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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평점 :
아무렇지 않은 척 거짓말을 한다.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한 번 더 물어봐 주기를, 정말 괜찮으냐고. 어느 날은 비밀을 말하고 싶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을 쏟아내고 싶다. 어떤 마음은 거짓말이 되고 어떤 말은 침묵이 된다. 김애란의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속 고등학교 2학년인 소리, 지우, 채운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한다. 진실을 털어놓고 싶은 채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소리,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는 지우.
세 아이의 곁에는 엄마가 없다. 소리와 지우의 엄마는 돌아가셨고 채운의 엄마는 아빠를 찌르고 감옥에 있다. 채운의 아빠는 죽지 않았고 채운은 전학을 오고 이모집에서 지낸다. 전학을 온 학교에서 채운은 자기소개를 하면서 한 아이를 보고 놀란다. 사고가 있던 그 밤, 그곳에 있던 아이였다. 지우였다. 지우도 채운을 알아봤다. 엄마가 일하던 갈빗집에 부모님과 함께 온 행복해 보였던 아이. 채운의 가정은 지우가 꿈꾸던 모습이었다. 아빠와 이혼한 엄마는 지우를 키우며 힘들게 살았다. 그리고 사고로 죽었다. 하지만 지우는 의심이 된다. 엄마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까 봐. 지우는 엄마의 애인 선호 아저씨와 살지만 떠날 계획을 세운다. 반려 도마뱀 용식이와 살 공간을 마련하면 떠날 것이다.
채운의 집은 지운이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빠는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폭군이었다. 사고가 나던 날도 그랬다. 그 사고로 아빠기 죽기를 바랐다. 아빠가 살아나서 진실을 말할까 두려웠다. 채운을 위로하는 건 반려견 뭉치였다. 덩치가 큰 뭉치만이 채운의 가족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뭉치의 발을 잡은 소리가 뭉치와 많이 놀아주라고 말한다. 소리의 말을 들은 얼마 후 뭉치는 죽었고 채운은 소리에게 아빠를 한 번 만나달라고 부탁을 한다. 요양원에 있는 아빠가 정말 좋아지고 있는지 채운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리는 친구들에게 이상한 애란 말을 듣는다. 그림을 그리는 소리는 기이한 경험을 한 후 타인과 손을 잡기를 피한다. 자연히 친구들과 멀어진다. 그러니 지우가 연락을 해서 놀랐다. 당분간 용식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소리가 말하고 싶은 비밀은 손을 잡으면 죽음이 보인다는 것이다. 죽음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아픈 엄마의 손을 잡고 바라기도 했던 마음이라고 소리는 말하고 싶다.
소설의 제목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담임 선생님이 만든 자기소개 게임이다. 5가지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일,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이어야 한다. 채운, 지우, 소리가 하고 싶었던 진짜 거짓말은 무엇일까. 아니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을 무엇일까. 아직 돌봄이 필요하다고, 엄마의 부재를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잘 모르겠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를 원했던 건 아닐까. 만화 카페에 자신의 이야기를 단편 만화로 그리는 지우처럼. 공교롭게 채운과 소리는 그 카페에서 만화를 보고 지우라는 걸 알게 된다.
채운, 소리, 지우는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였지만 채운과 소리, 소리와 지우, 지우와 채운이 서로를 의식하고 연결된다. 세 아이는 서로에게 거짓을 말하는 동시에 진실을 말한다. 용식이를 맡기고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는 지우는 소리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소리는 채운의 아버지의 손을 잡았지만 건강해질 거라고 말한다. 채운은 그날 밤 지우가 목격한 게 무엇인지 묻지 못한다.
때로는 가벼운 농담이나 거짓말을 건네는 사이도 필요하다. 지우는 선호 아저씨가 그랬으면 싶다. 그러면 아저씨에게 거짓말에 담긴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 아이 모두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아간다. 채운, 지우, 소리도 어찌할 수 없는 삶이라는 걸 안다. 세 아이는 너무 빨리 삶의 거짓과 진실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더 안쓰럽고 아프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어른이 되면 다른 삶이 펼쳐진다고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저마다 다른 상처를 만나고 오랜 시간 통증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말해줄 수도 없다. 자기소개처럼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며 삶에 대해 단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이라는 변수투성이를,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무조건 희망을 건넬 수는 없다. 어쩌면 소설 속 세 아이는 나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이야기와 다를 테지. 언제고 성큼 다가와 우리의 빰을 때릴 준비가 돼 있을 테지. 종이는 찢어지고 연필을 빼앗기는 일도 허다하겠지. 누군가 집을 떠나 변해서 돌아오는 이야기. 지우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알았다. 하지만 그 결말을 잘 믿지는 않았다. 누군가 빛나는 재능으로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몰입되고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이야기로 여기지는 않았다. 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 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232쪽)
그럼에도 김애란은 소설을 통해 삶이라는 거짓투성이 속에도 진실이 반짝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게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질문을 던질 이가 있다는 걸 말이다. 유연하고 명랑한 그런 게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며 성장하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