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기어이 책을 사고 말았다. 그리고 다짐을 했다. 이제 당분간 책을 사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당분간 좋아하는 작가의 새로운 소설이 나와도 구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과연 이 다짐을 지킬 수 있을까 의문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굳은 다짐을 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마다 남아있던 마일리지를 모아 모아서 산 책들이다.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 김연수 외 <깊은 밤, 기린의 말>, 김훈의 기행산문집 <풍경과 상처>, 고 박완서님의 <나의 가장 나종 지닌 것>, 서울 테마 두 번째 소설집 <서울, 밤의 산책자들>, 12명의 작가들의 산문과 문학에 대한 생각을 만날 수 있는 <불가능한 대화들>이 그것이다.  

 어제도 두 권의 신간이 도착했다. 구매하지 않았을 뿐, 책은 계속 오고 있다.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하여, 더 즐거이 책을 읽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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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 쓸개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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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숨은 장편소설 『철』과 『물』로 만났다. 스스로 광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던 그녀의 두 소설은 무척 기묘했다. 때문에 광물을 다루지 않은 소설은 어떨까 궁금했다. 테마집을 통해 접했던 단편은 장편과는 많이 달랐다. 『간과 쓸개』 속 인물은 대체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절대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사소한 분쟁을 원하지 않았다. 현재의 삶을 유지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소극적이거나 수동적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렇다고 욕구가 없는 건 아니다. 그저 주어진 환경에서 사건 사고 없이 살고 싶을 뿐이다. 그들은 때로 우리 주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이웃들이었다. 해서, 더 마음이 머무른다.  

 <간과 쓸개>는 간암에 걸린 주인공과 담낭관에 담석이 생긴 큰 누님의 이야기다. 땅 3백 평을 팔아 자식들에게 나줘 주고 혼자 사는 그는 간암 투병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안고 산다. 간암과 쓸개즙이 나오지 못해 생긴 병을 비교할 때 위급함은 간암이 훨씬 크다. 그러나 죽음의 공포는 예기치 않게 다가온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간암 환자로 살아가는 그나 아흔이 넘은 나이에 배에 구멍을 뚫어 쓸개즙을 빼내는 일은 죽음 가까이에 있었다. 그에게도 큰 누님에게도 장성한 여러 자식이 있지만, 암과 싸우며 일상을 견뎌내는 일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읽는 내내 아흔 셋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부서질 듯 마른 육체가 떠오르는 건 왜 일까.   

 <북쪽 방>은 32년 동안 중학교에서 지구과학을 가르치다 정년퇴직을 맞은 노인 곽노의 일상이다. 폐가 좋지 않아 먹어야 할 약이 4봉지나 되는 그는 북쪽방에 갇힌 듯 생활한다.  그에게 주어진 공간이자 삶은 북쪽 방 뿐인 것이다. 아내는 그에게 부속된 모든 것(밥, 속옷, 화장실까지)을 북쪽 방에 넣고 언제나 문을 닫는다. 그 안에서 그는 지하실 가방 공장 미싱 소리에 누군가 벽에 쇠공을 던지는 소리와 함께 산다. 종교 활동에 빠진 아내는 점차 곽노를 잊어버린다. 곽노가 때로 죽음을 경험하는 북쪽 방은 곽노이며 거대한 광물인지도 모른다. 

 ‘광물은 외계를 내계로 끌어들인다. 외계를 압축해 내계에 기록한다. 기록은 색, 조흔색, 광택, 굳기, 비중, 쪼개짐, 단구, 점성, 자성, 발광성 등 여러 방식으로 구현된다. 만물이 그러하겠지만, 광물의 형성에도 분명한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곽노는 북쪽 방이 벽면들로 막혀 있지만, 외계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될 수 없음을 안다. 북쪽 방은, 북쪽 방을 둘러싸고 있는 외계의 온도와 습도, 소리로부터 끊임없이 영향을 받는다. 고스란히 곽노의 육신에 영향을 미친다.’ p.142~143  

 <육(肉)의 시간>은 부부 사이에 등장하는 한 여자로 인해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는 아주 태연하게 일상을 유지하는 아내를 통해 독자의 호기심을 무시해버린다. 아내는 셋이서 평화롭게 살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남편이 데려온 여자는 누구이며, 그와 어떤 관계인지 궁금한 건 당연하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과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이가 있을까. 설령, 그 여자가 죽은 육체라도 말이다.

 묘한 기운은 <룸미러>에서도 느낄 수 있다.  아이가 생기고 부터 남편은 언제나 아이들이 잠들기만을 원한다. 아이들은 분주하고 사건을 일으키고, 요란스럽다.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 남편은 끊임없이 룸미러를 통해 아이들을 주시한다. 혹시나 잠에서 깨어날까 두려워한다. 무슨 일인지 도로는 막히고 사람들은 차를 버리고 나와 계속 걷는다.  

<흑문조>는 빚으로 마련한 집의 보일러 기계가 고장나 벌어지는 일이다. 보일러 배관공은 집안 여기 저기 구멍을 파놓고 원인을 찾지 못한다. 원하던 바가 아니다. 단순히 보일러를 고치려 했을 뿐인데,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만다. 특별한 일 없이 돌아가던 권태롭기까지 했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배관공이 파놓은 구멍들 때문에 집 안에서의 내 동선은 엉망이 되었다. 집의 질서가 흐트러졌다. 고스란히 드러난 보일러 배관들을 바라보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보이러 배관마다  녹 뭉치가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p. 171

 오랜 기간 고시를 준비하다 실패해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 <모일, 저녁> 속 삼촌이나 평생을 직사각형 매표소에서 보낸 <사막여우 우리 앞으로>의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살아온 대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들이다. 일상의 균형이 깨지기를 바라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때문에 작은 틈새, 균열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없고 할 수 있는 건 울어버리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철』과 『물』을 빠르게 읽었다면 『간과 쓸개』는 느리게 읽으면 좋겠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며 소설 속 인물처럼 웅크리고 있거나 주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거나, 가만히 울음을 토해내도 괜찮겠다.  북받치는 감정을 눌러 담아 만들어 낸 소리들, 주의를 기울여야만 들을 수 있는 김숨의 모습이나 목소리가 그러하지 않을까.  조용하지만 간절하여 더 강한 힘을 가진 그녀의 문장이 점점 더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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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추락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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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신의 미국작가 하 진의 소설은 처음이다. 그의 소설 『기다림』에 대한 호평을 접한 터라 『멋진 소설』에 기대와 설렘이 컸다. 결과적으로 그의 소설은 나를 흡족하게 했다. 수록된 12편의 소설은 친근했고 편안했다. 소설은 중국을 떠나 미국에서 생활하는 이민자들의 삶을 다뤘다.   

 표제작 <멋진 추락>의 주인공 간친은 뉴욕의 사원에서 쿵후를 가르친다. 그러나 월급을 받은 적이 없다. 주지는 비자 연장을 도와주지 않고 그를 중국으로 돌려보내려 한다. 자신이 일한 만큼 돈을 달라고 요구하지만 주지는 그를 사원에서 내쫓는다. 간친의 사정을 들은 친구 신디는 스님의 신분을 벗고 새롭게 시작하라고 한다. 그는 결국 죽음을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음식을 대접받은 식당주인에게 그 동안 주지가 일삼은 착취에 대해 털어 놓는다. 그의 추락은 이슈가 되어 각계각층의 도움을 받는다. 그에겐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다. 말 그대로 멋진 추락이다.

 “내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인디언들을 제외하고 미국이 자기 나라인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러니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당신이 여기에서 살고 일하면 당신 나라인 거죠.” 
 “바꾸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많아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당신은 스물여덟 살밖에 안 됐어요!” 
 “그래도 마음이 너무 늙어버렸어요.” 
 “당신은 앞으로 적어도 50년은 더 살 거예요.”  p. 357  

 신디의 말처럼 미국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나라다. 어떤 삶을 살지 결정할 수 있는 건 바로 자신 뿐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민자들은 두려움 때문에 변화를 시도하거나 도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12편의 소설 속 다양한 삶은 결국 미국에서 잘 살고자 하는 같은 목표가 있었다. 어떤 사람은 더 좋은 직장을 위해, 어떤 사람은 성공을 위해, 어떤 사람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언제나 달랐다. <벚나무 뒤의 집> 속 여자들은 중국에 남겨진 부모와 형제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몸을 팔아야 했고, <계약 커플>의 남녀는 남편과 아내가 있었지만 동거를 해야 했고, <부끄러움>의 교수는 불법 체류자란 신분 때문에 영사관 직원을 피해 다녀야 했다. 몸이 아파도 의료보험료가 비싸 병원에 가지 못했고 나를 위해 그 어떤 투자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의 고단하고 힘겨운 일상을 부모나 형제는 알지 못했다. 해서, 좀 더 많은 돈을 보내주기를 원했고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으며, 잠시 다니러 온 부모는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언어와 환경이 다르고 문화와 사고방식이 다른 사회에서 적응하려 애쓰는 모습은 때로 실소를 자아냈고 때로 안쓰러웠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사소한 실수로 안절부절 못하며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나 사소한 일상을 차분하게 담을 수 있었던 건 작가 자신의 경험이 녹아 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중국인으로 미국에서 작가로 산다는 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 진의 소설은 자연스레 영국 출신이나 인도인 부모를 둔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과 김재영의 『폭식』을  떠올렸다. 그들 소설에서 이방인이란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견뎌내야 할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줌파 라히리가 여성의 심리를 면밀하게 묘사했다면 하 진은 남성의 그것을 간결한 단문으로 담백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멋진 추락>으로 하 진을 만났으니 누군가 그의 소설에 대해 묻는다면 흔쾌히 추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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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리뷰 - 이별을 재음미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 책 읽기
한귀은 지음 / 이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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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이별을 예상하며 관계를 맺고 사랑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이별의 카운트다운이 함께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그 수를 얼마까지 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이별한다. 어제의 나와도 이별하고 가족과 친구와의 사소한 다툼으로 짧은 이별을 하기도 한다. 그런 일상적인 이별이 반복되어 때로 이별의 늪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 이별에 무덤덤하게 받아들인다.  

 『이별 리뷰』는 다양한 이별 중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말한다. 저자가 택한 이별 치유법은 바로 책이다. 책 읽기를 통해 이별을 해석하고 이별을 위로하고 사랑을 말하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건 단순한 책읽기를 떠나 책에서 만나지는 다양한 삶을 마주하고 이해하면서 사랑과 이별에 대해 깊이 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소설은 우리의 생을 가장 많이 닮았고 가장 많이 투영한다. 소설 속에서 우리는 원없이 사랑하고 처절하게 이별한다. 물론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게 우리네 생이라는 걸 안다. 그러나 차마 드러내지 못하는 슬픔과 고통을 소설 속에선 맘껏 발산할 수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이유로 저자는 책 읽기를 선택한 게 아닐까 한다. 

 이별을 견디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울부짖으며 누군가는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할 것이다. 혹독하게 이별을 겪은 사람은 이별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온전하게 이별을 껴안지 못했기에 더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잔인한 말이지만 이별이 진행 중인 사람이거나, 이별의 전를 느끼고 있는 사람, 곧 누군가에게 이별을 통보할 사람이라면 더 좋을 책이다. 이런 구절들처럼 말이다.   

 ‘사랑을 한다면, 그리고 이별을 했다면 당연히 미쳐야 한다. 우리가 사랑과 이별을 겪을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어쩌면 미치지 않는 것이지 않을까. 약간은 미쳐서, 이별을 기억하지 않고, 다만 사랑만 더 아름답게 각색하면서 살아도 좋을 것이다.’ p. 92 

 저자가 선택한 32편의 소설이나 시는 대중에게 알려진 작품으로 김동리의 <역마>, 황지우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시작해 김애란의 <성탄특선>까지 다양하다. 그저 역사 소설이라 여겼던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과 여진의 강렬한 이별은 예상된 이별이지만 애절함으로 남는다. 박완서의 <그 여자 네 집>도 마찬가지다. 사랑이 어느 한 세대의 소유물이 아니며 어디에나 삶이 있듯 어디에나 사랑과 이별이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하여 나의 이별이 가장 고통스러운게 아니라고 전한다. 자신의 이별의식을 잘 치른 후에야 우리는 계속해서 사랑을 할 수 있다. 소설 속 연인들의 이별과 사랑은 안다고 믿었던 이별에 대해 다시 한 번 학습하게 한다. 그리고 제대로 이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수많은 이별이 사랑으로 다가가는 길이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사는 것은, 과장되게 연애하고, 덜 아프게 이별하게 위해 가면을 쓰는 일이 아니라, 가면을 한 손에 들고, 자신에게도 가면이 있음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남에게도,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주지시키는 일이다. 나 또한  가면은 버리지 못한다. 다만, 가면을 쓰지 않기 위해 가면을 응시할 수 있을 것이다.’ p.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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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
김미월 외 지음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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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에게 사물과 일상은 내가 알고 있는 의미와는 또다른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그 의미는 소설 속에서 새롭게 태어날 것이고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때로 놀라고 부러워하며 슬퍼하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 대한 기억이 각자 다르듯 같은 소재나 주제를 다룬 소설이라도 소설가에 따라 다르다. 그런 소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자신만의 색깔이 뚜렷한 삼십대의 여류 작가(김미월, 김숨, 김이설, 윤이형, 장은진, 한유주, 황정은)가 모여 비를 테마로 쓴 소설집『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은 더욱 그랬다. 비를 좋아하기에 더 좋았고 비라서 더 기대가 컸다.   

 누구나 비 오는 날이나, 비에 관한 그리움 하나 간직하기 마련이다. 비가 그런 것이다. 소설은 사전적 의미인 비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습한 기운이 가득하다. 비로 기억되는 어떤 추억을 떠올리기 보다 소설 속에서 나는 비를 만난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습하고 눅눅한 비가 아닌 새로운 비와의 만남이다.   

 김숨의 <대기자들>은 치과 치료를 기다리는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드러낸다.  주인공에겐 암투병중인 어머니가 있었고, 이혼 절차 중인 아내가 있었다. 그들은 모두 그에게 뭔가를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자들의 풍경은 왠지 쓸쓸하도 처량하다. 대기자는 수동의 의미를 지녔다. 누군가가 자신을명해줘야 한다. 그러니까 여전하게 대기하고 있지만, 확인시켜주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것이다. 그건 소설 속 비와 같다. 

 “비가 오네”?  
 대기자들 중 누군가 뜬금없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비는 아까부터 내리고 있었다.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비가 다 그친 뒤에 깨닫지 그랬나. 나는 짜증이 나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비가 다 그친 뒤에나. 그러나 비가 그친 뒤에나 비가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는 없을 것이었다. 비는 내리는 동안에만 비일 것이었다. 그친 뒤에는 비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 p. 66~67

 지붕 위로 날라오는 티슈를 모으며 왜 티슈를 뿌릴까 호기심을 불러오는 장은진의 <티슈, 지붕, 그리고 하얀 구두 신은 고양이>는 따뜻했고, 마법사와 비의 이야기인 윤이형의 <엘로>는 한 편의 아름다운 환상 동화를 만난 듯했다. 고교시절 백일장에서 남의 시를 훔쳐 적어 1등을 한 주인공의 비오는 날 시와 연상시킨 김미월의 <여름 팬터마임>은 가장 보편적인 비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김이설의 <키즈스타플레이타운>은 부드러운 비가 아닌 폭력적인 비였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폭행으로 유린당한 상처를 지닌 화자인 의 남편은 소아성애자다. 어린이 실내 놀이터 사장인 남편은 그곳에서 아이들에게 손을 댄다. 화자는 남편의 행동을 모른 척 한다. 사모님이라 불리는 호칭과 명품들과 과거를 보상받는 삶이라 여긴다. 아픔과 상처는 치유되었다고 치부하며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비가 내릴 때마다 자신을 옭아매는 기억과 마주한다. 

 펑, 하는 소리와  곧이어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날카로운 남편의 비명 소리도 섞였다. 나가보니, 바람과 빗물이 온 집 안을 집어삼킨 것 같았다. 외벽 통 유리 한 짝이 바람에 박살 난 것이었다. 남편이 유리 파편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알몸이 유리에 긁혀 온통 붉은 자국이었다. 남편이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다. 가까이 가지 않아도 남편 눈에 박힌 주먹만 한 유리 조각이 보였다. 순간, 붉은 피가 솟구쳤다. 눈이 아니라 목이었다. 핏줄기가 뿜어졌다. 훅, 훅, 훅 - 심장박동을 따라 검붉은 줄기가 리듬을 탔다. 바람 때문에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베란다가 피범벅이 됐다. 시뻘건 몸뚱이가 갓난아이처럼 보였다. p. 194

 순간, 오래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김이설의 소설은 끔찍한 소재로 불편하고 잔인하나 묘한 쾌감이 있다.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결말을 소설을 통해 후련하게 해준다고 할까. 

 황정은의 <낙하하다>는 죽음을 비가 떨어지는 과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니, 죽어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그녀의 소설은 하나의 문장이 기초하여 반복되고 확장되어 새로운 의미로 태어난다. 삼 년째 떨어지고 있는 화자는 비이며 죽음이다. 떨어지며 마주하는 풍경과 생각들이 함께 떨어진다. 바닥에 닿았을 때 그것들은 본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까. 우리가 마주하는 비가 비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 해 본 적이 있는가?  

 애초 빗방울이란 허공을 떨어져 내리고 있을 뿐이니 사람들이 빗소리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빗소리라기보다는 빗방울에 얻어맞는 물질의 소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런 물질에도 닿지 못하는 빗방울이란 하염없이 떨어져 내릴 뿐이라는 이야기였다. p.204~205

 한유주의 소설 <멸종의 기원>은 인상적이었다. 화자인 에게 할아버지는 ‘불행하라’는 유언과 ‘날씨표시상자’를 남겼다. 소설을 불행을 찾아 나서는 여행처럼 보인다.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은 엄마,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버지, 혼자 지내는 내 곁에 있는 건 날씨표시상사뿐이다. 건기에는 왕이 우기에는 여왕이 나타나는 상자였다. 그러나 언제나 왕뿐이었다.  화자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동안 단 한 번도 여왕은 등장하지 않았다. 왕은 마치 불행을 암시하는 듯 여겨진다. 그러다 날씨표시상에서 태엽을 발견한다. 왕과 여왕을 뜻대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유언은 정말 불행하라는 것이었을까. 묘한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비가 내릴 때마다 듣는 음악이 있고 비가 내릴 때마다 읽는 시집이 있고, 비가 내릴 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계절마다 비는 각기 다른 감성을 자극한다. 『일곱가지 색깔로 내리는 비』라는 제목 때문이지 자꾸 단편에 어떤 색이 떠오른다. 무기력한 회색, 날 것 그대로의 선홍빛, 환상적인 노랑, 기분좋은 녹색, 빠져드는 보라, 명쾌한 파랑처럼 그들만의 색을 찾는 즐거움이 있다. 김미월과 한유주의 소설은 처음이라는 이유로 색다른 느낌이었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다면 그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어도 좋다. 끌리는 제목이 있다면 그 소설을 먼저 읽어도 역시 좋다. 일곱편의 소설을 다 읽었을 때 당신의 비는 어떤 색으로 떠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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