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여전하게

 

 

 장미꽃다발을 연상시키는 기다란 상자로 배달된 커튼은 생각보다 두껍지 않았다. 그래도 커튼을 치고 나니, 보일러의 실내온도는 아직 변화를 보이지 않지만, 왠지 따뜻한 느낌이다. 쌓일 듯 말듯 가느다란 눈이 계속 내린 하루였다. 아이가 좋아하는 만두와 김밥으로 점심을 먹고, 저녁엔 치킨도 먹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주다 같이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 불꺼진 채,  텔레비젼을 보다가, 벌떡 일어났다. 몇 해전 겨울 밤엔, 새벽에도 종종 깨어있던 날들이 많았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나 같았다. 간헐적인 통증, 명확한 불안감. 

 모든 것에 시간처럼 좋은 약은 없다고 했던가. 익숙함, 습관이 얼마나 무서운지, 생각한다. 내일은 좀 바쁘게 움직이고 싶다. 내일, 계속되는 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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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0 07: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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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
김재영 지음 / 창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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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식>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표지 디자인을 보자마자 탐스러운 석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석류라기 보다는 장기의 일부인 위를 표현하게 더 맞는 듯 보였다.  폭식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라 그런지, 처음 만나는 김재영의 소설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기대할 수 없겠구나 짐작했다. 

 첫 번째 <꽃가마배>라는 예쁜 제목의 소설은  태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젊은 여자 능 르타이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우리 현실이 그렇듯 남편은 능 르타이의 아버지뻘이었고, 딸까지 있었으며 사고로 휠체어 신세를 지는 홀아비였다.  그런 아버지와 여자의 관계를, 그 둘 사이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딸은 인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죽고, 이복동생을 낳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능 르타이는 타국의 땅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나머지 소설 중 <앵초>, <M역의 나비>, <롱아일랜드의 꽃게잡이>도 <꽃가마배>처럼 낯선 땅에서 삶을 정착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르다면,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방인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세계화를 꿈꾸며 뉴욕으로 이민왔지만, 911 테러로 시신조차 찾지 못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민자의 삶을 다룬 <앵초>, 나를 찾고 싶었기에 무작정 뉴욕으로 왔지만 가난한 현실에 절망하며 결국 자살하고 마는 미란의 이야기<M역의 나비>, 한국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 싶었던 남자 수와 힘든 이민 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싸브리나의 만남과 일상을 담은 <롱아일랜드 꽃게잡이>. 

  기회의 땅이라 믿었던 미국에서의 삶은 드라마나 영화처럼 아름다운 삶이 아니었다. 미국인에게 그들은 ‘능 르타이’처럼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었고, 낯선 동양인이었다. 힘들 생활을 접고 돌아오기엔 이미 미국 문화에 젖어든 아이들이 있었고, 고국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김재영은 낯선 언어로 둘러싸인 타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아주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작가 스스로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표제작이면서 가장 궁금했던 단편<폭식>은 예상했던 대로 우울했다. 부양해야할 가족과 갚아야할 빚때문에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하는 민팀장. 타인에게 그는 세계를 누비는 부러운 동경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정작 그에겐 남은 건 이혼과 아픈 육체뿐이었다. 고국에 돌아와도 병든 몸을 편히 쉴 집이 없었다. 그는 곧 떠날 사람, 이방인과 다르지 않았다.  

  ‘김재영’의 <폭식>을 읽으면서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방인의 삶을 다뤘기 때문이리라.   ‘줌파 라히리’가 개인적인 시선에 중점을 두었다면 ‘김재영’은 사회적 시선으로  다루지 않았나 생각한다. 소설은 낯설었지만, 인상적이었고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더 인상적이었다.  

<삶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놀라게 하고 아프게도 하지만, 그러기에 살아볼만한 게 아닐까. 그러기에 소설로 담아내 만한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닐까. 주제넘게도 요즘 나는 그렇게 느낀다. 삶을 견디고 살아가는 방식이 천태만상이라면, 그 삶을 담아내는 방식은 그보다 더 각양각색이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인간의 존쟁양식과 소설의 형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소설가들은 아직 얼마나 행복한가>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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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자서전
김인숙 지음 / 창비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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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다는 건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과거의 삶에 머무른 사람들도 있다. 해서, 그들은 과거 진행형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게 삶이라는 걸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라던 삶의 방향과는 점점 멀어지고 수평선이 되버린 삶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현재진행형으로 위장한 과거 진행형의 살을 살고 있는게 아닌지. 

 김인숙의 <그 여자의 자서전>의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 과거의 조각난 삶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 조각난 부분이 계속해서 자신들 찌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놓지 못했다. 누군가는 아련한 추억이라 말할 그것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더이상 추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나로 살고 싶은 욕망도 안다. 결국은 그 욕망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게 된다는, 그리하여 반복되는 일상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이상을 딸이 아닌 자신과 닮은 아들이 실현해주길 바랐던 아버지가 책장 가득 책들을 채운 이유도 아들을 위해서였다. 그 책에서 꿈을 키운 건 딸이었지만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그 여자의 자서전>의 그 여자는 자신의 책을 갖지 못했고, 자신의 책을 쓰지 못했다. 자신의 이야기 아닌 타인의 삶을 대필하며 산다. 어린 시절 오빠가 아닌 자신을 아버지가 봐주었다면 여자는 자신의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한 때는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고, 부질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허무의 연속, 그것이 삶일까. 단편 <바다와 나비>는 삶의 환멸과 허무에 대해 말하는 듯 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온 와,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려하는 채금.  는 아이의 중국 유학을 핑계로 남편과 별거를 시작한다. 아이가 기숙사로 들어가자, 혼자 남는다. 한국에 있는 채금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채금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그토록 한국으로 떠나려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채금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싶은 갈망이 같았다. 잘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남편도 나도 행복을 위장한 가식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채금도 눈 먼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바다라는 끝도 없는 삶을 향게 날아가는 나비, 그건 바로 우리였다. 삶은 계속해서 바다를 건너는 몸짓이었다. 되돌아 수 없는 길, 하여 힘겹지만 날개짓은 쉴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은 내게 무기력해지는 봄날, 마냥 울고만 싶었던 초록의 어떤 날을 떠올리게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참으로 지난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닐런지

 지나간 삶을 부여잡고 사는 이는 또 있었다. 안정된 결혼과 승진을 꿈꾸던 남자가 어느 순간 트럭 운저사로 전락해버린 <밤의 고속도로>,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약속했던 남편이 식물인간이 되어버려 시어머니까지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젊은 여자의 깊은 한숨이 들리는 듯한<모텔 알프스>, 모든 것을 다 잃고 쫓기듯 중국으로 도망쳐 의미없는 생을 이어가고 있는 한 남자와 그가 간절하게 원했던 여자의 이야기<감옥의 뜰>.

 그때 나는 스물일곱살이었고, 정수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입사가 결정되었고, 내가 입사를 하자마자 정수기가 가정필수품인 것처럼 붐을 이루었고, 느닷없는 도시개발로 한뼘만하던 집값이 껑충 뛰어 집안은 집값에 붙은 동그라미 숫자를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풍요로웠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의 절정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꿈이 꿈만으로도 풍요로웠던 시절...... 140p 

 그들에게도 삶의 중심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환한 미소로 빛을 발하던 시절 말이다.  그리하여, 미래를 꿈꾸고 행복을 계획하던 순간들. 어쩌면 김인숙의 되돌아보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난 시절을 잘 살아왔는지, 그 때 그 순간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산다는 건 무엇인가, 그 의미를 생각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여전하게 건너야 할 삶이라는 바다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바다에 들어온 이상 벗어날 수 없음을, 그 안에서 유영해야 함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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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을 맞이할 즈음에 2010년은 아주 먼 시간이었다. 그 때 내게 2010년은 없었다. 그러나 이미 시간은 날아간 화살이었고, 이제 2010년을 마주하려한다. 성큼 성큼, 2010년이 오고 있다. 올해도 여전하게 책을 읽었고, 쓰는 것엔 부족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권의 시집을 읽어야겠다 생각했지만, 생각은 생각으로 머무르고 실천은 지켜지다 말았다. 여름이 되면서 시는 점점 내 손에서 멀어져갔고, 9월부터 일상엔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고, 책 읽기와 리뷰에도 변화가 생겼다. 주말에 많이 읽게 되었고, 해서, 자꾸 미뤄두는 책과 글이 많아졌다. 

 허연<나쁜 소년이 서 있다>, 김이설<나쁜 피>, 박민규<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조해진<천사들의 도시>, 강영숙과 이현수, 오정희, 공지영, 전성태, 김연수, 한창훈, 김훈의 책들과 황정은, 정한아, 염승숙, 김유진, 김애란... 내겐 좋아하는 작가와  읽어야 할 작가가 늘어나고 있다. 

줌파 라히리<그저 좋은 사람>, 무라카미 하루키 <1Q84>  그리고 기억에 남는<체실 비치에서>, <보트>, <겨울>, <다른 남자>,<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평온의 도시들>... 

 산문은 작가의 새로운 매력을 만나게 되어 더 좋다.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 사강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원재훈이 만난 21인의 작가 <나는 오직 글쓰고 책읽는 동안 행복했다>, 박범신이 마난 젊은 작가<박범신이 읽은 젊은 작가>, 그리고 여전하게 매혹적인 독서기들.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 <영화인문학>, <불멸의 신성가족>도 좋았다.  

 내 맘대로 고른 10권의 책들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나쁜 피>,<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미술관에는 왜 혼자인 여자가 많을까>,<그저 좋은 사람><1Q84>,<영화인문학>, <불멸의 신성가족>, <도가니>,<나를 위해 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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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여자친구의 장례식 - 개정판
이응준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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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할까? 이응준의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을 다 읽고 이런 궁금증이 생겼다. 작가에게 있어 모든 일상은 소설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남과 북의 가상 통일 후 한국을 그린 <국가의 사생활>을 통해 처음 만난 이응준은 회색와 검정계통의 색이었다면, <내 여자친구의 장례식>은 블루, 코발트 블루였다. 
 
7편의 단편은 모두 외로운 자아를 그렸다. 혼자가 아님에도 덩그러니 혼자인 느낌, 끊임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군상, 온전한 나를 알고자 하는 고독이라고 할까. 언젠가 나 역시 느꼈던 쓸쓸함과 외로움, 그것들과 오랜만에 재회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응준의 소설은 과거에서 온 긴 장문의 편지처럼 지난 날의 순간 순간을 떠올린다. 

 단편 <이교도의 풍경>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믿었던 친구의 자살과 뒤이어 화자인 나에게 날아온 죽은 자의 편지. 친구가 남긴 물건을 전하러 가는 낯선 여행길. 그 길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될 꺼라는 친구의 글은 화자에게도 독자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오며, 그 여행길에 동참케 한다. 과연, 그곳엔 누가 있으며, 어떤 일을 만나게 될까. 그리하여, 마주하게 된 사실은 모두를 놀라게 한다. 

 아마도 고래는 낙타를 사랑하고 있었던 걸 거야. 사막에 사는 낙타말이야. 왜, 알다시피 고래도 포유류잖아. 유전자적으로 끝까지 올라가보면 낙타에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지. 아무튼, 바다에 사는 온갖 고래 중에 몇 마리가 낙타를 그리워한 거라구. 그래서 백사장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거야. 물 한 방울 없는, 먼지투성이의 사막을 향해 더이상은 다가가지 못한 채. 사람들은 비웃고 조롱하겠지. 불가능한 사랑이라고 치부하면서. 기껏 인심을 쓰더라도, 안타까워하는 정도일 뿐이야. 고래가 낙타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모르고, 까끌한 모래알을 씹어 삼키며 기다리고 있는 낙타의 어두운 고독은 상상도 못하면서. p 52 

 고래의 절박함과 낙타의 어두운 고독을 아는 이는 얼마나 될까?  타인의 내면을 꿰뚫어보고 심연을 잴 수 있는, 이응준은 그것을 알았던 걸까?

 <이미 어둠의 계보를 알고 있었다>의 나 역시 불안하다.  친구 준기와 그의 여자친구와 나는 언제나 함께였다. 셋은 둘보다 때로 안정적이다. 둘에서 셋은 자연스럽게 동화되지만, 셋에서 둘은 어딘가 불안하다. 갑작스런 준기의 죽음은 수영과 나는 더이상 안정적이지 못하다. 어느 날 갑자기 존재는 부재가 될 수 있다는 삶의 허무함.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지만, 쉽게 인정할 수 없다. 수영은 미국으로 떠나고 나는 대학원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새로운 관계. 대학원 동기 미오. 역동적인 미오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준기의 죽음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듯 하다.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게 죽음이며, 그것이 삶이라는 걸 확인한다. 

 한 때 연인이었으나 타인으로  다시 만나 아련한 추억을 되돌아보는 <Lemon Tree>, 서로의 외로움을 알아보지만 선뜻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픈 내면을 그린 <지평선에서 헤어지다>, 타인에게 가슴 한 켠을 내어줄 여유가 없는 <내 가슴으로 혜성이 날아들던 날 밤의 이야기>. 치열하게 고독했을 시간들, 나를 찾아 방황하던 청춘들, 상념의 시간을 지나온 그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과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나. 생각해보면 삶은 여전하게 불안하고, 여전하게 외롭다. 단지,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을 뿐,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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