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었다. 바람은 달라졌고 내 입술은 덥다라는 말을 삼켜버렸다. 몸은 가을이라는 걸 느끼고 있으나 아직 가을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가을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계절이 가을이다. 맛있는 바람이 불고 생명을 잉태하기 적절한 계절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나는 가을을 좋아하지 않는다. 9월로 시작하여 10월, 11월, 그리고 겨울까지 때때로 우울하고 때때로 쓸데없이 감정을 소모한다. 가을을 앓기 시작한 뒤로 나는 가을이 두렵다. 매년 다른 색으로 다른 속도로 다가오며 곧 사라질 가을의 정체는 불확실하다.
애매모호한 사랑 고백같은 게 봄이라면, 사랑이 끝난 자리에서 주저하는 마음은 가을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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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9월과 가을은 왔고 책도 왔다. 좋아하는 동생의 선물로 창작과 비평이 여름호에 이어 가을호가 도착했다. 백가흠의 소설집 <힌트는 도련님>, 김선재의 첫 소설집 <그녀가 보인다>, 심보선의 두 번째 시집 <눈 앞에 없는 사람>, 90년대 학번을 추억에 빠지게 할 한차현의 <사랑, 그 녀석>, 섹스를 테마로 쓴 <남의 속도 모르면서>까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걸 확인시키려는 듯 말이다.
작년 9월엔 곤파스의 손길로 유리가 사라진 채로 보냈다. 유리가 사라진 베란다 창틀에 기대어 같은 모양새의 여러 집들을 바라보며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올 해 9월은 아늑하다. 9월을 맞이해 내가 한 일은 방의 구조를 변경한 것이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9월이 되서 한 일은 아니다.
내 방은 정사각형에 가까운 방이다. 침대 옆에 있던 컴퓨터 책상을 침대 아래쪽으로 옮겼고 작은 책장의 위치도 바꿨다. 아직은 이 위치가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책들을 정리해야 한다. 소유해야 할 책들과 그렇지 않은 책들, 읽어야 할 책들과 그렇지 않은 책들, 당장 읽어야 할 책들과 조금 미뤄 읽어도 될 책들, 반드시 읽어야 할 책들, 리뷰를 써야 할 책들.
9월엔 추석도 있다. 이제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송편을 먹게 될 것이고, 마음이 분주할 것이다. 도로를 메우는 차들을 보면서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