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첫 만남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첫 떨림 정도는 간직할 수 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누군가는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어린 시절 집에는 양장본의 세계문학이 있었다. 아마도 영업사원의 화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구매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였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아버지는 상술에 약하고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셨다. 한 마디로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세계 전집 가운데 <수레바퀴 아래서>, <유리알 유희>를 기억한다. 읽지는 않았다. 어린 나는 읽지 않았지만 두 명의 언니 중 한 명이 읽지 않았을까 싶다.
동화책에 대해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명절이었는데 고모가 책을 사 왔는데 내가 아닌 사촌에게만 주었다. 나는 그 책이 갖고 싶었는데 내가 울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받았다. 나의 기억과 고모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 아무튼 그런 내가 모여서 책을 좋아하는 내가 되었다. 그리고 국어 선생님.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나의 선생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유일한 나의 은사님.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사이라고 농담을 건네는 선생님.
올여름 카톡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보내신 기프트 카드였다, 책과 함께 행복하라는 메모도 있었다. 잊고 있다가 책을 주문했다. 책을 고르는 고민은 즐겁다. 읽고 싶은 책이 많고 궁금한 소설도 많아서 어렵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윤고은의 『테니스나무』를 골랐다. 『찌니주의보』는 다른 서점에서 주문했는데 어쩌다 장바구니에 담겼다가 결제를 했고 취소를 하려니 벌써 출고 작업 중이었다. 창비의 요즘 표지는 정말 별로인데, 출판사는 모르는 걸까. 여름 독서가 아닌 가을 독서, 어쩌다 보니 추석 선물이 되었다. 연휴에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책은 언제나 좋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까운 이가 있는 건 더 좋다. 친구들 가운데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알고 기억하는 이가 있는 것도 좋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에게는 책을 선물하는 일은 즐겁다. 내가 고른 책,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을 함께 읽고 그것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나누는 것도. 가끔은 내가 좋아는 걸 무작정 내 맘대로 선물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 꽃, 티. 요즘엔 티가 많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좋아한다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은 즐겁다.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는 일,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 주는 일, 좋아하는 것을 응원하는 마음이 곁에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하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맘껏 이야기할 수 있는 여기 알라딘은 친근하고 좋은 공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