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에 출발해 주말에 도착한 친구와 보낸 시간은 짧게 지나갔다. 왜 이리 좋은 사람과의 시간은 아쉽고도 아쉬울까. 11월의 선물처럼 다녀간 친구는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 시각 치킨과 맥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지 않는 친구가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는 오롯이 나를 위한 것이었다.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는 서로에게 취해 서로를 이야기했다. 우리가 취한 모든 것들이 좋은 건만은 아니었다. 친구에게 당도한 어려움은 나무늘보의 속도보다 더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나의 어려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나가고 있다는 것, 미세한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는 것, 퇴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친구가 집으로 돌아가는 주말의 도로 사정도 그러했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이동했다고. 막히는 차들과 피곤한 몸으로 졸음이 몰려와 쉼터에서 잠시 쉬어가야 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래도 그 시간과 공간을 지나왔고 통과했다.
주말 밤에 내린 비로 저만치 겨울이 빠르게 걸어오는 게 보이는 것 같다. 서울의 도로처럼 낙엽으로 어려움을 겪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 밤에 빗소리와 바람 소리는 약간의 공포를 조성했다. 그 밤이 지나고 찾아온 아침엔 따뜻한 것들을 찾게 된다. 끓여놓은 보리 차를 한 번 더 데워 마시거나 커피가 빨리 식을까 봐 손에 꼭 쥐고 온기를 느낀다. 친구와 맥주에 취했던 시간은 책으로 바뀌었다. 무언가에 취하는 날들, 깊어가는 가을에 취하기 좋은 건 이런 장편소설은 아닐까.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장편소설 『오, 윌리엄!』과 한은형의 『서핑하는 정신』은 두 권 모두 흠뻑 취하고 싶은 소설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와 처음 만난 『올리브 키터리지』는 무척 좋았던 기억이 있다. 실은 그 뒤로 그녀의 소설을 몇 권 더 읽었다. 아니, 읽으려고 시도했다. 이상하게 집중하기 못했다. 그래서 중도에 덮은 책도 있다. 그리고 『다시, 올리브』를 읽고 좋아하는 마음이 커졌다. 리뷰를 쓰려고 이런 글을 임시저장하기도 했으니 결국 리뷰는 쓰지 못했다. 언제 다시 읽고 리뷰를 쓸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오, 윌리엄!』은 리뷰에도 취하는 날들로 이어져야 한다.
어떤 소설은 소설이 아닌 지척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다시, 올리브』를 읽으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한 동네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안부를 물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행복을 생각한다. 좋은 소설이다. (임시저장의 일부)
문학동네와 한겨레 출판사로 화려하게 등단한 한은형은 장편소설 『거짓말』가 단편집 『어느 긴 여름의 너구리』 모두가 좋았다. 그녀의 상상력이 좋았고 당돌하면서도 단단한 문장이 좋았다. 그런데 그 뒤로는 이상하게 읽은 글이 없다. 소설, 산문 모두 그러했다. 이번 『서핑하는 정신』을 읽고 한은형을 향한 나의 마음도 어떤 결정을 내릴 것 같다.
짧게 내려앉은 햇살에 취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 햇살이 곧 사라질 거라는 걸 알기에 빨리 취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 좋은 글에 취하고 전부를 내던지는 몸짓의 붉은 단풍에 취하고,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에 취한다. 무언가에 취하는 날들, 무심하지만 다정한 당신의 마음에 취하는 중이라는 건 비밀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