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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길 (반양장) - 박노해 사진 에세이,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리커버 개정판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24년 11월
평점 :
새해를 맞고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아쉬움뿐이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무엇이 그리 아쉬운가. 무엇이 그리 부족한가. 아니다. 모든 게 감사하다. 지금 이 시간에 여기 있다는 것. 무탈하게 지내왔다는 것. 속 시끄러운 일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마다 다음으로 이어왔다는 것.
지난 12월은 모두에게 특별한 달이 될 것이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탄핵 가결, 촛불 집회.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모두가 뜨거웠던 순간. 앞으로의 과정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 고민의 시간을, 누군가 고민을 끝내고 선택의 시간을, 누군가 이전과 다른 삶으로 나갈지도 모른다. 박노해의 사진 에세이 『다른 길』에서 이곳이 아닌 그곳의 삶, 다른 삶을 마주하며 나의 삶을 생각한다.
우리 인생에는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무언가가 있다. 나에게는 분명 나만의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을 잠시 잊어버렸을지언정 아주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지금 이대로 괜찮지 않을 때, 지금 이 길이 아니라는 게 분명해질 때, 바로 그때, 다른 길이 나를 찾아온다. 길을 찾아 나선 자에게만 그 길은 나를 향해 마주 걸어온다.
나는 알고 있다. 간절하게 길을 찾는 사람은 이미 그 마음속에 자신만의 별의 지도가 빛나고 있음을. 나는 믿는다. 진정한 나를 찾아 좋은 삶 쪽으로 나아가려는 사람에게는 분명, 다른 길이 있다.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9쪽)
박노해의 첫 사진에세이 『다른 길』이 출간 10주년을 맞아 리커버 개정판이다. 이미 많은 이들이 만났을 것이다. 141컷의 사진과 박노해의 짧은 글이 전하는 묵직한 울림.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검색이나 지도를 통해 찾을 수 있는 곳이 아닌 직접 가야만 알 수 있는 삶이다. 거룩하고 숭고한 삶의 조각들이다. 태고의 시간이 여기 존재할 것 같다.
이곳 소농들은 동그란 자연의 곡선을 깨지 않는다.
기계가 아닌 물소와 사람의 손으로만 비탈을 깎고
찰흙을 다져 층층이 백 수십 결의 계단논을 창조해냈다.
그 어느 신전보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
후손에게 물려주는 최고의 문화유산이 아닌가.
세계의 토박이들은 오늘의 도시 문명과 인류의 밥상을
떠받치고 있는 피라미드 밑돌과도 같은 존재이다.
이 지상의 작고 힘없는 가난한 이들이 무너져내리면
지금 우리가 딛고 선 세계는 여지없이 무너지리라.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건축」, 27쪽)
사진 속 계단논을 보면서 이제는 관광지가 된 어느 지역을 떠올린다. 신성한 노동으로 삶을 이어온 사람들, 여전히 삶의 터전인 그곳을 향하는 마음과 태도는 조금 달라져야 할 것이다. 내가 직접 보지 못했기에 치열한 뜨거움을 알 수 없다. 어느 삶이든 다르랴.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이야말로 가장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소박하지만 가장 풍요로운 삶, 넉넉함을 잃어버린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각자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루에 가장 즐거운 시간은 짜이가 끓는 시간.
양가죽으로 만든 전통 풀무 마시키자로 불씨를 살리고
갓 짜낸 신선한 양젖에 홍차잎을 넣고 차를 끓인다.
발갛게 달아오른 화롯가로 가족들이 모여들고
짜이 향과 함께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탐욕의 그릇이 작아지면 삶의 누림은 커지고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 (「짜이가 끓는 시간」, 99쪽)
141장의 사진에 모두 붙잡았지만 유독 오래 머문 사진이다. 보는 순간, 고요한 평화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분쟁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느껴진다. 아름다운 자연의 질서만이 존재할 것 같은 곳. 막강한 힘이 이곳을 보호하고 있다는 느낌. 그곳에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열망까지 품게 된다.
높고 깊은 산맥에 소중히 숨겨진 가쿠치 마을.
흰 만년설과 푸른 하늘과 붉은 흙집과 노란 나무가
저마다의 색깔로 빛나는 가을날.
남자들은 산 위에서 야크를 치고 땔감을 구하고
여인들은 양털을 자아 옷감을 짜고 빵을 굽는다.
따사로운 가난마저 고르게 빛나는 마을.
단순하고 단단하고 단아한 작은 흙집.
마음까지 환해지는 내가 살고 싶은 집. (「내가 살고 싶은 집」, 143쪽)
언제부턴가 개인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나를 생각하고 나를 위하는 삶이 잘못은 아니지만 함께의 가치가 얼마나 위대한가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힘을 더해 벽돌을 찍어내는 사진과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것을 얻는 우리는 다르다고 말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우리에겐 비교의 삶이 아니라 연대와 공존의 삶이 필요하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모두 모여
마을 공동으로 사용할 흙벽돌을 찍어내는 날.
자신의 노동이 빛나는 날이기에 웃음꽃이 핀다.
인간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결핍이 아니다.
자신의 생명 에너지를 다 사르지 못하고
자기 존재가 아무런 쓸모가 없어지는 것,
‘잉여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고통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이 아무 의미 없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잉여 인간’은 없다」, 177쪽)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생각에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진이었으면 좋겠다. 쓸모없는 건 없다고, 존재 자체로 가장 소중하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말이다. 때로 막막하고 온통 깜깜할지라도 그것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 모르겠다. 경이로운 자연을 품은 삶의 모습을 보며 나는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때로는 사람이 깃발이 되는 것이다.’ 이 문장이 고맙고 눈물겹다.
멀리 야크떼를 바라보고 서 있는 청년의 천막집에
티베트 불교의 상징물인 롱다가 펄럭인다.
롱다는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마치 초원을 달리는
티베트 말과 같다 하여 ‘바람의 말馬’이라 불린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의 등뼈를 곧게 세우고
깃발도 없이 길을 찾아가다 보면
때로는 사람이 깃발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깃발」, 343쪽)
책의 처음으로 돌아간다. 삶이라는 현장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버티는 이들에게 박노해가 건네는 위로는 마음의 다른 길로 안내한다. 마음의 길이라는 소망을 품고 찾아 나선 이에게는 지표가 될 것이다. 떠나지 않는 이에게도 만족하며 감사하는 소중하고 아름다운 길이 생긴 것이다.
인간이기에 ‘어찌할 수 없음’의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인간으로서 ‘어찌할 수 있음’의 가능성에 다해 분투하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며 감사와 우애로 서로 기대어 사는 사람들. (「그 길이 나를 찾아왔다」, 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