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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자서전
김인숙 지음 / 창비 / 2005년 8월
평점 :
산다는 건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 과거의 삶에 머무른 사람들도 있다. 해서, 그들은 과거 진행형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게 삶이라는 걸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라던 삶의 방향과는 점점 멀어지고 수평선이 되버린 삶을 인정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도 현재진행형으로 위장한 과거 진행형의 살을 살고 있는게 아닌지.
김인숙의 <그 여자의 자서전>의 사람들은 모두 그랬다. 과거의 조각난 삶을 끌어안고 있었다. 그 조각난 부분이 계속해서 자신들 찌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놓지 못했다. 누군가는 아련한 추억이라 말할 그것들, 그러나 모두 알고 있었다. 더이상 추억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제의 나와 다른 오늘의 나로 살고 싶은 욕망도 안다. 결국은 그 욕망으로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게 된다는, 그리하여 반복되는 일상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자신의 이상을 딸이 아닌 자신과 닮은 아들이 실현해주길 바랐던 아버지가 책장 가득 책들을 채운 이유도 아들을 위해서였다. 그 책에서 꿈을 키운 건 딸이었지만 아버지는 알지 못했다. <그 여자의 자서전>의 그 여자는 자신의 책을 갖지 못했고, 자신의 책을 쓰지 못했다. 자신의 이야기 아닌 타인의 삶을 대필하며 산다. 어린 시절 오빠가 아닌 자신을 아버지가 봐주었다면 여자는 자신의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한 때는 삶의 전부라고 믿었던 사랑도 시간이 흐르면 옅어지고, 부질없는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허무의 연속, 그것이 삶일까. 단편 <바다와 나비>는 삶의 환멸과 허무에 대해 말하는 듯 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온 ‘나’와, 중국에서 한국으로 가려하는 ‘채금’. ‘나’는 아이의 중국 유학을 핑계로 남편과 별거를 시작한다. 아이가 기숙사로 들어가자, 혼자 남는다. 한국에 있는 채금의 어머니의 부탁으로 채금을 만나게 되고, 그녀가 그토록 한국으로 떠나려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된다. ‘나’와 ‘채금’은 삶의 터전을 버리고 싶은 갈망이 같았다. 잘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남편도 나도 행복을 위장한 가식적인 삶을 살고 있었고, 채금도 눈 먼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했다.
바다라는 끝도 없는 삶을 향게 날아가는 나비, 그건 바로 우리였다. 삶은 계속해서 바다를 건너는 몸짓이었다. 되돌아갈 수 없는 길, 하여 힘겹지만 날개짓은 쉴 수 없는 것이다. 소설은 내게 무기력해지는 봄날, 마냥 울고만 싶었던 초록의 어떤 날을 떠올리게 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두 참으로 지난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게 아닐런지.
지나간 삶을 부여잡고 사는 이는 또 있었다. 안정된 결혼과 승진을 꿈꾸던 남자가 어느 순간 트럭 운저사로 전락해버린 <밤의 고속도로>, 지켜주고 사랑해준다 약속했던 남편이 식물인간이 되어버려 시어머니까지 부양해야 하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젊은 여자의 깊은 한숨이 들리는 듯한<모텔 알프스>, 모든 것을 다 잃고 쫓기듯 중국으로 도망쳐 의미없는 생을 이어가고 있는 한 남자와 그가 간절하게 원했던 여자의 이야기<감옥의 뜰>.
그때 나는 스물일곱살이었고, 정수기를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입사가 결정되었고, 내가 입사를 하자마자 정수기가 가정필수품인 것처럼 붐을 이루었고, 느닷없는 도시개발로 한뼘만하던 집값이 껑충 뛰어 집안은 집값에 붙은 동그라미 숫자를 헤아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풍요로웠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이 내 인생의 절정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꿈이 꿈만으로도 풍요로웠던 시절...... 140p
그들에게도 삶의 중심이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환한 미소로 빛을 발하던 시절 말이다. 그리하여, 미래를 꿈꾸고 행복을 계획하던 순간들. 어쩌면 김인숙의 되돌아보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지난 시절을 잘 살아왔는지, 그 때 그 순간 최선을 다했는지 스스로에게 확인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산다는 건 무엇인가, 그 의미를 생각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여전하게 건너야 할 삶이라는 바다가 있음을 잊지 말라고. 바다에 들어온 이상 벗어날 수 없음을, 그 안에서 유영해야 함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