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 기자의 할 일, 저널리즘 에세이
김성호 지음 / 포르체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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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진 아나운서가 진행하던 프로그램 <저널리즘 토크쇼 J>를 챙겨보던 때가 있었다. 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포털에 올라온 기사를 대충 보던 나에게 <저널리즘 토크쇼 J>는 색다른 충격과 동시에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기자가 취재를 바탕으로 있는 사실 그대로 기사를 쓴다고 믿었던 나는 너무 순진했다. 우리가 읽고 있는 기사는 데스크나 광고주의 압력으로 원하는 방향으로 수정되기도 하고 아예 삭제되기도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 


독자의 기자에 대한 인식은 정의감 혹은 사명감 같은 걸 부여받은 직업군이라고 여기지 않을까. 그러나 정작 그들에게는 그저 직장인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파이낸셜뉴스> 기자로 6년간 일한 김성호의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는 기자의 일상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들려준다. 고백하자면 기사를 검색하거나 궁금했던 기사를 읽으면서 기자의 이름까지 읽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문학 관련된 기자의 이름과 대중문화 칼럼을 쓰는 기자의 이름만 기억한다.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는 기사가 어떻게 작성되고 어떻게 독자에게 전달되는지 그 과정을 과감 없이 들려준다. 기획하고 취재하고 진실을 보도하겠다는 기자의 마음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기사의 편집과 송고, 그에 대해 기자가 느낄 박탈감과 무기력이 서글프게 다가온다. 기자로의 신념을 지키는 일 대신 가볍게 내려놓은 일이 얼마나 쉬울까. 타사의 기사를 복사해서 그래도 기사로 내보내는 일, 광고를 교묘하게 기사(애드버토리얼)로 둔갑시키는 일, 남들이 다 쓰는 기사를 왜 쓰지 못하냐고 타박 받으면서도 자신의 글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수없이 많은 제보를 받고 그중에서도 얼굴을 꼭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제보자. 제보를 들으면서 기사가 되지 못할 거라는 알면서도 그 말을 끊지 못하는 시간. 그런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 사회에 많은 이들이 억울하고 속상한 것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이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가 기사가 될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까지 기사가 되지 않는다면 진실은 은폐되고 말 것이다. 


두려운 건 무책임함이었습니다. 저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가 생기고, 어쩔 수 없다는 듯 등 돌리고 도망치긴 싫었습니다. 시민의 ‘알 권리’에 기여하며 그로부터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기자의 자부심도 무적의 방패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129쪽)


저자가 가장 열심히 취재한 기자는 수술실 CCTV 사건이다. 뉴스를 통해 경악을 금치 못했던 사건, 대리 수술은 물론이고 오직 돈을 위해 수술을 감행했던 의사,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진실을 위해 모든 걸 거는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저자는 세상을 변화 시키는 일에 일조했다. 법을 만드는 일의 시작은 누군가의 작은 관심에서 시작된다는 당연한 사실과 그 바탕에 언론의 힘을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최정규의 『얼굴 없는 검사들』이 떠오르고 최근 드라마 <트롤리>에서 법을 개정하기 위해 언론의 힘을 등에 업어야 한다는 주인공의 대사도 생각났다. 


‘단독’이라는 말로 독자의 클릭을 유도하고 똑같은 기사지만 다른 신문사에서 다룬 기사를 모두 다루고 수정할 원고도 수정하지 않고 내버려 두는 기자의 글은 더 이상 독자의 클릭을 얻을 수 없다. 일, 직업, 직장인이라는 개념에서 기자는 자유로울 수 있을까? 기자가 아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기자 본연의 일에 대해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저널리즘이란 무엇일까 궁금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기자의 할 일과 독자가 좋은 기사를 읽고 응원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생각하게 만든다. 


기사는 독자에게 다가가 비로소 완성됩니다. 기자의 목표는 제가 공들인 기사가 마땅히 읽을 만한 이에게 읽혀 의미 있는 정보가 되는 겁니다. 좋은 기사와 좋은 독자의 만남이지요. 말하자면 쏟아지는 단독 기사의 홍수 속엔 언론의 절망과 희망이 모두 깃들어 있습니다. (226~227쪽)


나 역시 <단독>이란 말머리가 붙은 기사를 클릭하는 경우가 많고 기사의 제목만 보고 기사 내용을 읽지 않을 때도 많다. 포털에 구독한 언론사의 기사만 보게 된다. 내가 알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세상이라는 걸 알면서도 때로 그 모든 일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싶은 마음이 든다. 지난해 일어난 이태원 참사를 말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진실을 향한 기자의 취재가 멈추지 않기를 바란다. 수없이 많은 장벽이 있더라고 그 앞에 여전히 문을 두드리는 기자가 많기를 바란다. 


일반 독자에게도 좋은 눈이 필요하다.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란 책이 그 눈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막연하게 기자라는 직업군에 대해 혹은 기자 정신에 대해 궁금한 이들에게 현장에서의 하루하루를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 책은 훌륭한 교과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겨우 6년의 기자 생활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저자의 진실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을 읽는다면 달라질 것이다. 


기자는 남의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일입니다. 언제나 풀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귀를 기울이고 함께 돌을 던질 수는 있지요. 그런 직업이 세상에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차가운 세상에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직업이란 얼마나 귀한가요. (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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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오 2023-01-17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계해야할 책 영업사원이 여기 또 계셨네... 이 글 읽고 보관함에 넣었습니다. 😆

자목련 2023-01-18 11:31   좋아요 0 | URL
은오 님의 눈에 영업사원으로 보이다니 영광이에요!

서니데이 2023-02-07 2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2-09 10:35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