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을 놓다 - 다정하게 안아주는 심리치유에세이
이주은 지음 / 앨리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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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번씩 우울한 날들을 겪는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 제대로 최선을 다해서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때를 만난다. 세상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잘 살아가고 있는 듯 보이고 나만 홀로 그 밖에서 서성이고 있는게 아닌가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그럴  때마다 책을 만났다.  < 사람 풍경 > 과 < 따귀 맞은 영혼 >은 내게 많은 위로를 주었지만 나는 내내 삶에 대한 두려움만이 가득했었다. 그저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기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어쩜 나 혼자만이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실, 요즘도 내심 앞이 보이지 않는 기분이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게 되었다. 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뒤로 하고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힘들 때에는 가까이 있어주고, 자기편이 되어주고, 일상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15쪽, 우리는 상대방이 자신을 '제대로' 비추지 못한다고 느낄 때 상처를 받는다. 나만큼 나에게 집중해주지 않기 때문에 섭섭하고, 나보다 나를 하찮게 취급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65쪽]

 내 주위를 둘러보며 이런 사람들을 다섯 손가락을 넘겨가며 꼽을 수 있는가 의문이 든다.  때때로 가족, 친한 친구들은 언제나 내 편이라 생각하지만 막상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만나게 되면 그 실망감과 절망은 이루 다 설명할 수 없기에 더 절망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런 내 마음, 아니 모두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듯 저자 이주은조곤조곤 이야기한다. 사람이 마음을 다치는 일은 실은 아주 사소한 감정 때문인데, 그림을 통해 그 마음이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시에서 받는 그 느낌과는 조금 다른 듯 하다. 나와 같은 마음의 이미지를 그렸던 그 당시의 화가의 마음도 그러했을까. 생각해본다.

 책 속에는 낯익은 그림들도 많고 이미 일반화된 마음을 달래는 흔한 구절도 많이 만나게 된다. 그럼에도 그리 식상한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는 저자가 자신의 일상을 시작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평범한 일상, 그 안에서 숨쉬는 욕구, 욕망은 누구든지 형태만 다를 뿐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저자가 가진 그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점도 이 책이 가진 평안함이라 할 수 있겠다.

[ 아름다움도 환상이고 사랑도 결국엔 환상 일 수 있다. 인생이라는 현실도 많은 부분은 환상의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을지도 모른다.53쪽, 한 순간 한 순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충만한 의미가 된다. 생은 유한해서 덧없는 것이 아니라, 삶의 소중함을 모르는 채 엉뚱한 것에서 의미를 찾으려 애쓰기 때문에 덧없는 것이다. 165쪽]

조각 조각, 모자이크를 만들 듯,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 꿈이었으면 싶은 날들, 때로는 꿈이라면 깨지 않았음 하는 날들, 그것이 인생이라고 나 또한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조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누군가 명쾌한 답을 줄 수 있다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나만의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많이 알려진 그림이 아닌 숨겨진 그림을 만나는 즐거움도 큰 책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이보다 좋은 친구가 또 있을까 싶다.

참으로 시간라는 것은 이상한 것인가 싶다. 앞서 만난 두 권의 책을 읽을 때는 읽고 있으면서도 내 안에 숨쉬는 슬픔, 분노, 화는 그대로 웅크린채 살아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편안한 느낌이다. 시간이라는 약이 그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내가 가진 고단하고 단단한 감정들이 그림을 통해 조금은 부드러워 지고 있는걸까. 여하튼 내게는 그 크기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위로가 되는 책이니 그것으로 족하다.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 말을 거는 그림.  존 슬론 < 일요일, 머리를 말리는 여자들 >

너무도 슬픈 그림, 자꾸 눈이 가는 그림. 마리안 스토크스 < 지나가는 기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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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란서 안경원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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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납 기일을 두 번이나 연장하도록 한 게으름과 동시에 욕심을 낸 책이다.  쉽게 읽히지도 않았으며 번쩍하는 빛이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한 권 한 권 조경란의 소설을 읽어가면서 책 속에 감추려 했던 아니, 드러내려고 했던 조경란의 모습을 찾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수없이 많은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자신의 길을 찾아낸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는 것은 나뿐일까. 

 10편의 소설, 어느 하나 즐거운 엔딩을 보여주는 소설은 없다. 시를 위한 소설처럼 낮은 읊조림으로 들린다. 주체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을 만나기 어렵다. 어쩔 수 없는 강한 힘에 끌려 인생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결코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는 운명적 관계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 운명적인 관계, 그것은 사랑의 관계, 핏줄의 관계이다.  그러나 완전하게 완성된 관계는 찾을 수 없다. 죽음으로 인한 어머니의 부재, 힘없고 나약한 가장들의 존재들로 인해 삶의 끈을 놓고 싶은 딸, 아내들은 모두 힘겹다. 

 
내 사랑 클레멘타인
 
 든든한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갑자기 알츠하이머 병에 걸리고 만다. 숨쉴 수 없는 시간들이 시작되고 가족이라는 이름뿐 모두 가족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유학을 핑계로 떠나버린 남동생,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병든 아버지를 원망하고 질책하는 여동생, 점점 비대해지는 몸으로 병든 아버지를 수발하는 어머니, 그 사이 사랑은 떠나버리고 가장으로써 남은 그녀. 소리내어 악을 쓰고 싶은 현실,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 그녀에게 무거운 짐을 지게 한 이는 아무도 없지만 그녀는 이 울타리를 떠날 자신이 없다.

 
사소한 날들의 기록

 제목처럼 사소한 일상일 수 있는 날들의 기록이다. 심리 치료 워크숍에 참석한 사람들의 3일 간의 기록이다. 8명의 인물 하나 하나의 닉네임과 외부 묘사를 통해 그들을 이미지화한다. 참석한 모두 내면에 자리잡은 상처를 치료하고 싶어하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믿었던 사랑에 대한 배신, 불륜을 일삼는 아버지, 이복동생과의 갈등. 그리고 남편과 자신과의 속내가 두려운 화자. 3일이라는 기간을 통해 변화의 시작을 원했던 그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중독

 이 단편은 마치 조경란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는 듯 보인다. 스물 여섯의 대학 입학, 소설을 쓰고 있고 신춘문예에 당선한 소설 속 권재경은 조경란과 흡사한 인물이다. 시를 쓰고자 했지만 결국 소설가가 된 재경과 같은 학과 동기인 완희 언니, 두 여자의 이야기.  자신의 자살을 재경에게 확인하게 끔 편지와 열쇠를 보낸 그 섬뜩함은 소설의 제목인 중독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같은 듯 다른 두 여자, 서로에게 속하지 않았다고 믿었지만  완희가 남긴 노트를 통해 재경은 완희와 자신이 닮아있음을 발견한다. 이야기를 이끄는 화자인 재경의 글쓰기와 소설 속 완희가 남긴 글을 비교하며 읽게 하는 짜임은 이 단편의 특징이라 하겠다.

 불란서
안경원

 주변에서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이름의 안경원이다. 그만큼 평범한 이름처럼 평범함을 가장하며 살고 있는 때로는 음융하고 때론 속물적이고 절망적인 우리의 모습의 단면을 보여준다. 주인공 나는 불란서 안경원의 안경사이다. 단정한 외모에 친절한 미소를 띄고 있다. 그러나 지친 일상에 마음은 찌들어 가고 있다. 그녀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오직 12자,8자인 안경원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세상뿐이다.

' 세상을 12자, 8자 통유리로 들여다보고 이해하기까지...... 지나치게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다. 그것은 어쩌면 삶과의 전의(戰意)을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중략 나에게 삶이란 단지 오늘을 견디는 것, 바로 그것뿐이다. 아직 더 견뎌야 했다. 그러나 아직 아무도 내게 삶을 견디는 방법을 가르쳐준 사람은 없다. 304쪽'

 그 문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들과의 형식적인 관계가 전부이다. 안경원을 시작하고 평범한 삶을 꿈꾸게 했던 남자는 그녀를 떠나고 자신을 향한 세상의 눈은 온통 경계의 대상이다. 자신의 생계를 이어주는 자신들의 안경은 누구에게는 사치이고 세상을 보는 절실한 것이다. 유리창을 통해 보는 세상, 그 유리창을 깰 날이 그녀에게 올까?

 소설 속 그녀들은 나이에 따라 민감한 반응을 보여준다.  서른 한 살( 내 사랑 클레멘타인 ), 스물 아홉( 푸른 나부 ), 스물 여덟 살( 천국 보다 낯선 ), 서른 셋( 사소한 날들의 기록 ), 서른 하나(불란서 안경원) 등등 소설 속 그녀들은 서른 전후의 나이들이다. 작가 조경란이 갖는 나이에 대한 의미가 있는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또 하나 소설 속 전화가 갖는 의미도 크다. 

 
' 내가 걸고 싶은 전화와, 내가 걸지 못한 전화와, 내가 걸었던 전화와, 내가 끊었던 전화와, 내가 기다렸던 전화 때문에. 그 전화들 사이로 흘러간 추제할 수 없이 안타까운 시간들 때문에... ... 129쪽 '

 새벽에 걸려오는 낯선 전화, 자신이 잠든 사이 공중전화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있는 남편, 아들의 전화를 기다리는 어머니, 부재 중 전화를 통해 확인하는 자신의 목소리. 가족이 아닌 상대를 갈구하는 사람들, 낯선 이를 통해서라도 막연한 소통을 기대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결핍된 것은 무엇일까?

 삶은 자신에게 찾을 수 없는 결핍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한다. 우리는 그 결핍 그대로인 삶을 끌어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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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1 2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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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2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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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4 0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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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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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5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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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7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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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연인
정미경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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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하건대 정미경의 소설을 무척 기다려왔다. 두툼한 책을 한 장 한 장 쓰다듬으며 아껴가며 책을 읽었다. 앞서 만난 기존의 소설보다 우리에게 더 가깝고 조금 더 편안하며 속물적이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이 소설집 현실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 또한 작가 정미경이 가졌던 삶에 대한 촘촘하고 단단한 자신만의 생각뭉치를 넉넉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하게 쉽게 풀어놓지 않았다. 바로 그런 점이 정미경의 소설이 가지는 힘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연인을 이용해 경제적 안식을 취하려 했지만 결국 사랑하는 연인은 아무리 사랑한다고 소리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 관계가 되버리고 마는 소설 < 너를 사랑해 >, 현실과 이상은 남편과 애인으로 대두되고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힘든 고난의 현실은 사라졌지만 결코 이상적인 삶을 만날 수 없음을 알게 된 < 들소 >, 아이만 있다면 둘 사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꺼라 막연하게 생각했지만 결국 남편과 자신의 문제는 아이가 아닌 본질적인 다름이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 바람결에 >, 아들의 가난한 연인을 통해 자신의 젊은 날을 돌아보며 추억하지만 사랑이 아닌 현실을 선택한 자신의 부유하고 넉넉한 삶을 후회하지 않는 주인공 나, 아들의 선택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지만 아들이 현실을 선택해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 내 아들의 연인 >.

 소통의 부재속에 살고 있는 내게 다가온 한 여자를 통해 새로운 소통의 대상을 확신하지만 결코 그녀가 이명(耳鳴)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그녀 역시 삶의 굴레에서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자신과 닮은 사람이었음을 말하는 < 매미 >,  믿고 싶지 않은 것, 보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의 사랑을 이해받고 싶어하는 모습을  색을 통해 풀어낸  < 시그널 레드 >, 과거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열정을 쫓았지만 현실은 열정의 허무와 껍질뿐임을, 그저 과거의 기억은 그렇게 기억속에 존재할 때 의미가 있다고 소리치는 < 밤이여, 나뉘어라 >.

 어느 하나 놓칠 수 없는 소설, 짊어지고 있는 삶의 무게에 적당한 짐 하나를 내려놓는 소설, 쉽지 않은 소설들, 읽는 동안 불편한 마음을 불러오기도 했다. 한편으로 한 문장 한 문장 끊임 없이 메모를 하게 하고 감탄을  자아내게 하기도 했다.  소설에는 지금의 우리가 있었다. 정미경이 소설을 쓸 당시의 2007년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두 편의 소설을 제외하고 소설속 화자나 등장인물은 모두 Y, K, P,M 로 나타난다. 그 영문자 대신 나의 이름, 혹은 당신의 이름을 넣는다면 그것은 바로 나와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만다.  이런 소설을 쓰기에 정미경의 소설이 독자에게 기대감을 주는게 아닐까 싶다.

 현실과 이상, 그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 이상이라 믿었던 세상은 한낱 꿈처럼 허무하고 불편한 세계일까? 선택의 몫은 각자의 삶을 살아내는 본인뿐이기에 우리는 꾸준하게 삶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열심을 내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이 삶이 아니라는 것을 또 한 번 기억한다.

 이래도, 이래도 , 하며 삶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툭툭 던져놓는다. < 들소 -  69쪽 >
 ....... 이제 누구도 내게, 넌 무얼 원하냐고 묻지 않지만, 늙고 시든 채로, 손에 쥔 먼지만큼의 날들을 살아내야 할 무녀처럼 생이 아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내게도 있다. 158쪽 < 내 아들의 연인 - 158쪽 >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내 객관적인 모습이 어떤 것인지, 사람이 얼마나 많은 얼굴을 갖고 있는지, 영원히 변치 않는 건 다만 이 초라하고 지리멸렬한 삶 그 것뿐이란 것도.  < 매미 - 19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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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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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증을 위한 치료을 위해 만난 마약에 예상외로 강하게 중독된 기분이다. 조경란, 그녀가 그러하다. 1996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우리 문학의 빛나는 정수를 잇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7년 <달의 바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은 정한아를 인터뷰 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 사이 많은 글을 쓰고 책을 출판했으며  최근 작품 <혀>는 영어로도 번역되어 세계의 독자와 만나게 되었다. <식빵 굽는 시간>는 마치 그녀의 민낯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맑고 투명해서 핏줄까지 드러나 보일 것 같은 그런 글이었다. 
 
 엄마와 이모, 그리고 아버지의 관계, 이복 남매인 한익주와 한영원과 주인공 강여진의 관계. 두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는 일반적으로도 보기에도 불편하고 불안해 보인다. 빵을 만드는 여진은 자신을 둘러싼 그들을 식빵, 브리오슈, 크루아상, 화이트케이크, 소보로빵, 사과파이, 크레프 등 빵으로 비유한다. 어떤 방이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빵이었을까. 아니,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특별한 빵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는지 모른다.

 냉대에 가깝게 차가웠던 부모와의 관계는 글의 초반부터 그녀의 출생을 암시하고 있다.  암으로 죽은 엄마, 그 후 1년 뒤 자살한 아버지. 그 후 자신의 생모라는 것을 말해주고 사라져버린 이모. 그들의 부재는 이제 지속되어왔던 불편하고 모호한 관계의 부재를 명확하게 인정한다. 여진이 그네들을 생각하며 빵을 만들었던 것은 관계의 개선을 위한 욕망의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반죽이 숙성되는 시간을 거쳐 새로운 맛을 탄생시키는 것 처럼.
 
 모호하고 어지러운 소설이다.근친상간, 존재와 부재, 지나간 기억, 잡히지 않는 현재.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다. 여진의 심리상태는 적당한 불안을 감추며 태연하다. 이제 그녀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모두 떠나버렸다. 그녀 혼자만이 홀로 남았고 이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한 순간 부풀어 '뻥' 외마디 소리와 함께 터져버리는 슬픔과 절망의 풍선을 안고 있는 것 같다. 여진, 그녀속에 살아있을 조경란에 대한 답답함과 안쓰러움이 쏟아진다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속에서 조경란의 다른 소설속 인물들을 만난게 된다. <나의 자줏빛 소파>에서 느꼈던 상실감, 불안감, 허무감이 그것이다. 조금 더 면밀하고 조금 더 확장된 감정의 가지들. 

이건 정말 이상한 관계예요. 엄마
모든 관계는 만질 수 없는 거란다. 너는 자꾸만 만지고 확인하고 싶겠지만 글쎄...... 부질없는 거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만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별 미련이 없구나.
저는 고독해요 엄마
얘야,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죽음과 만나지 않은 고독이란 고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란다. 32~33쪽

 확인하고 싶은 관계는 그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여진은 사랑에 대해 목이 마른 상태이며 죽음을 앞두고 그것이 부질없는 욕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욕망과 싸우고 절망해야 우리는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욕망이 너무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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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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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요즘, 수줍은 봄을 만났다. 알싸한 봄 내음을 터뜨릴 것 같은 시가 변덕스런 장마로 지친 마음을 잊게 한다.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라는 제목은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의 속삭임 같다. 사실, 문장(http://www.munjang.or.kr/)에서 현재 문학집배원인 나희덕님이 보내주는 메일을 꼬박 꼬박 받고 있었지만 차분하게 듣고 읽어 내려가지 못했다.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든다.  '시' 라는 문학 장르는 얼핏 우리와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무척 멀게만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매일 매일 시를 선정해서 배달하는 문학집배원 안도현 이라는 이름 때문일까, 안도현의 엮어 놓은 시는 왠지 믿음이 간다. 

 사실, 여기 수록된 52편의 시와 시인들은 내게는 많이 낯선 이름들이었다. 그 생경한 느낌을 문학집배원 안도현친절함을 베풀어 친근감으로 거들고 있다. 시를 읽어가면서 문득 시를 쓴 시인이 궁금해진다. 그는 어떤 사람 이길래, 이런 시로 세상을 흔들어 깨우고 세상을 아름답게 할까?  바로 이 시를 지은 시인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 홍신선

2월의 덕소(德沼)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뉘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아,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 인 걸. 자꾸만 이 구절에 머문. 시는 왜 이리 누군가를 떠오르게 하는 걸까?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이 시는 내게 그렇게 말을 걸고 있다.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야채사(野菜史) - 김경미

고구마, 가지 같은 야채들도 애초에는
꽃이었다 한다
잎이나 줄기가 유독 인간의 입에 단 바람에
꽃에서 야채가 되었다 한다
맛없었으면 오늘날 호박이며 양파꽃들도
장미꽃처럼 꽃가게를 채우고 세레나데가 되고
검은 영정 앞 국화꽃 대신 감자꽃 수북했겠다

사막도 애초에는 오아시스였다고 한다
아니 오아시스가 원래 사막이었다던가
그게 아니라 낙타가 원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사람이 원래 낙타였는데 팔다리가 워낙 맛있다보니
사람이 되었다는 학설도 있다

여하튼 당신도 애초에는 나였다
내가 원래 당신에게서 갈라져나왔든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시인지 모르겠다. 정말 내가 낙타였을까. 엉뚱한 상상이 이어진다. 우리의 인생이 사막을 건너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어쩜 맞을지도 모르지 않나. 아침, 저녁 밥상에서 마주하는 야채가 감사하기까지 하다. 

 시가 가진 함축적인 의미를 생각하면 자칫 시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기 마련인데 여기 담긴 시들은 그런 걱정을 덜게 한다. 또한 이 시집에는 육성낭송시집(CD)가 함께 있어 시를 읽고 듣는 두 배의 즐거움을 만날 수 있다.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시를 만나려고 부푼 마음을 먹고 있는 내게 여기 수록된 시는 새로운 시인과의 만남을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요즘 사실, 시는 인기가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예전에 흔하게 책이나 시집을 읽으며 자투리 시간을 보내던 사람들의 손에는 이제는 모두 핸드폰과 게임기가 자리하고 있다. 구세대로 속하고 있는 나는 그대로 여전하게 시가 좋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 유안진

겨울에는 불광동이. 여름에는 냉천동이 생각나듯
무릉도원은 도화동에 있을 것 같고
문경에 가면 괜히 기쁜 소식이 기다릴 듯하지
추풍령은 항시 서릿발과 낙엽의 늦가을일 것만 같아

춘천(春川)도 그렇지
까닭도 연고도 없이 가고 싶지
얼음 풀리는 냇가에 새파란 움미나리 발돋움할 거라
녹다 만 눈응달 발치에 두고
마른 억새 깨벗은 나뭇가지 사이사이로
파고 있는 진달래꽃을 닮은 누가 있을 거라
왜 느닷없이 불쑥불쑥 춘천을 가고 싶어지지
가기만 하면 되는 거라
가서, 할 일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라

그저, 다만 새봄 한아름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몽롱한 안개 피듯 언제나 춘천 춘천이면서도
정말, 가본 적은 없지
염두가 안 나지, 두렵지, 겁나기도 하지
봄은 산 너머 남촌 아닌 춘천에서 오지

여름날 산마루의 소낙비는 이슬비로 몸 바꾸고
단풍든 산허리에 아지랑거리는 봄의 실루엣
쌓이는 낙엽밑에는 봄나물 꽃다지 노랑웃음도 쌓이지
단풍도 꽃이 되지 귀도 눈이 되지
춘천(春川)이니까.

 내게도 그저 춘천이니까로 이어지는 젊은 날의 추억이 되살아 난다. 무료한 가을 날, 아무런 이유없이 춘천이 그리워 강의를 잊은 채 친구와 떠난 춘천행. 그러나 막상 떠난 춘천행의 기차는 김현철이 부른 ' 춘천 가는 기차'가 아니었다.  계획하지 않았던 여행은 입석으로 서울까지, 그리고 다시 춘천까지의 왕복은 고생 그 자체였다. 그래도 부서지는 햇살을 껴안은 한 장의 사진은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도 나는 그 시간, 그 춘천이 마냥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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