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뭔가를 쓰는 날에는 소비해야 할 감정이 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남아 있는 감정이라고 할까. 여하튼 지금 내가 그렇다. 어제 받은 치과 진료로 인해 컨디션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고 폭우로 인해 미용실 방문은 미뤄졌다. 벌써 9월하고도 4일이라니, 왜 이리 9월은 빠르게 달리는지. 내 방의 달력은 아직도 8월인데. 첫날 새벽 기도를 오랜만에 다녀왔다. 지난 3달엔 매달 첫날에 다른 곳에 있었던 이유도 있고 연약한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간사하게도 간절한 무언가와 맞닥뜨릴 때 나의 기도는 더욱 절실하다. 매일매일 기도하는 삶을 지향하지만 지향일 뿐이다.
감정의 소비는 충동구매로 이어졌다. 다소 늦게 선정된 2018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배수아의 『뱀과 물』을 읽을 수 있을까, 걱정스럽지만 이 기회가 아니면 읽지 못할 것 같아서 구매했다. 여전히 배수아는 어렵지만 도전이다.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진짜 좋은 책인지 확인하고 싶어서다. 두 권 모두 뒷북인 셈이다. 남들이 읽을 때 읽지 않고 뒤늦게 궁금하니 말이다. 주문을 끝냈는데 진짜 뒷북이 나타났다. 이연식의 『뒷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뒷모습은 내가 좋아하는 단어, 풍경과 마찬가지다. 미셀 투르니에와 나란히 책장에 있으면 멋질 텐데. 이번 주문에 추가는 못하고.
어제 거침없이 내렸던 폭우를 품었던 하늘은 말간 얼굴로 빛을 뿜어낸다. 바람도 부드럽다. 빨간 꼬리가 예쁜 고추잠자리를 보았다. 가을이 슬금슬금 걸어오고 있다. 당연한 수순인데 신비롭다. 캔맥주처럼 차가운 여름밤은 가고 연인의 손가락처럼 부드러운 가을이 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