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 -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마음을 다해 쓰는 글씨, 나만의 필사책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박선주 옮김 / 마음시선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 알려진 책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잘 아는 이야기라서 어렵고 그 이야기를 나만의 방식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영원한 스테디셀러이자 베스트셀러인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어린 왕자를 만난 건 중학교 때였다. 정확한 기억일까. 중학교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좋은 사람에게 선물하는 책 가운데 한 권은 어린 왕자였다. 언제나 만나고 반갑고 좋은 책, 그런 책이 있다는 건 참으로 다행이다. 최근 방송에서 추천의 책으로 다시 나왔을 때 반가웠다. 너무도 순수한 어린 왕자, 무작정 양을 그려달라는 어린 왕자. 만약 내가 그런 아이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사막의 한가운데가 아니라면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하라고 했겠지만 나 혼자 그 아이를 상대해야 한다면. 글쎄 양을 그려줄 수 있을까. 선뜻 답을 할 수 없다.


이토록 오랜 시간 사랑을 받는 책,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어린 왕자를 소개한다. 마음시선의 『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필사를 할 수 있게 기획했다. 코로나19 시대에 치유와 위로를 주는 방법, 필사였다. 가만히 글을 읽고 필사를 하는 순간 마음은 고요해지고 정화되는 걸 느끼니까. 글씨를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꼭 필사를 위한 부분이 있다고 해서 필사를 할 필요는 없을 듯. 스티커를 붙이거나 나만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붙여도 좋을 듯하다. 물론 빈 공간을 그대로 두어도 좋다. 책을 읽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라지니까.


어떤 책은 읽을 때마다 발견하는 문장이 달라지거나 다른 해석을 하게 만든다. 어떤 책은 언제나 같은 부분에서 밑줄을 긋고 마음을 빼앗긴다. 내게 어린 왕자는 후자 쪽이다. 지구별에 떨어진 어린 왕자가 차례로 만나는 어른들, 그들은 모두 정신없이 바쁘다. 그들은 어린 왕자를 친구로 대하지 않는다. 그런 어른의 모습과 나는 다르다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나 역시 그들처럼 숫자나 공부, 외부에 대해서만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걸 수없이 말하고 기억한다고 여겼으면서도 말이다.


어린 왕자를 다시 천천히 만나면서 나의 친구들, 내가 길들인 것들, 나를 길들인 것들은 무엇인가 돌아본다. 나는 무엇에 책임이 있는가. 나의 모든 것들, 그러니까 나와 관계를 맺은 수많은 사람들과 물건들, 그리고 어떤 감정들까지도 내 책임하에 있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놓치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언제나 가장 좋은 장면은 여우와 어린 왕자의 만남, 그리고 둘이 나누는 대화다.


“나는 밀을 먹지 않으니 밀은 내게 쓸모가 없어. 밀밭은 내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말이야. 그건 슬픈 일이야. 하지만 너의 머리카락이 금빛이야. 네가 날 길들이면 얼마나 멋질지 한번 생각해 봐! 너의 머리카락과 같은 금빛 밀밭을 볼 때면 나는 네 생각이 날 거야.” (204쪽)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할 거야. 그리고 네 시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고, 네 시가 되면 몸을 들썩이며 네가 보고 싶어 안달이 날 거야. 그때의 내 모습이 얼마나 행복해 보일까!” (208쪽)


“오직 마음으로 봐야 올바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이야.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214쪽)


소중하고 행복한 것들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는 왜 항상 뒤늦게 깨닫는 것일까? 어린 왕자가 자신의 별에 두고 온 장미꽃을 생각하면서 느꼈던 마음도 같을 것이다. 불평만 가득하다고 여겼던 장미와 보낸 순간들, 정성을 쏟은 그 시간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것들은 모두 그런 것들이다. 가까이 있어 제대로 보지 않으려 하고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다고 여긴 생각들.


처음에 안겨주었던 기쁨과 충만을 여전히 간직하게 만드는 책. 우리에게 어린 왕자는 그런 존재이다. 좋은 책은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게 만든다. 그러니까 『나만의 필사책 어린 왕자』도 그렇다는 말이다.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선물할 수 있는 책. 기꺼이 반갑게 읽을 수 있는 책. 언제든 읽을 수 있어 미루고 있다면 이제 그만 미룸을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이 만난 어린 왕자를 기억하느냐고, 다시 그 순간의 울림을 느끼면 어떻겠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문예단행본 도마뱀 1
박은정 외 지음 / 도마뱀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낭비’는 잘못된 것이라고 여겼던 적이 있다. 심지어 죄악이라고 분류했다. 그게 무엇이든 말이다. 절제하는 삶, 계획적인 삶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이제는 아니라는 걸 안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 정해진 건 없으니까. 어떻게 살아가든 삶을 살아가는 이가 알아서 할 일이다. 우리는 조언하고 충고한다. 내 경험에 비춰서 내 기준에 맞춰 타인을 본다. 도움을 주려는 마음에 비롯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건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정말 고루한 것인지도 모른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이들이 탕진하는 재미를 주제로 쓴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를 읽기도 전에 이런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나는 내 감정을 탕진할 수 있고 내 독서를 탕진할 수 있으니까. 아무튼 그렇다. 참여한 필자 리스를 둘러보고 꽂히는 대로 끌리는 대로 먼저 읽어도 좋다. 자신만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삶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니까 내 맘대로 읽어도 상관없는 읽기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인생에 있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하나쯤은 있어야 할지 않을까. 문득 드는 생각이다. 정리하고 정돈하는 대신 말 그대로 흥청망청 말이다.


직장 생활의 힘겨움을 토로하면서 함께 쇼핑을 하고 맥주를 마시던 친구가 떠오르는 건 조수진의 「경력 탕진 잼」을 읽을 때였다.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그 시절 즐거운 탕진이었다. 누가 봐도 좋은 직장, 괜찮은 직장에 다니던 저자는 업무에 최선을 다하느라 개인적인 삶을 이어가지 못했고 그 과부하는 소비하는 습관으로 이어졌다. 잔고를 탕진하는 삶의 끝에 그녀는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다. 상담을 받고 퇴사를 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한 즐거운 탕진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남들이 정한 행복에 맞춰 사는 것은 한눈팔지 않고 내비게이션에만 집중하는 운전과 같다. 조금이라도 경로에서 벗어났다고 느끼면 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반면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 위로 유영하는 것가 같다. 가볍고 자유롭다. 어디로 흘러가든 물결에 몸을 맡기기만 하며 된다. (33쪽)


백영옥의 「탕진 잼」을 읽으면 저마다의 탕진 목록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탕진 목록이라니. 그걸 다른 말로 대체하면 수집광이다. 백영옥의 남편은 칫솔과 샤프를 모으는데 탕진의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백영옥 자신은 매트다. 근데 생각해 보면 누구나 좋아하는 것에 대한 소비에 자비롭지 않은가. 그런 재미도 없다면 삶은 얼마나 팍팍한가. 그렇다. 제목처럼 흥청망청 살아도 우린 행복할 거야, 스스로 주문을 외우는 일도 필요하다. 그건 하나의 쉼이고 휴식이니까.


감정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눈물이 많으면 충분히 울면 되고, 마음의 변덕이 오면 그냥 오르락내리락하면 된다. 고정되고 단단한 감정과 마음이 필요하겠지만 때로는 흔들려도 큰일이 아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러니 맘껏 내 감정을 탕진하면 어떠랴. 그 감정을 추스르고 붙잡아줄 자신만의 존재가 있다는 걸 스스로가 가장 잘 아니까. 장은주의 「노 스트레스, 장미의 기분」에서 장미가 그러하듯이. 장미를 향한 경건한 환대를 느낄 수 있는 사진과 문장이 그걸 말해준다. 장미에 대한 기분을 읽으면서 나를 생각한다. 어느 시절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나락으로 나를 이끌 때 꽃을 보거나 바다에 가면 좀 나아졌다. 거기 그 대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당장 달려갈 수 없어도 존재만으로도 말이다.


장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봐 준다. 오늘 나와 눈이 마주친 장미 한 송이가 생의 모든 고독과 외로운 시간을 끌고 온다. 한 번도 제대로 발음해본 적 없는 자신의 나약함까지 말없이 위무하는 시선들. 저 붉고 광막한 열기는 이 순간 자신의 모든 저열한 감정을 태우고 있다. (93쪽)


언제나 장미 앞에서, 비록 장미가 아닐 때에도 장미를 생각하는 그 순간이 나에게는 구원일 것이다. (95쪽)


뭐든지 흥청망청 써 버려도 충분하게 남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대부분 충족할 수 있는 무언가보다는 결핍의 날들이 이어진다. 한 달 한 달 생활하는 월급, 대출금 같은 것 말이다. 그래도 이런 글을 읽으면 위안이 된다. 김나리의 「불안을 잘게 찧자, 달콤한 나의 탕진잼」이란 제목에서 비슷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소설과 에세이를 쓰면서 생활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기에. 낯선 도시의 낯선 모텔의 카운터에서 일하는 저자를 잠깐 상상했다. 표정 없는 얼굴이면 어쩌지 싶다가 글을 읽으면서 나는 그 얼굴에 작은 미소를 장착시킨다. 살아가는 일은 계속해서 교환해나가는 일이라는 문장을 기억하고 싶어졌다.


버티지 말고 행복해지자. 아주 작고 하찮은 기쁨이더라도 기쁨은 기쁨. 열심히 작은 기쁨을 구매하자고 나를 다독여본다. 내가 잘 모르는 도시의 잘 모르는 모텔에 앉아 무얼 하고 있는 거지, 싶은 생각이 들 때, 주차장을 한 바퀴 돌고 차 밑에 앉아 있는 고양이의 시간을 본다. 그래 그렇게 하자. (135~136쪽)


유쾌하고 기발하고 슬프고 우울한 탕진 이야기를 읽으면서 행복과 만족은 주관적이며 우리는 그것을 탕진할 권리가 있다고 다짐한다. 그러니 때로는 주변의 눈치를 보지 말고 맘껏 행복해하고 기쁨을 누려도 괜찮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1-03-18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새 주변 눈치 안보고 즐겁게 살려고 노력중인데 (쉽지는 않지만 ㅎㅎ) 자목련님 글보니 공감이 됩니다^^

자목련 2021-03-19 10:03   좋아요 1 | URL
맘처럼 쉽지 않죠. ㅎ 그래도 내 맘대로 사는 일도 중요한 것 같아요.
새파랑 님, 오늘 만큼은 눈치 보지 말고 지내요!!
 


책을 샀다. 읽고 싶었던 책이다. 장바구니에서 계속 나를 기다리던 책이다. 구매하고 나니 또 다른 책이 보였다. 그 책은 비워진 장바구니로 향했다. 한국 소설과 에세이다. 모두 여성작가의 글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다. 최근 문학계를 보면 여성작가의 활약이 많다. 내가 그들의 글을 좋아하기에 그리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읽은 책, 나는 뒤늦게 읽고 읽게 될 책이다. 그래도 괜찮다. 책은 언제나 나에게 기쁨을 준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 박솔뫼의 소설집 『우리의 사람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 강화길의 『화이트 호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정세랑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었다. 잘 읽히는 소설이다. 잘 읽히는 건 좋다. 군더더기 없이 내용을 소화할 수 있다. 등장인물이 많아서, 가계도를 잘 기억해야 했지만 말이다. 가장 궁금했던 소설집은 박솔뫼의 단편들. 박솔뫼의 소설을 읽은 게 언제였더라. 나무와 의자가 있는 표지라서 구매했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의 소개들은 읽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박솔뫼의 시간을 기대한다. 강화길의 단편집에 수록된 몇 편은 읽었으니 나머지 몇 편만 읽으면 될 것이다. 김소영의 에세이는 아껴두고 읽어도 좋을 듯하다.




예전에는 매월 1일에 책을 사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면 뭔가 알차게 한 달을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지금은 충동적으로 책을 사기도 하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책을 사면 바로 읽어야 하고 읽은 후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래야 좋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그렇다. 그런데 어떤 책들은 자꾸만 미루게 된다. 읽는 게 아니라 쓰는 일을 미루는 것이다. 어떤 책은 너무 좋아서 그 좋음을 최대한 잘 말하고 싶은 욕심에 미룬다. 살짝 공개하자면 황정은의 『연년세세』, 이주혜의『자두』, 조해진의『단순한 진심』, 백온유의 『유원』같은 소설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좋고 다른 이유로 미룬다. 이러다 아무 기록도 남기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할 수 없고.


책을 샀으니 신나고 책을 읽으니 좋고 책을 소개하니 기쁘다. 단순한 기쁨을 누린다. 단순한 일상, 나쁘지 않은 일상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1-03-17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소개글을 읽는 사람도 기쁘고, 또 저 책들도 읽어볼까 두근거리는 저도 기쁘고..... ^^

자목련 2021-03-18 09:29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두근두근 기쁨과 즐거움을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미세먼지의 날들이 이어지지만 맑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천 개의 파랑 -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
천선란 지음 / 허블 / 202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하면서도 많은 호평에 살짝 주춤하게 된다. 이상한 마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보다 : 겨울 2020 소설 보다
이미상 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12월
평점 :
품절


봄의 문턱에서 만나는 겨울의 소설. 낯선 세계를 경험하는 기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