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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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게 되면 진실과 맞나게 된다. 나는 작가 황정은에 대한 입소문의 진위를 확인한 셈이며 소문에 소문을 낼게 분명하다.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고.  황정은과 함께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를 탑승 할 준비가 되었다면, 출발할까 한다. 살짝 귀띔을 하자면, 아주 흥미롭다 라는 것이다. 

 m의 등뒤에는 남이 볼 수 없는 문이 하나 있었다. 때때로 이 문이 열렸다. <문>이라는 단편의 첫 문장이다. 사고로 부모를 잃고 할머니와 살아다 할머니마저 죽고 m은 혼자가 되었다. m은 20대를 무기력하게 살아 내고 있다. 문을 통해 나온 죽은 자와 m은 만난다. 어린 시절 돌아가신 할머니, 두리안을 먹고 싶어했던 남자. 놀라지 말길 바란다. 이것은 소설이니까. 죽은 자와의 대화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므로. 주목해야 할 것은 m이다.  결정적이지 않은 상태로 살아간다는 건 나쁜 걸까. p34 m의 삶은 m의 것. 무언가로 살아가기를 강요하고 강요받는 세상에 살고 있는게 아닐까. 

 <모자>라는 단편도 몽상적이다.  얼음을 가열하면 물로 변해버린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모자가 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황정은의 소설속에서는 그 역시 당연한 일이다. 언제 어떻게 모자로 변할지 모르는 아버지를 위해 모자가 안착할 수 있도록 곳곳에 못이 필요하다. 아버지를 모자로 인식하고 싶은 진실이 있는지 모른다. 초라한 아버지,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아버지. 

 <무지개풀>무료한 일상, 풀에 가득 물을 담아두면 행복할 것 같은 생각은 p와 k를 지치게 한다. 거실을 꽉 채운 풀로 일상은 불편해지고 주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거실에 한가득 물을 받아두면 어떻단 말인가, 사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공동 물세를 생각해 밤 새 물을 퍼나르는  p와 k.  우습기도 하며 씁쓸하기도 하다. <오뚝이와 지빠귀> 속 기조와 무도는 또 어떠한가. 자신을 제외하고 커져만 가는 세상을 살고 있는 기조, 그 놀라움에 오뚝이처럼 멈춰버리는 시간이 잦아져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게 된다.  가정폭력을 다룬 <소년>,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은 고통과 슬픔을 각기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억눌린 분노를 이겨내려 안간힘을 쓰는 아이,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 

 동물을 관리하는 인간이 있고 동물을 관람하는 인간이 있고 동물을 관람하는 인간들을 관리하는 인간이 있고 그런 인간들에게 통제되고 영향받는 소수의 동물들이 있는 곳. 압도적인 인간의 영역, 그게 동물원이야. 동물원의 동물들이 어딘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야. p85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커다란 동물원일까. 말하는 동물이 될 수도 있고, 모자가 되기도 하고, 오뚝이가 되기도 하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물원.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는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아니, 사실은 슬프다. 우리 모두도 그들처럼 외로움에 지쳐 환상 속 곡도처럼 실제로 말하는 고양이 같은 존재를 필요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1편 소설엔 뚜렷한 관계도 없다. 두루뭉술하게 그려놓았다.  부부로 보이지만 p와 k이거나, 애정 담긴 이름을 붙여준 인물들이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황정은소설 속에서는 당연한 일인 양. 무던함을 지나 무기력하고 뚱한 작가의 표정과 너무도 닮았다고 할까. 그리하여 딱딱하게 굳어진 이 시대의 슬픔마저도 그녀의 글을 통해 만나니 말랑말랑하게까지 느껴진다. 이제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에서 내릴 시간이다. 황정은, 그녀의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기다린다. 입장권을 살 준비는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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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9-03-02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자목련님 축하드려요. :)

자목련 2009-03-02 19:41   좋아요 0 | URL
뒷북소녀님, 고맙습니다. 사실, 넘 좋습니다. ㅎㅎ

프레이야 2009-03-0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리뷰 당선 축하드려요^^
슬픔이 말랑말랑하게 느껴진다는 말이 참 좋아요. 뭔가 위로를 주는 느낌이랄까.

자목련 2009-03-07 11:32   좋아요 0 | URL
혜경님, 고맙습니다.황정은이 이끄는 환상의 세상, 마냥 취하게 되지 않는 것은 그 안에서 슬픔을 만나서 그런가 싶어요. 주말, 즐겁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