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vs. 알렉스 우즈
개빈 익스텐스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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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에 눈을 뜨니 세상이 나를 주목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스타가 된 것처럼 우쭐하기보다는 어리둥절할 것이다. 어디를 가든 알아보는 사람들과 질문이 이어진다면 피곤하다. 그러니 열 살 어린 나이에 우주에서 날아온 운선에 머리를 맞은 우리의 주인공 알렉스는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2주 동안 혼수상태였다가 깨어난 세상, 알렉스는 의도하지 않았지만 예전의 자신과 다른 삶을 살아간다.

 

 소설은 운석을 맞은 아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온다. 확률적으로 거의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 게 우리 삶이라는 걸 알려주듯 말이다. 알렉스는 한동안 집에서 생활한다. 운석을 맞은 충격으로 간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간헐적으로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이다. 그러나 알렉스는 몸이 주는 신호를 감지하고 점차 잘 견디게 된다. 알렉스는 운석 때문인지 공부를 열심히 한다. 특히, 과학, 우주를 좋아한다. 문제는 내부가 아닌 외부에 있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엄마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할 고통이다. 그러다 아이들을 피해 어느 헛간으로 피하는데, 그곳에서 소중한 인연 피터슨 씨를 만난다.

 

 ‘카오스에서 질서를 찾는 것은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질서 아래 숨은 카오스를 찾을 수도 있다. 질서니 카오스니 이런 개념들은 불안정하다. 옷을 바꿔 입고 장난치는 쌍둥이와도 같다. 질서와 카오스는 자주 섞이고 겹친다. 시작과 끝이 그렇듯이. 세상일은 겉보기보다 복잡하기도 하고 단순하기도 하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진다.’ 111쪽

 

 월남전에 참전했고 아내가 죽은 후 애완견 커트와 지내는 피터슨은 주변 사람들과 교류가 적다. 이웃들에게는 괴팍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알렉스와는 점점 가까워진다. ‘커트 보거네트’를 좋아해 개 이름까지 커트라 지은 피터슨을 통해 그의 소설과 만난다. 그러다 애완견 커트가 갑자기 죽게 되고 혼자 남은 피터슨의 강이 악화된다. 급기야 불치병 진단을 받는다. 알렉스는 커트 보거네트를 읽는 독서 모임을 만들어 피터슨이 사람들과 교류하게 도와준다. 

 

 피터슨은 다가오는 죽음을 자신의 의지대로 선택하려 한다. 그러니까 자살을 시도한다. 알렉스가 발견하고 고비를 넘겼지만 피터슨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 열여덟 알렉스는 그런 피터슨의 마음을 이해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돕는다. 그리고 중대한 계획을 함께 실행한다. 스위스로 자살여행을 떠난다. 피터슨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죽음과 맞닿는 여행, 둘은 행복하다.

 

 ‘입자들은 튀어나오면서 존재하는 동시에 순간의 작은 파편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너무 빨라서 그것들의 존재를 기록할 만큼 예민한 도구는 발명되지 않았다. 사라진 다음에나 그 존재를 짐작할 수 있을 뿐.(…) 나는 깨달았다. 인생의 문제란 ‘별난’ 입자와 닮았다는 것을. 우주의 크기와 규모에 비하면 다른 모든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작고 금방 지나가는 사건일 뿐이다. 우주의 규모로 보면, 별조차 눈을 깜박이는 시간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간다.’ 429쪽

 

 알렉스와 피터슨의 사귐을 통해 삶과 죽음, 우정에 대해 생각한다. 우연이 운명으로 이어지는 뜨겁고 따뜻한 이야기. 책에 등장하는 물리학 용어나, 우주에 대한 이론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거대한 우주 공간에서 펼쳐지는 삶의 향연은 아름답다. 때로 치열하게 망가지고 때로 폭발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책을 통해 만나는 커트 보거네트의 소설에 대한 부분도 매우 흥미롭다. 이 책을 읽고 커트 보거네트의 소설을 읽는 이가 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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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위한 철학수업 -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 ㅣ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명강의 5
이진경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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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는 두렵다. 그것의 크기나 결과와 상관없이 두렵다. 누가 봐도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면 피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삶은 유동적이다. 언제 어떤 형태로든 변화와 마주하게 된다. 그것을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이다.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진경은 『삶을 위한 철학수업』에서 그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자유였다. 자유로운 삶은 자유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쉬운 듯 어렵다. 아니, 철학이라는 말이 주는 편견 때문에 어렵다고 단정한다.

 

 이진경은 거대한 자유라는 테두리 속에 숨겨진 긍정(작은 자유)을 찾도록 유도한다. 삶 곳곳에 놓인 긍정을 발견하지 못해 우리는 불안하고 불행하다는 것이다. 이진경의 설명대로 사건과 사고는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이미 발생한 일에 대한 태도였다.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사고가 되지만 반대의 경우 삶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사건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뜻밖에 닥쳐오는 일들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것을 부정하는 이들에겐 삶의 필연적인 불행을 뜻하겠지만, 그것을 사건으로 긍정하는 이들에겐 삶의 필연적인 행복을 뜻하는 게 될 것이다.’ (27~28쪽)

 

 수용의 차이에 따라 누군가는 자유로운 삶을, 누군가는 족쇄의 삶을 살아간다. 이것은 비단 하나의 사건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삶을 살아가는 게 모든 것이 그러하다.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기에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능력, 원하는 대로 살고자 할 때 넘어서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이쯤에서 우리는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위해 공부했는지, 단지 생계유지를 위해 직장에 나가고 관계를 맺는지, 이곳이 아닌 저곳을 꿈꾸는 나를 숨기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짜 행복했던 때가 있었는지 말이다. 어떤 답과 만났든 과거에서 이어진 현재의 삶에 만족하는 이는 많지 않다. 우리 욕망이 채워지지 않는 깨진 항아리라서 그렇다. 잘 살고 싶은 욕망, 좀 더 높은 곳에 오르고 싶은 욕망....

 

 이진경은 욕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라는 거다. 자본의 노예, 능력의 노예,  과거의 사랑이나 삶의 노예로 살고 있는 우리는 화들짝 놀라고 만다. 이것은 변화와 용기로 직결된다. 이대로도 나쁘지 않다는, 여전히 과거에 속하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자기 위안에 필요한 것은 상상이다. 변화로 이어질 결과를 상상하는 일, 용기를 냈을 때 달라질 삶을 그리는 것이다. 살면서 계속 고쳐 그릴 수 있는 상상의 지도라니, 정말 근사하다.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현실의 중압감이 아니라 공상하는 능력이다. 지배적인 삶의 방식, 강요되는 삶의 방식에서 벗어난 다른 삶의 가능성이란 언제나 공상과 함께 온다. 공상은 현실감 없는 무능력에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이 무거운 현실에서 벗어날 길을 상상할 수 있는 여유와 능력에서 생각난다. 그럴듯한 공상이란, 그런 능력이 창조하는 다른 현실로 안내하는 상상의 지도다. 가면서 계속 고쳐 그릴 수 있는 지도.’ (136~137쪽)

 

 중요한 건 역시 용기를 내는 일이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 누군가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한 도전이 필요하다. 변화라는 이름으로 다가올 고통을 견디며 마주할 충만한 삶을 상상하는 것으로 시작해도 좋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는, 너머를 꿈꿔도 좋다는 용기를 말이다.

 

 ‘도래할 삶을 만드는 것은 이전의 삶이 기대어 그것을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은 난감한 딜레마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습관이나 기억에 기대면서 동시에 그것에 의해 유지되는 동일성을 벗어나야 한다. 새로운 삶을 향해 이탈의 선을 그리면서 이전의 삶이 주는 안정감과 편안함을 방어하려는 자기 자신과 대결해야 한다.’ (261쪽)

 

 어쩌면 삶은 그 방법을 찾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길을 잃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변화가 두렵다. 이진경의 『삶을 위한 철학수업』을 읽는 동안 그가 안내한 길을 따라 자유를 위한 작은 용기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오히려 더 위축되었다. 그러나 나의 여정은 끝난 게 아니니 자유로운 삶을 위해, 긍정의 마음을 갖기 위해 조금 더 용기를 낸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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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싶었던 책은 루이스 어드리크의 『그림자 밟기』였다.  최지월의 『상실의 시간들』에 밀려 다음으로 미뤄진다. 받아든 책을 펼쳐 만난 문장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두 번째로 펼쳐진 곳이다.

 

 ‘엄마는 세 번의 출산을 모두 집에서 했다. 세 번 다, 아버지는 근무하느라 집을 비웠다. 옆집 아주머니가 도와주긴 했다지만, 엄마는 소희 언니를 낳을 때 호되게 고생했기 때문에 내 출산 예정일에 맞춰선 시댁에 연락했다. 친할머니가 왔는데, 나는 예정일에 나오지 않았다. 보름쯤 해산을 기다리던 할머니는 급한 일이 생겼다는 연락을 받고 시골로 돌아갔다. 나는 고 사이에 태어났다. 열네 시간에 걸친 지독한 난산이었다. 내가 태어난 뒤에 할머니가 다시 왔지만, 이제 몸도 풀었으니 일해도 되겠다면서 밥을 차려내라, 국이 맛이 없다, 집이 더럽다, 애 꼴이 저게 뭐냐 하는 등등의 잔소리와 훈수로 엄마 가슴에 평생 잊지 못할 한을 남겼다.’ (80쪽)

 

 내 어머니를 생각한다. 엄마는 다섯 번 출산을 했다. 마지막 남동생의 출산엔 내가 있었다. 뜨거운 물을 끓이는 등 분주했던 장면이 떠오른다. 할머니는 아들 손주라 좋아했다. 하지만 그 귀한 손주를 낳은 엄마에겐 어떤 말도 건네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소설처럼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두 달이 지났다. 아버지 방은 사라졌다. 동생이 새로운 장판을 깔고 벽을 도배했다. 방 어느 벽엔 구름무늬가 있는 벽지가 있었다. 그리고 동생이 들어왔다. 아버지가 잠들었던 방에서 동생이 잠을 잔다.

 

 밤새 쏟아지던 장맛비가 사라진 시각, 나는 제습기를 돌린다. 창을 닫고 선풍기를 켜고 제습기의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이런 문장을 옮긴다. 단편집 『뱀』으로 만난 윤보인의 장편소설 『밤의 고아』가 들려주는 문장들.  ‘문을 열면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간다. 서른한 개의 계단, 아니 서른세 개의 계단, 계단 끝에는 지하실이 있다. 지하실 옆에는 여러 개의 문이 있다. 그 안에 사람들이 살고 있다. 사람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다.’ (9쪽)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어딘가를 향해 걸을 것이다. 정해진 곳을 향하거나 알지 못하는 낯선 곳을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딘가에 멈춰 누군가를 생각하고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이광호의 산문집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속 문장처럼 말이다.

 

 ‘절대로 닿을 수 없을 만큼 누군가와 떨어져 있다면, 죽음처럼 건너갈 수 없는 곳에 누군가가 있다면, 너는 다른 시간 속에 있는 것이다. 아득한 거리는 아득한 시간이다.’ (37쪽)

 

 나와 아버지의 거리, 나와 엄마의 거리는 아득한 그것이다. 때로 아득해서 꿈속을 헤맨다. 때로 아득해서 멍으로 채워진 시간을 보낸다. 부재를 인정하고 부재를 소멸해야 하는 일이 남은 것일까?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커진다. 엄마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다른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아빠가 아닌 아버지.

 

 

 

 

 

 

 

 

 

 

 

 

 

 

 

 

 

 

 

 

 

 

 내게는 이해인 수녀의 책이 아닌 백지혜의 책인 『밭의 노래』가 나왔다. 백지혜의 책이 처음이라면 『꽃이 핀다』와 함께 만나면 더 좋을 것이다. 끝이 보이는 장마, 그 뒤를 이어 달려올 더위를 날려줄 책으로 『유괴』를 고른다. 초복, 여름이라는 삶에 지친 당신에게 윤희상의 시집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에 수록된 이 시를 건넨다.

 

 

  버드나무로부터의 편지 - 윤희상

 

 

 이른 아침부터 언덕을 거닐며 안으로부터

 울컥 차오르는 마음을 읽고 있다

 그리움이거나

 미움이거나

 목마름이거나 그럴 테지만, 뜨겁다

 이내 바람이 불어 부러지는 것은 나뭇가지이지만,

 아픈 것은 마음이다

 이제 다치지 않는 바람이 되고 싶다

 날마다 그런 마음을 드리운 그림자를 물 위로 띄워보지만,

 아무도 건져서 읽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바람에게로 간다

 이미, 풀어내린 긴 나뭇가지의 잎사귀들이

 바람 속으로 먼저 들어서고 있다

 언덕에서 바람에게 몸과 마음을 다 맡기도 있다

 벌써 바람과 함께 놀고 있다

 

 - <『이미, 서로 알고 있었던 것처럼』, 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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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돌이 2014-07-22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꽃이 핀다]의 그림작가였군요. 이해인의 글에 그린 사람이...어쩐지 푸근하고 낯이 익는 그림이다 했어요^^
아이 어릴때 사놓곤 그림이 너무 예뻐 자주 들여다보곤 했는데...
[그림자밟기] 읽으려고 하고 있는데, 선뜻 손이 안가네요.
가슴아픈 가정사를 읽으면 우울해지려고 해서...

자목련 2014-07-23 10:11   좋아요 0 | URL
남희돌이 님도 <꽃이 핀다>를 곁에 두셨군요. 저도 종종 들여다보는 책이에요.
이번 그림책엔 이해인 수녀님의 글이 있어 한층 더 풍성할 듯해요.

[그림자 밝기]는 지금 오는 중인데, 저도 언제 읽게 될 지 모르겠어요.

비가 오는 수요일, 평온하게 보내세요^^
 

 

 한 권의 책이 운명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거창하게 운명이라고 표현했지만 사랑을 주고 싶은 책이라는 말이 맞겠다. 정호승의 산문집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가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글이라고 하는데 나는 칼럼을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처음 만나는 글이다. 아무 곳이나 펼쳐 읽었는데도 참 좋다. ‘좋다’란 말속에  따뜻함, 포옹, 기운, 안부, 토닥임, 친구 같은 뜻이 담겼다. 뭐라고 표현하면 정확할까? 아니다, 정확하지 않아도 좋겠다.

 

‘꽃은 왜 아름다울까. 그것은 겨울이라는 고통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오늘의 청년 세대가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라면 지금은 묵묵히 고통을 견뎌내야 할 때다. 나이 든 중년 세대의 인생은 짧지만 젊은 청년 세대의 인생은 길다. 인생은 일회적인 것이지만 수능이나 입사 시험은 일회적인 게 아니다. 수능이나 입사 시험에 실패했다고 해서 인생 전체를 실패한 것은 아니다.’ (127쪽)

 

 ‘사람이든 나무든 직선보다 곡선의 삶의 자세나 형태가 더 아름답다. 새들은 곧은 직선의 나무보다 굽은 곡선의 나무에 더 많이 날아와 앉는다. 함박눈도 곧은 나뭇가지보다 굽은 나뭇가지에 더 많이 쌓인다. 그들도 곧은 나무보다 굽은 나무에 더 많이 만들어져, 굽은 나무의 그늘에 더 많은 사람이 찾아와 편이 쉰다. 사람도 직선의 사람보다 곡선의 사람의 품 안에 더 많이 안긴다.’ (201쪽)

  

 내게는 이렇게 정확하지 않아도 좋은, 설명하지 않아도 좋은, 그리 믿고 있는 인연이 있다. 단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하지 않은 이들이다. 오직 글로만, 때로는 목소리로, 문자로 만난 이들이다. 그러니 얼마나 신비롭고 신기한 일인가. 이 책을 나누고 싶은 이가 떠올랐다. 정호승 시인의 시를 좋아하는 E 님,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이 즈음이 생일이다. 방금 주문을 했다. 나는 괜히 설렌다. 내가 책을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좋아진다. 책이라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내 마음이 그곳에 제대로 도착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생은 어느 순간에 가장 아름다워지는가.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고독한 성찰의 세계에 머물 때 가장 아름다워진다. 박항률의 그림 속에 앉아 자연과 하나가 될 때 나는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순간을 살게 된다. 그의 그림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고 또한 내가 사랑하는 까닭은 바로 그림 속의 인물과 내가 하나 됨으로써 아름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 인물과 하나가 되어 한순간이나마 영원히 낙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254쪽)

​

 ​화가 박항률의 그림 때문에 더 좋다. 해야 할 일들이 거미줄처럼 펼쳐졌지만 가만히 그림을 바라보고 매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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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 책을 쓰는 사람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
임승수 지음 / 한빛비즈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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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살아지는’ 삶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53쪽

 

 우리는 착각을 한다. 경험했거나 처했던 상황이 오직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라고 말이다. 몇 권의 책으로도 쓸 수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잔인하게도 누구에게나 삶은 특별하다. 그러니 그것이 책이 되려면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 삶이 책이 되기를 원한다면 임승수의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가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다. 이 책은 글을 쓰는 방법이 아닌 책을 내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우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미 다수의 책을 쓴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게 된 계기, 그 책으로 인해 변화된 일상, 책을 쓰는 즐거움, 독자가 궁금해하는 출판 과정에 대해 솔직하게 보여준다. 그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왜 책을 쓰고 싶은가가 아니라 책을 쓰며 사는 삶이 행복한가에 대한 질문이다. 잊지 말아야 한다. 글이 아니라 책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어떤 글이 책이 될 수 있을까?

 

‘개성 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동물원의 하이에나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지구에 처음 도착한 외계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볼 수 없는 것을 써 내려갈 수 있다.’ 183쪽

 

 첫째,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 아니라 나만이 쓸 수 있는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베넬수엘라 차베스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연구하고 토로한 내용을 담은 저자의 책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를 예로 설명한다. 잘 알려진 『연필 깎기의 정석』도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연필 깎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지만 이전에 이런 책은 없었다.  

 

 둘째,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이미 각 분야에는 다양한 책들이 가득하다. 하나의 주제를 정했다면 색다른 접근을 시도라는 말이다. 여행서의 경우, 이제는 화려한 관광지를 소개하는 내용이 아니라 낯선 곳에서 두려움에 떨며 고생했던 이야기가 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말이다.

 

 책엔 이미 책을 낸 저자들에 대한 인터뷰 내용과 함께 출판사에서는 저자를 발굴하고 접촉하는 과정도 설명한다. 이 책이 반가운 건 바로 독자가 정말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려준다는 점이다. 저자의 경우 오마이뉴스에 연재할 칼럼을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을 해 왔거나, 직접 출판사에 기획서를 보냈다고 한다. 그럼 출판 기획서는 어떻게 쓰는 걸까? 제목, 기획 의도, 예상 독자, 차별화 요소, 유사 경쟁서, 예상 목차를 직접 써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출판사 입장에서 돈이 되는 책인지 객관적으로 살피라는 거다.  한 권의 책 제목, 목차, 광고 카피가 이런 과정을 통해 나온다니 내 곁의 책들이 새롭게 보인다.

 

‘기획서 작성 과정은 또 하나의 장점이 있다. 출판사가 책 한 권을 내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고민하는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111쪽

 

 자비 출판이 아닌 경우 책을 낼 때 반드시 알아야 할 계약에 대한 부분도 빼놓지 않는다. 계약 조건(인세, 광고, 원고 마감 등)에 대해 출판사 별로 자세히 설명한다. 출판계는 여전히 불황이다. 하루에도 셀 수 없는 정도의 책이 나온다. 그러니 꼼꼼하게 알아보고 책을 내야 할 것이다.

 

‘출판사의 규모가 크다고 꼭 책을 잘 만드는 것도 아니다. 중소 규모의 출판사지만 완성도 높은 책을 꾸준히 내서 독자들의 신뢰를 얻는 출판사도 적지 않다. 그래서 해당 출판사가 기존에 출간한 책의 목록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영세한 곳은 자칫 경영상태 악화로 인세를 떼어먹힐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272쪽

 

 그럼, 이제 제대로 쓰는 일만 남았다. 글이 아닌 책은 내가 아닌 남이 보는 것이라는 걸 기억해야 한다. 이 책이 알려준 방법대로 열심히 실천한다면 당신의 삶도 책이 될 것이다. 단언컨대, 책을 쓰는 일이 당신 생의 최고 행복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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