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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과연,나는 어떤 소설을 기대했던가? 끝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야기를 잘 듣기는 했을까? 소설을 좋아하는 나지만 이 책은 내 리스트에 없었다. 김연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지도 못했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 정복]이란 책의 역자인 줄도 몰랐다. 세상에나 요즘 소설가들은 번역도 잘하고 이렇게 끔찍할 만큼 긴 호흡의 글을 쓰는 재능도 있다니, 하느님은 너무 한거 아냐, 나의 투덜대는 소리는 아마도 하느님의 귀에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이 책에 무엇이 있기에 그리도 흥분하면서 이 책을 말하는 건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그 뒤에 어떤 말이 나오면 좋을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네 편이다. 우리는 하나이다. 김연수는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음, 나는 사랑한다를 예상했었다. 애절한 사랑의 밀어를 기대했다. 한 참을 읽어내려가도 나는 종잡을 수 없는 미로에 빠진 기분이었다. 그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또 다시 만나지는 처음의 그 길,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또 다른 길.. 그랬다. 그게 맞을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헤메다 보니 멀리 그 끝이 보이는 듯 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나와 한 사람의 관계의 다리를 건너다 보면 저 외국 누군가와도 관계가 닿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아마도 스펀지가 아니었나 싶다. 그런 경험을 하기도 했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꺼라 여겼던 사람이 내 친구의 친척이거나 지인이 되는 경우, 좁디 좁은 지역사회에 살다보니 사실 그런 두려움에 나에 대해 말하기 꺼린 적도 있었다. 이 책엔 그러한 관계의 지속이 클립의 끝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다.
끝없는 이야기의 시작은 할아버지의 유품으로 태워지지 못한 한 장의 누드 사진으로 시작되는데 그 사진은 정말 시작일 뿐이었다. 그 사진의 출처를 찾아 나서며 정민과 나는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이야기는 광대한 우주를 채울 것만 같다. 정민의 삼촌과 정민의 이야기, 나의 할아버지의 이야기,그리고 광주의 한 복판에서 자신의 전부였던 사람(한기복)의 죽음을 지켜보게 된 이길용과 그 이길용이 강시우로 다시 존재하여 살기까지의 이야기, 90년대 운동권 학생의 대표로 독일로 날아오게 된 내가 만나는 베르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그 이야기들.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설명하기 어렵다. 그들의 관계가 쫌쫌하게 짜인 그물에 걸린 물고기와 같고 또 그 그물을 낚아 올린 누군가와도 같다고 할까? 그리고 기대지 않던 사랑과 존재의 외침이 있다.
[인생이 이다지도 짧은 건 우리가 항상 세상에 없는 것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몰라.173쪽]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이 갈망했던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며 자유도 아니며 자신의 존재,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거짓을 말하고 거짓으로 위장한 많은 사람들의 삶은 우리가 살아온 80~90년대,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6.25전쟁과 일제 식민지까지 이어진다.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세상이 바로 너만의 세상이야. 그게 설사 두려움이라고 하더라도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란 말이야. 더이상 다른 사람을 흉내내면서 살아가지 말고.254쪽] 살아가면서 느끼는 크고 작은 두려움, 두 팔 벌려 환영하지 못하지만 내 것으로 만들려면 그것과 친해져야 할 것이다. 그런 것이 삶이겠지.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378쪽] 누드 사진은 아무 것도 아닌 그저 흔한 한 장의 사진 일 수 있었다. 그 사진을 통해 이어지는 수많은 너와 나 그리고 저 먼 우주에 나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내가 있을 뿐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384쪽] 삶이란 진정 그런 것일까? 내가 살아온 기쁨과 슬픔의 날을 기억하는 것이고 그 날들을 감정을 배제하고 내가 너에게 잘 설명하는 것. 그것일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네가 존재하는게 너무 다행이다' 라는 보이지 않는 어떤 소리를 듣는 듯 했다, 그리고 또한 나와 어떤 형태로든 닿아있을 누군가가 있어서 참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슬퍼할 때 그 누군가도 어쩜 함께 슬퍼할지 모르고 내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그 누군가는 들을 것만 같았다. 설령 그게 신이라도 괜찮다. 아니 영광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이런 글을 쓰는 김연수는 아마도 작가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 위해 수억년 저 멀리 어떤 별에서 지구로 날아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