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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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 읽은 순간, 묘한 떨림이 있었다. 어떤 이유도 필요없이, 그냥 좋은 사람. 괜시리 설레고 기분이 좋은 말이다. 책을 마주하고, 잠시 나의 그저 좋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가족, 항상 보고 싶은 지인, 매일 매일 끝도 없이 할 말이 많아 전화기가 뜨거워지는 친구들. 소설을 책장을 넘기도 전부터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바람을 가졌다. 치장도 없이, 꾸밈도 없는 글에서 느껴지는 진성성 이랄까, 그런 느낌이 좋았다. 있는 그대로의 일상과 보일 듯 말듯 감정의 묘사가, 소설 속에서 녹아나는 삶이 좋았다. 소설에 대해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정착하는 이민자,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심리와 갈등을 담고 있다. 인도적 생활방식을 기본으로 하며 현실에 적응하려는 그들이다.

 8편의 단편엔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관계들, 그 속에서 그저 좋은 사람은 연인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다. 소설의 원제인  <길들지 않은 땅>은 아내가 죽은 후 딸 루마와 아버지의 관계를 담았다.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으로 루마는 혼자 남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염려한다. 남편의 직장으로 낯선 곳에 이사온 루마는 불안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가족에서 다정하지 않았던 자신을 알기에  딸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루마는 다니러 온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곧 깨달는다. 아버지는 엄마처럼 그저 좋은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꾸며 놓은 정원에 꽃과 나무, 할아버지를 따르는 아이, 자신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했다는 사실. 그러나 아버지의 입자에서 아내 대신 그저 좋은 사람은 루마가 아니었다. 새로이 연애도 하고,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싶었다. 어느 순간, 가족은 타인 아닌 타인이 된다. 

 부모 다음으로 연인을 만나기 전까지 든든한 내 편은 형제다. 라훌에게 누나 수드하는 그랬다.  처음 술을 가르쳐준 누나가 부모보다는 더 친밀했다. 하여, 부모는 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의례 누나에게 의논한다. 언제부턴가 누나는 부모와 동생의 인생에 관여하는 게 싫었다. 자신의 공부를 위해, 행복을 위해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살고 싶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라훌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두려웠다.  치료를 받았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고, 남편이 알까 두려웠다. 불안했지만 아이를 맡기고 외출 후 돌아오니 집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제목처럼 <그저 좋은 사람>으로 시작된 가족은 언제나 그저 좋은 사람일 수 없다. 때로 상처를 주고, 외면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이는 아직 어렸고, 수드하는 아이에게 그저 좋은 사람일 분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 찬장을 열어 워타빅스 한 봉지를 꺼내고 우유를 냄비에 데웠다. (...)그녀는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남편과 이제 막 울기 시작한 아이와 그날 아침 쪼개져 열려버린 자기 가족을 생각했다. 다른 가족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p 209~ 210  

 삼촌이라 부르며 가족같은 사이로 지내는 남자를 좋아하는 엄마의 감정을 다룬 <지옥 - 천국>, 생이라는 여자와 두 남자 파룩과 폴 사이의 분명하지 않은 관계를 그린 <아무도 모르는 일>도 흔한 소재였지만, 줌파 라히리는 특별하게 그려냈다. 

 2부 <헤마와 코쉭>은 각각의 시선으로 쓰여진 단편들이 나중에 한 개의 시선으로 연결되는 연작소설이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두 가족의 일상, 갈등을 그렸다. 소녀 헤마의 시선으로 본 코쉭, 죽은 어머니 자리에 젊은 인도 여자를 새어머니로 들인 아버지를 보는 코쉭, 인도도 미국도 아닌 로마에서 우연하게 만난 헤마와 코쉭.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있었지만, 둘은 다른 결정을 내린다. <헤마와 코쉭>에는 특히 미국인이지만 인도적 느낌이 강했다. 이민자의 삶, 타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겪었을 어려움을 섬세하게, 담백하게 그렸다.  

 글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줌파 라히리는 처음 만나는 작가였고, 작가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해서, 그녀가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사실도 몰랐다. ‘그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좋았는데,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으로, 읽는 내내 나를 달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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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ㅣ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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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려령은 ‘완득이’와 같다. 그만큼 완득이의 인상은 강렬했다. 성장소설이 주는 감동, 그리고 웃음까지 안겨준 소설이었다.  조카를 시작으로 친구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했던 책이다. 그리고 다시 만난 김려령. 촌스러웠던 완득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제목과 몽환적인 표지다.  

 생일 선물로 MP3를 사달라고 조르던 딸이 죽었다. 그것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학교 1학년 천지는 말썽한 번 부린적 없는 착한 딸, 착한 동생이었다. 무엇이 천지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첫 장부터 웃게 했던 완득이와는 달랐다. 가슴이 답답해졌고, 천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지 빨리 알아야 했다. 마음이 급해졌고, 완득이를 만날 때처럼 단숨에 읽게 되었다.  

 천지의 아빠는 사고로 죽었고, 엄마는 생계를 위해 밤낮없이 바빴고, 자주 이사를 다녔다. 친한 친구를 만들라치면 또 이사를 갔다. 천지는 자신을 소개하는 게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엄마에게도 언니 만지에게도 드러낸 적이 없었다. 만지는 천지의 친구 미라를 통해 화연이 계획적인 거짓말로  천지를 놀리고, 왕따를 시킨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왜, 그랬을까?  중학교 3학년 만지는 천지의 친구들에게 화연이의 이야기를 듣고, 화연이를 주시한다. 

 천지가 죽고 엄마는 이사를 했다. 딸을 가슴에 묻었지만, 살아야 했다. 산다는 것은 그랬다. 화연이가 사는 동네였다. 엄마도 화연이가 천지를 오랜 시간 괴롭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화연이 참 못된 아이구나, 생각했다. 그러나 화연이도 상처가 있었다. 바쁜 부모님 때문에 항상 혼자였고, 진심으로 자신을 대하는 친구는 없었다. 그래도 천지가 그렇게 죽을 줄은 몰랐다. 그 뒤로 화연은 점점 외톨이가 되고, 방황하게 된다. 천지는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화연에게는 용서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만지는 화연마저 잃고 싶지 않았다. 화연를 지켜보는 일이 천지가 바란 일이었는지 모른다. 

 김려령은 왕따에 대한 여러 시선을 담았다. 아이들의 고민을 도와주고 싶었던 선생님의 마음, 우리 사회에서 한부모 가정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가정에서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한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따돌림은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커가면서 친구와 싸우고, 속상해하고, 화해하는 일도 많았다.  

 그럼,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왕따는 어디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까. 똑같은 일이 일어나 지 않도록 아이들에게 세심한 관심과 애정을 쏟는 일, 맞벌이 부모의 자녀들을 돌봐주는 제도, 믿고 의지하며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학교가 되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문제가 없는 애의 문제는요?”     

  너 참 밉다.
 그래도 용서를 하고 갈게. 나는 가도 너는 남을 테니까.
 이제 다시는 그러지 말기를. 이제는 너도 힘들어하지 말기를  

 천지의 질문이, 천지가 남긴 유서가 머리속에 맴돈다. 김려령은 정말 재미있게 썼다. 술술술 읽히는 책, 그러나 가슴은 여전하게 답답하고 무겁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잘 내고 있냐고, 정말 잘 내고 있냐고 말을 걸어주는 어른인가, 묻게 된다. 표지에 고운 나비가 천지인 것 같아, 자꾸만 바라보고, 자꾸만 매만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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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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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승철 LP를 손에 든 채 그 아이를 오래도록 기다렸다. 여름날이었고,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는 일이 많아졌다. 내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고, 길었던 낮이 사라지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다. 속상했지만, 약속한 적이 없으니, 일방적인 기다림이었다. 소설을 다 읽고 다시 만난 ‘눈을 맞으며 그녀는 서 있었다.’ 첫 문장은 그 LP를 떠올렸다. 그 아이를 좋아했던 시절, 나는 순수했고, 우연하게 소식을 접했을 때 반가웠다. 그 여름날은 혼자만의 추억이 되었다. 
 
 살다보면 한 번쯤, ‘사랑이 전부다’ 라고 믿는 시간을 만난다. 그 시간이 찰나든, 영겁이든, 사랑은 그렇게 치명적이고 강렬하다.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나 아닌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상대를 위해 나를 버리는 일이기도 하며, 나를 위해 상대의 모든 것을 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에 대해 이렇다 정의하지 못한다. 사랑은 공통의 감정임과 동시에 개인적인 감정이 때문이다. 
 
 이상한 일이다. 사랑에 대해, 아니 내가 사랑했던 시간에 대해 이토록 많은 의문을 갖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사랑이 진행되던 때에도 내사랑에 대해 어떤 의심도 갖지 못했었다. 박민규가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통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사랑함에 있어 아름다움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소설은 과거에서 시작해 현재로 이어진다. 1980년대 중반 백화점에서 일을 하다 만난 화자인 나와 그녀, 그리고 요셉. 그들은 스물, 그 언저리에 있었다. 자신만의 상처로 자신의 세상에 살고 있던 세 사람은, 그 자체로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녀는 아름답지 않은 외모를 가졌다. 하여, 세상은 그녀를 따돌렸고, 그녀는 그런 세상에 점점 익숙해졌다. 나는 그녀에게 친구이상의 감정을 느꼈고, 나와 그녀를 연결해주는 요셉을 통해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그녀에게 외모는 세상과의 단절이었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나를 그녀가 믿지 못함은 당연했다. 나는 곧 대학에 들어갔고, 그녀와 요셉과의 만남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다 그녀는 나를 떠나버렸다. 백화점도 집도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녀의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 그녀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나는 알게 된다. 그녀가 보낸 한 통의 편지, 못난 외모로 나를 사랑하며 나에 대해 희망을 품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엇, 두려워서 떠난다는, 그러나 사랑한다는, 장 문의 편지를 읽는 부서져 버린 그녀의 가슴을 느꼈다.

 아름다운 것은 나쁘지 않다. 심지어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행복하게 한다고 하지 않던가. 해서, 모두가 아름다워지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다 하여, 주변을 어둡게 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언제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청춘은 언제나 그 시기를 지나야 그 진면목을 알게 된다. 스무 살, 어른이 시작되는 나이이며, 사랑하기 좋은 나이다. 그러나, 스스로 못생겼다고 자괴감이 가득한 스무 살의 여자에게 사랑은 너무 먼 빛이다. 

 ‘빛을 발하는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워. 빛이 강해질수록 유리의 곡선도 전구의 형태도 그 빛에 묻혀버리지. 실은 대부분의 여자들... 그러니까 그저 그렇다는 느낌이거나... 좀 아닌데 싶은 여자들... 아니,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極)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빛을 밝히는 거지’ p 185

 이렇게 고운 문장을  만나게 되어 행복했다. 소설은 사랑을 다룬 연애소설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랑은 인생을 말하고 있었다. 요셉이 특히그런 존재였다. 첩의 자식으로 세상에 존재하게 된, 자살한 어머니, 그로 인해 상실감으로 세상을 채워가고 있던 그였다.  요셉에게 나와 그녀는 호흡을 할 수 있는 공기와 같았다. 아니, 셋은 서로에게 그랬다. 80년대와 현재를 교차하며  나와 그녀는 사랑했고, 잠시 이별했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요셉을 이야기한다.  80년대 중반의 사회상,문화,  음악은 자연스레 그 시대로 나를 이끈다.  내가 그 아이를 무작정 기다렸던 80년대. 두 가지의 결말로 마무리 되는 소설. 어떤 결말이 더 나았을까, 선택은 의미가 없었다. 수없이 많은 나와 그녀가 만들어내는 결말이 세상에 존재하므로.

 박민규를 단편 <근처>를 통해 처음 만났고,  박민규를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생각했다. 그가 소설에서 말하고 싶은 삶이, 중심이 아닌 주변의 삶이라서, 내가 그 주변에 속해 있어서. 소설의 마지막을 만났을 때  눈이 아파왔지만, 정작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물이 난다.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워서, 따뜻해서, 연서(戀書)를 쓰듯 소설을 썼다는 박민규의 말이 떠올라서.

 그런 책이 있다. 소설의 문장을 전부 보여주고 싶은, 그 문장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마음을 누구에게라도 전해주고 싶은 소설. 이 책이 그랬다. 감정의 흔들림 없이 또박또박 차분했으나, 가슴 밑바닥에서 시작되는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 살아있는 느낌이 눈을 통해 내 가슴에도 들어왔다.  박민규
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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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노스케 이야기 ㅣ 오늘의 일본문학 7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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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스무 살부터 어른의 삶으로 생각한다.  막연하게 스무 살을 동경하고, 스무 살을 향해 10대를 보낸다. 그러나 스무 살은 단지, 청춘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곧 알게 된다. 그 시간이 지나고 바라본 스무 살은 어디인가 모르게 부끄럽고, 창피하며, 빈틈이 많고, 어리숙하다. 그럼에도 그 시간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는지 안다. 아마도 나이가 든 때문이리라,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 속에 함께 했던 사람들이 그리운 것은.
 
 요시다 슈이치의 장편 소설  <요노스케 이야기>을 읽고, 나 역시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 뚜렷하게 기억나는 학번과는 다르게 동기들의 이름은 대부분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기억할까. 피식, 웃음이 번진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같은 기억을 갖고 있기에 특별한 느낌으로 남은 이들이다.
 
 요노스케 이야기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다. 대학 신입생이 되서 도쿄 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된 요노스케와 그가 만난 이웃들, 친구들,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보편적인 일상들. 낯선 곳으로 첫 생활, 요노스케도 모든 면에서 두리번거리고, 불안해한다. 나도 그랬다. 버스를 타고 내리며 혹시라도 길을 잃지 않을까, 조바심을 냈고, 점심 값이 부족하지 않을까, 머리 속으로 연신 계산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생활에 흥분하고 있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이전의 나와 다른 나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꺼란 설렘. 요노스케와 마찬가지로 서툴게 아르바이트를 했고, 시험 시간에 노트를 빌리고, 친구의 연애사를 들어주고, 혼자서 짝사랑을 하기도 했다. 
 
 불안한 미래를 걱정했고, 어서 좀 더 나은 어른이 되기를 꿈꿨다. 해서, 요노스케가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요노스케를 통해 우리의 청춘을 본 이는 나뿐이 아닐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일기를 써내려 가듯 담담하게 요노스케와 그의 주변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우연찮게 임신을 하게 된 학교를 그만두고 결혼한 친구, 이성이 아닌 동성을 좋아하는 친구,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함께 웃었고, 때로 다투기도 했으며, 때로 뜨겁게 서로를 사랑했다.
 
 20년이 지나고 현재의 일상이 이어지고, 그들이 기억하는 요노스케의 이야기가 있다. 20년 전 거절을 잘 못하던, 엉뚱하게 삼바 동아리에 들었던, 도쿄 생활에 제법 잘 적응하던 요노스케. 그러나 현재 그들의 일상에 함께 하지 못했다. 사고로,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하려다 그만 죽고 말았다. 소설은 결국,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글이었다. 누구에게나 주변을 둘러보면 있을법한, 아니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이야기라  잔잔한 감동을 준다.
 
요시다 슈이치의 최근 소설 <악인>, <사랑을 말해줘>에서 만났던 울적하고 쓸쓸했던 느낌과는 달리,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라 더 따뜻함이 느껴졌다.  요노스케와 만난 인생과 만나지 못한 인생이 뭐가 따를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봤다. 아마도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청춘 시절에 요노스케와 만나지 못한 사람이 이 세상에 수없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왠지 굉장히 득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p198 라는 구절처럼, 내 일상에 속해 있는 많은 요노스케를 떠올린다. 그들에게 나도 요노스케
와 같은 존재일까. 평범한 일상과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들과 오래도록 함께 일상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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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 - 2009 제9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품집
박민규 외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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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떤 문학상이든 수상집을 읽은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이름만으로 익숙한 작가들의 단편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소설을 직접 만나보지 못하고 소문이나 평론에  의존하기도 한다.  그런 소문만으로  때로 편견에 빠지기도 한다. 2009년 황순원 문학상 수상작자인 박민규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그러면서도 워낙 그의 소설에 대한 호평이 많아 수상작 단편<근처>에 대해 궁금증과 기대도 컸다. 결과를 말하자면, 기대 이상이었다.
 
 수상작 <근처>는 제목을 먼저 정해놓고 쓴 소설이라고 했다. 주인공 호연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소위 성공을 이룬 남자다. 마흔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않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온 그에게 삶은 암을 선고했다. 간암 말기, 어떤한 치료도 시도하지 않고,  삶의 끝을 향해 걸어가게 된 것이다. 그는 고향으로 향했고,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게 된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지금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는 친구들의 하루과 호현의 하루는 달랐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호연의 마음이 담담하게 잘 표현된 소설이다. 악착같이 삶을 부여잡고 싶은 욕망, 신에 대한 원망, 그 어떤 절규도 없었다. 그래서 더 슬펐고, 더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나는 혼자다. 혼자인 것이다. 찾아 나설 아내도 없다. 설사 네 명의 자식이 있다 해도 나는 혼자일 것이다.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문득 혼자서, 혼자를 위로하는 순간이다. 삶도 죽음도 간단하고 식상하다. 이 삶이 아무것도 아니란 걸, 나는 그저 떠돌며 시간을 보냈을 뿐이란 사실을 나는 혼자 느끼고 또 느낀다. 나는 무엇인가? 이쪽은 삶, 이쪽은 죽음... 나는 비로소 흔들림을 멈춘 나침반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평생을
 
 <나>의 근처를 배회할 인간일 뿐이다.   p 39
 
 산다는 것은, 어떠한 삶의 근처를 배회하고 있든지 결국엔   ‘혼자’ 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이 절대  외롭거나 슬픈 일이 아님을 확인 시켜주는  것도 삶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살고 있지만,  삶은 그 자체가 아름답고 숭고한 일이기 때문에.
 
 <근처>외에도 반가운 소설이 많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은희경의<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크리스마스와 눈을 기다리는 누구에게나 간직하고 싶은 추억을 꺼내보게 한다. 점점 더 좋아지는 작가 김숨의 <간과 쓸개>는 죽음이라는 소재가  <근처>와 닮은 부분이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김경욱의 <신에게는 손자가 없다>도 좋았다. 단편 c1+y=:[8]: 를 통해 처음 만나는 김중혁도 인상적이었다. 여기선 만난 단편들은 김숨의 <철>, 김중혁의 <펭귄뉴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로 향하는 설레임의 시작이다.  
  
 마지막으로 박민규에
대해 한 번 더 말하고 싶다. 내게 그와의 첫 만남은 난로 같았다. 그에게서 따뜻한 온기가 나온다.  그의 다른 소설을 만나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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