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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베르터의 고뇌 ㅣ 꿈결 클래식 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박민수 옮김, 김정진 그림 / 꿈결 / 2014년 10월
평점 :
이 책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알려진 동일 작품이다. 재판되는 경우가 많지만 왜 제목까지 바뀌었는지 생각해볼 문제였다. 그 이유는 옮긴이(박민수)의 해설에서 볼 수가 있었는데, 원제인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에서 werther의 발음이 베르테르보다는 베르터에 더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Leiden이라는 단어 역시 슬픔이라는 뜻보다는 슬픔의 감정도 포함하는 고뇌나 번민의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 우리나라에 베르테르란 표기가 장착된 데는 아마도 이 작품이 최초로 들어올 때 일역본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이 형향을 미쳤을 것이다.(p.257)
그래서 한국 독문학계에서 오랫동안 제목에 대해 오랫동안 지적이 있었고, 이제야 원제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은 책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 책이 처음 쓰여졌던 그 시대에는 서간체 소설이 유행이었고, 이 소설 역시 서간체 소설로 쓰여진 작품이다.
헌데, 당시의 서간체 소설은 여성중심으로 쓰여진, 여러인물들이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최초의 남성이 주체가된 베르터가 빌헬름에게 보내는 편지로만 구성된 - 그 시대를 생각하면 창의성이 돋보이는 - 소설이다.
* 서간체 소설: 편지 형식을 빌려 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번역된 당시에도 워낙 유명한 소설이었지만 읽지는 못해서 이제야 읽게 되었다. 처음 읽을때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뒤에는 왜 이제야 읽었나 싶을 정도로 베르터에 몰입해 있었다.
(괴테가 직,간접적으로 겪은 이야기를 단 4주만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실로 천재적인 작가!!)
사실 서간체 소설을 읽은 게 이 작품이 유일하다고 할 정도여서 얼마나 신선했는지 모른다. 읽으면서 이상작가의 '날개'라는 소설과 트레이시 슈발리에 작가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생각했다.
단지, 한국 문학을 새롭게 보게 된 소설이 이상작가의 날개라는 소설이었고, 날개라는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운 기분이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읽었을 때와 똑같은 기분때문인 것 같다.
슈발리에 작가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의 작품을 떠올린 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 두 작품에서 사랑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서로 닿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하고, 비극적인 엔딩.
포괄적인 내용만 보니 소설은 어느 작품에서나 존재하는 거 같은데...
[줄거리 소개]
소설 속 베르터는 화가다. 예술가의 감성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그는 자기 주장이 강하고, 타협할 줄도 모르고, 간간히 숨어 있는 광기도 가지고 있다. 부정적이면서도 유리알 같은 심장을 지닌 베르터가 약혼자가 있는 로테라는 여인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종착역이 있는 열차를 탄 셈인데 결과는 불보도 뻔하다. 종착역으로 향하는 열차를 세우거나 종착역에 도착하거나.
열차에 올라탄 베르터의 삶은 두 가지로 나뉜다.
로테를 만나기 전과 만나고 난 후. 그녀를 만나기 이전에는 자연을 사랑하지만 인간을 사랑한다기는 어려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로테를 만나고 난 뒤에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구분을 짓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그저 눈에 닿는 것, 눈에 보이는 것들을 사랑한다. 사랑하면 모든 것들이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말이 바로 베르터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런 베르터에게 알베르트라는 로테의 약혼자가 귀환하고나서부터는 그의 삶에 고통이 찾아온 것이다.
7월 30일
알베르트가 돌아왔네. 나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야. 그는 너무나 훌륭하고 고귀한 사람, 모든 점에서 나보다 우월하단 걸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일지도 몰라. 그렇다 해도 여러모로 완벽한 로테를 그가 소유하고 있음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 견딜 수 없는 일일세. 소유라, 무든 말이 더 필요하겠나!(p.76) |
하지만 알베르트는 그가 인정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친구가 된다. 사실 로테만 아니었다면 라이벌 같은 친구로 서로에게 좋은 관계가 되었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쨋든 결과야 뻔한 친구관계는 점점 뒤틀린다. 모든 것을 본받을 만한 좋은 성품을 가진 인간을 존경하지만, 동시에 질투도 가졌을 것이다. 자신보다 훨씬 나은 존재이며, 거기다 로테의 사랑까지 받는 존재. 결국 베르터는 알베르트와 로테를 떠날 결심을 한다.
그들을 떠나 귀족 사회에 공사로서 일을 하며 살게 된다. 하지만 그 곳에서 베르터는 더욱 힘이 들 뿐이다. 귀족사회의 뒤틀린 세계 안에서 베르터는 적응도 하지 못하는데, 자기만의 세계가 강하고, 자존감도 강한 그가 귀족 사회에 적응하기란 당연히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나마 마음이 맞는 백작을 알게 되기도 하고, 로테와 닮은 여인도 만나게 되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곳을 떠나 결국은 로테가 있는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로테가 있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을 때는 알베르트와 로테가 이미 부부가 된 뒤였다.) 이미 부부가 된 알베르트와 로테를 보며 한없이 절망밖에 남아 있지 않게 된 것이다.
10월 27일 저녁 나는 이토록 가진 게 많지만, 그녀를 향한 마음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군. 나는 이토록 가진 게 많지만, 그녀가 없다면 모든 것이 소용없군.(p.164) |
로테를 볼 때는 살고 싶다가도 그녀가 내 손에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베르터는 죽음까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생각에 불씨를 집힌 사건을 만나게 된다. 미망인을 사랑한 하인이 있었는데, 그 하인이 자신이 사랑한 미망인을 죽인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전해 들은 베르터는 그 하인의 입장이 되고 만다. 법무관과 알베르트 앞에서 그 하인을 변호하려고 애를 쓰지만 관철된다. 통용될 수 없는 그 사실에 다시 한번 베르터는 좌절하고 만다.
불행한 사람이여, 그대를 구제할 방도는 없다네! 우리에게 구원받을 길이 없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네. (p.188) |
그 후 베르터는 죽고싶은 욕망에 박차를 가하듯 로테에게서 만남을 자중하라는 말을 듣게 된다. 그 말이 아마도 삶의 마지막 희망이 아니었을까. 결국 자신이 죽기로 마음을 먹은 베르터는 실행에 옮긴다.
알베르트에게 여행을 빌미로 총을 빌리고, 마지막을 준비하려는데, 그 총을 하인에게 건네준 사람이 바로 로테라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로테의 손을 거쳐 온 그 총을 바라보며 베르터는 그마저도 행복해 한다.
이 권총은 당신의 손을 거쳐 제게 왔습니다. 당신이 직접 먼지도 털어 주었구요. 저는 권총에 수없이 입을 맞춥니다. 당신의 손길이 닿은 것이니까요! 하늘의 정령이신 당신이 제 결심을 다져 주는군요! 로테, 당신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소원이었는데, 그 도구를 당신이 내주다니! 아아, 기꺼이 받겠습니다. (p.234) |
초판본에서는 편집자입장의 부분이 소량이라고 하지만, 개작판에서는 편집자의 입장이 꽤 상당부분 고쳤다고 들었다. 편집자입장의 부분의 상당내용이 베르터가 죽음을 맞이하는 그 과정의 순간을 그린 이야기였다. 마지막 로테를 만나고, 권총을 손에 쥐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베르터의 고통을 몇배나 더 알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정말이지 보면서 내내 베르터에게 이입되어 베르터가 되어 자살까지 상상했다.
당시 이 책을 보고 베르터의 복장과 모방자살을 낳았는데, 그 파급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오늘날에 유명인의 자실을 모방하는 경우 이를 가리켜 베르터효과(베르테르효과)라고 한다.
결국 베르터는 권총으로 자살을 하며 종착역에 도착한다. 마지막까지도 시종일관 로테에 대한 베르터의 사랑에 있어서는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베르터가 그녀를 사랑하는 숫한 표현들, 감정들이 섬세하게 잘 나열되어 있는데, 예전에는 고전소설에서의 과장된 표현들이 꺼려했다. 조금 과장된 그 표현들이 읽기 버거웠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표현들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7월 19일
그녀를 만나야지! 아침에 깨어나 밝은 마음으로 찬란한 태양을 바라볼 때면 나는 그렇게 외친다네. 그녀를 만나야지! 온종일 내가 품고 있는 소망은 그것뿐이라네. 이 소망이 다른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 하더라도. |
베르터는 로테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사실보다는 로테가 다른 사람의 아내라는 사실에 더 힘든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알베르트와 결혼하기 전에도 불안정했지만, 알베르트와의 결혼 후에 보고만 있어도 죄의식이라는 것이 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친구여, 이 세상에는 양자택일로 결정되는 일이 극히 드물다네. 매부리코와 넓적코 사이에 수많은 단계가 있듯, 인간의 감정과 행동 방식에도 미묘한 다양성이 존재하지.(p.80) |
베르터의 말처럼 양자택일로 결정되는 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에 있어서도 사랑하거나 사랑을 하지 않거나. 그것이 가능하다면 베르터가 자살까지 선택하지 않고 다른 여인을 만나 사랑하며 살아갔을 지도 모른다. 사랑, 그 사이에서도 우정보다 먼 사랑보다는 가까운 관계, 썸타는 관계, 어정관리, 정, 등등 수많은 단계가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