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창비와 문학동네에서 세계문학을 선보였다. 창비에서는 나라별로 작가의 단편들을 모아 엮었고 문학동네에서는 장편을 선택했다. 창비 10권 중에서 영국, 러시아를 만났고, 프랑스와 중국의 단편을 하나씩 골라 읽고 있다. 문학동네 시리즈 중에서는 헤르타 뮐러, 스탕달, 오에 겐자브로만 읽었다. 발자크의 나귀가족은 아지 읽지 못했다.  해서, 특히 올해는 다양한 외국 문학을 많이 읽지 않았다. 그 중에 선택한 5권이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없겠다. 내겐 좀 더 폭넓은 책읽기가 필요하다.  
 
 여하튼 내가 선택한 5권은 이렇다. 읽어내기가 힘든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이 책을 시작으로 그녀의 책을 두 권 더 읽었다. 내게는 모두 어려웠다. 전쟁으로 붕괴된 삶은 세대를 고통을 안겨준다. 엊그제 연평도 사건은 전쟁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배고픈 천사가 나를 저울에 올릴 때 나는 그의 저울을 속일 것이다. 
 아껴둔 빵처럼 나는 가벼워지리라.
 그리고 아껴둔 빵처럼 씹기 어려워지리라. 두고 봐,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간단한 계획이지만 오래 버틸테니까. ’p 251
   

 캐서린 맨스필드의 『가든 파티』에서 만난 단편들, 같은 제목으로 펭귄시리즈도 만나볼 생각이다.  가장 최근에 만난 바진의 『차가운 밤』이다. 자욱한 안개가 떠나지 않았던 소설이다. 역시나 전쟁이 배경이다. 아름다운 문장은 쓸쓸하고 안타깝고 슬펐다.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수면에는 새하얀 안개가 가로놓여 있었으나, 그녀는 안개가 언제부터 짙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안개가 짙게 스며왔다. 질식시킬 듯한, 가슴을 채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밤중에도 흰빛을 내며 강 언덕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그 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p. 150 


 

 

 

 

 

 

 

 

 

 

 

 

 

 

 

 

 

    

 

  매혹적인 표지로 시선을 사로잡는 두 권의 책.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마이클 온다치의잉글리시 페이션트』. 어젯밤은 단편집이고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장편이다. 어젯밤은 신선하고 기발했다. 제임스 설터의 다른 책들도 궁금하다.   

 우리는 그런 얘기를 가끔 했다. 무엇을 바꿀 수 있고 도 바꿀 수 없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은 언제나 뭔가, 말하자면 어떤 경험이나 책이나 어떤 인물이 그들을 완전히 바꾸어놨다고들 하지만, 그들이 그 전에 어땠는지 알고 있다면 사실 별로 바뀐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p 99 

 마지막 잉글리시 페이션트도  중심에 전쟁이 있다. 이런, 어찌하다 보니 세계 문학은 전쟁이 되고 말았다. 전쟁이라는 거대한 슬픔과 고통은 이렇게 다시 문학으로 피어나 우리 곁에 있었다

 
‘이제는 식사 시간에 그녀와 다시 이야기하고 그들이 천막 안에서나 영국인 환자의 방에서 가장 친밀감을 느꼈던 그 단계로 돌아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요동치는 강같은 공간을 포함하고 있었던 두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를 회상하자 그는 그녀에게 매료되었던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 매료되었다. 소년답고 진지한 사람. 나긋나긋한 팔은 그가 사랑에 빠져버린 소녀를 향해 허공으로 뻗는다. 젖은 장화는 끈을 한데 묶어 이탈리아의 문가 옆에 서 있다. 그의 팔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고, 침대 위에는 엎드린 인물 형상이 있다.’ p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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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여기 저기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열심히 투표를 하다가, 가만 생각했다. 내 맘대로 정하는 2010년 최고의 소설을 말이다. 문학에서 시작하여 인문까지 골라도 좋다. 우선 5권의 소설이다. 제목처럼 내 맘대로 정하는 소설이다.(순전히 내 개인적인 취향이다).  한국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었으면 좋겠다.  

 김이설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은 사실 불편하고 읽기 힘든 소설이다. 해서, 어떤 이는 피하고 싶은 소설이다. 신춘문예 등단 소설인 '열 세 살'이나 '엄마들' 부터 그녀의 소설은 예고되었는지도 모른다. 여성의 삶을 다루는 그녀의 소설, 그 인물들이 행복해질 날이 언제 올까, 문득 궁금해진다. 곤궁하고 치욕스런 삶이 아닌, 조금은 평범한 일상을 다룬 소설도 기대해 본다.   

 암에 걸린 것도 억울한 것도 아니었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병이니까. 나는 그저 무수한 암 환자 중에서 한 명일 뿐이었다. p.105 

 황정은의 白의 그림자는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늘 수상 발표가 났다. 좋아하는 작가의 수상 소식은 그녀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단편집에서 느꼈던 환상과 상상의 세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여전히 리뷰는 쓰지 못했다. 아, 맑고 투명한  소설, 다시 한 번 더 읽으면 과연 리뷰를 제대로 쓸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차가운 음식 말고 따뜻 음식이 먹고 싶어요. 먹으면 배가 따뜻해지는, 따끈하고 맑고 개운한 국물이 있는 것을, 듬뿍 먹고 싶거든요. p. 147

 

 

 

  

 

 

 

 

 

 

  

 

 

 

 

 

 

 

  

 

 올 여름 나는 심하게 아팠다. 병실에서 읽은 윤대녕의 대설주의보 보리밭에 가고 싶었던 소설이다. 연두빛 고운 보리 사이를 걷고 싶었던 소설들. 봄을 떠올리는 소설이다. 최근에 만난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엔 그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역시나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청명에 내가 보리 같은 여자를 만났군. p.27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는 아름답고 촘촘한 문장들이었다. 하나의 문장을 단단한 문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을 다듬고 다듬었을까. 나에게서 나온 나의 문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푸른른 틈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모두 색이 들어있다. (제목이 작가의 의지로 탄생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다음엔 갈색이나, 보라가 들어가면 좋겠다.   

 찻잔이나 술잔, 밥공기 같은 것이 결코 화분이 될 수 없던 시절에도, 한쪽 모서리가 기운 사다리꼴의 그 방은 내게 충분히 훌륭한 화분이었다. p.117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이다. 얼마전 하성란의 책을 삼킨 TV에 그녀가 출연했다. 방송이 끝날 무렵 시청했기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그는 쓰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 글을 쓰면서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작가의 삶은 점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써야 한다면, 죽을 각오로 쓰라는 말이리라.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글쓰기를 다룬 소설이라 더 의미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낭독한 부분은 이렇다.  

 글쓰기 모드의 필요조건이라는 게 있을까. 금방 색각나는 건 일단 날씨가 너무 더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나 보리 파스테르나크가닥터 지바고 유리 지바고를 상상해보면 좋겠다. 날씨와 소설은 누가 뭐래도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너무 배가 불러도 안 되고 너무 배가 고파도 안 된다. 배가 부르면 문제의식을 상실하고 배가 고프면 꼬르륵거리는 소리 때문에 글 쓰는 데 집중을 못 한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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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밤 세계문학의 숲 4
바진 지음, 김하림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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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문학을 많이 접하지 않았다. 생각나는 작가는 모옌, 차오원쉬엔, 위화, 쑤퉁 정도가 전부이니 고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때문에 ‘세계문학의 숲’이란 이름으로 시공사의 세계문학 시리즈  출판 소식은 반가운 일이다. 처음 마주한 책이 바로 중국 거장 바진의 <차가운 밤>이다.  매혹적인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저 여자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고혹적이고 관능적인 여인을 상상한다.  

 자욱한 안개 속에 여자와 남자가 있다. 그들은 속히 안개가 걷히길 바라고 안개 속에서 나오려 한다. 그러나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서로의 모습조차 확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안개속의 두 남녀는 항일전쟁을 견뎌내는 수많은 중국인인과 동시에 바로 소설의 주인공 원시안과 수성이다. 끝을 예상할 수 없는 전쟁 속에서 사람들은 피폐해지고 지쳐간다. 1940년대 중국엔 종전에 대한 희망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한 삶이 계속된다. 

 주인공 원시안과 수성은 결혼 14년차 부부다. 젊은 시절 함께 공부하고 사랑을 나누고 교육 사업까지 했다. 그러나 전쟁은 그들의 삶을 뒤바뀌어 놓았다. 소설은 전쟁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서서히 붕괴되는 한 가정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들은 신지식인으로 뜨거운 열정을 맘껏 펼치며 살았을 것이다. 원시안은 출판사에서 번역을 하고 수성은 은행에 다닌다. 우유부단하며 소심한 성격으로 묘사된 윈시안은 직장 동료와도 잘 어울리지 못하고 아내와 어머니의 갈등으로 힘들어 한다. 그에 반해 자유로운 수성은 직장 상사와 차를 마시고 무도회를 가며 전쟁이라는 상황을 잊으려 한다. 

 지금 지식인은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들이예요. 영화를 보거나 연극을 보는 것은 아편이나 쌀을 매점매석해서 돈 번 사람이나 할 수 있어요.” p.105

 윈시안의 고통스러운 마음이 잘 드러난 문장이다. 1940년대 지식인들은 이처럼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수성과 어머니의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윈시안은 병에 걸린다. 수성은 발령을 핑계로 광저우로 떠날 결심을 한다. 그는 아내가 떠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병든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자책하며 아내를 보내기로 한다. 아내 역시 남편을 사랑하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살 수 없고 가난에서도 벗어나고 싶어한다. 게다가 자신을 향해 구애하는 남자까지 있다. 수성은 결정을 번복하며 고민하지만 그녀는 그가 아닌 상사를 선택한다. 아무도 그녀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하루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 풍족한 삶을 선택하지 않을 이 누구인가.

 그녀는 정신이 없었다.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수면에는 새하얀 안개가 가로놓여 있었으나, 그녀는 안개가 언제부터 짙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안개가 짙게 스며왔다. 질식시킬 듯한, 가슴을 채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밤중에도 흰빛을 내며 강 언덕을 천천히 거슬러 올라오고 있었다. 그 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p. 150

 그는 이름을 부르며 쫓아갔다. 자동차는 쏜살같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고, 그는 따라갈 수가 없어서 멈추어 서서 기침을 토했다. 절망 속에서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대문에는 보름달 같은 전등이 외롭게 인도를 비추고 있었다. p.239

 <차가운 밤>을 읽는 내내 이안 감독의 영화 ‘색계’가 떠올랐다. 수성과 매혹적인 표지 때문이다. 1940년대 중국은 제목처럼 <차가운 밤>이었고 그들에겐 온기가 필요했다. 소설은 여타의 전쟁소설과는 좀 다르게 다가온다. 긴급 경계경보가 울리는 긴박감, 예고 없이 찾아오는 정전이 반복되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은 덜하다. 격변하는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가정의 생활을 관찰하며 그들의 내밀한 심리 변화를 통해 전쟁이 모든 것을 상실시키는 과정을 보여준다. 

 진이 묘사한 전쟁에 대한 공포는 안개와 같았다. 사라질 듯 사라지지 않는 안개, 보일 듯 보이지 않는 어떤 희망 말이다. 시나브로 시야를 가리는 안개처럼 전쟁은 일상과 영혼을 잠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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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피대신 오미자차를 마시며 이런 노래를 듣고 있다. <이 어둠의 이 슬픔 - 도시의 그림자>, <기억날 그날이 와도 - 홍성민 >, <노을의 연가 - 주영훈>, <사랑해요 -고은희, 이정란>, <오랜만에 - 김현철>,<내게로 - 장혜진>,<사람들은 모두 변하나 봐 -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두 오래된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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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1 10: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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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1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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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 -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시 치유 에세이
전미정 지음 / 예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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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상처는 언제나 작아 보인다. 티눈처럼 작은 상처라도 내 상처만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사소한 다툼에도 사랑의 이별에도 모든 원인을 내 잘못보다는 상대의 잘못으로 돌리려 한다. 그만큼 상처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해서 상처를 치유하기란 더욱 힘든 일이다.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사람들은 흔히 술을 마시거나 우는 방법을 택한다. 함께 울어주고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을 찾는다.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는 독특한 치유 방법을 제시한다. 시가 그것이다. 하소연 할 친구 대신 때로는 음악이나 그림이 더 좋은 치료가 된다는 걸 안다. 과연, 시는 그런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 시인이면서 상담자인 저자는 시를 통해 인간이 가진 수많은 심리에 대해 말한다. 저자는 우선 자신을 드러낸다. 다섯째 딸로 태어나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어린시절, 힘들었던 사랑과 이별의 상처, 혼자 살아가는 삶의 외로움을 과감없이 꺼내 놓는다. 그리하여 독자에게  더 가깝게 다가온다. 나약한 심성탓에 상처를 이겨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 사연을 읽고 있노라면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큰 위안을 받는다. 

 책은 너, 나, 우리,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상처에 대해 말한다. 첫 번째로 ‘
너에게’에선 공감, 죄책감, 자기애, 상실, 분리 불안, 동반의존 등 9가지 감정을 다룬다. 나만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과 그로 인해 주변을 돌아보게 한다. 나를 믿고 슬픔을 토해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감사한 일이며 잘 살아왔다는 증거일 것이다.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는 마음을 가졌는가 묻는다.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당신 곁의 사랑하는 이가 지옥에서 구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리고 연약한 당신 역시 그런 나락으로 떨어질 때가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사람에 대한 지상 최고의 환대가 푸짐한 음식이 아니라, 푸짐한 공감으로 이루어진다. 공감은 존재 하나가 세계를 전부 거머쥐는 황홀한 순간이다. p. 21 

 두 번째 ‘
나에게’에선 말하기, 수치심, 질투, 자학, 반성 분노 등 10가지로 나를 관찰할 시간을 준다. 자신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를 귀하게 여기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라 말한다. 마지막으로 ‘우리’에선 나와 너가 아닌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감정으로 상처, 사랑중독, 사랑, 외로움, 용서, 자살, 소문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내면 심리와 행동을 28편의 시로 분석했다. 저자가 선택한 시는 널리 알려진 시보다는 낯선 시들이 대부분이다. 아무 생각없이 시를 읽었다가 저자가 들려주는 사연과 설명을 듣고 다시 천천히 시를 읽게 된다.누군가를 향한 끊임없는 질투와 분노로 힘들었던 순간과 끝내 용서를 하지 못한 내 모습을 떠올린다. 시를 통해 감춰진 내 마음을 들킨 것 같고 고치지 못한 성격을 지적당한 듯 부끄럽다. 그리하여 누구나 쉽게 회복되지 않을 깊은 상처가 ‘상처가 꽃이 되는
순서’로 진행되고 있음을 어렴풋하게 깨닫는다.

 자신의 상처도 사랑해야 하고 타인의 상처도 사랑해야 한다. 앙갚음하는 심정으로 오기를 부르며 살아왔더라도, 사랑으로 그 상처가 숙성되고 부드러워진다면 끝내 누군가의 삶의 혀끝을
향긋하게 자극해 주리라. 상처와 더불어 사는 맛은 뜻밖에도 감미롭다. 그 맛은 달콤 쌉싸래하다. 그리고 성숙한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안다. 진정한 달콤함은 쓴맛이 주는 자극 속에 녹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인가 살아가면 갈수록 상처가 꽃이 된다는 믿음을 뿌리치기 힘들다. p. 216

 자신의 상처도 사랑해야 하고 타인의 상처도 사랑해야 한다는 말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날들이 올까.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제껏 내 상처에만 급급한 나머지 곁에 있는 이의 상처엔 신경쓸 겨를이 없던 마음이 조금은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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