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 - 인문 고전에서 배우는 사랑의 기술
한귀은 지음 / 한빛비즈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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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랑은 언제나 어렵다. 어떤 이는 과거의 사랑으로 여전히 아파하고, 어떤 이는 지금의 사랑 때문에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알지 못한다. 사랑이 있어 삶이 빛나는 걸 알지만 그것을 정복할 수 없다. 사랑, 어떻게 해야 아프지 않고 행복할 수 있을까? 책으로 사랑을 배우는 건 어리석다 하겠지만 경험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 소설보다 더 좋은 교과서는 없을 것이다. 한귀은의 『가장 좋은 사랑은 아직 오지 않았다』 는 바로 그런 책이다. 20편의 고전을 통해 사랑의 기술을 소개한다.

 

 그러고 보면 고전 속 사랑은 치명적이고 매혹적이다. 물론 그들의 결말이 항상 행복한 건 아니다. 집착을 사랑이라고 믿어서, 혹은 사랑받지 못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한귀은은 그들의 사랑을 ‘나’ 와, ‘너’ 가 아닌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독자에게 설명한다. 시대가 다르지만 사랑을 향한 기대는 같기 때문에 서서히 책 속으로 빠져든다.

 

 사랑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입체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첫사랑이 아닐까. 저자 역시 이 책을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으로 시작한다. 나만의 그(그녀)를 잊지 못한 마음, 사랑이 시작되면서 바보가 되고 사랑이 끝난 후 조금은 성숙해지는 게 첫사랑인지도 모른다. 하여 이루어지지 않는 짝사랑이라 해도 아름답게 간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랑의 조건은 무엇일까. 잘 생긴 외모, 뛰어난 능력, 다정한 목소리, 그 모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지속하기 위해선 소통이 중요하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네 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속 두 남자처럼 말이다.

 

 ‘무엇보다 사랑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면서 ‘그 사람의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그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기 쉽다. 즉 그 사람의 얼굴이 좋아서, 그 사람의 자태가 멋있어서, 그 사람의 걸음걸이가 외로워 보여서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상처, 생각, 그 사람의 어린 시절과 미래에 늙어가면서 겪게 될 일들까지 사랑한다는 뜻이다.’ 77쪽

 

 사람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저자의 말은 정현종의 시를 찾게 만든다. 한 사람을 사랑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들을 안을 수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참 사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말처럼 쉽지 않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별을 받아들이고, 잔혹하게 이별을 고하기도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부서지기 쉬운 /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 마음이 오는 것이다 ㅡ 그 갈피를 /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정현종의 방문객 전문)

 

 사랑을 하면서 행복을 꿈꾸지 않는 이가 있을까?  아니, 뻔한 고통이 전개될 거라는 알면서도 사랑을 놓지 못한다. 연애 고전으로 익숙한 《오만과 편견》, 《폭풍의 언덕》, 《순수의 시대》보다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에 마음이 기우는 이유도 그런 마음일 것이다. 읽지 못한 다른 고전보다 이 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건 저자의 이런 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나는 사랑하는 남자의 삶을 다 가지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나는, ‘남자’ 가 아니라 ‘남자의 삶’ 이라고 했다. 니나에겐 언제나 삶이 중요했다. 자신이 개입할 수 없고 어찌하지 못하는 남자의 삶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슈타인이 어떻게 하지 못했듯이, 남자도 그랬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251쪽

 

 사랑하는 연인의 삶 전부를 갖기를 원하지 않는 사랑은 얼마나 서글픈가. 그러니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사랑이 안타까운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하는 방법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한 사람만을 향한 사랑의 크기는 같지 않을까. 어쩌면 데이지와 개츠비가 바라보는 방향이 같았다면 우리는 개츠비를 기억하지 않았을 것이다.

 

 ‘개츠비가 바라보던 데이지의 집 ‘초록 불빛’ 도 미래가 아니라 과거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사랑에 대한 희망도 과거에 이루지 못한 그 무언가에 들어 있다. 우리는 과거로 향한 희망의 불빛을 응시하는 또 한 명의 개츠비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두려워 말고, 그 야성의 남자를. 당신의 그 개츠비는 오로지 당신만을 죽도록 사랑할 것이다.’ 270쪽

 

 이쯤에서 사랑의 그늘에 속한 당신에게 묻는다. 사랑을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왜 늘 외로운 것일까. 깊은 밤 잠든 가족을 바라보면서 가슴 한 쪽에서 전해지는 통증을 느낀 적이 있다면 페터 한트케의 《왼손잡이 여인》속 마리안느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다 알 수 없는 존재로 남는다. 언제나 미지의 존재다. 우리가 자기 연인을, 혹은 배우자를 다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이해하는데 언제나 실패한다. 만약 그/그녀가 그토록 쉽게 파악되는 빤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그/그녀를 사랑했겠는가. ‘나는 그/그녀를 모른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그녀를 사랑한다’가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사랑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명제가 아닐까.’ 366쪽

 

 한 번쯤 읽어본 고전이거나 낯선 고전 속에서 마주한 사랑은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로 남는다. 사랑이라는 건 우리 생에 주어진 영원한 숙제인지도 모른다. 이 책이 사랑에 대해 묻고 싶었던 질문의 정답을 제시한 건 아니다. 사랑을 하는 이에게, 혹은 사랑을 잃은 이에게 그 사랑이 제대로 된 사랑인가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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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차가운 오늘의 젊은 작가 2
오현종 지음 / 민음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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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언가 되고 싶었던 시절은 사라지고 없다. 더 이상 어떤 꿈꾸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저 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어떤 상황이든 노력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타고난 운, 환경에 따라 어떤 이의 삶은 성공으로 이어지고 어떤 이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렇게 삶은 천국과 지옥으로 나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가 천국이라 부르는 곳에 사는 이는 그곳을 천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현종의 소설 『달고 차가운』속 지용이 지옥에 산다고 여긴 것처럼 말이다.

 

 소설은 얼핏 소년과 소녀의 아릿한 첫사랑의 이야기처럼 보인다. 내 의지가 아닌 부모가 원하는 대학 입학을 위해 재수를 택한 지용은 학원에서 신혜를 만난다. 신혜가 사는 세상은 자가용으로 학원에 다니며 고액 과외를 받는 지용의 세상과는 달랐다. 술장사하며 자신을 학대하는 엄마와 사는 신혜에게 지용의 투정은 사치였다. 새아빠의 죽음으로 돌봐야 하는 동생을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신혜를 사랑했고 그곳에서 구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는 게 너무 불안하다고 했지. 네가 살고 있는 집이 지옥이라고 했지. 난 진짜 지옥이 어떤 곳일까 궁금해. 거기는 아직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장소일 거야. 그렇지만 언젠가 내가 가게 될 곳. 넌 아니고 나만. 강지용, 네가 있는 데는 지옥도 아니고 좆도 아냐, 이 바보야.” 67쪽

 

 스무 살은 어른처럼 보이는 나이지만 삶을 결정하고 판단하기엔 미숙한 나이다. 지용은 신혜의 엄마를 죽이는 일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저지르고도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사랑하는 신혜를 위해, 악의 세계에서 구해낼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다시 입시에 실패한 지용은 누나가 있는 뉴욕으로 떠나면서도 1년 후에 돌아올 거라 신혜와 약속한다. 온라인에서 둘 만 아는 암호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지낸다. 하지만 신혜와 연락이 끊기자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고 만다.

 

 신혜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두려움을 안고 자신이 범죄를 저질렀던 그 집을 찾았을 때 지용은 신혜의 실체를 마주한다. 그 집은 강도가 들었고 나중에 불이 나서 타버렸고, 새아빠는 교통사고로 죽지 않았으며 동생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용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확인해야만 했다. 지용은 흥신소를 통해 신혜가 죽은 엄마의 보험금 2억을 받고 사라졌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신혜는 지용을 사랑한 게 아니라, 계획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엄마의 남자를 사랑한 신혜에게 엄마는 사라져야 할 존재였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신혜는 한국이 아닌 홍콩에 있었다. 불법으로 싸구려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벗어나고 싶었던 세상을 나온 신혜는 천국이 아닌 지옥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

 

 ‘양팔 저울은 기울어졌다. 신혜와 남자가 불행해졌으므로 나는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럴 것 같지가 않았다. 변함없이 불행했고, 복수는 이루어지지 않은 기분이었다. 얼른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쫓기는 자가 아니라 쫓는 자였는데, 그런데 당장 달아나지 않으면 영영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방은 너무 좁고 습하고 어두웠다.’ 181쪽

 

 두 아이의 죄를 벌할 수 있는 이가 누구일까? 어쩌면 신혜와 지용은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 지독하고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건지도 모른다.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통증과 서늘한 여운을 남긴다. 제목처럼 달고 차가운 맛의 소설이다. 더불어 우리 삶에 달고 차가운 맛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달콤함 뒤에 날카로운 고통이 찾아온다 해도 먹을 수밖에 없는 삶이라는 걸 말이다.

 

 ‘신혜에게서 부드러움을 알게 된 순간처럼 지금 이 고통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신혜는 달콤한 사과를 건네주고, 내가 그것을 달게 먹고 나자 고통을 알게 하는 사과였다고 속삭인 거다. 하지만 처음부터 알았다 해도 나는 그것을 삼켰겠지. 나는 정말 어린아이였다. 그녀 말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였다. 그러나, 고통은 실상 사과에서 오는 게 아니라 사과를 건넨 부드러운 손길로부터 온다는 진실만은 알았다.’ 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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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
진옥섭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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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존하고 지키려고 할 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사소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질 때 우리는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는다. 특히 예술과 전통이 그렇다. 그래서 『노름마치 : 진옥섭의 사무치다』가 반갑고 고마웠다. 흥이 많은 민족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그것에 대한 애정의 크기는 얼마나 될까. 사라지는 소리와 춤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전하고자 노력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때로 절박했고 때로 간절했다.

 

 ‘걷는 건 두렵지만 춤을 추는 것은 두렵지 않다. 몸속에 소리와 음악이 모두 들어 있어 선율의 흐름에 다라 그때그때 춤이 달라진다. 전통이란 이름 속에서 순간순간 새것이 돋아난다. 이런 순간은 맛보는 순간 중독이다. 결국 또 들여다보고픈 과욕이 극성스런 길을 가게 한다. 정녕 보고픔도 극심한 허기의 일종인 것이다.’ 24쪽

 

 저자는 이 책을 보도자료라도 말한다. 그 속엔 발로 뛰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낀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뜻이리라. 책에서 만나는 춤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녀, 무당, 광대, 소리꾼 이라 불리는 분들이다.  예기(藝技), 남무(男舞), 득음(得音), 유랑(流浪), 강신(降神), 풍류(風流) 로 나누어 각 분야에 세 명씩 모두 18분의 삶을 들려준다. 하지만 ‘공옥진’을 제외하면 대부분 낯선 이름이 많다. 그만큼 전통문화라는 범주에서 벗어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다. 이 얼마나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인가.

 

 공통적으로 그들이 춤의 세계로 들어간 건 가난이라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선택했거나 운명적으로 춤에 끌린 경우였다. 그러나 춤은 그들에게 운명이었다. 화려하게 보이는 춤 뒤에는 고통이 내재되어 있었다. 춤으로 가족을 살렸고, 춤 때문에 버림받기도 했고, 소리 때문에 살아 남기도 했다. 이제는 평균 연령이 80세가 넘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고, 기녀와 무당이었다는 이유로 자손들에게 누가 될까 숨기고 있었지만 끓어오르는 춤에 대한 열정은 감출 수 없었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을 기억해 보면 굿은 동네의 잔치이자 위로였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걱정하고 풍년을 기원했다. 감히 누가 그들의 춤에 대해 논할 수 있으며 감히 누가 그들의 삶을 말할 수 있겠는가. 혼을 다한 춤사위에 감동할 뿐이다.

 

 전통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아닌 ‘우리 것’ 이라는 단순한 이유만으로 부활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 우리는 제대로 기억하고 배워야 한다. 집안 내력을 따라 광대의 딸이라 불렸던 심화영 할머니의 말씀은 춤뿐 아니라 내면이 아닌 보이 것들에만 치중하는 우리네 삶에 대한 충고 같아 괜히 뜨끔하다.

 

장단을 치다가 벌떡 일어나 북걸이를 잡고 버섯발을 들어올리는데, 큰 구경이라도 한 것처럼 눈에 새로웠다. “맹글어 추지 말어, 호흡보다 몸이 놀아야 혀.” 요사이 조형에만 신경쓰는 전통춤을 향한 말이었다. 무척 자연스러운 몸놀림이었다. 호흡이라는 말보다 숨이란 말로, 몸 가는 대로 추는 춤이었다.’ (「중고제의 마지막 소리, 심화영」 중에서 96쪽)

 

 지키려 한 삶도 평탄하지 않았다. 유랑광대로 살아온 김운태 님은 포장극장이 아닌 두레극장을 개관했지만 경영에 실패했다. 풍물을 배우고 소고춤만을 추었으니 경영의 실패로 부도는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구치소 생활을 하고 나온 그에게 춤은 유일한 것이었다. 현역 춤꾼으로 그의 황홀한 춤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할 일이다.

 

규칙과 불규칙 속을 노니는 게 그의 삶이자 춤이다. 대개의 춤꾼이 발꿈치 가운데 중심을 둔다면 그는 모든 감각을 엄지발가락 근처에 싣는다. 무대 위에서 페달을 밟듯, 이미 뒤꿈치를 들고 어디론가 이동할 태세로 춤을 추는 것이다. 안락한 안보다 투박한 밖을 지향한 유목하는 인간, 홀로 노마드인 것이다.’ (「포장극장의 소년 신동, 김운태」 중에서 258쪽)

 

 예인(藝人)으로 산다는 건, 명인(名人)으로 불리는 건 특별한 삶이 아니었다. 그저 몸이 하는 소리를 듣고 몸으로 전하는 삶이다. 몸이 신나게 놀고 그것에 함께 취하는 삶, 이 얼마나 즐거운가. 우리는 이 즐거움을 계속 누려야 한다. ‘우리 것’ 을 즐기는 일이야말로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는 가장 최고의 방법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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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스톤갭의 작은 책방 - 우정, 공동체, 그리고 좋은 책을 발견하는 드문 기쁨에 관하여
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 책세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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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특별한 책방 운영을 꿈꿨을 것이다. 좋아하는 책과 그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둘러싸인 삶이란 상상만으로도 황홀하다. 이상과 현실은 멀기에 그저 꿈으로만 간직할 뿐, 가까운 곳에 그런 공간 있기를 바라지만 무도하게 도전하는 많지 않다. 여기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고 감동적인 결과로 이어진다는 걸 몸소 보여준 부부가 있다.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의 저자인 웬디와 그의 남편 잭이다. 두 마리의 개와 두 마리의 고양이까지 모두 여섯 명의 가족이라는 말이 맞겠다. 그렇다. 이 책은 그들의 헌책방 도전기이자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책을 좋아하는 부부, 웬디와 잭은 빅스톤갭에 책방을 내기로 결정한다. 문제는 심사숙고가 아닌 충동에 의한 결정이란 거다. 단순하게 계약한 집은 헌책방을 내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었다. 빅스톤갭의 소비 성향이나 경제 규모와 지역 사회에 대한 이해는 전여 없었던 것이다. 1층에 헌책방을 내고 2층에 거주한다는 생각으로 잭은 직접 책장을 만들고 자신들의 서재에서 책을 골라낸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지만 외부인인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그럼에도 부부는 굴하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책방에 대한 소식을 전하며 홍보한다. 언제나 그렇듯 진심은 통하는 법 사람들은 웬디와 잭에게 마음을 열었고 책방은 금세 빅스톤갭의 사랑방으로 자리한다. 물론 웬디와 잭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헌책방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예상했듯 책으로 이어진 누군가의 삶이었다. 헌책방으로 들어오는 책마다 사연이 있듯 방문객도 그러했다. 무조건 책을 팔기로 작정한 사람, 헌책에서 추억을 건져올리는 사람, 떠난 가족과 마지막 이별을 치르기 위해 남겨진 책을 가져오는 사람, 그저 책을 구경하고 차를 마시고 가는 사람 등 다양하다.

 

 ‘헌책을 파는 것은 다른 물건을 파는 것과 다르다. 음식은 맛이 있어야 하고, 옷은 몸에 맞아야 하고, 페인트는 칠하는 곳에 색깔이 어울려야 한다. 그렇다면 책은? 어떻게 보면 책은 우리에게 전부이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구매자 각각에서 다른 의미를 띠기도 한다. 사람들은 오락을 위해, 정보를 얻기 위해, 감동과 동기를 얻기 위해, 혹은 자기 인생의 중대한 사건을 기리기 위해 책을 산다. 이렇게 책을 찾는 이유는 집 안 꾸미기부터 마음의 양식 쌓기까지 아주 다양하다.’ 240쪽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말 그대로 마법이었다. 글쓰기이며 뜨개질을 위한 모임뿐 아니라, 삶의 모든 조각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삶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어떤 방문객이 찾아오더라도 잭은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고 웬디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책을 팔고 사는 사이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사이가 된 것이다. 

 

 책은 정말  더없이 아름답다. 단순하게 책을 좋아하는 이에 의한 헌책방 이야기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작은 쉼터가 얼마나 소중한 공간이며 위대한 동반자인지 말한다. 웬디와 잭은 헌책방을 통해 진정한 행복과 마주한다. 더불어 함께 하는 삶에 대해 질문도 던진다.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공동체 의식이 절실하다는 걸 그들은 일상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책이라는 통로로 이어진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는 멋진 책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이런 헌책방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쩌면 나도 우선적으로 한아름 책을 골라 가져가고 무심한 듯 비밀을 털어놓을지도 모른다. 사람과 책이 행복의 충분조건이라는 걸 아는 잭의 말처럼 말이다.

 

 “우리가 이 집을 인류의 축적된 지혜로 채우고 있다는 것. 사람들이 책을 계속 가져오고, 또 책을 잔뜩 사 간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좀 괴팍하지만 정감 가는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는 것.” 1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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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왜냐하면 객관성을 유지하려 해도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글은 지극히 사적인 감정이 실렸다. 번역가 김연수가 아닌 소설가 김연수는,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으로 처음 만났다. 한 장의 사진으로 시작해 거대한 우주를 도는 듯 어지럽고 어려운 소설이었다. 그 어려움은 『밤은 노래한다』로 이어졌고 김연수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건 ‘나’가 아닌 ‘우리’라고 짐작했다. 전쟁과 역사를 다루면서 과거가 아닌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의미를 묻고 있다는 건 내게 무척 어려운 문제였다.

 

 김연수의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도 가벼운 왈츠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김연수를 놓을 수 없었다. 도서관을 통해 마주한 『스무 살』, 『7번 국도』를 읽으면서 그가 좋아졌다. 그러니까 그의 글이 나만을 위한 글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발견한 것이다. 『내가 아이였을 때』, 『세계의 끝 여자친구』, 『원더보이』를 통해 그것은 확신이 되었다. 김연수가 소설에서 쓰고자 하는 건 ‘우리’라는 전체를 구성하는 수많은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고자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그가 건네는 진실한 문장엔 강렬한 따뜻함이 함께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 쉽게 절망하지 않을 것, 그게 핵심이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 작가의 말 중에서』

 

 모든 건 너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원하는 쪽으로 부는 바람을 잡아타면 되는 거야. 절대로 네 혼자 힘으로 저 봉오리를 넘겠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혼자서는 어디도 갈 수 없다는 걸 기억해. 너를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이란다. 너는 어떤 바람을 잡아탈 것인지 선택할 수 있을 뿐이야.’ 『원더보이, 300쪽』

 

 

 

 

 

 

 

 

 

 

 

 

 

 

 

단 한 권의 책을 선택하기란 어렵지만 그리해야 한다면 안타깝게 절판을 선언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을 꼽는다. 이 소설은 소통과 관계를 말했던 단편집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확장처럼 보이기도 한다. 입양아 카밀라가 생모를 찾는 과정은 단순하게 자신의 뿌리와 닿고자 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심연에 닿고자  한다. 그건 결국 나와 당신의 일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겹쳐지면 그건 사람과 사회, 사람과 세상, 사람과 우주가 될 수도 있다는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김연수가 끊임없이 소설을 통해 말하는 건 누군가를 온전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김연수의 소설은 편견과 오해로 인해 드러나지 않은 상처까지 발견하고 어루만지는 강력한 온기를 지녔고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은 그 정점에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심연이 존재합니다. 그 심연을 뛰어넘지 않고서는 타인의 본심에 가닿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필요한 것이죠. 중요한 건 우리가 결코 이 날개를 가질 수 없다는 점입니다. 날개는 꿈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의 마음을 안다는 것 역시 그와 같아요. 꿈과 같은 일이라 네 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이야 하나도 어렵지 않지만, 결국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날개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그 이유를 잘 알아야만 합니다. 날개는 우리가 하늘을 날 수 있는 길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날개가 없었다면, 하늘을 난다는 생각조차 못했을 테니까 하늘을 날 수 없다는 생각도 없었을 테지요.”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274~275쪽

 

 

 여전히 김연수는 소설을 쓸 것이고 나는 그것들을 읽을 것이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를 읽는 건 나의 일이다. 그의 속도에 맞춰 소설을 모두 읽었다고 말할 때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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