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김기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쉽게 읽고 보는 세상이다. 화면에 모든 걸 담을 수 있다고 믿는다. 화면을 삭제하고 다음으로 넘기고 화면을 저장한다. 좋으면 바로 구독하고 아니다 싶으면 해지한다. 구독과 해지를 반복한다. 모든 게 소비되는 세상. 잘못된 뉴스와 정보를 그대로 믿기도 한다. 쏠림 현상으로 이어지다 파국을 맞기도 한다. 신중하게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고 빠르게 변한다. 모든 게 속도전이다. 김기태의 단편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읽고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첫 번째 단편집에 수록되기 전 단편 「보편 교양」을 읽고 이렇게 쓰다 말았다. 아무튼 김기태의 「보편 교양」좋았다. 소설의 주인공 곽은 고등학교 교사로 자유선택으로 고3에게 '고전 읽기'를 가르친다. 고심해서 고전 목록을 정하고 나름 교실을 꾸미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그러나 예상했듯 수업에 집중하는 아이는 거의 없다. 대부분 대놓고 잠을 자거나 다른 과목 문제집을 푼다. 특별할 것 없는 고3의 수업이라 볼 수 있다. 학부모의 민원이 들어오기 전가까지 말이다. 민원을 넣은 건 수업에 집중하는 은재의 아버지였다. 은재가 마르크스를 읽고 있다는 이유였다.


다시 읽은 「보편 교양」도 나쁘지 않았다. 자신만의 가치와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무너지지 않으려는 안간힘 같은 게 느껴졌다. 이렇게 쓰고 보니 이 소설집 전체의 분위기가 그랬다. 어떤 안감힘. 그러나 그게 전부였고 한계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이 소설집에서 김기태는 뭔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려고 애쓰는 모양새다. 정작 독자에게는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니면 그런 모호함을 구축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신춘문예 당선작인 「무겁고 높은」과 비슷한 결이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작가에게는 당선을 목표로 쓴 소설이 있고 쓰고 싶은 소설이 있을 것이다.


리얼리티 프로그램과 함께 데뷔한 아이들의 음악과 그들의 팬 이야기를 다루면서 그 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세상의 모든 바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등장하는 연애 프로그램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롤링 선더 러브」, 유행과 인기가 아닌 소신 있는 음악으로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의 이야기를 다룬 「로나, 우리의 별」 은 현재 우리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보여준다. 나름의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단편이지만 그게 전부다. 물론 작가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바다」에서는 군중 심리나, 혼란스러운 정체성 같은 것, 「롤링 선더 러브」에서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말이다. 세태를 풍자하면서 뼈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개인적인 생각이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고민과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표제작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을 보면 더욱 그렇다. 같은 중학교를 다닌 진주와 니콜라이는 선생님에게 봉투를 받는 학생이다. 봉투를 열지 않아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알 수 있다. 내야 할 돈을 내지 않았다는 그런 내용. 진주와 니콜라이는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고 사회적 도움이 필요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한 학생이었다. 진주는 마트에서 일하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어른이 되었고 니콜라이는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다. 우연한 만남으로 밥을 먹고 술을 머시고 서로를 소비하며 살아간다. 연애 비슷한 것, 혹은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그런 사이. 중학교 시절 친하게 지내라는 선생님의 말은 어른이 된 그들에게 당도한다. 농담처럼.


“우린 친한 사이야.”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 142쪽)


그런가 하면 계획표대로 세상이 원하는 모범생처럼 사랑하는 한 남자의 인생이 끝내 전락하고 말 것 같은 예감을 던지는 「전조등」이나 기묘한 반전이나 스릴러가 아닐까 기대하는 「태엽은 12와 1/2바퀴」은 냄새만 풍길 뿐 정작 향도 없고 어떤 맛도 전하지 못한다.


과거에는 젊은 광부들이 넘쳤지만 지금은 카지노가 들어선 폐탄광촌의 고등학교 역도 선수 송희의 이야기 「무겁고 높은」는 여운이 많이 남았다. 역도 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송희가 역도를 들게 된 이유. 우연히 마주한 역도에서 훈련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송희에겐 성공이나 1등 수상이 아닌 오직 자신만의 목표가 있었다.


송희는 들어보고 싶다기보다 버려보고 싶었다.( 「무겁고 높은」, 245쪽)

버리려면 들어야 했다. 버리는 것과 떨어뜨리는 것은 아주 달랐다. (「무겁고 높은」, 249쪽)


버리기 위해 들어야 하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차마 버릴 수 없어서 주저하다 무겁다는 이유도 외면하는 것들도 많을 것이다. 놓쳐서 떨어뜨리는 게 아닌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들어서 버릴 수 있는 삶. 자신 있게 버릴 수 있는 인생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송희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울 수 없다.


SNS상에서 다들 좋다고 하는 소설도 나에게 별로일 수 있고 내가 추천하는 소설도 상대에게는 그저 그럴 수 있다. 어쩌면 소설 읽기도 구독과 비슷해서 쉽게 구독하고 해지하고 다른 소설을 구독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설을 소비하는 세상이라는 걸 이제야 알아차렸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Falstaff 2025-03-18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점점 제 선택이 옳았다는 쪽으로..... ^^;;

잠자냥 2025-03-18 17:4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저도 그런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