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삶을 살고 있다. 내적으로 외적으로 모든 게 불안하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는 세계의 것들에게 포위된 느낌이다. 내가 결심한다고 해서 거대한 환경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서 때로 절망하고 무기력에 빠진다. 그럴 때 신은 절대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신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그런 존재가 있다. 든든한 어른, 기도를 올릴 수 있는 믿음 같은 것 말이다. 그러다 인간은 왜 이리 나약한 존재인가, 알 수 없는 물음에 빠져든다. 


정말 오랜만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나를 둘러싼 세계와 내가 만드는 세계를 생각했다. 예전에 받았던 느낌과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어린 소년 싱클레어가 너무도 안타까웠다. 부모와 주변 어른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얻을 수 없어 하루하루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그를 그곳에서 탈출시키고 싶었다. 너무도 빨리 세상의 이치를 알아버린 소년의 복잡한 마음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기억 속 「데미안」은 그저 성장소설이었고 알에서 나와야 새로운 세계를 갈 수 있다는 그런 메시지로 남은 소설이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다른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건 더 나은 세계, 이전과는 같을 수 없는 세계를 갈망하는 간절함이었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혼란과 내적 성숙함을 헤세는 아름답고도 경이롭게 들려준다. 유년 시절 부모와의 관계, 학교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맺어지는 친구들과의 관계, 그 안에서 갈등하는 자아를 만난다. 누구나 겪는 느낌이고 누구나 지나온 과정이라기엔 싱클레어는 너무 빨리 세상을 지배하는 어떤 힘을 알아버렸다. 그건 데미안을 만났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나를 꿰뚫어보는 사람, 한 차원 높은 곳에서 사유하는 데미안. 그가 말하는 카인의 징표는 무엇일까. 


대학에서 싱클레어가 술에 취하고 방황하면서 끝내 도달한 그곳에는 데미안이 있었다. 그와 닿고자 하는 바람, 그건 자신의 내면에 닿고자 하는 것과 같았다. 알 수 없는 끌림, 꿈으로 나타나는 욕망, 그 모든 것을 통해 싱클레어가 원했던 건 데미안과 같은 세계를 바라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사회개혁을 위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소설 곳곳에 등장하는 신에 대한 생각들, 카인에 대한 해석은 편협한 세상을 향한 일침 같았다. 현재를 사는 우리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 말이야.” ( 「데미안」중에서)


물론 내가 생각하는 게 헤세가 전달하는 그것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 헤세의 소설과 에세이를 읽으면서 현재 우리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그러니까 코로나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것들이 겹쳐 보였다. 전쟁을 통해 그들이 얻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바라는 세상, 우리가 깨뜨리고 나아가야 할 세계는 과연 무엇일까.





『디 에센셜 헤르만 헤세』에 수록된 다른 단편과 에세이에서도 헤세는 그런 세계를 말한다. 알이라는 세계를 깨뜨려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 헤세가 경험한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특수 상황과 연결할 수 있지 않을까. 잔혹한 현실의 도피처 같은. 「전쟁이 두 해 더 계속된다면」이나 「남쪽의 낯선 도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다른 곳으로 사라질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전쟁이 두 해 더 계속된다면」 속 화자 ‘나’가 돌아온 고향은 낯선 체계로 가득하다. ‘나’를 맞이한 세계는 오직 문서와 서류로 증명되는 곳이며 죽음을 위해서도 허가증이 필요하다. 전쟁의 상흔은 인간의 고유성을 말살한다. 현재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상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반해 환상소설 「룰루」은 황홀하다. 여관 주인의 조카로 등장하는 룰루는 사라진 왕국 ‘아스크’의 공주 ‘릴리아’로 소설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오간다. 룰루는 사랑하는 시인과 그의 친구들은 헤세 자신과 그의 친구들이라 할 수 있다. 룰루를 향한 사랑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 그리하여 「룰루」는 한 편의 연극이나 뮤지컬로 다가온다. 어쩌면 헤세가 원하는 건 전쟁으로 폐허가 된 현실이 아니라 환상 속 아스크 왕국 같은 건 아니었을까. 물론 「룰루」는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그 후 겪게 된 전쟁을 생각하면 말이다. 


전쟁의 실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헤세가 견뎌야 할 사회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소설에서 작가를 감시하는 이가 등장하거나 시를 쓰려면 조합에 가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통해 정부나 권력의 통제가 있다는 걸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나로 살고자 하는 게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래서 헤세가 「데미안」에서 그토록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삶을 살아내고자 했던 건 아닐까.


모든 사람에게 진실한 직분이란 단 한 가지였다. 즉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것. (…) 누구나 관심 가져야 할 일은 아무래도 좋은 운명 하나가 아니라 자신의 운명을 찾아가는 것이며, 운명을 자신 속에서 완전히 굴절 없이 다 살아 내는 일이었다. ( 「데미안」중에서)


철학적인 헤세의 글은 에세이 「까마귀」에서도 만날 수 있다.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야곱이란 이름을 가진 까마귀 한 마리에 대한 그의 통찰은 놀랍다. 재주를 부리는 까마귀를 향한 보통의 시선과는 다른 헤세만의 시선. 모두가 사랑하는 까마귀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상상한다. 까마귀를 통해 삶의 근원과 죽음까지 사유한다. 결국 까마귀의 인생은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헤세의 글은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게 만든다. 아니, 지금 나에게 가는 길을 살고 있을까 묻는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저 가고 있는 건 아닐까. 그 길에 우리는 수많은 ‘데미안’을 지나쳐 온 건 아닐까. 여전히 알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조급함이 밀려온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나는 마주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온전히 직시할 때 진정한 나를 만나 불안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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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1-0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변의 모든 것들이 불안을
자극하지 않나 싶습니다.

되짚어 보면 불안 없이 살
수도 없겠지만요. 그냥 그
렇게 살아지는 게 아닌지
싶습니다.

책과 만나는 시간, 적어도
불안하지 않고 사유에 오
롯하게 집중할 수 있어 애
정하는 바입니다.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 공
감합니다.

자목련 2023-01-12 12:01   좋아요 1 | URL
맞아요, 더 편리해진 시간에 불안은 더 커졌어요.
뭔가에 빠지는 일이 그래서 더 필요하고 중요한 것 같기도 하고요!

서니데이 2023-02-07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3-02-09 10:35   좋아요 1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