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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결혼시대
왕하이링 지음, 홍순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평점 :
신결혼시대는 이름부터도 왠지 생소하게 느껴지는 중국소설이다. 알고 있는 중국소설이라곤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 밖에 없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결혼 생활에 관한 소설이라는 것 역시 조금 낯설었지만 그나마 허삼관 매혈기에도 아주 좋은 인상이 남아 있어서인지 신결혼시대 역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은 현실이고, 사랑은 이상이다. 과연 이상만으로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는 결혼 생활을 버텨 나갈 수 있는가는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 볼 문제다. 그러한 난제를 직접 체험을 통해 결론을 내린, 아니 아직도 결론을 내리는 과정 중에서 성장하고 있는 젠궈와 샤오시, 이 두 신세대의 결혼 생활을 중점으로 해서 샤오시의 친구 젠자, 젠자의 연인이었던 류카이루이, 샤오시의 동생 샤오항의 이야기를 경쾌하고 발랄한 문체로 풀어 나간다.
젠궈는 농민의 자식이고 샤오시는 대학교수 아버지에, 의사 어머니의 자식이다. 젠궈는 가난하게, 샤오시는 풍족하게 자랐다. 젠궈의 시골인 허자춘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 가족이지만 샤오시의 가족 구성원은 단 넷 뿐이다. 어느 날 젠궈의 아버지는 한 명 분의 학비밖에 구하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며 젠궈의 형인 젠청과 젠궈에게 제비 뽑기를 시킨다. 결국 행운의 여신은 젠궈에게 손짓했고, 젠궈는 베이징으로 상경해 샤오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샤오시 역시 잘생기고 능력 있는 젠궈가 마음에 쏙 든다. 어머니는 결혼은 아무리 신중하게 생각해도 모자람이 없으며, 엇 비슷한 집안의 남자와 결혼해야 한다고, 젠궈의 집안 배경을 보라고 나무라셨지만 샤오시에겐 아무래도 모두 상관 없는 먼나라 얘기다. 결혼은 한사람과 한사람의 결합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젠궈의 가족이 가난한 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람? 가난한 가족이 딸려 있더라도 자신에게는 실질적인 피해가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샤오시는 결국 젠궈와의 결혼을 강행한다. 행복할 줄로만 알았던 결혼 생활. 결혼은 안정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샤오시는 여전히 젠궈를 사랑하지만 젠궈의 가족 때문에 젠궈까지 미워 보이는 일이 자꾸만 생긴다. 젠궈 역시 샤오시에게 불만이 있다. 젠궈는 자신의 학비를 마련해 준 가족들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는 것으로 갚아 나가고자 한다. 사실, 가족들의 무리한 요청이라도 거절하는 일이 쉽지 않다. 농촌에서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 일이다. 우선 순위를 따지자면 자기보다도 형이 대학에 가는 게 맞았다. 형은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대학에 진학해 형은 여전히 가난한 삶의 굴레에 갇혀 힘든 나날을 보내야만 하는 것이다. 형만 생각하면 미안함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지금도 가족들은 밭에 나가 하루종일 고된 농삿일을 하지만, 그래도 가난한 삶을 살고 있다. 괴로운 젠궈의 내면을 샤오시는 영 이해하지 못한다.
가족과 가족간의 결합으로 일어날 법한 일들을 얼마나 현실성 있게 그려냈는지 마치 주변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자연히 영상이 떠올랐는데, 그것이 왕하이링의 장점이라는 역자의 말을 읽고서는 바로 납득할 수 있었다. 꽤 만만찮은 분량의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굉장한 속도로 지루할 틈 없이 읽었다. 사실 책의 내용이라곤 사랑하지만 집안으로 인한 갈등으로 인해 싸우고 헤어지고 만나고 사랑하다가 다시 싸우는 일들의 반복 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이 되어서야 급하게 갈등이 풀리며 마무리가 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충분히 힘들었으니 쉽게 이야기가 풀리는 것 쯤이야 괜찮으려나. 나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아직은 먼 이야기라는 생각에 부모님께서 반대하는 결혼은 왜 하면 안되는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아마 내 의견을 끝까지 관철시키려고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허나 지금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눈에 붙어 있던 고집스러움이 벗겨진 느낌이다. 앞으로 언제쯤이 될 지는 예상조차 어렵지만 언젠가는 오고야 말 내 남자친구와 결혼 애기가 오가는 날, 나는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신 결혼시대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짓게 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