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울 때에야 보이는 것들은 무엇일까. 눈을 감아봐야 알까. 아니면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일까. 어쩌면 마음의 평정을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제목만 보고 잠언 비슷한 글이 아닐까 짐작했다. 제목 때문에 에밀 시오랑이 생각나기도 했다. 생에 마지막 2년의 기록을 담은 에세이로 모두 9편의 짧은 글을 만날 수 있다. 아내와 함께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 1940년~1941년에 쓴 글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신기하게도 그가 살아온 시대는 80년 전인데 마치 지금의 우리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사는 건 결국 다 같은 것일까.


그는 말한다. 절망과 비탄이 가득한 삶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실패와 좌절 대신 웃음과 사랑을 바라보며 그래야 한다고. 그래서 이 짧은 9편의 이야기는 아프면서도 위로받는 기분이고 냉철하면서도 뜨겁다. 맨 처음 만나는 「걱정 없이 사는 기술」은 물질만능주의를 살면서 항상 뭔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누가 봐도 초라한 행색의 청년 ‘안톤’은 가진 게 없다. 그러나 정작 안톤은 걱정이 없다. 자신이 가진 기술을 타인에게 나누고 돈이 아닌 필요한 것들로 받는다. 아름다운 순환이라고 할까.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면 그만이다. 그런 마음은 최악의 인플레 사태에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나에게 돈이란」으로 연결된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 돌아보고 깨닫게 한다.


삶의 연속성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돈의 실패보다 더 강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우리는 비록 돈에 실패했지만, 삶의 용기와 기쁨을 잃지는 않았다. (「나에게 돈이란」, 42쪽)


3년은 편히 살 수 있는 거액의 돈뭉치를 내고 빈 오페라 티켓을 샀던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거라는 슈테판 츠바이크. 석탄 부족으로 난방이 되지 않아 코트를 입고 따닥따닥 붙어 앉은 관람객. 음악가의 훌륭한 연주와 가수들의 아름다운 노래가 전하는 감동. 돈이 줄 수 없는 기쁨과 만족을 알려준다. 돈을 좇는 삶이 아니라 돈에서 자유롭고 돈이 아닌 삶의 가치를 생각하라고.


나는 돈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내 삶의 지배자가 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지울 수 없는 교훈을 배웠다. 우리의 진정한 안전은 가진 재산에 있지 않고, 우리가 누구고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달렸다. (「나에게 돈이란」, 44쪽)


존경하는 로댕의 작업실에 방문하고 그의 집에서 본 로댕의 놀라운 작업 열정에 반한 「영원한 교훈」도 흥미로웠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프랑스 혁명사를 읽다가 발견한 사소한 일화에 대한 것이다. 루이 16세가 콩코르드광장에서 처형되는 극적인 날, 광장과 지척인 센강에서 수많은 낚시꾼이 평소와 다르지 않게 낚시를 하고 있는 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의 통찰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가 지녀야 할 그것이다. 우리가 살고 만드는 역사. 삶이란 무엇이며 역사란 무엇인가.


직접 겪어본 사람만이 역사를 진정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나는 모든 역사책이 센강의 낚시꾼에 관한 그날의 사소한 일화를 빼놓지 않고 다루기를 바란다. 우리는 현재 매일 역사 속에서 교훈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센강의 낚시꾼」, 53쪽)


이 시대의 대다수는 역사가 아니라 언제나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센강의 낚시꾼」, 54쪽)


슈테판 츠바이크의 완벽한 문장으로 빛어낸 훌륭한 이야기는 짧고 강렬한 글에 담긴 심오한 울림은 오래 곁에 머문다. 그래서 한번에서 끝나지 않는다. 분량이 짧기도 했지만 좋아서 두번 읽게 된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을 읽으면서 히라오 마시히로의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가 생각났다. 닮은 듯한 제목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건 다 같지만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니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규범과 도덕이 필요하다.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를 혼란에 빠진다. 정의가 사라진 사회, 무질서한 사회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학습했다고 할까. 그럼에도 우리 삶에서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나’의 필요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으니까.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에게는 윤리학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도덕과 윤리는 공기와도 같습니다. 눈에도 안 보이고, 있는 것이 당연하며, 딱히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없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공기가 없으면 우린 바로 죽을 것입니다. 도덕이 없으면 바로 죽지는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갈 수 없습니다. 반대로 지금 내가 인간으로서 온전히 살아가고 있다면 이미 우리 주변에는 도덕, 윤리가 작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32~32쪽)


윤리는 무엇이며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 막연하게 다가오는 질문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개인의 윤리는 자유, 사회의 윤리는 정의, 친밀한 관계의 윤리는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분류하여 강의한다. 윤리의 기본 원리를 12개이며 3개의 영역에서 세분화하여 4개로 설명한다. 정의와 윤리철학에 대해 이론적 내용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실험, 소설, 게임, 정치에서 어떻게 윤리가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가장 대표적이고 강렬한 사고실험은 이렇다. ‘버튼을 누르면 1억 엔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선가 모르는 사람이 죽는다면 버튼을 누르겠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처음에는 단순하게 1억 엔인데 누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 죽음을 모른척할 수 있을까.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니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하면 다른 누군가가 버튼을 누르고 그 누군가의 죽음이 바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나는 모두 개인이고 내 위치에서만 생각하면 끝나는 게임처럼 보이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도 남에게도 좋지 않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 이것이 윤리이고 정의가 아닐까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상대도 할 수 있고 상대가 해도 되는 일은 나도 해도 된다는 것, 바로 상호성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혼자가 아닌 사회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관계는 무척 중요하다. 나 개인으로 존재하면 그만이라 여길 수 있지만 개인고 개인이 연결된 사회에서 개인은 나이면서 동시에 상대이고 결국은 우리라는 사실이다. 나 자신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관계의 중요한 시작이라는 것이다. 쉬우면서도 어려운 명제다.


자유라는 것은 나에게는 권리가, 남에게는 의무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로에게 모두 해당하니 남에게는 권리가 나에게는 의무가 있다는 뜻도 됩니다. 나의 권리는 타인의 의무와 세트입니다. 의무를 지키면 나의 자유는 제한되지만, 그것은 나의 권리를 즉, 나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124쪽)


80년 전 슈테판 츠바이크의 글에서 전하는 긍정과 사랑이 정의와 윤리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어디에 가치를 두어야 할까 하는 문제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이 모인 사회의 윤리는 그럴 수 없다. 사회 윤리는 모두에게 공통적인 것이어야 하니까. 저자는 그것을 균형을 맞추는 일이라 말한다. 개인, 사회, 친밀한 관계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 어렵지만 우리가 찾아야 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정의 자체가 윤리의 일부이며 사랑과 자유도 윤리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원했던 윤리는 이 모든 것들의 균형을 맞추는 것입니다. 이것들 중에 하나가 튀어나와 균형을 잃지 않도록 방지하는 일입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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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힐 2024-11-12 1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시대의 사람들은 역사가 아니라 오직 자신의 삶을 산다‘ 구절에 공감이 됩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란 사람이 어떤 사람이지 궁금해 졌습니다. 자목련님의 좋은 글 감사 합니다. _()_

자목련 2024-11-13 16:07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이었어요. 현재의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게 신기했고요.

달자 2024-11-13 0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느강 낚시꾼의 일화는 특히 많은 울림을 남기네요. 좋은 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4-11-13 16:09   좋아요 0 | URL
다른 이야기도 좋았지만 말씀처럼 그 일화는 여운이 오래 남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