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고, 친애하는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1
백수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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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생각나지 않는다. 엄마가 언제 웃었을까? 어린 동생을 앞에 두고 나와 함께 동네 어귀에서 찍은 사진에서 엄마는 웃고 있었다. 앳되고 수줍은 미소였다. 몇 장 남지 않는 사진을 보면서 엄마의 이름을 한 번 불러보았다. 돌아가신 엄마는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어떻게 반응했을까?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딸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의 이야기 백수린의 『친애하고, 친애하는』를 읽으면서 나는 엄마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소설 속 어느 엄마와도 닮지 않는 엄마가 자꾸만 생각났다.

젖먹이를 떼어놓고 유학길에 오른 엄마 현옥 대신 인아를 키운 건 할머니였다. 인아에게 세상의 시작은 할머니였고 엄마는 조금 먼 거리에 있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확고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완벽하게 이룬 엄마에게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스물두 살의 휴학생 인아는 할 일도 없는 그런 존재였다. 그래서 엄마의 전화 한 통으로 아무것도 모르고 두 계절을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건 당연했다.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할머니와 친구분들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은 즐겁기만 하다. 지방대 교수인 엄마 현옥이 주말마다 할머니를 찾아와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이상할 뿐이다. 할머니가 폐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아는 알지 못했고 그래서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은 채로 하루하루 보통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인아는 잘 알지 못하는 할머니의 젊은 시절과 엄마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고 상상할 수 있었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사랑했던 마음과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대했던 사랑이 달랐다는 것, 할머니가 어린 아들을 사고로 잃고 힘들어했다는 사실, 할아버지와 할머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유학을 선택한 엄마, 그러면서도 엄마 현옥과 할머니 사이에 묘하게 흐르는 애증 같은 것에 대해 인아는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과 현옥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여성의 삶이 남성의 울타리 안에 있었던 할머니와 할머니와는 다른 세상을 향해 나갔던 당당하면서도 모질었던 엄마 현옥. 그런 엄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딸이었던 인아는 언제나 엄마가 어렵고 부담스러웠다. 인아의 여린 마음을 할머니는 가장 먼저 알아보고 가만히 안아주었다. 소설에서 할머니와 인아가 빈대떡을 부치는 장면을 읽노라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포옹의 온기가 전해진다.

“세상엔 다른 것보다 더 쉽게 부서지는 것도 있어. 하지만 그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그저, 녹두처럼 끈기가 없어서 잘 부서지는 걸 다룰 땐 이렇게, 이렇게 귀중한 것을 만지듯이 다독거리며 부쳐주기만 하면 돼.” (99쪽)

혼전 임신으로 어린 나이에 대학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혼을 선택했을 때 현옥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인아에게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도 좋은 삶이라 말하는 엄마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인아를 키우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 아니라 인생의 선택지는 많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테니까. 같은 여자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인아가 아이를 키우고 안정이 된 후 공부를 다시 하겠다고 말했을 때 서른셋의 나이가 젊고 예쁘다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 엄마 현옥이었던 것처럼.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엄마라는 걸 우리가 늦게 아는 것처럼 인아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로의 삶은 고단하고 힘들다. 일하는 엄마, 전업주부인 엄마, 엄마라 불리는 모든 존재의 삶은 그러하다. 하지만 그것을 알기까지 쉽게 인정을 하지 않는다. 소설에서 인아가 엄마 현옥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도 당연하다. 아픈 할머니를 보러 주말마다 오는 현옥이 할머니에게 엄마라 부르는 모습이 친근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도 그렇다. 엄마는 언제나 엄마로만 존재했을 것 같은 어리석음, 내가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모진 외침이 소설 속에서 돌고 돈다. 

기존의 여성 서사를 다룬 소설과 다르게 백수린의 소설이 특별한 건 남녀의 대립이나 갈등을 다루면서도 그것이 전부가 아닌 삼대 모녀를 통해 그들에게 이어진 섬세한 감성으로 어루만진다는 점이다. 여성의 결혼과 일, 그리고 육아에 대해 저마다의 다른 목소리로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이어진다. 할머니의 죽음과 동시에 화자인 인아에게 온 생명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듯 말이다. 인아 역시 생명을 품고 키우고 세상에 내놓고서야 엄마가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더 생각하고 그리워하며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할까. 연약하지만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타인인 아이를 향한 엄마의 마음. 그 사랑이 행간에서 느껴진다.

그러니 내가 그때 할머니의 상태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것이 그렇게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나이를 먹었다. 하지만 어쩌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역에서 환승하기 위해 계단을 바삐 올라가는 수없이 많은 이들의 뒤통수를 보거나 8차선 도로의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신호가 바뀌어 내 쪽을 향해 걸어오는 인파를 보다가 가끔씩, 나는 지구상의 이토록 많은 사람 중 누구도 충분히 사랑할 줄 모르는 인간인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우리가 타인을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대체 어떤 의미인 걸까? (26쪽)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는 완벽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할 것 같지만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의 경험만 봐도 다르다. 엄마라서 무조건 믿어주고 지지하고 이해해주는 건 아니다. 엄마와 나의 사고가 다를 수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백수 린이 소설에서 할머니 세대의 엄마들이 무시와 폭력을 참고 희생하는 것을 선택하면서 자신의 삶을 포기하는 것을 온전히 이해해할 수 없듯 현옥이 자신의 딸 인아의 삶을 처음부터 받아들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감정을 알 것 같은 시기와 맞나는 것이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사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때로 다투고, 미워하고, 애틋해하면서 말이다.

낡은 사진 속에서 젊고 어린 엄마가 웃고 있다. 엄마에게 기댄 나는 그때 엄마의 나이를 지났다. 깜짝깜짝 놀랄 일에 절로 나오는 ‘엄마’란 외침을 빼놓고는 엄마를 부르는 일이 없다. 엄마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나를 아프게 한다. 짜증을 내고 화를 내어도 괜찮다고 여겼던 엄마의 자리를 채우는 건 그리움뿐이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사이가 되지 못한 채 서둘러 나와 이별을 한 엄마가 보고 싶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나의 엄마. 당신의 이름을 가만히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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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8-30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름이 지나가는 8월 말 입니다.
많이 더웠던 8월 잘 보내셨나요.
자목련님, 기분 좋은 주말 되세요.^^

자목련 2019-08-31 11:46   좋아요 1 | URL
네, 아침 저녁으로 이제는 가을이구나 느껴요.
이럴 때 감기랑 친해지면 큰일이니 조심하시고요^^*

hnine 2019-08-31 0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대 모녀의 삶을 한 소설에서 다루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이 소설 궁금해지네요. 여성의 결혼과 일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새로운 서사를 지어낸다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고요.
읽으시면서 어머님 생각 많이 하셨겠어요.

자목련 2019-08-31 11:45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을 읽으면서 백수린 작가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제가 느낀 것과 작가가 의도한 것은 다르겠지만 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엄마와 함께 지금 이 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더위가 물러가고 제법 서늘합니다.평온한 주말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