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을 맞이할 즈음에 2010년은 아주 먼 시간이었다. 그 때 내게 2010년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날아간 화살이었고, 이제 2010년을 마주하려한다. 성큼 성큼, 2010년이 오고 있다. 올해도 여전하게 책을 읽었고, 쓰는 것엔 부족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의 시집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머무르고 실천은 지켜지다 말았다. 여름이 되면서 시는 점점 내 손에서 멀어져갔고, 9월부터 일상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고, 책 읽기와 리뷰에도 변화가 생겼다. 주말에 많이 읽게 되었고, 해서, 자꾸 미뤄두는 책과 글이 많아졌다. 

 허연의 <나쁜 소년이 서 있다>, 김이설의 <나쁜 피>,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조해진의 <천사들의 도시>, 강영숙과 이현수, 오정희, 공지영, 전성태, 김연수, 한창훈, 김훈의 책들과 황정은, 정한아, 염승숙, 김유진, 김애란... 내겐 좋아하는 작가와  읽어야 할 작가가 늘어나고 있다.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 <1Q84>  그리고 기억에 남는<체실 비치에서>, <보트>, <겨울>, <다른 남자>,<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평온의 도시들>... 

 산문은 작가의 새로운 매력을 만나게 되어 더 좋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사강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원재훈이 만난 21인의 작가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 행복했다>, 박범신이 마난 젊은 작가<박범신이 읽은 젊은 작가>, 그리고 여전하게 매혹적인 독서기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영화인문학>, <불멸의 신성가족>도 좋았다.  

 내 맘대로 고른 10권의 책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피>,<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그저 좋은 사람>, <1Q84>,<영화인문학>, <불멸의 신성가족>, <도가니>,<나를 위해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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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 개정판
이응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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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까? 이응준의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을 다 읽고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에게 있어 모든 일상은 소설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남과 북의 가상 통일 후 한국을 그린 <국가의 사생활>을 통해 처음 만난 이응준은 회색와 검정계통의 색이었다면,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은 블루, 코발트 블루였다. 
 
7편의 단편은 모두 외로운 자아를 그렸다. 혼자가 아님에도 덩그러니 혼자인 느낌, 끊임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군상, 온전한 나를 알고자 하는 고독이라고 할까. 언젠가 나 역시 느꼈던 쓸쓸함과 외로움, 그것들과 오랜만에 재회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응준의 소설은 과거에서 온 긴 장문의 편지처럼 지난 날의 순간 순간을 떠올린다. 

 단편 <이교도의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믿었던 친구의 자살과 뒤이어 화자인 나에게 날아온 죽은 자의 편지. 친구가 남긴 물건을 전하러 가는 낯선 여행길. 그 길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될 꺼라는 친구의 글은 화자에게도 독자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오며, 그 여행길에 동참케 한다. 과연, 그곳엔 누가 있으며, 어떤 일을 만나게 될까. 그리하여, 마주하게 된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한다. 

 아마도 고래는 낙타를 사랑하고 있었던 걸 거야. 사막에 사는 낙타말이야. 왜, 알다시피 고래도 포유류잖아. 유전자적으로 끝까지 올라가보면 낙타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무튼, 바다에 사는 온갖 고래 중에 몇 마리가 낙타를 그리워한 거라구. 그래서 백사장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거야. 물 한 방울 없는, 먼지투성이의 사막을 향해 더이상은 다가가지 못한 채.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하겠지.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치부하면서. 기껏 인심을 쓰더라도, 안타까워하는 정도일 뿐이야. 고래가 낙타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모르고, 까끌한 모래알을 씹어 삼키며 기다리고 있는 낙타의 어두운 고독은 상상도 못하면서. p 52 

 고래의 절박함과 낙타의 어두운 고독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타인의 내면을 꿰뚫어보고 심연을 잴 수 있는, 이응준은 그것을 알았던 걸까?

 <이미 어둠의 계보를 알고 있었다>의 나 역시 불안하다.  친구 준기와 그의 여자친구와 나는 언제나 함께였다. 셋은 둘보다 때로 안정적이다. 둘에서 셋은 자연스럽게 동화되지만, 셋에서 둘은 어딘가 불안하다. 갑작스런 준기의 죽음은 수영과 나는 더이상 안정적이지 못하다. 어느 날 갑자기 존재는 부재가 될 수 있다는 삶의 허무함.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쉽게 인정할 수 없다. 수영은 미국으로 떠나고 나는 대학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 대학원 동기 미오. 역동적인 미오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준기의 죽음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듯 하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게 죽음이며, 그것이 삶이라는 걸 확인한다. 

 한 때 연인이었으나 타인으로  다시 만나 아련한 추억을 되돌아보는 <Lemon Tree>,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픈 내면을 그린 <지평선에서 헤어지다>, 타인에게 가슴 한 켠을 내어줄 여유가 없는 <내 가슴으로 혜성이 날아들던 날 밤의 이야기>. 치열하게 고독했을 시간들, 나를 찾아 방황하던 청춘들, 상념의 시간을 지나온 그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과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나. 생각해보면 삶은 여전하게 불안하고, 여전하게 외롭다. 단지,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을 뿐,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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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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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삶은 언제나 궁금하다. 해서,  인간적인 모습를 만날 수 있는 에세이에 더 끌린다.  공지영이 자신의 딸에 쓴 편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대놓고 가볍게 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도종환의 산방일기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은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일상적인 삶이 있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를 통해 작가 이전의 한 여자, 사강을 만날 생각에 책을 기다리는 시간은 즐거웠다. 

 사강은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세상은 저자가 19세의 어린 나이의 소녀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하여, 많은 이들이 사강을 직접 보고 싶어했다. <슬픔이여 안녕>이후 그녀의 삶은 수많은 시선에 집중되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던 사강, 그랬기에 무언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다. 그녀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 열광했던 일들, 작품들에 솔직하고 세세하게 썼다.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를 만나러 미국에 간 일, 그녀의 눈에 비춰진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삶과 사랑,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의 인생, 그리고 ‘장 폴 사르트르’에 대한 편지.

사강은 도박과 스피드를 즐겼다. 그녀는 분명 도박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많은 빚을 지고 도박을 즐기면서 느꼈던 초초함과 짜릿함의 표현들은, 위험해 보이는 그것들에 대한 사강의 글은 누구라도 도박에 빠져들게 했고, 도박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케 한다. 금지된 것에 대한 동경까지 불러온다. 

 ‘그것은 길을 따라 서 있는 플라타너스를 편편하게 한다. 그것은 밤에 빛을 발하는 주유소 간판들을 길게 잡아 늘이고 일그러뜨린다. 그것은 갑자기 솟아올라 말문을 막히게 하는 끼익거리는 타이어 소리를 틀어막고, 슬픔을 흩뜨려버린다. 우리가 사랑에 미친다 하더라고 소용이 없다.’ p 89 스피드 중에서 이렇게 매혹적인 글로 쓰다니.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글에, 나는 열광한다. 차가운 겨울 밤의 공기가 빰에 스치는 짜릿함을 상상한다.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사강과 사르트르가 함께 있는 자리에 나도 같이 있는 기분이다. 둘의 뜨거운 우정이, 그를 향한 사강의 애정이 고스란히 글 속에 담겼다. 그녀는 시력을 잃은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편지를 여섯 시간에 걸쳐 직접 녹음을 했다. 그녀에게 사르트르는 무엇이었을까?

 사강은 자신이 좋아했던 장소에 대해서도 아름답게 추억했다. 바로, 프랑스 남부에 있는 ‘생트로페’라는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 집을 장만하고 친구들과 바다를, 모래를, 고독을 즐겼던 사랑의 젊은 날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모하는, 더 이상 그녀의 ‘생트로페’가 아닌 것에 대한 그리움.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사강이 49세였던 1984년에 발표했다. 담백하고 유려한 글이다.2000년 지구의 종말이 떠돌던 시대, 제목처럼 때로 고통스러웠던 삶의 한 조각. 그러나 삶은 환희의 순간도 안겨주었다. 아직 내게는 멀게 느껴지는 막연한 나이에 사강은 자신의 친구들과 일에 대해 기록했다. 문득, 그 나이에 내 곁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시간과 사랑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하듯이, 태양도 인생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p 176 

 부질없는 것들에 대해 욕심을 내며 살지 말라고, 흐르는 대로 그렇게 살라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사강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오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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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해요 ㅣ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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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민규, 이기호, 성석제는 유쾌한 작가로 유명하다.  박민규와 성석제는 소설로 만났지만, 이기호는 <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이란 책에서 소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로 만났다. 해서, 그가 쓴 소설이 더 궁금했다.  어리숙한 표정과 꼭두각시를 떠올리는 표지,  소설 ‘사과는 잘해요’는 이별 소식을 대신 전하는 사과 대행업체,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날 수 있을꺼란  생각했다. 그러나,  ‘사과는 잘해요’는 뭐랄까, 가볍지만 가볍지 않았고, 무겁지만 무겁지 않았다. 명확하게 이렇다, 라고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소설이었다. 처음 만난 이기호는 그랬다.
 
 소설을 이끄는 나는 시봉과 함께 요양원에 살고 있다. 요양원에서 주는 약을 먹고, 양말 상자를 포장하며, 사회복지사에게 매를 맞기도 한다. 자신의 생각도 의견도 없이 그저 그들에게 지배당하듯 그런 삶고 있었다.  반복되는 요양원의 일상으로 노숙자였던 낯선 남자가 들어오면서 변화가 시작된다. 낯선 남자가 갇혀 있는 자신을 구해 달라는 글을 돌맹이에 적어 밖으로 던지면서 요양원은 폐쇄된다. 원장과 사회복지사는 경찰과 함께가고 돌아길 집이 없는 나는 시봉의 집으로 향한다. 시봉의 집엔 동생 시연과  경마에 빠진 시연의 남자 친구가 있었다. 그렇게 4명은 한 집에서 살아간다.
 
 시봉과 나는 일 자리를 구했지만, 마땅한 자리는 없었다. 자격증도 없었고, 경력도 없었고, 오로지 할 수 있는 일은 사과와 포장뿐이었다. 요양원에서 다른 사람들 대신 사회복지사에게 사과를 하고 그들 대신 매을 맞았다. 때로 사과할 게 없으면 새로운 죄를 만들어 주고, 그 죄를 대신해서 사과하고 또 맞았다.
 
 시봉과 나의 이야기를 들은 시연의 남자친구는 사과를 대신 해준다는 광고지를 붙이고, 사업을 시작한다. 장애를 가진 아들과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떠났던 남자가 첫 번째 의뢰인이 되었다. 아내와 아들에게 용서를 빌고 사과를 의뢰한다. 시봉과 나는 아내에게 사정을 말하고 사과를 하지만, 아내는 필요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내가 정말로 사과를 받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다.  남편 대신 죽을 수 있냐고 묻는다.  남편에게 돈을 많이 받은 사실을 알게 된 나와 시봉은 돈을 돌려주라고 하고, 술취한 시연의 남자친구는 죄를 갚는다는 이유로 어처구니 없게 죽는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회복지사가 원장의 일기장을 달라며 시봉과 나를 찾아온다. 일기장엔  사회복지사들의 폭력과 추행, 그로 인해 자살을 한 사람들을 이야기가 있었다. 시봉은 인질이 되고 집으로  일기장을 찾으러 온 나는 자살을 시도한 시연을 발견한다. 병원에서 시연은 시봉에 대해 묻자, 난  “한 명으로도 충분한 일이니깐요. 나머지 한 명은 그냥 기다리는 일을 하는 거예요.”  말한다. 시봉이 나 대신 그들에게 사과를 하면 되니까.
 
 소설은 쉽게 읽혔으나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요양원의  일상에서는  정유정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 이별 소식을 대신 전하던 영화 속 차태현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기호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죄는 모른 척해야 잊혀지는 법이거든.” p 215  원장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죄를 짓는 사회, 그러나 사과 하지 않는 사회. 반대로,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사과를 해야 하는 세상의 부조리를 풍자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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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 (반양장) ㅣ 반올림 1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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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란 제목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든 어른이든 살다보면, 나도 모르게 죽고 싶다란 말을 내뱉는다. 벼랑 끝에  서있는 듯한 절박감의 표현일 뿐, 절대로 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성적비관과 왕따로 인한 청소년의 자살이 늘고 있기에 그런 내용인가 싶었다.   얼마 전 <우아한 거짓말>(김려령, 창비)에서도 소녀의 자살을 만났기에 더럭 겁이 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자살의 내용은 아니었지만, 결국 죽음이 있었다.
 
 문제아 유미는 이사를 하면서 전확을 왔다.  학구열에 불타는 모범적인 학교에 적응이 쉽지 않다. 그런 유미에게  같은 반 재준은 관심을 보이고, 둘은 단짝이 된다. 재혼한 엄마와 새아빠는 유미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자유로운 유미가 재준은 부럽다. 권위만 내세우는 아빠, 천식이 심한 엄마. 엄마에게 걱정이 되고 싶지 않다.
 
 유미와 재준에겐 짝사랑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러나 둘 다 보기 좋게 차이고 말았다. 그 일로 둘은 더 가까워지고, 함께 공부하며 비밀을 나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늦은 밤, 교통사고로 재준이 죽었다. 낯선 학교에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재준 때문이었는데, 유미는 믿을 수 없다.
 
 재준의 엄마는 유미가 선물한 재준의 일기장을 유미에게  먼저 읽어봐 달라고 부탁한다. 재준이 남긴 일기장, 그 첫 문장이 바로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였다. 재준은 시체놀이 형태로 하루 하루를 죽은 사람의 입장에서 보게 된다. 엄마가 화를 내고, 동생이 미운 행동을 해도,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달라보였다.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살아있는 현재에 더 충실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열여섯 살, 소년이  왜 그런 생각했을까.
 
 어느 날 나는 분명 죽을 것이다. 언젠가는 말이다. 늙어 꼬부라져 죽을 수도 있지만, 불의의 사고로 젊은 나이에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죽음이란 건 왜 생겨났을까…… 열여섯 살, 내 나이는 죽음과는 상관 없는 나이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이런 장난도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열여섯 살, 아니 그보다 어린 나이에도 죽음은 얼마든지 찾아온다. p 163  재준이의 일기 중에서
 
 재준의 일기처럼 죽음은 예고가 없다. 어떻게 보면 재준은 너무 일찍 철이 들었고, 죽음을 생각한 것이다. 일기장을 통해  유미는 조금 놀랐다. 재준이 짝사랑을 끝낸 게 아니었고, 사랑으로 아파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아이에게  잘 보이려고 오토바이를 배우기 시작했다. 자신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님, 단짝 유미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 다행히 선생님이 그 마음을 알아주었다. 멋지게 오토바리를 타고 싶었을 뿐이었다.
 
 중학생이란 건 모든 가능성을 품은 씨앗 같은 시기일 뿐, 아직은 아무것도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때가 아닌가. p 168
 
 청소년 소설은 따뜻한 결말을 맺는다. 그러나 이 책은 달랐다. 그럼, 아이들에게 책은 삶에 충실하라고 말하는 것일까?  뜻밖의 죽음음을 맞이한 소년, 소녀를 추모하기 위한 책이라 해야 할까.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나이, 뭐라도 할 수 있는 나이 열여섯. 유미의 말처럼 중학생 시절은 인생에 있어 씨앗이 분명하다. ‘어느 날 내가 죽었습니다’란 문장은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단단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지켜주라는 말로 가슴에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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