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엉뚱하지만 소설가의 첫 에세이는 언제쯤 출판되는 게 좋은가 생각해 보았다. 독자에게 좋아하는 소설가의 에세이는 등단이나 활동 기간과 상관없이 언제라도 반갑다. 글이라는 건 같지만 그 주제가 다르니 기존에 만났던 글과는 색다른 분위기를 기대하게 된다. 시인이나 소설가의 산문을 떠올리면 어떤 작가는 주 종목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시나 소설보다 에세이가 더 좋을 때가 있다. 그리하여 그 작가의 에세이가 연이어 나오기도 한다. 어쩌면 그건 출판사의 마케팅일지도 모른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지 모르지만 김초엽의 소설이 아닌 에세이가 반갑다는 말이다.


SF 소설에 대한 경계심을 풀어준 작가라고 할까. 그러니 김초엽이 들려주는 SF 이야기, 책과 소설 작업에 대한 이야기, 쓰는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과 우연들』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어떻게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게 되었는지, 거기가 SF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와 그로 인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진솔한 진심이 담긴 책이다. 특히 내게는 SF에 대한 이해와 그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이 아닌 다양한 분야의 책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막연하게 작가라면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할 거라는 생각에 편협한 독자라는 답이 왠지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가 소개하는 책들은 제목만으로도 어렵고 난해한 내용이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 정작 그의 글로 통해 만나보니 궁금하고 직접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 권의 소설을 쓰면서 부수적으로 읽은 책도 많았다. 역시 쓰기 위해서는 읽는 일도 중요하구나 싶다. 과학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작가, 과학과 SF의 경계는 미묘하다면서도 그가 과학을 사랑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에세이에서 독자는 작가의 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한다. 김초엽은 이 책에서 자신의 소설 쓰기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는데 대학원 시절 직접 소설 쓰기 모임을 만들고 주말마다 그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때는 소설가가 되려는 생각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소설 작법에 대한 책도 소개하는데 한 번씩 소설을 쓰다가 난항에 빠질 때 참고를 하는 정도였다. 결국엔 쓰기는 누군가의 기술이 아니라 저마다의 방식이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그런 책들을 보면 든든한 마음이 드는 건 작가도 마찬가지.


에세이에서 김원영 작가와 『사이보그가 되다』를 쓰는 과정을 들려주는 부분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김초엽 작가가 후천적으로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첫 소설집을 읽고 한참 후에 알았던 나는 그가 기고한 글을 검색해 읽은 기억이 있다. 해서 초고를 거의 뒤엎는 과정, 편집자가 제시한 방향성, 기술발전으로 인한 장애의 미래를 다루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개인의 경험이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는지, 이 경험을 구조 속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나와 타인의 경험은 얼마나 같고 또 다른지, 그런 이야기까지 도달할 수 있어야만 개인의 경험은 사적인 서술에 그치지 않고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된다. (104쪽)


다른 의미일 수 있지만 최근 노벨문학상 수상을 한 아니 에르노가 떠올랐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자전적 글쓰기가 타인과 연결되어 어떻게 공감과 연대로 이어지는지 생각했다. 결국 쓴다는 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멋있는 일이구나. 작가라는 주체가 아니라도 말이다. 물론 작가에게 글쓰기는 보통의 독자나 일반인과는 다른 무게가 있겠지만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누구에게라도 찾아오니까. 그게 무슨 글이든 말이다. 


글 쓰는 일은 때로 세계 전체를 뭉쳐 내 손에 가져다 놓고, 과거와 현재 곳곳으로 나를 데려가 주는 빽빽한 거미줄 위에서 벌어지는 화려한 작업 같다가도, 때로는 나를 뚝 떼어내 좁고 작은방, 오직 책들로만 둘러싸인 방에 고립시킨다. 재미있지만 가끔은 심심하고 외롭고 심지어 고통스러울 때도 있다.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154쪽)


책과는 떼어놓을 수 없는 작가이기에 책방이나 읽은 책에 대한 부분은 빼놓을 수 없다. 이런 책을 사야지 하고 들어갔지만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엉뚱한 책을 손에 넣게 되는 일, 일이든 여행이든 어떤 지역을 방문할 때 작은 책방을 찾아 그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책을 사는 일. 책 목록에서 내가 읽고 좋았던 책(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이나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이유리의 『브로콜리 펀치』, 배명훈의 『안녕, 인공존재』)을 발견하는 일도 즐겁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새로운 책과의 우연한 만남도 즐겁다. 에세이의 제목처럼 말이다. 


어떤 책들이 우리를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세계로 이끈다면, 책방은 그 우연한 마주침을 가능하게 하는 통로다. 좀 더 많은 책이 그렇게 우연히 우리에게 도달하면 좋겠다. 우리 각자가 지닌 닫힌 세계에 금이 간다거나 하는 거창한 일까지는 일어나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조금 말랑하고 유연해질 것이다. 어쩌면 그냥, 그런 우연한 충돌을 일상에 더해가는 것만으로 충분할지도. (234쪽)


작가의 에세이는 그가 쓴 소설에 대한 궁금증과 이해를 위한 안내서 같은 역할을 한다. 무엇을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는지,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전체를 다 알 수는 없지만 일부라도 느낄 수 있기에 이미 읽었던 소설이나 예정된 소설 읽기를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준다. 김초엽의 소설로 SF 소설에 대한 친근감이 생긴 후 예전보다 SF를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책과 우연들』 통해서 읽고 쓰는 일의 기쁨이 커졌다. 


나는 내가 쓰고 싶었던 것이 유토피아 자체가 아니라 유토피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에 관한 것임을 알았다. 불가능에 맞서는 태도에 관한 것임을 알았다.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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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1-04 13: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이참. 이런 문장을 쓰시면 괜히 저는 감동을 받잖아요.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자전적 글쓰기가 타인과 연결되어 어떻게 공감과 연대로 이어지는지 생각했다. 결국 쓴다는 건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멋있는 일이구나. 작가라는 주체가 아니라도 말이다. 물론 작가에게 글쓰기는 보통의 독자나 일반인과는 다른 무게가 있겠지만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누구에게라도 찾아오니까. 그게 무슨 글이든 말이다.˝

무물론 저한테 쓰신 말이 아니라 아니에르노와 김초엽과 여타의 훌륭하신작가님을 포함해!!! ㅋㅋ. 글을 쓰는 우리 모두가 감동받을 문장이지만... 괜히 오늘 쓴 글도 생각나고 그래서 저는 그냥 감동을 받아 버리는 것이지요.

그럴 수 있을까요? 앞이 보이지 않을 때의 공감과 연대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저는 그래온 것 같아요. 어느 시기마다 분명 어떤 책이 있었고 어떤 문장이 있었습니다. 하하. 그래서 저도 그 경험들을 토대삼아 읽고 쓰는 모양입니다. 어쨌든 나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것. 멈추지 말아요, 우리! ​힘!!

자목련 2022-11-06 10:37   좋아요 2 | URL
♡♡♡♡♡♡♡
네, 우리는 그럴 수 있어요. 말씀처럼 어떤 시기에 어떤 책의 어떤 문장으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서로를 알지 못해도 서로를 만나지 못해도 서로를 응원하고 서로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 마음으로 우리는 조금씩 더 나은 삶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그것이 서툴고 애쓰는 몸짓일지라도 말이에요!

서니데이 2022-12-08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2-12-09 08:57   좋아요 1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