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 제3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단요 지음 / 사계절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혼돈의 세상을 살고 있다. 삶의 기준은 무너지고 당장 오늘만 버티겠다는 생각이 만연하다. 혼란의 시대를 구원할 무언가를 기다린다. 구원자의 등장이거나 신의 계시가 있다면 믿고 따를 기세다.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하지 않을 것 같다. 단요의 장편소설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의 수레바퀴처럼. 그것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다. 인간의 정수리에 동그란 수레바퀴가 떠올라 정의를 상징하는 청색과 반대의 부덕을 상징하는 적색 영역으로 이분된다. 모두가 각자의 정의와 부덕을 보여줄 수 있다. 청색을 지닌 채 죽음을 맞이하면 천국, 반대는 지옥이 결정된다.


수레바퀴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변한다. 덜 쓰고 나누고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 그것은 진정한 마음일까. 아닐 것이다. 종교와 철학에 대한 관심은 늘어나고 수레바퀴의 지배를 받는다. 정의와 부덕을 누가 결정하는지 모른 채 사람들은 자신의 머리 위 수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보편적인 개념의 도덕과 정의는 시시때때로 바뀌고 범죄 이력이 없는 이의 수레바퀴에도 적색이 존재한다. 혼란을 기회로 삼은 이들은 곧 등장한다. 수레바퀴 컨설팅 회사다. 대학 입시처럼 정의와 부덕을 컨설팅하는 세상이라니.


‘나’는 수레바퀴가 출현한지 1년 되는 시점에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인터뷰하는 르포작가로 수레바퀴를 대하는 태도와 생각을 들려준다. 수레바퀴의 등장을 반기는 윤리학자, 수레바퀴에 적대적인 수학과 교수, 수레바퀴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불법 도박업체를 운영하는 재력가. 죄를 지은 이를 변호해야 하는 변호사는 직업을 포기해야 하는가. 작가는 소설의 형식을 빌린 토론의 장에 독자를 참여시킨다. 당신의 머리 위에 수레바퀴가 등장한다면 어떻게 행동할 거냐고. 이런 시대에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겠냐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소설과 어떻게 다르냐고.


자신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살다가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가, 수레바퀴를 따라 청색을 유지하려 애쓰다 천국에 갈 것인가. 그렇다면 천국은 존재하는가.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온다. 이 시대의 정의는 무엇이며 우리에게 정의를 구현할 의지가 있는가. 수치와 테이터로 모든 걸 표현하는 세상, 인간적인 감성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하는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추억하며 살 수도 없고 다가올 미래의 불안을 껴안고 사는 인간 군상의 모습.


우리는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시간이 완전히 잘려나간 시대에 살게 되었다고. 어쩔 수 없이 존재하는 사람들은 시간과 함께 서서히 사위어가는 중이라고. 음울하지만 조금은 낭만적이다. (169쪽)


내일은 오늘보다 초라할 것이고 모래는 다시 내일보다 볼품없을 것이다. (186쪽)


신선하고 기발한 발상이라고 감탄하고 치부할 수 없다. 극단적인 상상이라고 말하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좋아질 거라는 믿음 대신 모든 게 망해가고 있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작가는 살고 싶은 세계가 있다면 우리는 변화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저 상상을 조금 더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고 스스로 느끼고 깨우치기를 바란다. 정의와 도덕이 사라지는 시대, 청색과 적색 이분법적인 색의 등장은 아닐지라도 뭔가 바뀌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수레바퀴 같은 존재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미래가 유토피아는 아닐지라도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는 디스토피아이기를 말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3-10-18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작가의 다른 소설 ‘다이브‘를 읽어본 적이 있어요. 오늘날 기후위기와 죽음, 의료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했는데 이 소설도 현재의 위기를 작가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싶네요.

자목련 2023-10-20 18:01   좋아요 0 | URL
언급하신 기후, 죽음, 의료가 작가가 관심을 갖는 분야인 것 같아요.
작가의 시선 끝에 닿은 삶이 결코 소설에 국한 된 게 아니라는 게 서글프고요.

레삭매냐 2023-10-18 1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와 도덕이 실종되었다는 말에
왜 이렇게 공감이 가는지요...

오늘보다 나을 내일 혹은 모레를 기대
하기가 난망하다는 현실이 오늘을 사는
이들의 비애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절
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자목련 2023-10-20 17:59   좋아요 0 | URL
소통은 단절되고 불통으로 향하는 미래가 무섭습니다.
어디선가 다른 형태의 수레바퀴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