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여기 저기 올해의 책을 선정한다. 열심히 투표를 하다가, 가만 생각했다. 내 맘대로 정하는 2010년 최고의 소설을 말이다. 문학에서 시작하여 인문까지 골라도 좋다. 우선 5권의 소설이다. 제목처럼 내 맘대로 정하는 소설이다.(순전히 내 개인적인 취향이다).  한국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었으면 좋겠다.  

 김이설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은 사실 불편하고 읽기 힘든 소설이다. 해서, 어떤 이는 피하고 싶은 소설이다. 신춘문예 등단 소설인 '열 세 살'이나 '엄마들' 부터 그녀의 소설은 예고되었는지도 모른다. 여성의 삶을 다루는 그녀의 소설, 그 인물들이 행복해질 날이 언제 올까, 문득 궁금해진다. 곤궁하고 치욕스런 삶이 아닌, 조금은 평범한 일상을 다룬 소설도 기대해 본다.   

 암에 걸린 것도 억울한 것도 아니었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는 병이니까. 나는 그저 무수한 암 환자 중에서 한 명일 뿐이었다. p.105 

 황정은의 白의 그림자는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했다. 오늘 수상 발표가 났다. 좋아하는 작가의 수상 소식은 그녀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준다. 단편집에서 느꼈던 환상과 상상의 세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여전히 리뷰는 쓰지 못했다. 아, 맑고 투명한  소설, 다시 한 번 더 읽으면 과연 리뷰를 제대로 쓸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차가운 음식 말고 따뜻 음식이 먹고 싶어요. 먹으면 배가 따뜻해지는, 따끈하고 맑고 개운한 국물이 있는 것을, 듬뿍 먹고 싶거든요. p. 147

 

 

 

  

 

 

 

 

 

 

  

 

 

 

 

 

 

 

  

 

 올 여름 나는 심하게 아팠다. 병실에서 읽은 윤대녕의 대설주의보 보리밭에 가고 싶었던 소설이다. 연두빛 고운 보리 사이를 걷고 싶었던 소설들. 봄을 떠올리는 소설이다. 최근에 만난 산문집 이 모든 극적인 순간』엔 그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역시나 리뷰를 올리지 못했다.   

 청명에 내가 보리 같은 여자를 만났군. p.27 

 권여선의 내 정원의 붉은 열매는 아름답고 촘촘한 문장들이었다. 하나의 문장을 단단한 문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문장을 다듬고 다듬었을까. 나에게서 나온 나의 문장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푸른른 틈새, 분홍 리본의 시절, 내 정원의 붉은 열매 모두 색이 들어있다. (제목이 작가의 의지로 탄생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다음엔 갈색이나, 보라가 들어가면 좋겠다.   

 찻잔이나 술잔, 밥공기 같은 것이 결코 화분이 될 수 없던 시절에도, 한쪽 모서리가 기운 사다리꼴의 그 방은 내게 충분히 훌륭한 화분이었다. p.117 

 강영숙의 라이팅 클럽이다. 얼마전 하성란의 책을 삼킨 TV에 그녀가 출연했다. 방송이 끝날 무렵 시청했기에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게 그는 쓰지 말라고 한다고 했다. 글을 쓰면서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작가의 삶은 점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면서 말이다. 그래도 써야 한다면, 죽을 각오로 쓰라는 말이리라.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글쓰기를 다룬 소설이라 더 의미있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낭독한 부분은 이렇다.  

 글쓰기 모드의 필요조건이라는 게 있을까. 금방 색각나는 건 일단 날씨가 너무 더우면 안 된다는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이나 보리 파스테르나크가닥터 지바고 유리 지바고를 상상해보면 좋겠다. 날씨와 소설은 누가 뭐래도 상관관계가 있다. 그리고 너무 배가 불러도 안 되고 너무 배가 고파도 안 된다. 배가 부르면 문제의식을 상실하고 배가 고프면 꼬르륵거리는 소리 때문에 글 쓰는 데 집중을 못 한다.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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