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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걷는 소설 ㅣ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백수린 외 지음, 이승희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4월
평점 :
우정도 사랑과 같아서 친구 사이에도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발생한다. 친구를 닮고 싶은 마음, 나보다 다른 이랑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라도 발견하게 되면 질투를 한다. 선택을 해야 할 때 내 의견을 지지하고 따라주기를 바란다. 청소년기의 우정은 더욱 그러하다. 가족과 부모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고 공유하는 친구는 막대한 힘을 지닌 존재다. 우정을 테마로 한 『함께 걷는 소설』에서 백수린, 이유리, 강석희, 김지연, 천선란, 김사과, 김혜진은 각양각색의 우정을 보여준다. 좋아하는 작가, 끌리는 제목의 단편을 먼저 읽어도 좋다. 백수린, 이유리, 김지연, 김사과의 단편을 다시 읽으면서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마음을 만났다. 친구가 전부였던 시절, 하나부터 열까지 알고 싶었던 마음 말이다.
백수린의 「고요한 사건」은 십 대에게 친구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잘 보여준다. 지방에서 서울로 이사를 온 ‘나’는 ‘해지’와 ‘무호’와 보냈던 시절을 회상한다. 어디에 사는지, 공부를 잘하는지 구분하여 친구들이 갈라졌다. 나는 재개발 주택에 살았지만 성적이 좋아서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진짜 친구는 같은 동네의 해지와 무호뿐이었다. 무호와 해지의 관계는 그들과 나의 관계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십 대의 우정은 영원할 거라 믿지만 시절 인연처럼 한 시절의 우정으로 끝나기도 한다.
해지에게 나는 그저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당시 나를 때때로 슬프게 했다. (「고요한 사건」, 26쪽)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말이다. 김사과의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에서 ‘이수영’은 대학에서 ‘한비’를 만난다. 평범한 이수영과 달리 한비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수영은 한비가 이끄는 세계에 매혹된다. 수영은 한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한비에게 수영은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수영은 둘 사이의 관계가 우정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와 다르게 나와 닮은 부분에 끌려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강석희의 「우따」에서 프랑스 파리의 명문 학교에서 만난 ‘나’와 ‘우따’는 인종차별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었다. 한국에서 온 나와 아프리카 출신인 우따. 대놓고 백인 학생들이 무시하거나 하지 않았지만 교묘한 차별을 느낄 수 있었다. 우따와의 만남, 우따가 일으킨 사건은 나를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현실과 타협하고 불의를 외면하려 할 때 우따의 편지를 읽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나간다.
더 나은 무엇이 되자. 그때 만나자. (「우따」, 98쪽)
친구는 이렇게 중요하다. 그래서 좋은 친구를 만나는 일은 어렵고 좋은 친구를 두었다면 성공한 거라 말하는 것이다. 좋은 친구를 만나는 일만큼 좋은 친구가 되는 일은 어렵고 중요하다.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잘못된 것을 고쳐주고 언제 어디든 함께 갈 수 있는 존재 말이다.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않는 나를 이해하는 존재도 친구뿐이다. 이유리의 「치즈 달과 비스코티」 속 돌과 대화하는 ‘나’와 애니메이션 <월리스와 그로밋>을 좋아하는 ‘쿠커’는 그런 친구다. 남들이 뭐라든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는 일, 그게 진짜 우정이라고.
김혜진의 「축복을 비는 마음」은 그런 공감과 연대로 이어진다. 어른의 우정에 대한 것이라고 할까. 10대, 20대를 지나 맺는 관계는 일로 시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설 속 ‘인선’과 ‘경옥’도 그러했다. 청소 일을 하는 ‘인선’은 신입 ‘경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을 잘 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인선은 그냥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경옥은 따지듯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이상한 건 경옥의 말을 인선이 오래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것이 경옥이 건넨 말 때문이라는 것을 인선은 나중에 알았다. 지금껏 들어본 적 없고, 듣게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 말을 자신이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한 번쯤 그런 말을 해 주길 몹시 바라고 있었다는 것을. 그럼에도 누구도 그런 다정한 말을 건넨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된 거였다. (「축복을 비는 마음」, 234쪽)
일에 소질이 있다고 칭찬하는 말이나 추가 수당에 대해 언급하는 일, 인선이 한 번도 듣거나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이다. 나를 인정하고 응원하고 격려하며 부당한 일에 대해 함께 나서는 이가 친구가 아니면 누구겠는가. 우정이 아름다운 연대로 확장된다는 걸 말하는 소설이었다. 친구가 곁에 있어 든든하다는 건 말할 것도 없이.
또래가 아니어도 성별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공통 관심사 하나로 우리는 친구가 된다. 어떤 이익을 바라지 않고 서로에게 기대어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존재. 『함께 걷는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사랑하는 친구들이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친구이었으면 한다. 우리들의 우정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살아가자는 마음을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