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들의 두 여인 ㅣ 한국문학사 작은책 시리즈 2
홍상화 지음 / 한국문학사 / 2014년 10월
평점 :
능바우 여인의 삶과 동백꽃 여인의 삶을 다룬 비현실적이면서도 사실적인 단편소설.
우리들의 두 여인
최근 독서활동이 원활하지 못했던 나에게 독서의 의지를 다시금 불태워준 소설이었다.
장편소설도 좋아하지만, 유독 단편 소설을 즐겨 읽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짧고 굵음에 있어서이다.
장편소설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문장 하나하나를 스치듯 읽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단편의 경우는 단어 하나도 정성들여 읽게 되고, 뜻도 찾아보게 된다. 읽다보면 헷갈리는 일도 종종있는데, 그에 비해 단편은 전혀 그럴일이 없다는 것이 가장 좋은 점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번에 서평도서로 읽은 우리들의 두 여인은 제목 그대로 두 여인의 삶을 단편 소설로 보여주고 있다.

첫번째 단편인 '능바우 여인'
능바우 여인의 선조 여인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다. 그것도 할머니세대까지의 이야기.
길게는 어머니의 세대로도 볼 수 있지만 나는 능바우 여인의 삶을 할머니세대까지로 정의하고 싶다.
소설 속 성환씨는 은행 지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을 한 아버지이며, 사업에 실패한 아들내외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인 능바우의 여인인 심여사.
며느리는 아들의 사업 실패로 보험회사에 다닌지 반년차 직장인이다. 어느날, 정년 퇴임 후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 할 성환씨에게 아들 내외는 또 다른 시련을 안겨준다. 그것은 성환씨에게 아파트 야간경비직을 맡으라는 일과 반년차 보험인인 며느리의 실적이다. 며느리는 능바우 친척들의 안부를 물으며 보험을 권유하라는 압박과 건강을 핑계로 일을 하라고 말한다.
"소일하는 데는 좋으시겠지만 야간이라는 것이 좀 마음에 걸리네요.
그것만 괜찮으시다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 게 아버님 건강에 오히려 도움될 수도 있어요."
"별로에요. 반년 동안 했더니 도와줄 수 있는 주위 사람들은 대개 다 도와준 것 같아요....
...능바우 어르신네들은 요새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나이가 들면 보험처럼 안전한 것이 없어요.
한달에 10만 원이라도 괜찮고, 20만 원이라도 괜찮아요.
보험금에 이자도 붙고 돌아가시면 후손에게 상당한 보험금이 지급되지요. 시골에 있는 땅을 후손에게 남기면 뭐해요?
요새 누가 농사를 지으려고 하나요? 다른 사람시켜서 농사지으면 남 좋은 일만 하는 거에요..."
자존심이 쎈 심여사는 남편의 야간 경비직 일자리에 괴로워 할 남편을 생각하며 본인 또한 괴로워 한다. 결국 능바우 여인인 심여사는 남편을 대신해 친구의 딸네 집에 가사 도우미를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능바우 여인들의 지혜는 그들의 남편에게도 슬기롭게 적용되었다. 젊은 여자와 도시 여자에게 주책없이 마음을 빼앗긴 남편이, '알고도 모른체' 하는 그들의 지혜 속에서 젊음이 힘을 잃고 돈이 떨어지면 가장의 품위를 잃지 않고 가정으로 돌아오게 해주었다.(p.22)
야간 경비직에 대해 고민중인 성환씨에게 성백준의 공원에서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한다는 것을 능바우 친척들에게 알리게 되고, 한바탕 소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순간 야간 경비직 일을 해야겠다고 그는 마음을 먹는다.
아무리 늙어빠진 노인이라 하더라도, 옜날 같으면 머슴이나 하던 일을 능바우 양반이 어찌할 수 있느냐는 질책이었다.
궂은일은 몽땅 여자들에게 떠맡기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빈둥빈둥 먹고 노는 전형적인 능바우의 심리상태였음을 성환씨는 깨달았다. (p.43)
집으로 돌아온 성환씨는 아내가 가사도우미 일을 하기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 역시 아파트 경비직 일을 할거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이난다.
사실 능바우 여인의 소설에 대한 해설(p.141)은 '현실에서 얼마나 정복당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해석되고 있었지만,
나는 능바우 여인에게가 아닌 부모와 자식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아들내외는, 친척들 축의금 조차도 제 손으로, 제 돈으로 낼 생각도 못하고, 아직까지도 부모님의 뒤에 도움을 바란다. 그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자식들의 표본적인 모습인 것 같았고, 성환씨와 심여사는 우리들의 부모님처럼 탐탁지 않아도 결국은 자식을 위해서 받아들이는 이 시대의 부모님의 표본이어서 씁쓸하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참 우리 가난했다 그제?"
성환씨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예, 참 가난했심더. 찢어지게 가난했지예."
"그런데 왜 자꾸 그때가 그리워지지?"
"나도 모르겠심더."
그들은 뛰기를 멈추었다.
"아마도 배고픔이 뭔지 잊어버려 그런갑다"
"그럴낍니더."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그때 생각하면 지금은 무슨 일이든 못하겠나?"
(p.47)

두번째 이야기인 동백꽃 여인.
현실의 씁슬함과 비현실적인듯한 사랑이 녹아있는 이야기였다.
아내는 언제나, 어디서나 분별있고 사려 깊은 여자였다. 아내가 여자로서 항상 보여주는 분별은 평생 동안 짊어져온 책임감을 가볍게 해주었다. 그건 5년 전 사별한 첫 아내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었다. (p.63)
아내가 일어나 그의 몸을 감싸 안았다. 낙화 후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아니 전보다 더욱 아름다운 동백 꽃... 그 동백꽃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여자가 바로 아내였다.
"당신은 동백꽃과 같은 여자요. 낙화가 더 아름답듯이 당신은 내가 죽은 후 더 아름다운 삶을 살거요."
"그렇다면... 그렇다면... 다른 부부가 1년 사는 것을 우리는 하루에 살아야 해요.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어요."
(p.90)
주인공 정문호씨와 동백꽃 여인 홍숙진은 재혼한 부부였다. 재혼한지 4년차였지만, 1년 전 암에 걸린 정문호씨를 홍숙진은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 있었다. 정문호씨는 죽음보다 죽고 난 뒤 혼자 남게될 아내 홍숙진이 걱정되어 죽은 후 자신의 연금을 아내가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던가, 공동명의 적금, 38평짜리 아파트도 아내의 명의로 돌려놓았다. 그 후 정문호씨가 죽자, 정문호씨가 살아생전이었을때에는 새어머니를 어머니로 따르던 자식들이 38평짜리 아파트로 인해 돌변한다.
"참! 아버님,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 살아생전에 그렇게 유별나시더니 사후에도 시신 기증이다 뭐다 그게 다 뭡니까? 아파트 명의 이전도 우리와 의논 한 번 없이 하시더니, 이제와서 어떻게 이런 유언을 우리에게 남기실 수 있습니까!"
사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둘째 아들이 앞으로 나서 영정을 마주보고 버티고 섰다.
"흥! 자기 혼자서 똥폼 다 잡고 있네. 이 씨팔!"
(p.109)
"어머니! 어머니가 경제적으로 여유 있길 바라는 것은 우리 모두 똑같은 마음이에요."
"아버지는 이미 내가 돈 걱정 하지 않게 해주셨어."
"그건 어머니가 지금부터 얼마나 현명하게 처신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p.111)
이 장면을 보면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ㅜㅜ 결국 아내 홍숙진은 자식들에게 아파트를 주고는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줄거리를 간추리면 흔히 있을법한 현실의 냉혹함과 씁쓸함이 밀려오지만, 동백꽃 여인에서 알려주는 것은 아내 홍숙진과 남편 정문호씨의 사랑이야기다.
아내를 처음 보는 순간 놀랍게도 청년 시절처럼 가슴이 두근거렸음이 상기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나이 예순넷, 교수직 정년이 1년 앞으로 다가온 말년의 회의와 끊임없이 교차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느낀 두근거림이 결국 회의를 이겨냈다.(p.68)
그 후 남편 정문호씨는 청혼을 했고, 홍숙진과 재혼하게 된다. 하지만 1년전 폐암진단을 받고, 죽음을 앞두게 된다. 그리고 하나 둘 씩 자신의 삶을 정리해나가기 시작한다. 그 중 그의 눈에 가장 걸리는 것은 아내 홍숙진이었다.
"여보, 내가 지난번 동사무소에서 나오면서 한 말 기억하지?"
그가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모습, 바로 그 모습이 그가 허약해진 폐로나마 숨쉬기를 계속하고 싶은 이유였다.
"저한테 '안되겠다. 영감 하나 얻어라'고 한거요?"
아마도 아내가 동사무소일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자신이 농담으로 한 말을 떠올리며 미소 속에 말했다.
"농담으로 들었겠지만 재혼하면 연금 혜택이 끝난다는 건 알고 있겠지?"
(p.80)
"언제 말하든 한 번은 말해야 되니 지금 말하는 것이오. 잘 들어두오."
아내가 울컥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는 듯 손을 자신의 입으로 가져갔다.
"앰뷸런스가 떠난 다음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집으로 가요. 그곳에 내 영정을 차려두고 그 앞에서..."
그는 베개 밑에서 흰 봉투를 꺼냈다. 그러고는 겉에 유언장이라고 씌어진 그 봉투를 아내 쪽으로 내밀었다.
"기연이에게 내 유언장을 읽도록 해요. 당신이 받아 적다가 만 것에 엊저녁 겨우 덧붙였소. 힘이 없어 몇 자 적지도 못했소. 꼭 아이들 모인 데서 읽어야 해요. 다신과 가족 모두 있는 데서..."
(p.90)
남편이 죽고 홍숙진은 자식들에게 집을 남겨주고 떠나는데 가슴이 먹먹하게 아팠다. 능바우여인과는 또 다른 여인의 삶이었는데, 동백꽃 여인이 좀더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으나, 그것을 글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가장 아이러니 하면서도 어쩐지 마음에 와닿는 대사가 있었다.
"문학이란 진실을 다루는 거요. 그 진실이 인간에게는 득이 되든 해가 되든..."(p.71)
"지금으로부터 3천여 년 전에 솔로몬 왕이 조문객들의 위험에 대해서 말한 거요. 사람이 죽으면 조문하러 오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실로 애도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드물다는 것을 의미하오. 그건 진실이오. 그러니까..."(p.73)
정문호씨의 말을 증명하듯 극중에서 자식들이 홍숙진에게서 아파트를 뺏으려고 하는 장면은 정말로 진실로 애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드물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면같아서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서 마음이 아렸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의 두 여인의 책이 좋았던 점은 작품해설이 담겨져 있어 내가 생각하고 느낀점과 작가의 의도, 작품의 의도 등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