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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 그걸 가르쳐주는 게 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 힘이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힘을 주는 거예요.” (262쪽)
책을 좋아한다. 그것은 책을 사랑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을 사고, 책을 읽고, 책을 선물하고 책을 매만진다. 지금도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나는 책을 사랑하는 게 맞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 말해보라고 한다면 바로 대답할 수 없다. 습관처럼 책을 읽었다고 해야 할까. 그저 일상이라고 대답해야 할까. 책이 좋은 이유가 무엇인지,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크기를 정확하게 가능할 수 없다. 어쩌면 그런 게 사랑이 아니겠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다. 나쓰카와 소스케의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는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들려준다. 그러니까 당신에게 책이 무엇이냐고 묻는 동시에 책을 읽는 이유와 책을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것이다.
고등학생 나쓰키 린타로는 고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았다. 때때로 학교에 가지 않고 서점에 틀어박혀 책을 읽기도 했다. 오래된 책과 할아버지, 그리고 소년은 평범하면서도 평온한 일상을 보냈다. 갑자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린타로는 학교에는 가지 않고 폐점을 앞둔 서점을 지킨다. 린타로의 슬픔을 위로하며 선배인 아키바 료타와 반장인 유즈키 사요가 서점을 찾을 뿐 다른 손님은 없다. 그런 린타로에게 말하는 고양이 얼룩이 나타난다. 세상에나 말하는 고양이라니. 고양이는 린타로에게 책을 구하기 위해 린타로의 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린타로를 이끈다.
린타로가 구할 첫 번째 책은 갇혀 있는 책이었다. 유리 책장에 갇혀 있는 5만 권의 책들을 구하는 것. 책의 주인은 무조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 권의 책을 재독, 삼독하는 건 의미가 없고 남들보다 더 많은 책을 읽는 게 지식을 쌓고 지위를 얻는 거라고 강조한다. 과시를 위해 쌓아둔 책, 책과의 소통은 어디에 없다. 신간이 나올 때마다 자꾸만 사기만 하는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다. 두 번째는 반장인 유즈키 사요도 동행했다. 린타로에게만 보이는 줄 알았는데 사요도 얼룩을 볼 수 있었다. 이번에 구할 책은 잘려나가는 책들이다. 독서연구소 소장인 남자는 세상의 책을 모두 읽기 위해 줄거리 요약과 속독법을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한 권의 책을 전부 다 잘라버리고 문장으로만 남기는 것이었다. 바쁜 현대인에게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세 번째는 이익만을 위해 책을 만드는 출판사 사장으로부터 책을 구하는 일이다. 소모품이 아닌 책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책을 읽는다고 꼭 기분이 좋아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아. 때로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면서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거나 머리를 껴안으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탁 펼쳐지는 거란다.” (124쪽)
마지막으로 린타로가 구해야 할 건 바로 책 자신이었다. 책을 통해 소망을 키우고 위로받던 시대가 지나고 지금은 단순하게 지식과 재미만 제공하는 도구가 돼버린 현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책을 지켜야 하는 이유 말이다. 린타로는 우리였다.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 린타로가 책에 대해 고민하고 들려주는 말은 거대한 울림을 안겨준다.
“책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려져 있어요. 괴로워하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웃음을 터드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말과 이야기를 만나고 그들과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마음까지도요. ”(261쪽)
책의 힘을 믿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할아버지가 린타로에게 들려준 말과 고서점에서 읽은 책들을 통해 린타로는 책을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책을 좋아하는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 이제 막 책과 친해지려는 사람, 책에는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 책의 마음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까.
뭔가 대단한 것을 얻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아니다. 때로는 어떤 시간을 견디게 했고 나와 다르지 않은 슬픔을 나눌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말할 수 없었던 고통을 다 안는 듯 위로해주었던 게 책이었다. 재미와 잔잔한 감동을 전해준 동화 같은 소설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 책에 있었다는 걸 알려준다. 그 마음과 마주했던 소중한 시간을 멈추지 말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