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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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저 좋은 사람이라고 읽은 순간, 묘한 떨림이 있었다. 어떤 이유도 필요없이, 그냥 좋은 사람. 괜시리 설레고 기분이 좋은 말이다. 책을 마주하고, 잠시 나의 그저 좋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언제나 나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가족, 항상 보고 싶은 지인, 매일 매일 끝도 없이 할 말이 많아 전화기가 뜨거워지는 친구들. 소설을 책장을 넘기도 전부터 나를 행복하게 했다.  

 이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바람을 가졌다. 치장도 없이, 꾸밈도 없는 글에서 느껴지는 진성성 이랄까, 그런 느낌이 좋았다. 있는 그대로의 일상과 보일 듯 말듯 감정의 묘사가, 소설 속에서 녹아나는 삶이 좋았다. 소설에 대해 전체적으로 말하자면,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정착하는 이민자, 그리고 그 다음 세대의 심리와 갈등을 담고 있다. 인도적 생활방식을 기본으로 하며 현실에 적응하려는 그들이다.

 8편의 단편엔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관계들, 그 속에서 그저 좋은 사람은 연인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했고, 친구이기도 했다. 소설의 원제인  <길들지 않은 땅>은 아내가 죽은 후 딸 루마와 아버지의 관계를 담았다. 갑작스런 엄마의 죽음으로 루마는 혼자 남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염려한다. 남편의 직장으로 낯선 곳에 이사온 루마는 불안했지만, 아버지와 함께 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역시, 가족에서 다정하지 않았던 자신을 알기에  딸이 자신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루마는 다니러 온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곧 깨달는다. 아버지는 엄마처럼 그저 좋은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꾸며 놓은 정원에 꽃과 나무, 할아버지를 따르는 아이, 자신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했다는 사실. 그러나 아버지의 입자에서 아내 대신 그저 좋은 사람은 루마가 아니었다. 새로이 연애도 하고, 자유롭게 여행도 다니고 싶었다. 어느 순간, 가족은 타인 아닌 타인이 된다. 

 부모 다음으로 연인을 만나기 전까지 든든한 내 편은 형제다. 라훌에게 누나 수드하그랬다.  처음 술을 가르쳐준 누나가 부모보다는 더 친밀했다. 하여, 부모는 동생에게 문제가 생기면 의례 누나에게 의논한다. 언제부턴가 누나는 부모와 동생의 인생에 관여하는 게 싫었다. 자신의 공부를 위해, 행복을 위해 미국을 떠나 영국에서  살고 싶었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라훌이 자신을 찾아왔을 때 두려웠다.  치료를 받았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고, 남편이 알까 두려웠다. 불안했지만 아이를 맡기고 외출 후 돌아오니 집 안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제목처럼 <그저 좋은 사람>으로 시작된 가족은 언제나 그저 좋은 사람일 수 없다. 때로 상처를 주고, 외면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아이는 아직 어렸고, 수드하는 아이에게 그저 좋은 사람일 분 다른 의미는 없었다. 그녀는 부엌으로 가 찬장을 열어 워타빅스 한 봉지를 꺼내고 우유를 냄비에 데웠다. (...)그녀는 더 이상 자기를 신뢰하지 않을 남편과 이제 막 울기 시작한 아이와 그날 아침 쪼개져 열려버린 자기 가족을 생각했다. 다른 가족들과 다르지 않은, 똑같이 두려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p 209~ 210  

 삼촌이라 부르며 가족같은 사이로 지내는 남자를 좋아하는 엄마의 감정을 다룬 <지옥 - 천국>, 생이라는 여자와 두 남자 파룩과 폴 사이의 분명하지 않은 관계를 그린 <아무도 모르는 일>도 흔한 소재였지만, 줌파 라히리는 특별하게 그려냈다. 

 2부 <헤마와 코쉭>은 각각의 시선으로 쓰여진 단편들이 나중에 한 개의 시선으로 연결되는 연작소설이다.  인도에서 미국으로 이민 온 두 가족의 일상, 갈등을 그렸다. 소녀 헤마의 시선으로 본 코쉭, 죽은 어머니 자리에 젊은 인도 여자를 새어머니로 들인 아버지를 보는 코쉭, 인도도 미국도 아닌 로마에서 우연하게 만난 헤마와 코쉭.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있었지만, 둘은 다른 결정을 내린다. <헤마와 코쉭>에는 특히 미국인이지만 인도적 느낌이 강했다. 이민자의 삶, 타국에서 정착하기 위해 겪었을 어려움을 섬세하게, 담백하게 그렸다.  

 글이라는 것이, 참 묘하다는 생각을 했다. 줌 라히리처음 만나는 작가였고, 작가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해서, 그녀가 퓰리처상 수상 작가인 사실도 몰랐다. 그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 좋았는데,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사람으로, 읽는 내내 나를 달뜨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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