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8
나쓰메 소세키 지음, 노재명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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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가까운 가족, 친구에게 영향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독립적인 존재다. 사회적 관습과 문화에 길들여지는 동시에 반항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다. 끊임없이 변화를 꿈꾸고 창조하는 존재, 그리하여 내면은 항상 들끓는다. 나쓰메 소세키는 그 내면을 주목한다. 『그 후』를 읽으면서 확실해졌다. 『산시로』, 『그 후』, 『문』을 차례로 읽으면 좋을 것 같지만 딱히 그 순서를 지키지 않아도 괜찮다. 읽어보니 그렇다.


『그 후』란 제목이 『산시로』 그 후의 이야기를 뜻하는 의미도 있지만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 후』가 의미하는 바는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 맞이하는 특정한 시기를 지나 그 후가 아닌가 싶다. 이제 『그 후』의 주인공을 만나보자. 주인공 ‘다이스케’는 대학을 졸업하고 독립해 본가의 도움을 받아 하녀와 서생을 두고 생활한다. 몇 번의 휴학을 반복하며 대학과 대학원을 다닌 후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요즘 청년들의 시선에는 아마도 팔자 좋은 사람으로 비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이스케는 일을 하지 않는다. 일을 하려고 하지 않고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서생의 눈에는 공부를 많이 하는 주인으로 보인다. 본가에서도 다이스케에게 일을 하라고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 선을 보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기를 바랄 뿐이다. 아버지와 형이 하는 사업에 도움이 되는 그런 가문의 사람과 만나기를 주선한다.


다이스케는 결혼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 가문을 위한 조건을 내건 만남이 싫다. 유유자적 산책을 하고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 생각이 닿는 대로 상념에 빠지는 게 좋다. 그런 다이스케 앞에 대학 시절 친구가 등장한다. 대학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로, 다른 친구 스가누마가 죽고 그의 여동생과 결혼해 다른 지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3년 만에 도쿄로 돌아온 것이다. 히라오카와와 그의 아내 미치요의 결혼을 성사시킨 게 바로 다이스케였다. 도쿄에서 만난 부부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미치요는 아이를 잃고 건강도 좋지 않았고 히라오카는 새 직장을 구해야 했다. 경제적으로도 빚이 있어 어려움에 처한 상태였다. 대학 시절 절친이었던 친구의 부부에게 상대적으로 풍족한 다이스케는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사실 다이스케는 미치요에게 친구의 부인이 아닌 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예상했듯 사랑이다. 그 마음은 막 시작된 것이 아닌 대학 시절부터 지속된 것이었다. 그럼에도 히라오카와의 결혼을 주선했다.


소설은 본격적으로 다이스케의 어지럽고 복잡한 마음을 보여준다. 소세키는 미치요를 향한 다시스케의 요동치는 마음의 변화를 놓치지 않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의 아내를 도와주려는 마음부터 미치요를 만나기 위해 히라오카의 집에 방문하고 히라오카와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토론을 하고 부부의 관계가 어떤지 탐색하는 다이스케의 모습은 때로 안타깝고 때로 딱하다. 동시에 본가에서 결혼을 하라는 압력을 받아 심적으로 힘든 상태다. 그렇다고 아버지의 뜻을 거스를 용기도 없다. 적당히 타협하고 적당히 시간을 벌자는 게 다이스케의 생각이자 전략이다. 그러나 미치요를 향한 마음이 확고해지면서 본가에 자신의 의견을 전해야 할 때가 왔다.


미치요에게도 마찬가지다. 집안을 돌보지 않고 아내 미치요를 홀로 내버려 두는 히라오카가 아닌 지신을 택할 수 있냐고 확인해야 했다. 집안을 위해 집안에서 정해주는 이와 결혼할 수 없는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말이다. 상대가 유부녀이며, 친구의 부인이라 말할 수 없으니 그 마음이 지옥인 것이다. 그러나 다이스케는 자신이 원하는 것, 내면에 충실하기로 한다. 놀랍게도 그는 히라오카에게 자신과 미치요의 관계를 말한다. 진짜 대단한 다이스케다. 히라오카의 반응도 만만치 않다. 알겠다고 말하며 미치요의 몸 상태가 나아지면 보내겠다고.


누가 봐도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관계는 뻔뻔한 불륜이고 순수함을 찾을 수 없다. 소세키는 그 사랑을 고결한 순백의 사랑으로 표현한다. 비가 오는 날 백합으로 방을 장식하고 미치요를 자신의 집으로 부른다. 백합은 미치요와 다이스케에게 중요한 꽃으로 과거 둘 사이의 감정을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빗속에서, 백합 속에서, 다시 살아난 과거 속에서 순수하고 평화로운 생명을 발견했다. 그 생명 어디에도 욕망은 없었다. 이해관계도 없었다. 자신을 압박하는 도덕도 없었다. 구름과 같은 자유와 물과 같은 자연이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행복했다. 따라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260쪽)


비는 여전히 거침없이 세찬 소리를 내며 내렸다. 두 사람은 비로 인해, 빗소리로 세상과 분리되었다. 같은 집에 사고 있는 가도노와 할멈으로부터도 분리되었다. 두 사람은 고립된 책 백합 향기 속에 갇혀 있었다. (263쪽)


세상의 질타, 걱정 근심, 본가와의 단절은 다이스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마음과 본질, 그것이 중요했다. 『그 후』를 담백하고 아름다운 연애소설로 읽었다. 다른 이들은 1900년대 일본 시대의 경제와 근대화, 산업화에 집중해서 읽을 수도 있다. 다이스케와 주변 인물이 나누는 대화로 소세키가 생각하는 일본의 모습을 읽을 수 있으니까. 소세키는 다이스케라는 인물을 통해 보여준 인간의 내면과 행복의 조건이 무엇인가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안정된 직장, 풍족한 경제력, 시류를 따라 사는 일은 누가 봐도 행복한 삶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모두에게 똑같지 않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뜻대로 나갈 때 진실한 행복을 느낀다.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그것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몫을 감당해야 한다. 다이스케가 그러했던 것처럼. 예측할 수 없는 그 후의 삶까지 끌어안고 감당할 자신 말이다.


여름에 읽으면 더 좋을 소설이다. 고혹적인 백합을 곁에 두고 비라도 내리는 날이라면 더욱 완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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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3-05-27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 다양한 의미를 읽어낼수 있다는 말씀 동의합니다. 또 읽게되면 저도 다르게 읽을것 같아요~

자목련 2023-05-30 09:09   좋아요 1 | URL
조금 더 일찍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레삭매냐 2023-05-30 1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읽는다고 수배해
두었는데... 못 읽고 있네요.

6월에는 다시 소선생을
읽어야지 싶습니다.
여름에 읽으면 좋은 소설
이라고 하니 기대가 됩니
다.

자목련 2023-05-30 11:57   좋아요 1 | URL
쏟아지는 빗줄기를 보면서 혹은 휴가에 읽어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