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질문 - 죽음이 알려주는 품위 있는 삶을 위한 46가지 선물
김종원 지음 / 포르체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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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매 순간 물음표투성이다. 안다고 자신했던 것들도 어느 순간 이게 아닌 것 같고 지금껏 살아온 삶이 모두 소용없는 듯 느껴질 때가 있다. 한두 번 그런 자책이나 흔들림이라면 괜찮을 텐데 사는 동안 우리는 확신보다는 수많은 불확실에 좌절한다. 도대체 생을 살다간 이들은 어떻게 이 삶을 견뎠을까. 어쩌면 김종원의 『마지막 질문』은 이러한 괴로움에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20년 동안 그 해답을 찾기 위해 만난 문학과 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총정리하는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삶의 지혜를 들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릴케, 칸트, 니체, 톨스토이, 쇼펜하우어, 괴테가 추구하는 것들을 상상의 대화로 풀어가는 방식이다. 마치 그들과 함께 나란히 걷거나 서로 마주하며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삶의 고통과 목적에 대해 대화는 확장되고 어이진다. 그러니까 결국 이 책은 ‘마지막 질문’이라기보다는 매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인생의 목적을 주제로 릴케와 나눈 대화를 보면 이런 질문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을 그대로 보여줄 한 줄이 있는가?’와 ‘왜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가?’. 전자의 질문은 바로 유언을 뜻한다. 한 번도 유언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기에 지금의 나와는 상관없는 질문으로 다가오는 이가 많을 것이다. 릴케는 삶의 마지막에 들려주는 말은 삶의 분명한 목적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죽음을 생각하면 현재의 삶이 절실해지고 죽음을 각오할 정도로 사랑한 게 무엇인가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릴케에게 글쓰기가 그러했듯이.


매일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한 이로 잘 알려진 철학자 칸트는 삶의 방향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다. ‘인생에서 과연 저절로 되는 게 있을까?’란 질문은 칸트의 인생을 대표하는 질문이 아닐까.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의 찾고 나가는 일은 쉬운 것처럼 보이지만 절제와 노력이 필요하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기계 역시 저절로 되는 건 역시 그 바탕에는 인간의 필요하다며 결국 나를 채우고 키운 건 바로 자신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어떤 의미로 보면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이루는 과정 하나하나가 방향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속상할 때 지나온 삶의 조각들이 지닌 가능성을 믿으라고 조언한다. 외부가 아닌 내부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런 목소리는 존재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철학자 니체와는 존재에 대한 끝없는 질문, 곧 사색의 대화로 이어진다. ‘나는 왜 존재하는가?’ 수없이 많은 이들이 외치는 질문일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나를 알리고자 하는 인간 심리를 SNS로 꼬집으며 고독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설명한다. 병에 걸렸거나 통증으로 괴로울 때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혼자이며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지닌 고독한 섬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니 “무리를 지은 곳에 내가 없다.” (112쪽)란 문장이 통렬한 뜨거움으로 가슴에 박힌다.


문학의 거장 톨스토이와는 균형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쏟아지고 변화하는 시대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고 인생의 균형을 잡는 일은 어렵다. 거기다 세상의 유혹은 얼마나 많은가. 현대인에게 균형은 언제나 갈망하는 삶이다. 일과 삶의 균형인‘ 워라밸’이 한동안 유행할 정도니까. 그럼에도 균형을 잡지 못하는 건 버리지 못해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당신은 어제 무엇을 버렸는가?’란 질문에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이가 있을까. 버리기는커녕 채우지 못해 안달인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무엇을 가졌는가 하는 소유뿐 아니라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하나를 버려야만 하나를 취할 수 있다는 삶의 균형을 기억해야 한다.


기억에 멈추지 말고 실천해야만 내 것이 된다.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쇼펜하우어와 다룬 실천이야말로 인생에 있어 누구나 원하는 일은 아닐까. 염세주의자로 잘 알려진 철학자와 실천이라는 키워드가 맞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버킷리스트가 있는 삶은 왜 죽은 삶인가?’란 질문에서 쇼펜하우어는 버킷리스트가 없다고 답한다. 하고 싶은 일을 당장 실천하여 남겨 두지 않으니 리스트에 적을 게 없다고. 버킷리스트라는 핑계를 빌미로 우리는 실천이 아닌 미루는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마지막으로 괴테가 들려주는 경탄은 말 그대로 삶의 매 순간에 느껴야 한다. 죽음 앞에서 돌아보면 지나온 모든 순간이 경탄이 아닐는지. 하루하루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일, 계절마다 꽃을 피우고 지는 자연의 모습의 경이로운 모습을 통해 우리는 치유를 얻고 회복한다. 어디 그뿐인가. 인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슬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견디는 인간의 마음, 필요한 것들을 발견하고 발명하고 더 좋은 세상으로 나가려는 의지가 현재의 삶을 만들었다.


6명의 멘토와 나눈 46가지 질문을 통해 인생의 진리와 아름다움을 배우고 생각한다. 20년 동안 저자가 읽고 느끼고 공부한 것들은 죽음을 대하는 태도이자 곧 삶에 대한 희망과 열정이다. ‘모든 죽음은 최고의 선물이다.’ (282쪽) 그의 말대로 남겨진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대신 친구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한다. 마지막인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며 사는 일이 남았다.


그대 내면에 식지 않은 열정을 가진다면,

일생의 빛을 얻게 될 것이다.

언제나 고통이 남기고 간 뒤를 보라.

고난이 지나면 반드시 기쁨이 스며드니까.


그래, 결국에 인생은 좋은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은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습득할 수 있지만,

나의 마음만은 오직 내 자신의 것이니까 ( 에필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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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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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게도 어린이라는 세계를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어른과 청소년 어린이를 구분하려고 했을 뿐. 이 책은 사실 인간이라는 세계의 일부다. 내가 잊고 있었던, 우리가 무관심했던, 어떤 세계. 그 세계를 우리는 모두 경험해야 한다. 추천 그 이상의 추천으로 이어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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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볼트 -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
시드볼트운영센터.산림생물자원보전실 생물자원조사팀.야생식물종자연구실 지음 / 시월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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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은 지구의 멸망과 재건을 다룬다.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려주며 현재의 지구를 잘 보존하고 함께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연대와 공감이 필요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고. 반대로 말하면 우리 시대에는 공감과 연대가 부족하다는 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덩굴식물은 지구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더 나은 지구를 위해 사람들이 덩굴식물을 다른 곳에서 길렀기 때문이다. ‘지구의 재앙을 대비하는 공간과 사람들’이란 부제 때문일까. 박정우가 엮은 『시드볼트』 를 읽으면서 김초엽의 소설이 겹쳐졌다.


‘시드볼트’에 대해서는 방송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연예 프로그램이 아닌 뉴스를 통해 종자를 보존하는 공간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토종 씨앗이 많이 사라지고 있어 그 씨앗을 채취하고 보존하는 곳이구나 생각했다. 심각한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처하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야생식물 종자를 저장하는 일의 의미와 사명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역대 최장기간 산불인 지난봄 울진, 동해의 산불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곳의 야생식물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책은 시드볼트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야생식물의 씨앗의 채취 과정과 보관 방법을 상세히 소개한다. 시드볼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시드뱅크와는 다른 역할을 한다. 종자은행인 시드뱅크에 보관된 종자는 반출할 수 있지만 시드볼트는 저장이 목적이다. 시드볼트에 맡긴 종자는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지구 대재앙으로부터 식물의 멸종을 막고 유전자를 보호하기 위한 시설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에 두 곳이 있는데 한 곳은 유엔의 지원과 지지를 받는 노르웨이의 ‘스발바르 국제 종자 저장고’이며 다른 한 곳은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시드볼트’이다.


시드볼트의 가장 중요한 일, 종자 수집이다. 종자 수집을 위해 백두대간을 비롯해 전국의 모든 산을 다닌다고 생각하면 등산의 이미지를 떠올리 수도 있지만 오산이다. 하나의 종자를 얻기 위해 개화시기를 중심으로 종을 파악하고 결실을 맺을 시기를 기다린다. 열매를 바로 채집할 수는 없다. 열매가 가장 잘 익었을 경우 종자를 수집하는 게 원칙이다. 종자만 수집하는 게 아니라 식물체도 수집하는데 나중에 수집할 종작의 근거가 된다. 개체의 수량이 적은 경우에는 수집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내부의 모습처럼 수십 미터 깊이에 3중 철판 구조로 이루어진 영하 20도의 춥고 어두운 공간 생명을 품고 있는 종자. 현재 13만 7천여 점의 생명을 품고 끝까지 남을 종자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일이 모든 과정은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의 목적은 시드볼트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알리는 일이다. 시드볼트를 알리는 다른 방식으로 종자 전시회가 있다. 언뜻 종자를 가지고 무슨 전시를 할까 싶은데 백두대간에 자생하는 종자를 주사전자현미경으로 촬영을 해 종자의 다채로운 모습을 전시하는 것이다. 설명 없이 사진만 본다면 이게 정말 종자일까 싶을 정도로 신비롭고 아름답다. 우주의 행성을 보는 기분이다.


사라진다는 것은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점점 사라지는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과 비교하면 야생식물의 그것은 부족한 상태다. 누군가는 개량종이 있어 더 좋은 품질과 생산성이 보장된 거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을 통해 알게 된 바나나의 경우나 구상나무의 현실을 보면 왜 씨앗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가 확실해진다. 전 세계적으로 먹는 바나나는 변종 파나마병에 걸렸다고 한다. 사람이 먹기 좋고, 재배하기 좋게 개량되면서 환경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삭제된 결과다. 변종 파나마병에 저항할 유전자가 없기 때문에 치료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개량종이 아닌 야생종 바나나를 연구하는 일이 해답인데 변종 파나마 병에 내성을 갖고 있는 야생 바나나가 멸종 위기라는 것이다. 그저 쉽고 편하게 먹기만 했던 일반 소비자인 나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구상나무에 대한 이야기도 놀라웠다. 이 책을 읽기 전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주도 한라산의 구상나무가 빠르게 고사되고 있는 모습을 보았던 터라 그 심각성이 한층 더 크게 다가왔다. 온도가 높아지고 눈이 내리지 않아 수분 부족으로 말라 죽어 가고 있다. 조금씩 개체수가 줄어들면 언젠가 구상나무도 사라질 수 있다는 일이다.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국가보안시절 시브볼트에 대해 누군가는 거대한 국가적 이익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시드볼트 운영은 이익이 아닌 인류를 위한 자원을 보관하는 가치에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내가 오늘 마주한 꽃과 나무를 내년에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지구 대재앙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동안 우리가 겪은 태풍, 쓰나미,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은 우리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후세를 위해 보존해야 한다. 어떤 기후 변화에도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도록.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보존뿐입니다. 적어도 사라지는 것만큼은 막아야 합니다. (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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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4-02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세계 두 곳밖에 없는데 그 한곳이 우리나라에 있다구요?!
구상나무 원산, 자생지가 우리나라죠^^
이 책 급 관심이 가네요

자목련 2022-04-04 11:21   좋아요 1 | URL
네, 아직은 시드볼트에 종자를 보관하는 의뢰가 많지 않다고 해요.
그래서 이런 책을 출판해서 국내외에 알리는 게 목적인 것 같아요.
고사한 구상나무의 모습은 참혹했어요.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레이스 님, 환한 봄날 이어가세요!!
 
아파트먼트
테디 웨인 지음, 서제인 옮김 / 엘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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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의 문학과 우정에 대한 성장소설이라 할 수 있지만, 결국엔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여전히 삶의 관계가 힘든 이들에게 지나온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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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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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은 더 이상 낯선 말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등장할 것 같은 일이 아니다. 우리가 멸망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굳센 믿음은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지구는 아픈 신호를 낸 지 오래다. 지구 어딘가에서 스스로 사라질 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 스스로의 자생 능력은 가능할까. 어쩌면 인류가 없다는 가정이라면 가능성이 충분할지도 모른다.


현재의 우리는 살아가는데 그저 불편함이 있을 수 있지만 먼 미래의 인류는 김초엽의 장편소설 『지구 끝의 온실』 속 나오미와 아마라처럼 목숨을 걸고 어딘지도 모르는 도피처를 찾아 나설지도 모른다. 2050년의 지구는 치명적인 ‘더스트’로 모든 생물이 죽어갔다. 더스트를 막을 수 있는 돔을 만들지만 모두가 그곳에서 지낼 수는 없다. 자원의 한계는 인간을 괴물로 만든다. 돔시티를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그들만의 공동체를 구성한다. 나오미와 아마라가 그토록 찾던 ‘프롬 빌리지’도 그 중 하나다.


『지구 끝의 온실』 이란 제목이 말해주듯 프롬 빌리지가 그곳이다. 프롬 빌리지에서 사람들은 더스트를 피해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멸망 후 재건한 지구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2129년 더스트생테연구센터에 근무하는 아영은 폐허 도시 해월에서 덩굴식물 ‘모스바나’에 대한 피해 소식을 듣고 조사를 시작한다. 어린 시절 잠시 해월에 살았던 아영은 모스바나를 보고 기억 속 이희수 할머니의 정원을 생각한다. 그곳에서 푸른빛을 내던 식물은 분명 모스바나였다.


아영은 모스바나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고 그 과정에서 모스바나를 약초로 사용하는 나오미와 만난다. 그리고 나오미를 통해 2050년 프롬 빌리지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이보그이자 식물학자인 레이철과 정비사 지수가 프롬 빌리지의 지도자였다. 레이첼은 유리온실에서 나오지 않았지만 지수와 협력하며 공동체를 돕는다. 더스트로부터 사람들을 구한 모스바나도 레이첼이 개량한 식물이다. 프롬 빌리지는 더스트를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었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외부의 공격과 공동체 구성원 사이의 갈등도 존재했다. 누군가는 프롬 빌리지를 지키기를 바랐고 누군가는 모스바나로 다른 프롬 빌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모스바나는 더스크의 종식과 지구 재건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은 건 아니다. 그러나 프롬 빌리지를 떠나 세계 곳곳에서 모스바나를 퍼트린 사람들을 부정할 수는 없다. 2129년 다시 모스바나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프롬 빌리지에서 시작된 연대와 희망을 알리기 위함일까.


어린 나오미와 아마라 자매로 시작해 레이첼과 지수 그리고 아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모스바나를 통해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더스트라는 잔혹한 재해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온 증인인 프롬 빌리지의 그들은 마치 과거 전쟁을 경험한 할머니 세대를 생각나게 한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누군가의 고통과 희생의 대가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깨달음이라고 할까.


푸른빛의 먼지를 만들어내는 모스바나를 상상한다. 팬데믹의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모스바나는 무엇일까. 마스크, 백신, 치료제, 의료진, 그 모두가 모스바나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돌보면서 곁을 지키는 어떤 마음은 아닐는지. 김초엽 작가가 말하는 그 마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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