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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의 삶은 언제나 궁금하다. 해서, 인간적인 모습를 만날 수 있는 에세이에 더 끌린다. 공지영이 자신의 딸에 쓴 편지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대놓고 가볍게 쓴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도종환의 산방일기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은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가의 일상적인 삶이 있었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를 통해 작가 이전의 한 여자, 사강을 만날 생각에 책을 기다리는 시간은 즐거웠다.
사강은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세상은 저자가 19세의 어린 나이의 소녀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하여, 많은 이들이 사강을 직접 보고 싶어했다. <슬픔이여 안녕>이후 그녀의 삶은 수많은 시선에 집중되었다. 어린 나이에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던 사강, 그랬기에 무언가가 필요했을지 모른다.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다. 그녀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사람들, 열광했던 일들, 작품들에 솔직하고 세세하게 썼다. 재즈 가수 ‘빌리 홀리데이’를 만나러 미국에 간 일, 그녀의 눈에 비춰진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삶과 사랑, 무용가 ‘루돌프 누레예프’의 인생, 그리고 ‘장 폴 사르트르’에 대한 편지.
사강은 도박과 스피드를 즐겼다. 그녀는 분명 도박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많은 빚을 지고 도박을 즐기면서 느꼈던 초초함과 짜릿함의 표현들은, 위험해 보이는 그것들에 대한 사강의 글은 누구라도 도박에 빠져들게 했고, 도박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케 한다. 금지된 것에 대한 동경까지 불러온다.
‘그것은 길을 따라 서 있는 플라타너스를 편편하게 한다. 그것은 밤에 빛을 발하는 주유소 간판들을 길게 잡아 늘이고 일그러뜨린다. 그것은 갑자기 솟아올라 말문을 막히게 하는 끼익거리는 타이어 소리를 틀어막고, 슬픔을 흩뜨려버린다. 우리가 사랑에 미친다 하더라고 소용이 없다.’ p 89 스피드 중에서 이렇게 매혹적인 글로 쓰다니.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글에, 나는 열광한다. 차가운 겨울 밤의 공기가 빰에 스치는 짜릿함을 상상한다.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를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진다. 사강과 사르트르가 함께 있는 자리에 나도 같이 있는 기분이다. 둘의 뜨거운 우정이, 그를 향한 사강의 애정이 고스란히 글 속에 담겼다. 그녀는 시력을 잃은 사르트르에게 보내는 편지를 여섯 시간에 걸쳐 직접 녹음을 했다. 그녀에게 사르트르는 무엇이었을까?
사강은 자신이 좋아했던 장소에 대해서도 아름답게 추억했다. 바로, 프랑스 남부에 있는 ‘생트로페’라는 작은 마을이다. 그곳에 집을 장만하고 친구들과 바다를, 모래를, 고독을 즐겼던 사랑의 젊은 날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모하는, 더 이상 그녀의 ‘생트로페’가 아닌 것에 대한 그리움.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은 사강이 49세였던 1984년에 발표했다. 담백하고 유려한 글이다.2000년 지구의 종말이 떠돌던 시대, 제목처럼 때로 고통스러웠던 삶의 한 조각. 그러나 삶은 환희의 순간도 안겨주었다. 아직 내게는 멀게 느껴지는 막연한 나이에 사강은 자신의 친구들과 일에 대해 기록했다. 문득, 그 나이에 내 곁에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한다.
‘시간과 사랑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하듯이, 태양도 인생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p 176
부질없는 것들에 대해 욕심을 내며 살지 말라고, 흐르는 대로 그렇게 살라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사강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오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