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가 되어 간다는 것 - 나는 하루 한번, [나]라는 브랜드를 만난다
강민호 지음 / 턴어라운드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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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의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란 제목은 이 책을 통해 들려줄 이야기가 경영이나, 마케팅이 아닐까 짐작하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는 자기 계발서로 분류할 것이다. 짐작은 틀리지 않았다. 이 말이 짐작대로 어렵고 재미 없는(?)내용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보통의 에세이라 할 정도로 편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브랜드와 마케팅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부분 광고, 전략, 상품, 서비스로 비슷할 것이다.

 

무엇을 팔고자 할 때 필요한 것들에 대해, 혹은 그것을 얻고자 할 때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팔고 산다는 개념은 물건에 대해 국한된 게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 말이다. 물론 마케터를 꿈꾸거나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현실적인 조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자신을 분석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책으로 들어가 보면 「끊임없는 일상의 관찰」과 「꾸임없는 브랜드의 통찰」로 나눠 브랜드에 대해 설명한다. 나는 「끊임없는 일상의 관찰」부분에서 마음이 많이 움직였다. 보통의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로,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선배로 진실한 조언을 하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직장인’과 ‘직업인’의 차이를 분명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나 자신의 이력(초졸, 검정고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솔직하게 들려주면서 자신을 성장하게 한 원동력으로 결핍과 열등감이라고 말하는 진솔한 태도가 무척 좋았다.

 

어쩌면 경험자로 혹은 전문가의 입장으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자신감에 찬 우월감 비슷한 이야기라ㅗ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발견하는 순간 그것은 감동으로 이어진다. 이 책에서 전해지는 건 그런 감동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라는 그 마음 말이다. 막연하게 취업을 하고 직장에 출근하고 일을 하면서 이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과 나와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런 조언처럼 말이다.

 

일이란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일은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당신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얼마만큼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하나도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위대한 사람입니다. 단지 아직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54쪽)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궁극적으로 무엇일까요? 결국 무슨 일이든 그 시작과 끝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118족)

 

결국엔 ‘나’라는 브랜드와 다른 누군가가 만나 무언가를 이루는 것, 그것이 모두가 지향하는 일의 가치라는 사실을 우리가 그동안 놓치고 살았던 건 아닐까.

 

「꾸임없는 브랜드의 통찰」에서는 브래드를 만드는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조언한다. 대중적으로 성공한 브랜드, 광고 공식, 리더의 역할,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략에 대한 사례를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확인시킨다.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런 적절한 설명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말 한마디에는 엄청난 힘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가 내뱉는 한마디의 언어는 생각의 프레임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마 신용카드의 이름이 신용카드가 아닌 외상카드나 부채카드였다면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무분별하게 신용카드를 이용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87쪽) 

 

어떤 직업에 속하든 어떤 위치에 있든 누구에게나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아니, 일을 떠나 ‘나’라는 가치를 만들고 브랜드를 원하는 모두에게 훌륭한 책이다. 오늘만 사는 게 아니라 내일이라는 미래의 가치를 꿈꾸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저자의 말은 나를 떠나지 않을 것 같다.

 

대중을 움직이는 차별적 가치는 누구에서 시작합니다. 누군가의 생각, 누군가의 행동, 누군가의 발견에 새겨진 이름의 가치가 곧 브랜드인 것입니다. (2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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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 무민 골짜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8
토베 얀손 지음, 최정근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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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 시리즈가 이토록 사랑받은 이유를 정확하게 잘 몰랐다. 그냥 무민이란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무민 연작 시리즈의 마지막을 읽게 되었고 나는 토베 얀손의 따뜻하고 다정한 글에 빠져들었다. 등장하는 캐릭터의 특징에 대해서도 나는 잘 몰랐다. 다만 그들이 모두 무민 가족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는 건 안다. 무민 가족을 중심으로 이어져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걸 말이다. 마지막이라서 그랬을까. 소설은 조금 쓸쓸하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시작되었고 모두가 무민 골짜기로 향한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머무르는 이와 떠나는 이가 있게 마련이었다. 어떻게 할지는 누구나 스스로 선택할 수 있지만,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고 포기할 방법은 없었다. (12)

 

어쩌면 무민 가족은 벌써 떠나버렸을지도 모르지만 스너프킨은 숲길을 걷는다. 스너프긴을 시작으로 혼잣말을 하는 토프트, 심각한 결병 증세로 청소를 하던 필리용크, 드디어 배를 타고 떠나기로 마음먹은 헤물렌, 뭐든 금세 잊어버려 자신의 이름도 잊어버리는 그럼블 할아버지, 무민 가족에게 입양된 여동생 미이를 보고 싶은 밈블까지 모두가 무민 골짜기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무민 가족은 모두 떠나고 집엔 아무도 없었다.

 

저마다 자신만의 세계가 뚜렷한 여섯 명의 친구들이 기다리는 무민 가족은 언제 등장하는 것일까? 처음엔 나도 막연하게 그들을 기다렸다. 누군가는 쓸쓸하고 누군가는 외롭고 누군가는 불안하다. 하지만 그랬던 그들이 무민 집에서 사소한 일로 다투며 지내며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가는 모습에 미소가 번졌다. 청소와 요리를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필리용크는 무민 마미처럼 생선 요리를 한다. 어디 그뿐인가. 토프트는 헤물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한 번도 만나지 못한 무민 마미를 생각한다.

 

어딘가에 숨어 있는 무민 가족을 찾아서 집으로 돌아오게 만들기란 어렵지 않은 일인지도 몰라. 섬은 지도에 나와 있으니까. 거룻배는 물이 새지 않게 구멍을 막으면 되고. 하지만 왜? 그냥 내버려두자. 무민 가족들도 외따로 떨어져 있고 싶을지도 모르니까.’ (132)

  

 

 

 

혼자였던 시간을 뒤로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 모두가 무민 가족을 그리워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선택을 지지하고 빈 집에서 혼자가 아닌 같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그럼블 할아버지를 위한 연회를 열고 돌아올 무민 가족을 위해 청소를 한다. 마치 여섯 명은 하나의 가족처럼 토닥거린다.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건 서로의 삶을 나눠 갖는 것은 아닐까. 곁에 없는 누군가를 생각하는 시간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무민 가족이 떠난 집에서 무민 가족을 생각하는 것처럼. 그래서 무민 가족이 등장하지 않는 무민 시리즈지만 그들과 내내 함께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무민 시리즈의 마지막이라서 그런 걸까. 여섯 명의 캐릭터가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들은 모두 깊은 사유를 던진다. 특히 헤물런의 생각을 전하는 이런 글은 가슴에 스며든다. 삶이 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천천히 항해해 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서둘러 가고 또 어떤 이들의 배는 뒤집히기도 한다. (40) 그리고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혼자이면서도 혼자가 아닌 삶을 말이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향해 떠나고 혼자 남은 토프트는 무민 가족을 기다린다. 그리고 이제 나도 그의 곁에 가만히 앉아 그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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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19-05-08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이~ 좋아해요^^♡

자목련 2019-05-09 19:39   좋아요 0 | URL
나는 이 책을 읽고 겨우 무민 캐릭터에 대해 알았는데 이미 ‘미이‘의 팬이었네^^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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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의 휴대폰을 해지했다. 정지 상태로 유지되었던 언니의 번호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휴대폰으로 11개의 번호를 꾹꾹 누르자 없는 번호라는 안내가 나왔다. 휴대폰에 담겼던 이름과 연락처는 이제 사라진 것일까. 지난 일, 지난 삶은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는 것일까. 간직하는 것은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일까. 어쩌다 보니 기억과 시간에 대한 소설을 읽고 계속 그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은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나는 두 편의 소설을 오래 붙잡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미 다른 곳에서 만난 소설이다. 

 

소설은 종종 기억을 깨우는 역할을 한다. 나를 이곳이 아닌 그곳으로 지금이 아닌 그때로 데려다 놓는다. 후회라기보다는 아쉬움 같은 그런 감정을 불러온다. 소설 속 화자의 감정을 빌려 그리워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다고나 할까. 백수린의 「시간의 궤적」은 파리에서 만난 언니나 화자 ‘나’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다른 언어를 배우는 시간에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어떤 감정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다.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원했던 ‘나’와 파리 주재원인 언니가 보낸 시간들, 하나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지만 어디서부턴지 어긋나버리는 관계. 아니, 그 어긋남을 포착했지만 모른 척했을지도 모를 그 시절의 미묘한 감정의 파장.

 

 

 

 

그 모든 일은 이미 지나갔으므로 우리는 그 일을 이야기하며 같이 웃었다. (「시간의 궤적」)

 

잿빛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짙푸른 물결이 이쪽으로 다가오다 부서지는 모습이 보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황금색으로 빛나던 장소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바람이 불면 파라솔의 몸체가 흔들렸고 이제 끝이란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끝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고 옅은 슬픔 같은 것이 가슴 안에서 서서히 퍼졌다. (「시간의 궤적」)

 

지나간 일들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는 누군가와 다시는 그 일을 꺼내볼 수 없는 관계가 된다는 건 울적한 일이다. 완벽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부질없는 것일까. 헤어짐의 순간이 그를 기억하는 장면이 되는 건 아니지만 기억에서 쉽게 지워지는 건 아니다. 나를 기억하는 당신의 마지막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기억하는 그 모습과 같을까. 여전히 이 구절에 마음이 머문다.

 

모든 것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니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으니까. (「우리들」)

 

당신과 나 사이의 시간은 그 어딘가에 정지되었음을 느낀다. 다시 그 시간은 흘러갈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 걸 안다. 용기는 아직 채워지지 않았고 나는 내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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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들
W. G. 제발트 지음, 이재영 옮김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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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얼마나 완벽할까. 나와 당신이 하나의 사건을 공유한다고 해도 둘의 기억이 완벽하게 포개어지는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확한 기억을 남겨두기 위해 기록을 남긴다. 사진을 찍거나 글을 쓰거나 영상으로 담아둔다. 그러나 그것들을 다양하게 해석된다. 기억과 기록이라는 건 현재가 아닌 과거를 떠올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설도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일, 빛바랜 누군가의 삶을 복원하는 일, 알려지지 않은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는 일말이다. 제발트의 소설이민자들은 그런 역할을 하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제발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소설은 제목이 말해주듯 이민자들에 대한 단편집으로 화자인 가 네 명의 이민자의 삶을 들려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삶을 지배했던 곳을 방문하고 그들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예상할 수 있는 화자는 제발트로 볼 수 있다. 소설은 구체적인 관찰과 묘사로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이 어떤 이에게는 무척 매혹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어떤 갈등이나 관계의 설정 같은 게 아니라 막이 끝날 때마다 주인공이 바뀌는 모노드라마이자 다큐멘터리 같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네 명은 모두 이민자로 살았다. 저마다 다른 이유로 고향과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삶을 이어가지만 불행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첫 번째 가 만난 이민자는 헨리 쎌윈 박사로, ‘가 방을 얻은 집 주인의 남편이다. 의사로 퇴직한 그는 리투아니아에서 영국으로 이민을 왔다. 영국에서 이름과 성을 바꾸고 의사로 성공했고 아내의 재력으로 부족함이 없는 삶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에게는 이민자의 향수병이 있었고 끝내 스스로 삶을 마감한다. 두 번째 만남은 의 초등학교 스승인 파울 베라이터로 고향에서 그의 부고를 접한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을 통해 어린 시절 가 몰랐던 스승의 다른 면을 마주한다. 파울의 마지막을 잘 아는 린다우 부인을 통해 그에 대한 이야기와 앨범을 보게 된다.

 

앨범에는 그 당시뿐만 아니라 파울 베라이터의 거의 전 생애가, 몇몇 공백을 빼고는 전부 사진으로 기록되어 있었고, 파울 자신이 사진 아래 기록해둔 메모들도 있었다. 그날 오후 나는 이 앨범을 앞에서 뒤로, 다시 뒤에서 앞으로 훑어보았고, 그 뒤로도 여러 번 다시 펼쳐보았다. 이 앨범에 담긴 사진들을 보다 보면 죽은 자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 같기도 했고, 우리가 그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지금도 앨범을 보면 그런 기분이 든다. (파울 베라이터, 61)

 

사진으로 남은 사람들을 보는 일은 복잡한 감정을 불러온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사진 속에만 존재하는 나의 부모와 형제를 떠올렸다. 소설 속 이민자들은 아니지만 우리는 대부분 고향을 떠나 살아가며 그곳을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이민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소설로 돌아가 의 여정을 따라 세 번째 만남인 어머니의 외삼촌인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와 네 번째 만남 화가 막스 페르버의 삶을 듣는다. 암브로스는 직장을 따라 이주한 경우로, 스위스에서 일본에 거쳐 미국으로 왔다. 뉴욕에서 영향력 있는 유대인 은행가 집안의 집사로 정착한다. 암브로스의 일은 그 집안의 아들인 코스모의 비서이자 여행 동반자였다. 이 단편은 의 파니 이모가 들려주는 외삼촌 이야기로 조금 더 멀고 아득하게 느껴진다.

 

외삼촌은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심연에서 길어 올린 회상들을 아주 느릿느릿 이야기했는데, 지극히 사소한 것들까지도 놀랍도록 정확하게 기억하게 있더구나. 외삼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외삼촌이 수많은 일을 아주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하지만, 그런 기억들을 자기 자신과 연결 시켜주는 추억은 거의 갖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점점 확실히 알게 되었어. 그래서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외삼촌에게는 고통이기도 했고, 자신을 해방 시키려는 시도이기도 했지. 말하자면 구원이자 가차 없는 자기 파괴이기도 했던 거야. (암브로스 아델바르트, 126~127쪽)

 

코스모와 암브로스는 수직관계였지만 친구이자 연인처럼 가까웠음을 짐작할 수 있다. 코스모와 암브로스가 여행을 다니면서 마주했던 전쟁으로 인한 폐허와 몰락의 기억은 그의 영혼을 갉아먹고 죽음으로 향하게 만든다. 나는 그 시대를 상상할 수 없고 유대인으로의 삶도 알 수 없지만 어디든 함께 했던 코스모의 죽음으로 암브로스 할아버지가 느꼈을 삶의 허무와 절망이 어떤 것인지 조금을 알 것도 같다. 그가 남긴 글귀가 오래도록 나를 붙잡는 것처럼.

 

기억이란 일종의 어리석음처럼 느껴진다. 기억은 머리를 무겁고 어지럽게 한다. 시간의 고랑을 따라가며 과거를 뒤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끝 간 데 없이 하늘로 치솟은 탑 위에서 까마득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암브로스 아델바르트의 비망록의 글귀, 185)

 

마지막 막스 페르버는 독일을 떠나 영국으로 도망친 유대인 화가인 그뿐만 아니라 그의 어머니 루이자의 삶으로 이어진다. 어떤 면에서는 가 만난 페르버가 아닌 루이자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녀의 가족에 대한 부분이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생에 대해 알려면 그의 가족, 그의 뿌리부터 시작되어야 하니까.

 

그들의 삶에 다가갈 수 있을까? 책 속에 수록된 흑백 사진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칠 뿐이다. 그들을 만나 취재하고 기록하고 탐방한 제발트도 마찬가지다. 제발트가 그들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곳을 찾았을 때 그가 마주한 풍경은 아름답고 어떤 곳은 상처라고는 찾을 수 없는 모습으로 변모했다. 시간이 흘러 세상이 변하듯 기억은 퇴색되어 형체를 잃어버린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을 기록함으로 고통스러운 기억의 형태를 매만지는 제발트의 노력은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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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다. 책을 좋아한다. 책과의 사귐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책의 입장은 모르겠고 적어도 나는 그렇다. 어느 시절에는 세계 책의 날이라는 날이 있는지도 몰랐다. 온라인 서점의 존재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해마다 서점에서 제공하는 빅데이터로 나의 취향을 알 수 있다. 어떤 분야의 책을 좋아하는지(순전히 구매에 대한 분석), 어떤 작가의 책을 관심 신간으로 기다리는지, 심지어 어떤 굿즈를 구매했는지도 보여준다. 네가 이렇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확인시킨다. 그 정보는 일정 부분은 맞고 나머지는 틀리다. 책을 구매했지만 읽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관심 신간에 체크를 했지만 수정하지 않아서 그대로 관심 작가로 남은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나는 책을 좋아하는 게 맞다. 이렇게 세계의 책을 날에 잊지 않고 포스팅을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읽고 싶은 책에 대해 말해볼까. 지극히 현재의 나의 취향에 대해서 말이다. 다수의 작가들이 좋아하고 추천하는 작가로 알려진 W. G. 제발트의  『이민자들』을 읽고 있다. 제목처럼 이민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으로는 은유의 『다가오는 말들』과 진은영, 김경희의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두 권이다.


요즘 나는 말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말이 품은 감정과 말을 지키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한다. 내 안에서 말이 이어지는 순간, 말이 소멸하는 순간을 생각한다. 책에서 들려줄 말이 어떤 말인지 모른다. 그 말에 대한 관심이 언제 사라질지는 모르지만 지금, 세계의 책의 날인 오늘은 사귀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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