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되지 않는 엄마 - 임경섭의 2월 시의적절 14
임경섭 지음 / 난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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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자고 나는 가정의 달 5월에 이 책을 읽게 되었을까. 작정했을지도 모른다. 조금 울고 싶어서, 엄마가 그리워서 말이다. 『이월되지 않는 엄마』란 제목에서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곁에 없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올 거라는 것을. 그렇다고 마냥 우울하거나 슬픔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그런 내용은 아니다. 매일매일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는 삶, 그 곁에 머무는 죽음, 부재로 존재하는 사랑에 대한 기록이라 하겠다. 여느 ‘시의적절’ 시리즈가 그러하듯이.


시인 임경섭의 『이월되지 않는 엄마』는 2월 1일부터 2월 28일까지의 기록이고 그날 그날 느끼는 감정을 시, 에세이, 짧은 소설로 표현했다. 엄마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은 2월 1일, 그날은 매년 2월의 첫날을 지배할 것이다. 삶이란 그런 것이니까. 어느 해 어느 날, 어느 달은 그렇게 온통 한 사람으로 채워진다. 그런 의미로 나에게 5월은 아버지의 달이다. 이 책을 읽을 때는 엄마만 생각했는데, 엄마 없이 살아온 시간의 설움만 떠올렸는데 막상 글을 쓰는 지금은 아버지가 생각난다. 5월이라 그런 가 보다. 5월이라서. 5월에 돌아가신 아버지.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된다고 했던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영영 부정하고 싶다. 빨리 고아가 된 나는 그 자리를 고모와 형제가 대신해 주었다. 병원에 입원하고 수술하고 회복할 때 당연한 듯 고모에게 부탁했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는 건 고모 때문이다. 전화를 안 받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지 노심초사 걱정한다. 그런 고모의 사랑에 한 번씩 짜증을 내기도 했다. 분에 넘치는 줄도 모르고. 지금도 안부를 먼저 묻고 살피는 작은아버지께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무엇이고 자식은 무엇일까. 죽는 순간까지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 좋은 시인이 되라는 마지막 인사를 남긴 저자의 엄마.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죽음과 이별은 얼마나 다행인가. 이른 나이에 엄마를 떠나보낸 슬픔과는 별개로 나는 그런 이별이 부러웠다. 내게 엄마의 죽음은 통보였고 아버지의 죽음은 사랑한다는 말을 전할 수 있었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는 듣지 못했다.


2월 내내 글을 쓰면서 저자는 돌아가신 엄마와 함께였을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특별한 한 달, 언제나 그립지만 2월은 더욱 그러했을 터. 엄마가 좋아하는 꽃 ‘마가렛’으로 시작하는 봄, 엄마가 만들어준 기억하며 음식을 만들고 가만가만 그해 2월의 시간을 떠올린다. 짧고도 긴 2월을 그의 곁에서 보낸 이들도 함께.


시간이 흐르면서 빈자리가 문득문득 느껴질 때야 비로소, 그 시간이 켜켜이 쌓여 큰 무게로 돌아올 때야 비로소 진짜 슬픔이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무리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는 걸 몸소 깨달을 때야 비로소 진정한 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의 엄마에 대한 추념은 끝이 없거니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져만 가는 것이다. 어쩐다. 나는 엄마의 죽음에서 한 발짝도 빠져나오지 못했다. (170쪽)





정말 슬픔은 그렇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보내고 웃고 떠들고 맛있는 걸 먹고 잘 지내다 문득 슬픔에 목이 멘다. 서러워서 울고 만다. 아, 나는 엄마가 없구나. 나는 엄마랑 이 풍경을, 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구나 실감하는 것이다.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 낡고 흐린 사진 속 서툴게 웃고 있는 엄마의 표정만이 남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의 엄마는 어린이날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날 그 친구를 생각한다. 나와 똑같이 고아가 된 내 친구. 우리는 모두 그렇게 부모를 잃고 남겨졌고 살아간다. 농담처럼 죽음을 말하면서 정작 가까운 이의 부재를 두려워한다. 부재를 인식하지 않으려고 잊고 살다가 무슨 날에 화들짝 놀란다. 어버이 날인 내일도 그런 날이다.


나는 이제 카네이션을 준비하지 않는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엄마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린 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달아드리긴 했을 텐데. 항상 할머니가 먼저여서 할머니만 드린 것 같기도 하고. 할머니 보다 엄마가 먼저 돌아가셔서 그 후에는 할머니와 아빠에게만 드렸으니.


눈부신 5월이 쓸쓸하다. 아프다. 아버지와 이별한 그해 5월과 엄마와 이별한 그해 6월의 통증이 몰려온다. 시인의 2월이 그러하듯 나의 5월이 그렇다. 다가올 6월이 그렇다. 이월되지 않는 감정이다. 이월될 수 없어서 영원히 곁에 머물러 차곡차곡 쌓인다.


그해 2월은

도무지 이월되지 않고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은

잊히지 않고

기어코 여기까지 와 있다

그해 2월이,

아팠던 그해 2월이

죽어 사라지지 않고

여기까지 같이 와 보란듯이 옆에 서 있다

원망스러운 그해 2월이,

그해 2월만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이런 글을 쓰지도 않을 것 같은 나로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런 2월이

다른 길로 가지 않고 온전히 내 옆에 살아 있다

죽지않고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다

내가 죽을 때까지 죽지 않을 것 같아서

천만다행이다 ( 「2월」 전문, 176~177쪽)그해 2월은


울다 지쳐 잠들었던 밤, 멍하니 보낸 시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순간들이 저만치 달아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나는 살아서 이렇게 새로운 5월을 맞이했고 엄마의 부재를 실감한다. 산다는 게 이런 거냐고 묻는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서, 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엄마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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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5-05-07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의 인생은 왜 이리 슬플까요. 이별하고 사라지고...자목련님 글이 이 화창한 봄날에 더욱 슬픕니다.

자목련 2025-05-08 11:41   좋아요 0 | URL
그 모든 것이 자연의 섭리일 텐데. 가끔 부정하고 거역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해요.

페넬로페 2025-05-07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월은 그리움의 달도 되는 것 같아요.
한편으론 언젠가 모두 가야할 곳이라는 생각에 시니컬해지기도 하고요^^

자목련 2025-05-08 11:43   좋아요 1 | URL
5월은 특히 그래요. 어버이 날인데, 마음이 쓸쓸해요.
모두 가야할 곳. 김혜자가 나오는 드라마처럼 그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