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소 첫번째 - 2022 시소 선정 작품집 시소 1
김리윤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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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으로 시와 소설을 만날 수 있으니 경제적이라고 할까. 마주 보고 앉아 오르락내리락하는 놀이 기구가 아닌 시와 소설의 만남이라니. ‘시소’ 프로젝트, 참 잘 지었다. 산뜻하면서도 신나는 제목이다. 이 책은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계절별로 하나의 소설과 하나의 시를 선정하여 만들어졌다. 문학과지성사의 ‘소설 보다 시리즈’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소설 보다 시리즈는 계절 별로 세 편의 소설을 선정하는 것과 다르게 시소는 시와 소설 각각 한 편이니 경쟁이 더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시소 첫 번째는 네 편의 시와 네 편의 단편 소설을 실었다. 8편의 작품의 소개와 함께 평론가와 작가가 나눈 인터뷰를 실었고 그 외의 이야기를 유튜브 영상으로도 만날 수 있다. 시인과 소설가가 직접 드려주는 시에 대한 어려움과 소설 쓰기 과정은 이 책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소설가(손보미, 이서수, 최은영, 염승숙)와 시인(안미옥, 김리윤, 신이인, 조혜은)모두 여성이다. 최근 단편집이나 수상집에서도 남성 작가의 작품을 만나기가 어렵다. 문학계의 흐름일까 짐작하면서도 아쉽다. 이서수의 「미조의 시대」는 이미 소설보다 시리즈에 선정된 적이 있다. 오랜만에 손보미와 염승숙의 단편을 만나 반가웠다.


손보미의 「해변의 피크닉」은 어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열한 살의 ‘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나는 여름방학마다 한 달간 부산의 할머니 집에서 지낸다. 부모님의 이혼 후 아버지가 죽고 난 후부터다. 엄마가 아닌 어머니라는 호칭과 거대 저택을 떠올리는 할머니 집의 묘사는 마치 80년대의 익숙한 영화의 한 장면과 묘하게 겹쳐진다. 며느리는 인정할 수 없지만 손녀는 받아들인다 기이한 논리하고 할까. 그런 어른들의 세계에서 열한 살 소녀가 느끼는 감정들, 도도한 할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주면서도 손녀라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는다. 어느 해 느닷없이 나타난 아버지의 이복동생 삼촌과 그를 향한 열한 살 소녀의 사랑, 삼촌을 무시하며 더욱더 손녀의 존재를 지키려는 할머니.


모든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의 순간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요. 긍정적인 방향은 아니더라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훼손되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모두 다 성장의 측면을 담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113쪽, 손보미 작가의 인터뷰 내용 중에서)


소설을 읽으면서 끝내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까. 자신이 예쁘지 않다는 사실에 절망하면서도 시시한 장난이나 거는 또래 남자아이들과 다르게 어른스러운 말을 쓰려는 아이의 당돌한 모습이 자꾸만 생각난다.


최은미의 「답신」은 형부의 폭력과 가스라이팅에 익숙해진 언니를 보호하기 위해 형부에게 상해를 가하고 감옥에 다녀온 이모가 연락이 끊긴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동생의 무죄를 증언할 수 없었던 언니의 삶, 그런 언니를 이해하기로 결심한 화자. 담담하게 언니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조카를 향한 영원한 사랑이 전해져 가슴 아픈 소설이다. 가정 폭력에 대한 사회적 개입과 제도 개선의 필요를 시사한다.


그런 점은 염승숙의 「프리 더 웨일」에서도 볼 수 있다. 남편이 사고로 죽고 혼자 아이를 키우는 수경은 교육 교재를 만드는 회사에 다닌다. 코로나 시국에도 긴급 돌봄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버틴다. 소설 안에 수많은 워킹맘, 싱글맘이 겪는 고충이 고스란히 담겼다. 마스크에 이름을 쓰고 줄을 달아 등원시켰지만 다른 아이의 이름이 마스크를 집에 온 아이를 보고 어떤 항의도 할 수 없는 현실, 어린이집에서 아이의 자리를 지켜야 하니까. 회사 내 수경의 자리도 위태로운 건 마찬가지.

부모가 된 순간 아이를 통한 기쁨보다는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불안이 더 크다. 작가의 경우 엄마가 된 이후 작품에서도 등장한다. 과거 염승숙의 소설에서 보았던 모호함과 신비로운 상상의 세계는 현실 감각이 되었고 시인 안미옥의 시 「사운드북」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안미옥은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시를 다 쓰고 나서 생각하게 된 것은, 이 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말한다기보다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그걸 계속 찾아가는 과정을 담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것이에요. 그리고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은 마지막 부분인데요. 사랑은 하고 싶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고, 보고 배워야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더 많이 보고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문장을 쓰게 된 것 같아요. (22쪽, 안미옥 시인 인터뷰 내용 중에서)

노래는 후렴부터 시작합니다


후렴에는 가사가 없어요

사랑 노래입니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모르겠어요 잘하고 있는 건지

마지막에 했던 말을 자꾸 반복합니다


주소도 없이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엽서도 있습니다


모든 일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나는 궁금합니다


(중략)


웃음은 슬프고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끝까지 머금고 있는 것이어서


깨어난 나는

웃을 얼굴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페이지를 열고

버튼을 누르면 노래가 나와요


사랑 노래입니다


그냥 배울 수는 없고요

보고 배워야 가능합니다


저는 많이 보고 있어요 ( 「사운드북」, 중에서)


사랑에 대한 시를 읽으니 사랑이 충만해지는 기분이다. 사운드북에서 나오는 사랑 노래가 내게로 전해진다. 사운드북을 누르는 아이의 모습과 그걸 사랑이 담긴 눈으로 지켜보는 모든 이. 어쩌면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의 근원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랑 때문은 아닐까.


한 권으로 시와 소설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앞으로 나올 시소의 시와 소설을 기대한다. 무한대까지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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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2-07 09: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와 소설이 같이 실리는 편집이라니, 신선하네요.

자목련 2022-02-07 12:52   좋아요 2 | URL
네, 문지나 문학동네와 차별을 두고 기획한 것 같아요.

서니데이 2022-03-08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자목련 2022-03-10 11:21   좋아요 0 | URL
^^*

강나루 2022-03-09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오늘 투표하는 거 아시지요^^

자목련 2022-03-10 11:22   좋아요 0 | URL
강나루 님 감사드리며 저도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thkang1001 2022-03-09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2-03-10 11:23   좋아요 1 | URL
항상 응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환한 하루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3-10 12: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