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식
김재영 지음 / 창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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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폭식>이라는 제목 때문인지, 표지 디자인을 보자마자 탐스러운 석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석류라기 보다는 장기의 일부인 위를 표현하게 더 맞는 듯 보였다.  폭식이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라 그런지, 처음 만나는 김재영의 소설에서 즐거운 이야기를 기대할 수 없겠구나 짐작했다. 

 첫 번째 <꽃가마배>라는 예쁜 제목의 소설은  태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젊은 여자 능 르타이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우리 현실이 그렇듯 남편은 능 르타이의 아버지뻘이었고, 딸까지 있었으며 사고로 휠체어 신세를 지는 홀아비였다.  그런 아버지와 여자의 관계를, 그 둘 사이에 사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딸은 인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죽고, 이복동생을 낳았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온 이방인을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능 르타이는 타국의 땅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나머지 소설 중 <앵초>, <M역의 나비>, <롱아일랜드의 꽃게잡이>도 <꽃가마배>처럼 낯선 땅에서 삶을 정착하려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다르다면,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 이방인이 바로 한국인이라는 점이다. 

 세계화를 꿈꾸며 뉴욕으로 이민왔지만, 911 테러로 시신조차 찾지 못한 남편을 그리워하며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이민자의 삶을 다룬 <앵초>, 나를 찾고 싶었기에 무작정 뉴욕으로 왔지만 가난한 현실에 절망하며 결국 자살하고 마는 미란의 이야기<M역의 나비>, 한국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삶을 시작하고 싶었던 남자 수와 힘든 이민 생활을 접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싸브리나의 만남과 일상을 담은 <롱아일랜드 꽃게잡이>. 

  기회의 땅이라 믿었던 미국에서의 삶은 드라마나 영화처럼 아름다운 삶이 아니었다. 미국인에게 그들은 ‘능 르타이’처럼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었고, 낯선 동양인이었다. 힘들 생활을 접고 돌아오기엔 이미 미국 문화에 젖어든 아이들이 있었고, 고국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삶의 터전이 남아 있지 않았다. 김재영은 낯선 언어로 둘러싸인 타국에서 이민자의 삶을 아주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작가 스스로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던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표제작이면서 가장 궁금했던 단편<폭식>은 예상했던 대로 우울했다. 부양해야할 가족과 갚아야할 빚때문에 세계 곳곳을 다니며 닥치는 대로 일하는 민팀장. 타인에게 그는 세계를 누비는 부러운 동경의 삶을 살고 있었지만 정작 그에겐 남은 건 이혼과 아픈 육체뿐이었다. 고국에 돌아와도 병든 몸을 편히 쉴 집이 없었다. 그는 곧 떠날 사람, 이방인과 다르지 않았다.  

  ‘김재영’의 <폭식>을 읽으면서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이방인의 삶을 다뤘기 때문이리라.   ‘줌파 라히리’가 개인적인 시선에 중점을 두었다면 ‘김재영’은 사회적 시선으로  다루지 않았나 생각한다. 소설은 낯설었지만, 인상적이었고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더 인상적이었다.  

<삶은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와 놀라게 하고 아프게도 하지만, 그러기에 살아볼만한 게 아닐까. 그러기에 소설로 담아내 만한 이야기가 되는 게 아닐까. 주제넘게도 요즘 나는 그렇게 느낀다. 삶을 견디고 살아가는 방식이 천태만상이라면, 그 삶을 담아내는 방식은 그보다 더 각양각색이다.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인간의 존쟁양식과 소설의 형식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소설가들은 아직 얼마나 행복한가> ‘작가의 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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