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아무런 수고 없이 마주하는 건 행운이다. ‘추사체’로 잘 알려진 김정희에 대해 대단한 수고를 대신한 유홍준의 『추사 김정희』를 통해 김정희의 생과 그가 살아온 시대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김정희에 대한 방대한 기록과 사료를 수집하고 연구한 유홍준에 대한 수고에 놀라는 마음이 앞서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더불어 기록한다는 것에 대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출생부터 김정희의 일대기를 다루었고 그의 업적과 함께 작품을 하나하나 설명해준다. 대부분의 자료는 일본의 동양철학자 후지쓰카 지카시의 연구에 의한 것으로 청조 고증학과 경학의 업적을 후지쓰카 지카시가 논문을 통해 발표한 것이다. 유홍준에게는 아마도 가장 고마운 사람이 아닐까.

 

 추사 김정희를 떠올리니 내게는 한승원의 소설에서 초의와의 우정이 생각났다. 서로를 존중하며 교류하며 함께 성장하는 우정, 역시나 이 책에서도 김정희 곁에는 사람이 많았다. 스승, 선배, 제자, 그리고 소중한 인연들. 책을 읽으면서 한 사람의 생을 마주하면 그를 둘러싼 이들, 그와 이어진 이들의 생까지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유홍준의 관점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김정희가 박제가의 제자였고 그의 영향을 받아 청나라 연경에 가서 그곳의 문인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는 것과 흥선대원군인 이하응과도 교류했다는 점은 다소 놀라웠다. 내게는 서예와 그림의 예(藝) 인으로만 알려졌던 김정희는 역사리지, 금석학, 불교학 등 다방면에서 활약한 진정한 전문인이었다.


 

 

 

 

  “학문하는 방도는 굳이 한나라, 송나라로 나룰 필요 없이, 심기(心氣)를 고르게 하고 널리 배우고 독실하게 실천하면서 사실에 의거하여 진리를 찾는 자세로 나아감이 옳다.” (107쪽)

 

 뛰어난 인물의 생에는 언제나 고초가 있기 마련일까. 김정희의 삶도 순탄하지는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로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끝내고 좀 편안한 생활을 하는 가 싶었는데 66세 노년의 나이에 북청으로 유배를 명 받았으니 말이다. 김정희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으니 그의 형제들에게도 고통의 시절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에게「세한도」가 탄생한 것으로 잘 알려진 제주도 유배에서 그는 아내의 죽음을 접했다는 점이다. 모든 일상을 편지로 전하며 같이 생활하는 듯했던 김정희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아버지와 남편으로의 김정희가 아닌 학자 김정희를 살펴보면 그는 지식에 대한 열망이 대단했던 것 같다. 지인들과 교류한 편지에서 책을 구해달라는 내용이 많은 걸 보면 말이다. 그만큼 그림과 학문에 오만할 정도로 당당했고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제자에게도 전했다. 당시의 진경산수와 문인화풍을 인정하면서도 소치에게는 청나라 화가가 원말 4대가의 그림을 방작한 그림을 모은 화첩을 주고 폭마다 열 번씩 그려보라고 했다니 한다. 어쩌면 그건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더 발전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지독하고 완벽한 성격은 지필묵에 대한 글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쓰고자 하는 글씨의 성격에 따라 붓을 골라 쓰는 섬세함 그 이상으로 예민했다고 하니 말이다. 그러니 추사 곁에는 그 모든 것을 충족하는 이들이 함께였던 것이다.

 

 이 <세한도>에서 더욱 감동적인 면은 서화 자체의 순수한 조형미보다도 그 제작 과정에 서린 추사의 처연한 심경이 생생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그림과 글씨 모두에게 문자향과 서권기를 강조했던 추사의 예술세계가 소략한 그림과 정제된 글씨 속에 흥건히 배어 있다는 것이 이 그림의 본질이다. <세한도>의 진가는 그 제작 경위와 내용, 그림에 붙은 글씨의 아름다움, 그리고 갈필과 건묵이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에 있다. 즉 그림과 글씨와 문장이 고매한 문인의 높은 격조를 드러내는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288~289쪽)

 

 서법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은 글씨,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괴이하나 본질을 보면 내면의 울림이 있는 글씨, 그것이 추사체이다. (412쪽) 

 

 추사 김정희를 안다는 건 비단 그 한 사람만을 아는 게 아니라 그 시대를 알고 그 시대의 문화, 역사, 외교, 풍습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책에 수록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일도 즐겁다. 옛것의 아름다움과 그 존재의 위대함을 알아가는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 후대까지 이어져야 할 본분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8-05-08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사 김정희도 엄청난 독서가였다죠! 서점에 디스플레이된 책 사고싶었는데 은근히 설레고 기대되는 책입니다

자목련 2018-05-09 17:31   좋아요 1 | URL
아마도 김정희는 세상의 모든 책과 지식을 습득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프레이야 2018-05-08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 대정읍의 추사 유배지와 추사기념관의 기억이 납니다. 비오는 날이었어요.
다시 가고프네요. 이 책도 담아갑니다. 장바구니가 터질 듯하네요.
좋은 봄날 보내세요^^

자목련 2018-05-09 17:32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유배지와 기념관에 대해서도 책에서 만났어요. 김정희가 제주도에서 수선화에 반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프레이야 님도 환하고 반짝이는 봄날 보내세요^^

카알벨루치 2018-05-09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선의 아버지들”이란 책에 보면 김정희가 글씨에 대한 이야길 하면서 글씨에도 독서사가 필수적이란 이야길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