않았지만 뜨거운 열기와 낯선 이방인들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바바는 여행객에게 헤나를 그려주는 보라에게 유일한 친구였다. 보라가 좋아하는 건 뭐든지 해주고 싶었다. 새침하고 쌀쌀맞게 대해도 그런 보라가 좋았다. 보라를 웃는 일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게 자신을 버리는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바바에게 보라는 사랑이었던 것이다. 승이 사막으로 가이드를 떠나고 혼자 남겨진 보라 역시 바바가 있어 그곳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사막의 아름다움에 매혹된 남자 로랑은 연인이 죽자 더 자주 그곳을 찾았다. 스스로가 아름다움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지만 사막이 주는 황홀함과는 달랐다. 사막에 숨겨진 옛 문화유적, 보물들을 소유하는 것으로 그리움을 달래고 있었다.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었지만 결국 네 사람 모두 누군가를 그리워했고 사막을 사랑하고 있었다.

 

 바바와 보라, 승과 로랑은 서로가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아름답고 고귀한 유물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 인간의 욕망은 아니었을까. 바바에겐 보라를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 승에게는 사막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로랑에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위한 해소로 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막의 풍경은 때로 지독하게 외로웠고 쓸쓸했으며 때로 혼을 빼놓을 만큼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려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이 만드는 또 다른 풍경은 낯설면서도 낯익었다. 어쩌면 사막은 무언가를 잊기 위해, 새로운 시작을 다짐하기 위해,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가장 적절한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사하라란 ‘아무것도 없는’ 이란 뜻이지.

 움직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누렇게 뜬 사막풀마저 죽은 듯 모래에 발을 묻고 물이 있는 곳으로 실어다줄 저녁바람을 기다린다. 모래색뱀과 붉은 전갈도 한 조각 그늘을 찾아 필사적으로 몸을 감추었다.

 완전한 고독과 적막.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는 곳.’ p. 102

 

 『아프리카의 별』은 이전에 만난 정미경의 소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남는다. 다른 소설에게 그녀가 그려낸 건 우리의 삶의 조각이었다면, 이 소설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담은 느낌이랄까. 소설에서 운명을 점치는 바바의 엄마가 들려주는 말처럼 말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원래 어두운 거란다. 아주 가끔 환한 빛을 발하는 때도 있지만 그건 한순간이야. 애초에 운명의 주관자가 그렇게 만들어놓았으니. 우리 짐작과 달리 신은 질투심으로 가득 차 있거든. 우리가 자족적인 행복에 젖어 있기보다는 끊임없이 자기를 찾고 매달리길 원하지. 한줌의 자비를 달라고, 이 고통만은 비켜가게 해달라고 울며 보채길 바라지.” p.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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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미월 지음 / 창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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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행복을 꿈꾼다. 반짝반짝 빛나는 삶을 살기를 원하고, 주목받고 싶어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집도 사고 부자가 되고, 하기 싫은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그 언젠가를 꿈꾸며 산다. 때문에 반복되는 일상을 견디는지도 모른다. 잡히지 않는 희망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므로 희망은 쓰디 쓴 현실을 이겨내는 사탕 같은 것이다. 그러나 그 사탕이 이를 섞게 하고 나중에 큰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걸 알기에 애초부터 사탕을 먹지 않는 이도 많다. 김미월의 소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의 인물들이 그러하다. 스스로를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라 명명하는 이들이 있다. 그 속에 무궁무진한 비밀이 담겨있다는 걸 아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두 다, 누구나 가는 대학처럼 보이지만 갈 수 없는 이들이 있다. 대학생이 아니라, 거대한 세상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야 하거나, 직장을 구해야 하는 현실과 맞닿은 이들 말이다.시장통에서 지게꾼으로 일하는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사는 나도 같은 고3이지만 그들과의 미래가 다르다. 자신을 알아주는 유일한 영어 선생님 마저 떠나고 나니, 학교에 가야할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건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결혼을 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삶은 주인공의 말처럼 우중충했다.

 

 우중충한 회색 점퍼 속에서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과 우중충한 남색 코트 아래 레깅스를 신은 아가씨들이 출근하는 것도 보였다. 모든 것이 우중충했다. 저 남자애는 곧 학교에 도착할 것이다. 곧 졸업을 할 것이고 저 아저씨들처럼 넥타이를 매고 출근할 것이다. 시간이 더 흐르면 레깅스를 신은 아가씨들 중 한 명과 결혼하겠지. 두 남녀는 아파트 대출금과 자동차 할부금을 갚기 위해 낮밤 없이 일할 것이다. 주말에는 주중에 밀린 잠을 자기 바쁠 것이고, 드디어 아파트를 장만하고 자동차를 소유하게 되면 아마 나이가 쉰쯤 됐으리라. 그때쯤이면 둘 중 하나는 암에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당뇨나, 허리디스크, 우울증도 피해갈 수 없겠지. 아아, 정말이지 너무나 우중충한 미래였다. p.45 - <29200분의 1> 중에서

 

 그럼에도 위안을 얻는 건 소수의 어떤 이가 아닌 다수의 나와 같은 누군가이다. 복잡한 출근길에 어깨를 부딪히는 사람들, 고개를 숙이고 바쁜 걸음을 걷는 사람들, 같은 직장에서 점심을 같이 먹는 사람들 말이다. 중국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서울도 아닌 인천으로 출근을 하는 수는 어학원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외국에서 온 그들은 말만 학생이지 모두 비자를 얻기 위해 어학원에 등록한 이들이다. 그들의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이다. 수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믿고 싶다. 그러나 결국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3개월마다 재계약을 해야 했고, 인천이 아닌 서울을 꿈꾸기에 인천은 그저 지나가는 과정이라 여긴다.

 

 어쨌거나 모두들 수가 어제도 같은 시간에 보았고, 내일도 같은 시간에 볼 사람들이다. 그들과 수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객차 안에 앉아 같은 공기를 마신다. 딱히 그들의 안부가 궁금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그중 한 명이 며칠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다시 나타나면 수는 저도 모르게 반가운 마음이 든다. 자신이 며칠간 나타나지 않다가 다시 나타나면 그들도 속으로 반가워해줄지 그녀는 가끔 그런 것이 궁금하기도 하다. 열차가 달린다. 늘 내리던 역에서 낯익은 얼굴이 내린다. 늘 타던 역에서 다시 낯익은 얼굴이 탄다. p. 88 - <중국어 수업> 중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내가 살아있다는 걸 확인하기도 한다. 여자친구의 증조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에 자신을 둘러싼 죽음을 생각한다. 아무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던 첫 사랑의 자살 소식부터 갑자기 교통사로고로 죽은 선배까지, 세상에 죽음은 너무도 흔했다. 이렇게 누군가 죽어가는 세상에서 취업을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하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백살에 죽든 열살에 죽든 죽음은 죽음일 뿐이다. 죽음의 세부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마술사의 모자 속에서 하얀 비둘기가 날아오를 때처럼,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 순간을 예상하고 있다. 그것을 보러 왔으니까. 그럼에도 비둘기가 날아오르는 순간 그들은 놀라고 신기해하고 감탄한다. 비둘기가 어떻게 생겼고 어디로 날아갔으며 왜 모자 속으로 돌아가지 않는지 따지는 이는 없다. 마술이 끝나고 사람들은 곧 집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더이상 비둘기에 놀라고 신기해하고 감탄했던 순간을 떠올리지 않는다. 다시 일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p. 136 - <모자 속의 비둘기> 중에서

 

 김미월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소시민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취업 사수생이거나, 하루 아침에 실업자가 되었거나, 일탈을 꿈꿨지만 낯선 곳에서 부유하고 있거나, 시인이 되고 싶었지만 시집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이들이라는 말이다. 과거의 나였거나 현재의 나였거나 우리의 모습인 거다. 별 일 없이 살지만 별 일이 일어나 주기를 바란다. 하루 하루 같은 일상에 살고 있다는 게 다행이라 여긴다.  누구나 죽지만 나는 죽지 않았고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어제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부대끼며 또다른 내일을 꿈꾸면서 말이다. 누구나 같은 일상을 견딘다는 위안을 주는 소설이다. 해서,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펼쳐서 함께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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