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빵 굽는 시간 - 제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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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증을 위한 치료을 위해 만난 마약에 예상외로 강하게 중독된 기분이다. 조경란, 그녀가 그러하다. 1996년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은 인터뷰에서 그녀는 "우리 문학의 빛나는 정수를 잇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7년 <달의 바다>로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받은 정한아를 인터뷰 하는 작가가 되었다. 그 사이 많은 글을 쓰고 책을 출판했으며  최근 작품 <혀>는 영어로도 번역되어 세계의 독자와 만나게 되었다. <식빵 굽는 시간>는 마치 그녀의 민낯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맑고 투명해서 핏줄까지 드러나 보일 것 같은 그런 글이었다. 
 
 엄마와 이모, 그리고 아버지의 관계, 이복 남매인 한익주와 한영원과 주인공 강여진의 관계. 두 여자와 한 남자의 관계는 일반적으로도 보기에도 불편하고 불안해 보인다. 빵을 만드는 여진은 자신을 둘러싼 그들을 식빵, 브리오슈, 크루아상, 화이트케이크, 소보로빵, 사과파이, 크레프 등 빵으로 비유한다. 어떤 방이 그녀에게 가장 소중한 빵이었을까. 아니, 어느 누구도 그녀에게 특별한 빵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는지 모른다.

 냉대에 가깝게 차가웠던 부모와의 관계는 글의 초반부터 그녀의 출생을 암시하고 있다.  암으로 죽은 엄마, 그 후 1년 뒤 자살한 아버지. 그 후 자신의 생모라는 것을 말해주고 사라져버린 이모. 그들의 부재는 이제 지속되어왔던 불편하고 모호한 관계의 부재를 명확하게 인정한다. 여진이 그네들을 생각하며 빵을 만들었던 것은 관계의 개선을 위한 욕망의 몸부림이었는지 모른다. 반죽이 숙성되는 시간을 거쳐 새로운 맛을 탄생시키는 것 처럼.
 
 모호하고 어지러운 소설이다.근친상간, 존재와 부재, 지나간 기억, 잡히지 않는 현재.  아무것도 분명한 게 없다. 여진의 심리상태는 적당한 불안을 감추며 태연하다. 이제 그녀와 관계를 맺은 사람은 모두 떠나버렸다. 그녀 혼자만이 홀로 남았고 이제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얼음판을 걷는 느낌이다. 한 순간 부풀어 '뻥' 외마디 소리와 함께 터져버리는 슬픔과 절망의 풍선을 안고 있는 것 같다. 여진, 그녀속에 살아있을 조경란에 대한 답답함과 안쓰러움이 쏟아진다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속에서 조경란의 다른 소설속 인물들을 만난게 된다. <나의 자줏빛 소파>에서 느꼈던 상실감, 불안감, 허무감이 그것이다. 조금 더 면밀하고 조금 더 확장된 감정의 가지들. 

이건 정말 이상한 관계예요. 엄마
모든 관계는 만질 수 없는 거란다. 너는 자꾸만 만지고 확인하고 싶겠지만 글쎄...... 부질없는 거다. 그리고 이제 나는 만질 수 있는 것에 대해 별 미련이 없구나.
저는 고독해요 엄마
얘야,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죽음과 만나지 않은 고독이란 고독이라고 말할 수 없는 거란다. 32~33쪽

 확인하고 싶은 관계는 그 사이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여진은 사랑에 대해 목이 마른 상태이며 죽음을 앞두고 그것이 부질없는 욕망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엄마.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욕망과 싸우고 절망해야 우리는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아직 나는 욕망이 너무 많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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