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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 두건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3
엘리스 피터스 지음, 현준만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숨겨졌던 욕망은 한순간에 튀어나온다. 숨겨온 게 아니라 게 같은 자리에서 자라왔기 때문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가 이때다 싶은 타이밍에 움직인다. 캐드펠 수사 시리즈 세 번째 『수도사의 두건』 속 슈루즈베리 성 베드로 성 바오로 수도원의 로버트 부수도원장도 다르지 않았다.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내전 당시 스티븐 왕의 편에 서지 않았던 헤리버트 수도원장의 권한이 정지되고 회의 참석차 런던으로 떠났으니 모든 권한은 로버트 부수도원장에게 있었다. 때마침 일어난 살인 사건 수사도 말이다.
사건은 이랬다. 자신의 장원을 수도원에 양도하고 남은 생을 수도원에서 보내기 위해 며칠 전 수도원으로 이사한 영주 거베이스 보넬의 죽음이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보넬이 보낸 문서를 헤리버트 수도원장이 승인하지 않고 떠났다는 것. 사건의 범인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보넬의 죽음으로 장원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도 관련자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캐드펠 수사에게 중요한 건 보넬이 독살당했다는 것인데 자신이 기른 약초가 살인에 이용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약초의 이름은 ‘수도사의 두건’으로 우리에게 투구꽃으로 익숙하다. 보넬이 먹은 음식은 로버트 부수도원장이 그에게 보낸 것으로 같은 음식을 먹은 부수도원장은 괜찮으니 범인은 보넬의 가족이나 하녀, 하인 가운데 한 명이었다. 당시 부엌에는 하녀 알디스와 하인 앨프릭과 메이리그가 있었다.
메이리그는 보넬이 하녀 사이에 낳은 자식이었으나 상속과는 무관했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보넬의 의붓아들 에드윈으로 장원을 수도원에 양도한 것에 앙심을 품어 살해했다는 정황이다. 평소에도 보넬과 사이가 좋은 건 아니었다. 집을 떠나 매형의 가게에서 목수 일을 배우고 있었다. 누가 봐도 충분한 가설이었다. 더구나 도망치듯 달아났으니까.
보넬이 식사를 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에드윈이 음식에 독을 넣을 시간은 없었다. 그리고 캐드펠의 진료소에서 약초를 훔쳐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 약초의 효능을 아는 사람 말이다. 캐드펠의 작은 오두막에 있던 약초는 캐드펠과 진료소를 담당하는 수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진료소를 방문한 누군가가 범인일 가능성이 컸다. 억울한 범인을 만드는 일은 없어야 했다. 하지만 로버트 부수도원장는 에드윈을 잡아 사건을 종결하고 싶었다.
『수도사의 두건』에서 흥미로운 건 보넬의 아내 리힐디스와 캐드펠의 관계였다. 그렇다. 리힐디스와 캐드펠은 과거 연인이었다. 이 사실을 들은 로버트 부수도원장은 캐드펠에게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한다. 이제 사건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이가 있으니 바로 『시체 한 구가 더 있다』에서 캐드펠과 대등한 관계에 있던 휴 베어링이다. 사리분별이 가능한 그는 사건을 맡은 행정장관을 대신한 책임자였다. 행정장관은 왕의 회의를 참석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오. 힘이 든다고, 진실에 눈을 감은 채 편안한 것에만 안주해서는 안 되지 않겠소?” (238쪽)
캐드펠은 사건 수사에 관여할 수 없지만 아픈 수사를 돌보는 일은 가능했다. 수도원 밖으로 나가 정보를 구하기에 충분했다. 누가 진료소에서 약초의 효능을 알고 몰래 훔쳤을까. 보넬의 죽음으로 장원을 소유할 가능성이 생겼을까. 보넬의 장원의 지리적 위치가 중요했다. 잉글랜드와 웨일스 간 접경지대의 가족 관계는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통혼도 많았다. 리힐디스의 아들 에드윈은 보넬이 어떻게 죽은 지도 모르는 어린 소년이었고 약초가 담긴 약병에 대해서도 몰랐다. 범인이라면 약병을 버렸을 것이고 약초를 따르며 흔적을 남겼을 게 분명하다. 몸소 체득한 지식과 지혜와 연류를 더한 캐드펠의 수사는 이번에도 완벽했다.
엘리스 피터스는 12세기 중세 모습을 치밀하고 상세하게 그려낸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안타까운 마음을 배제하지 않았다. 인간이 어떤 짓까지 벌이는지,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말이다. 『수도사의 두건』은 촘촘하게 잘 짜인 역사추리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