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그림책
헤르타 뮐러.밀란 쿤데라 외 지음,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장희창 옮김 / 민음사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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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기회가 닿으면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어떤 책을 말하는지, 어떻게 책을 묘사했는지 말이다. 그래서 한때는 독서 에세이를 읽었다. 전문가는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했고 좋아하는 작가가 밑줄을 그은 부분이 나의 것과 겹쳐있을까 궁금했다. 독서 에세이를 읽고 나면 읽어야 할 책이 늘어나고 구매하는 책이 늘어나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여기 제목부터 책을 말하는 책이 있다. 『책그림책』이라니, 무슨 책을 말하는 것일까,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펼치지 않을 수 없다.

 

화가이자 도안가이자 삽화가인 크빈트 브흐홀츠의 그림과 46명의 작가의 글이 하나가 된 책이다. 그림을 보고 작가가 글을 썼다. 많은 이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갖는 건 46명의 필자, 그러니까 작가 때문일 것이다. 헤르타 뮐러, 밀란 쿤데라, 수전 손택, 오르한 파묵, 존 버거, 페터 회, 아모스 오즈 등 대단한 작가들이다. 46개의 그림에 부친 글은 작가의 개성과 성향에 따라 다채롭다. 어떤 작가는 짧은 시를 쓴 것 같기도 했고, 어떤 작가는 아름다운 동화의 일부를, 어떤 작가는 소설의 첫 장면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책(글)을 소재로 한 브흐홀츠의 그림은 정말 매혹적이다. 사람과 책, 책과 하늘, 책과 바람, 책과 바다, 그리고 여백. 화려하지 않은 색채로 담아낸 그림 속 책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정말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반할 그림이 가득하다. 거기에 좋아하는 작가의 글까지 함께 만나니 독자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안겨주는 책이다. 글은 어떤 부담도 어떤 강요도 없는 자유로운 글이라는 게 느껴진다. 어쩌면 그림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특히 좋았던 그림과 글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그림 속 여인이 시집을 읽고 있는 게 아닐까 말하는 하비에르 토메오가 만난 그림, 책을 쌓아둔 소녀가 창밖을 바라보며 상상하는 세상에 대해 들려주는 엘케 하이덴라이히가 마주하는 그림. 복잡한 세상에서 떨어져 자유롭게 책을 읽고 싶을 갈망이 엿보이는 밀란 쿤데라의 글과 하나가 되는 그림, 이반 클리마가 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확인하는 글을 쓰게 만든 그림, 마지막으로 수전 손택의 간절한 마음을 그대로 담은 듯한 그림이다.

 

 

 

그는 모자를 쓰고 몇 권의 책과 우산을 집어들었다. 서른세 시간을 걸어간 후에 그는 텅 비어 있고 전망이 툭 트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영원히 그곳에 있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그는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려고 했다. 혼자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완벽한 행복이므로 그는 그러한 행복을 순수한 상태로 즐기고 싶었다. 그리하여 그는 신기하게도 저절로 채워지는 잔으로 이따금 한 모금의 커피를 마시는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밀란 쿤데라, 92쪽)

 

 

 

 

나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내가 사랑하는 책들이 차츰차츰 나를 집밖으로 몰아내는 것을 함께 바라보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게 되었다. (이반 클리마, 103쪽)

 

 

 

 

 

 

 

위에는 책이 있고, 아래에는 땅이 있다. 내가 나의 책에 대해 무슨 꿈을 꾼다 할지라도 다시 깨어난 후에 그것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리라. 나는 대지의 심장박동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수전 손택, 90쪽)

 

그림을 통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이라고 할까. 그림을 보고 글을 쓴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어도 좋다. 나아가 한번 도전해 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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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9-04-01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참 예쁘네요~~

자목련 2019-04-02 08:45   좋아요 0 | URL
네, 누구라도 반할 그림이에요^^

목나무 2019-04-01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좋아라하고 아끼는 책이에요. ^^ 요거랑 시리즈인 나머지 2권도 느므 좋아하는 그림책들...^^

자목련 2019-04-02 08:46   좋아요 1 | URL
좋은 책은 왜 이리 많은 걸까 ㅎ
잘 지내고 있어?
매서운 봄이야. 건강 잘 챙기고^^*

뒷북소녀 2019-04-28 13:07   좋아요 1 | URL
언니들은 뭔가 통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ㅋ

자목련 2019-04-30 10:29   좋아요 1 | URL
언니들이라는 말이 참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