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이 돋는다 - 사랑스러운 겁쟁이들을 위한 호러 예찬
배예람 지음 / 참새책방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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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끈적한 여름, 서늘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바야흐로 공포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일상 곳곳에 도사리는 공포를 피하는 대신 그걸 즐기며 소화한다. 공포, 스릴러, 호러는 더위를 날리는 여름에 국한된 장르가 아니라 인기 장르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호러 에세이 『소름이 돋는다』는 기발하고 신선하다. 어린 시절 귀신을 본 경험이나 담력 공포 체험은 익숙하다. 귀신의 실체 유무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고 할까.


호러를 좋아하는 겁쟁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배예람의 『소름이 돋는다』는 밤마다 소파에 앉아 있는 귀신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영화, 책, 게임을 통해 공포와 호러를 일상과 접목시켜 들려준다. 귀신을 본 어린아이는 귀신이 무섭지 않아서 가만히 옆에 앉아보았다고 한다. 귀신을 보고도 동요하지 않은 어린아이가 결국엔 이런 에세이까지 쓰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여름이면 생각나는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 속 귀신이나 흥행 소재로 등장한 좀비, 괴물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입체적으로 살아나지만 그 이야기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귀신의 경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영혼이 많고 좀비는 영생을 꿈꾸며 부활을 준비하는 인간이라 할 수 있다. 대표로 괴물이라 칭하는 존재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확인물체가 아닐까.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은 대부분 모르는 것이 많지만 귀신에 대한 생각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아랑 설화를 시작으로 영화 <아랑>과 드라마 <아랑 사또전>으로 이어지는 글은 처녀 귀신을 통해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잘 그려낸다. 억울했던 사연의 주인공에서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으로 시대에 따른 인식의 변화를 설명한다.


귀신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곧 현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뜻이다. 귀신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들이 결국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억압과 차별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귀신의 이야기는 곧 사회적 약자, 소수자 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가 단순한 재미를 뛰어넘어 설명할 수 없는 쓸쓸함과 슬픔을 안겨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73쪽)


괴물을 현실 밀착형(돌연변이, 인간의 욕심으로 등장하는 괴물), 의심 유발형(어느 순간 괴물로 변하는 인간) 코스믹 호러형(인간이 대적할 수 없는 존재)로 분류하여 설명해 주는 부분은 나처럼 호러와 공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에게도 흥미롭고 유익하다. 알고 보면 더 재미있으니까.


공포의 소재로 등장하는 집, 우주, 물을 소재로 한 영화는 직접 보지 않아도 공포를 어떻게 다루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꿈이었던 우주여행이 현실이 되었지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의심할 수밖에 없는 우주는 공포의 공간이라는 것, 더 이상 가장 안전한 곳이 아닌 집, 이렇게 쓰고 베란다 창고 속에서 뭔가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살짝 무섭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사람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스치고 지나는 사람들, 인사를 나누는 이웃들, 친근한 공간에서 그들이 때로 무서운 존재로 돌변하는 일은 뉴스 속에서만 등장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층간 소음, 주차 문제, 헤어진 연인이 스토커가 되어 괴롭히는 일. 사소하고 민감한 것 같지만 걷잡을 수 없는 공포로 돌변하는 일. 우리 일상을 둘러싸고 있는 공포다.


이상적이라는 건 알지만, 나는 그 모든 범죄와 사건이 그저 괴담으로 남을 수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에서,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모두가 안전한 가운데 괴담을 읽으며 소름이 돋는 감각을 즐기고 싶다. (165쪽)


책을 읽으면서 귀신들의 눈에만 보이는 호텔 이야기 <호텔 델루나>, 산 자와 죽은 자를 연결시키는 좀비를 만나는 김중혁의 소설 <좀비들>, 최근 가장 즐겁게 시청하는 <악귀>가 떠올랐다. 호러를 좋아한다면, 괴담 게시판을 찾는 이라면 『소름이 돋는다』 란 친절한 호러 안내서가 더욱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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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7-26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사람이 제일 무서운 현실. 밤에 그것이 알고싶다 본 날엔 발을 이불 밖으로 못 내밀고 잡니다....😥

자목련 2023-07-27 10:50   좋아요 0 | URL
요즘 뉴스에 나오는 사건, 너무 무서워요. 독극물이 든 우편물, 묻지마 살인, 예고 살인.
그럼에도 의지하고 사랑할 존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믿고 희망하는 삶...

잠자냥 2023-07-31 1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언젠가 자전거 여행 중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해가 지고 나서 어두운 길을 달려야만 했던 때가 있었는데요. 귀신은 차라리 낫다, 제발 사람만 나오지 마라 하면서 페달을 열심히 밟았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ㅎ

자목련 2023-08-03 17:42   좋아요 0 | URL
어둡고 낯선 곳에서는 사람이 더 무서울 것 같아요. 사람 무서운 뉴스는 그만 보고 싶은 날들이에요,ㅠ,ㅠ

은오 2023-08-04 00:10   좋아요 0 | URL
잠자냥님.. 자전거 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