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에겐 나무가 꽃 필요해. 잘 살기 위해서. 흔들리

는 나뭇잎을 보며 그 소리를 듣는 일이. 어떤 사람에겐 남

의 행복이, 또 남의 고통이 필요해. 어떤 가치 없고 무고한

타인의 죽음이 필요하고. 흔들리는 나무 밑에서 그런 비극

을 떠올리며 어쨌든 좀 슬픈 것 같은 순간이 필요해. ‘어떤

사람은 그냥 걷다가도 죽는대. 사랑하다 죽고. 사랑을 나누

다가 기쁨이 넘쳐서 죽고. 산에서 죽고. 바다를 건너다 죽는

대.’어떤 사람에겐 행복이 필요해. 꼭 나무를 보듯 불행이

필요하고. 어쨌든 어떤 믿음, 소망, 관용, 이런저런 이야기

가 필요해. 그 이야기에 등장하는 자신, 옆 사람, 어떤 사람

그것도 아니면 크든 작든 사람을 닮은 그 무엇의 기쁨과 슬

픔이. 우리에겐 우리와 비슷한 형상에 대한 사랑이 필요해.

어떤 나쁜 마음이라도. 잘 살기 위해서. 조각난 팔과 다리.

터지고 일그러진 얼굴에 대한 말이 꼭 필요해. (「어떤」, 전문)

 

 

 학창시절에 시를 암송하던 때가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이 결정되고 자유로운 시간이었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였기에 가능했을 시간. 국어 선생님의 추천으로 책도 읽었고, 요즘 아이들에게는 가능하지 않을 시간이 아닐까 싶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시도 나오고 소설도 나오고. 그건 좋을 걸까. 좋은 시가 많았던 시집이다. 그러니까 내게는 그러했다.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그러나 강한 기운이 전해지는 시집. 김상혁의 다른 시집은 읽어보지 않았으니 그의 시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다. 좋아하는 시를 반복해서 읽는 것, 기록하는 것, 기억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어떤」이란 시가 참 좋아서, 계속해서 읽고 있다. 소리 내어 누군가에게 말하듯 말이다. ‘어떤 사람’이란 말 대신 누군가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기도 한다. 아니, 내 이름을 넣는다. 아침마다 만나는 나무의 놀라운 변화를 생각한다. 계절을 오롯이 껴앉는 나무들.

 

 

 하나같이 슬픔의 왕들이에요 나에게도 병원이 필요하지만 나 같은 게 병원에 와도 되는 걸까, 이런 슬픔에도 치료가 필요할까, 동그랗게 둘러앉았는데 나는 고개도 못 들고 (「슬픔의 왕」, 중에서)

 

 

 너무 슬플 땐 무서운 게 없더라네요 아무래도 내겐 공포를 지나질 수 있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내가 무언가를 말해도 되는 걸까, 나의 멀쩡한 집과 가족을 어떻게 설명할까 (「슬픔의 왕」, 중에서)

 

 

 슬픔이 넘치는 세상, 절망이 차오르는 세상에 이런 시는 어떤 위로가 될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이들처럼 슬픔에 무뎌진 삶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까. 어떤 시는 그렇다. 시를 읽노라면 눈물이 나고, 시를 읽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언제부턴가 여름이란 단어를 사랑하고 있는 걸 확인한다. 여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말이다. 무성한 풀들, 생명력 넘치는 식물들의 천국 같은 계절. 그 안에서 나도 그들에게 기대어 살아가고 싶은 욕망이 자란다. 그 여름이 내가 알지 못하는 여름일지라도.


 그렇지만 네가 밟은 것, 밟아서 더 깨뜨린 것, 더 깨뜨려서 흩어진 것, 그런 지겨운 것이 죽은 새, 웅덩이, 부서진 울타리, 뒹구는 손을 덮어준다. 풀과 꿈을 키워준다. 다가올 여름과 지나간 여름 사이 슬픔이 있다면 너는 오늘과 슬픔 사이에 있고 싶다. ( 「너의 여름 속을 걷는 사람에게」, 중에서)

 

 

 저녁은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다. 지치기도 쉬운 시간이구. 하지만 제 손으로 머리칼을 털며 고갤 숙이고 있는 장면만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런 말도 가능하다. 내가 매일 현관으로 쓰러지며 쏟은 별과 모래를 아침마다 네가 예쁘게 비질한다고. (「가정」, 중에서) 

 

 

 아침을 기대할 수 있는 저녁, 헤어지기 좋은 시간이면서 만남을 기다리는 시간. 저녁이 없는 삶이 아니라 저녁을 꿈꾸는 작고 소박한 시를 읽는다. 시인이 남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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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막 (100쇄 기념 특별판 리커버)
윌리엄 폴 영 지음, 한은경 옮김 / 세계사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의 책을 두 번 읽는 경우는 정말 좋아하는 책이거나 읽어도 내용을 잘 모를 경우일 것이다. 2009년에 만난 월리엄 폴 영의 『오두막』을 다시 읽은 건 후자에 속한다. 그러니 읽고 나니 좋아하는 책으로 기운다. 여전히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알려진 대로 이 책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책으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들에게 더욱 좋다. 그렇다고 다른 종교를 가졌거나 일반 독자에게 아무런 감동을 안겨주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이 소설은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 관계와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 나와 나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소설이다.

 

 3년 전 사랑하는 딸 미시의 실종으로 맥의 가족은 거대한 슬픔과 함께 살아가는 중이다. 아이들과 자연을 체험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선택한 캠핑에서 막내딸 미시가 사라졌다. 연쇄살인범에게 납치되었고 결국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은 사라질 수 있는 게 아니다. 삶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그냥 살 뿐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그러했다. 아내와 다르게 맥은 더 이상 하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런 맥에게 도착한 하나님의 편지. 오두막에서 기다리겠다는 하나님. 왜 그곳이어야 했을까? 미시의 옷가지가 발견된 고통의 장소에서 하나님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해 맥은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그곳으로 떠난다. 맥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최근 발표한 『이브』에서 릴리를 치유하는 가상공간이 등장하듯 오두막도 하나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맥이 하나님과 만나는 곳, 자신의 내면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맥은 하나님과 만난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를 마주한다. 그러니까 세 명의 하나님을 만났다고 해야 할까. 각기 다른 모습, 다른 방법으로 맥의 상처를 어루만진다. 미시를 잃은 슬픔, 살인자를 향한 울분, 어린 시절 아버지를 향한 애증을 털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살인자를 용서하라고 권면한다.

 

 “당신의 고통을 쉽게 덜어줄 해답은 없어요. 그런 것이 있다면 내가 지금 말하겠죠. 나는 당신을 더 좋게 만들어줄 요술봉도 갖고 있지 않아요. 삶은 약간의 시간과 많은 관계를 필요로 하죠.” (146쪽)

 

 “사랑과 관계죠. 모든 사랑과 관계는 하나님인 내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에게도 가능한 거예요. 사랑은 한계가 아니라, 비상이죠. 내가 곧 사랑이에요.” (163쪽)

 

 용서라니, 그게 가능한 일일까? 어쩌면 그것은 살인자에 대한 용서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용서를 하라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미시를 방치한 게 아니라 물에 빠진 아들을 구하던 자신을 용서하라고 말이다. 미시가 바라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성부, 성자, 성령으로 분한 세 명과의 깊은 대화를 나누었기에 가능했다. 오두막으로의 초대를 거절했다면 맥은 누구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를 여전히 증오하고 평온을 찾은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파파라 부르는 아내의 견고한 믿음과 사랑 알았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맥은 하나님과의 관계 말고도 아내와의 관계도 회복해야 했다. 

 

 “그리고 당신은 사랑받도록 창조되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사랑받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그게 바로 당신 삶을 제한하는 거예요.”(156쪽)

 

 “신뢰는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열매죠.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당신은 모르고 있기 때문에 나를 신뢰하지 못하는 거예요.” (207쪽)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익숙한 말처럼 인간은 모두 존귀한 존재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상처를 주는 것일까. 누구나 한 번쯤 던졌던 질문이다. 기독교인을 떠나서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하나님은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부여한 게 아니라 그 고통을 이겨내고 견딜 수 있는 특권을 주신 거라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가 떠오른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확신만 있다면 어떠한 상처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반드시 치유된다는 걸 알기에 두렵지 않을 것이다. 놀라운 치유의 공간인 『오두막』에서 하나님과 관계,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점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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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6-08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는 호수를 헤엄치건 물 위를 걸어가든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목련 2017-06-09 16:57   좋아요 0 | URL
의심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확신이겠지요^^
 

 

 6월이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었다. 바다가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작년과 올해의 여름은 조금 다르게 형성될 것 같다. 매년 5월과 6월에는 작약과 수국을 보러 수목원에 다녀왔는데 올해는 아무런 계획이 없다. 항상 언니와 같이 다녔기 때문이다. 쉽게 행했던 일들이 쉽지 않은 일들이 되었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거라는 맹목적인 믿음은 존재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한다. 그럼에도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건 나무뿐이다. 거대한 바람과 비가 나무를 뽑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아침마다의 산책은 조금 게을러졌다. 오늘도 눈을 뜨고 침대를 벗어나는데 15분의 갈등이 있었다. 햇빛의 세기가 강해지는 날들이 되었다. 나뭇잎이 우렁우렁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세히 보지 않아서 언제 꽃을 피우는지 몰랐던 산딸나무의 꽃을 보았고 곧 자귀나무의 꽃도 만날 수 있다. 며칠을 벼르다 오늘 아침에는 산딸나무 꽃을 담았다. 나뭇가지가 높아서 꽃을 담기가 힘들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나무처럼 내 키도 계속 자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도 하는 아침이었다. 산딸나무 사진과 함께 좋아하는 가로등의 사진도 찍었다. 오랜만에 찍은 거라 괜히 미안했다. 다음엔 종종 만나는 고양이도 담아야지.

 

 

 

 

 

 

 

 

 싱그러운 소설을 읽고 싶다. 싱그러운 소설이 뭐냐고 묻지는 말아주길. 여름 같은 소설, 청명한 기운이 도는 그런 소설. 초록의 냄새를 맡는 듯한 소설. 그러나 읽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 책이란 도도한 존재다. 나를 읽어 봐, 나를 읽어야만 너랑 말을 할 거야, 하는 그런 존재. 싱그러움을 기대하는 소설로는 김영하의 『오직 두 사람제7회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히라노 게이치로의 『마티네의 끝에서다. 시집은 신영배의 『그 숲에서 당신을 만날까 은 어떨까. 여름에 만나기를 기대하는 소설과 시집은 22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가인 강화길의 소설과 신철규의 첫 시집 지구만큼 슬펐다고 한다이다. 아, 최진영의 장편소설도 있다.

 

 

 

 

 

 

 

 

 

 

 

 가뭄이 길어지고 있다. 시원한 빗줄기를 기다린다. 내일과 모레,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지만 과연 얼마나 내릴지 알 수 없다. 붉은 장미는 조금씩 시들어가고 이웃의 블로그에는 작약의 사진이 올라온다. 언니의 퇴원 후 작약 대신 수국을 보러갈 수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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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계절
구효서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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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계절을 떠올리며 천천히 읽고 있다. 여름과 맞닿은 날들, 아닌 봄을 먼저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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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위로
임재청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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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작정 책을 읽었던 때가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가장 순수하게 책을 읽었던 때가 아닌가 싶다. 물론 지금도 책을 읽고 있고 책을 구매하고 책을 곁에 두었다. 책에 대한 애정이 식은 건 아니다. 다만 책과의 거리가 조금 생긴 것이다. 반성의 시간을 갖자면 예전보다 나와 문학과는 조금 멀어졌다. 특히 한국문학의 경우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이 나오면 바로 읽곤 했다. 그에 대한 감상을 기록하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많이 게으름을 피우는 독자가 되었다. 읽었지만 리뷰나 메모를 하지 않는 책이 늘어났고 한 달에 한 권, 고전을 읽거나 인문 분야의 책을 읽자는 다짐을 하지 않는다. 책이 거기 있으니 읽겠지 하는 무책임한 마음만 커졌을 뿐이다.


 책이 있어 좋은 사람, 가장 좋은 친구가 책이라 말하는 사람, 임재청『문학의 위로』를 읽으면서 나는 부끄러웠고, 저자의 책에 대한 열정이 부러웠다. 고전을 읽는 건 노력이 필요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닌 내가 알지 못하는 시대를 담은 이야기. 저자에 비하면 부끄럽지만 내가 고전을 통해 얻고자 했던 건 그 안에서 오늘을 발견하는 게 아니었을까 싶다. 저자가 읽은 책의 목록을 살펴보면 제목으로는 이미 읽은 것 같은 책도 있지만, 처음 만나는 고전과 작가의 대표작 정도만 알고 있었던 경우도 있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나와는 다른 부분에서 감동을 받고 다른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오프라인으로 독서모임을 하는 지인의 말을 빌리면 한 권의 책을 읽고 저마다의 목소리로 책을 말하는 시간이 정말 즐겁다고 했다. 다른 시선으로 책을 만나는 일, 이 책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책의 힘은 언제나 크다는 사실도 확인하다. 문학의 힘, 고전의 울림을 통해 삶의 위로를 받는다는 사실도 말이다. 이 책은 사랑, 성장, 가치, 소외와 저항, 구원을 주제로 고전을 선정하고 그 속의 삶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게 무엇인지 나누고자 한다.


 하루를 살아내는 것조차 버거운 이들에게 사랑을 믿냐고 묻는다면 무슨 대답이 돌아올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에서 N포세대가 된 이들은 문학의 위로를 믿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몸 안에 성냥갑 하나씩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말하는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를 읽는다면 성냥갑에 불을 지펴줄 상대를 만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내면의 변화가 인생을 지탱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걸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서 한스에게는 아버지가 기대하는 삶이 아니라 내가 살고 싶은 것을 선택할 때 행복할 수 있었을 거라는 단순하면서도 평범한 사실. 결국 고전은 누군가의 인생이다.


 그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인생, 절망과 좌절이 반복될지라도 지지 않고 일어서야 한다는 용기와 위로를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에서 받는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몰랐지만 접하면 접할수록 좋은 고전이라 생각한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같은 듯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노인의 이야기는 가장 좋은 비타민이며 처방전이라 해도 좋다. 이 책에 대한 저자의 글 또한 그러하다. 그러니까 그는 실패를 아는 사람인 것이다.


 인간은 패배하려고 창조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패와 패배를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실패할 수는 있어도 패배해서는 안 됩니다. 삶은 용감한 사람들의 것입니다. 그런데 패배는 이런 용감함마저 없으며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것입니다. 반면에 실패는 84의 끝에서 다시 85의 희망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비록 무언가를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85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패를 아는 사람만이 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입니다. (136쪽,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실패는 다음을 기대할 수 있게 만든다. 두 번 다시 실패하지 않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하고 연습할 수 있는 지혜를 선물한다. 그것은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속 이런 부분과 이어진다. 자신에게는 닥치지 않기를 바라는 실패, 불행에 대한 단호한 의지를 만들기도 한다. 불행을 치유할 수 있는 티끌의 믿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어디서 믿음의 싹을 찾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햄릿은, 진정으로 위대함은 어떤 명분이 있고서야 행동하는 게 아니라, 명예가 걸렸을 때 지푸라기 하나를 위해서도 싸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행 속으로 뛰어들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지푸라기 하나에도 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그것을 견디기 위해서는 매번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불행에 지혜가 더해질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위대한 걸작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266쪽,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읽지 못한 좋은 고전을 먼저 읽고 손을 내밀어 준 책이다. 책등이 아닌 책 속으로의 초대인 셈이다. 늦었지만 ​찰스 디킨스 『위대한 유산』과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초대에 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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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01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05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