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의 소설 『새해 연습』을 생각한다. 소설의 주인공 홍미가 올해를 살아가며 하는 다짐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올해는 늘 새해를 위해 연습하는 해였다.’ 새해를 위한 연습이라는 말이 괜히 안쓰러우면서도 이상하게 좋았다. 새해를 기대하거나 소망을 품지 않으면서도 연습할 수 있다는 말이 좋았던 것 같다. 연습하고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해가 바뀌면 나이의 뒷자리 숫자가 바뀐다는 것, 큰 의미는 없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과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을 생각할 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하루에 대한 감사, 그 무사함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는 삶이 되었다. 재미나는 게 없다는 친구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재미가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내가 조금 쓸쓸했다. 그러면서도 미래에 대한 불안은 사라지지 않아서 며칠 전에는 자동이체로 빠져나가는 연금에 대해 문의를 했다. 해지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납입 만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우선은 그냥 두기로 했다. 금액이 적은 이유가 가장 컸다. 적어도 너무 적었다. 납입액이 적으니 당연한데 그걸 간과했다.


그건 그렇고, 새해를 위해 나는 클레어 키건의 단편집 『남극』을 샀다. 땡스투는 원서로 읽고 있는데 번역본이 나왔다는 건조한 분께. 커피도 샀다. 주문한 커피의 맛은 나쁘지 않았다. 나쁘지 않다는 건 좋지도 않다는 것. 그래도 좋은 쪽으로 약간은 기울고 있다는 것. 이제는 알라딘 커피가 제일 맛있는 커피가 되었으니까. 싱가포르에 다녀오면서 작은 언니가 사 온 드립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기대가 크지 않다.





다시 추워진다고 한다. 올해 12월은 작년과 비교하면 평온한 달이다. 어떤 일이든 최악의 것과 비교하면 괜찮아보인다. 그러나 최악은 다른 최악을 불러오기도 하고 살아가는 일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사는 일이니까. 현재를 기준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쿠팡의 개인정보는 유출되었지만 비밀번호만 바꾸고 탈퇴는 못했다.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다.


내년 12월에 기억할 올해 12월은 어떨까. 이것은 내년을 기대한다는 뜻인가. 기대하지 않는 것보다 기대하는 일이 좋은 것일까. 새해를 연습하는 올해는 이틀 남았고 나는 이런 시를 읽는다.

남은 이야기들은

지워지거나 모르거나

겨울이었지

무슨 말을 덧댈 수 있을까

우리 늘 모호했는데 유독

당신의 정맥,

유난히 추웠던 겨울 집에서

우리 무언가를 보았는데

어떤 이야기들은 선반 위에 둔 흐린 바깥이고

휘파람 같은 거라고

안경 알을 닦을 때도

파르스름한 정맥이,

그런 슬픈 그물에 걸려 다시 넘어지더라도

조금 근사하고 싶어

붉은 이상한 저녁에

우린 서로 미래를 돌려주었는데

사랑은 뒤를 봉합하지도 않고 사라지곤 했지

참 추운 날이야

새들의 부리가 작아졌어

이 딱한 부재를 이월하는 상자 밖으로 버리며

이것은

혼자라는

없음에 대한 일

(「그런 12월」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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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5-12-3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작년 12월에는 우리 국민 모두가 너무 큰 일을 겪었었죠.
말씀하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들의 무사함에 대해 저도 생각해보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