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에 앞서서 어이없는 이야기를 하나 할까 합니다.
일반 시집과는 달리 마치 교과서 시집처럼 하이쿠와 함께 류시화작가의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단순히 시에 대한 해설이 적혀있지만, 그 외에도 알려주는 것들이 많다. 하이쿠 시의 발자취나, 하이쿠 시인들의 자란 환경, 그리고 일본에서 파생된 만큼 일본어를 아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같은 발음이지만 뜻이 다른 것을 표현하는. 하이쿠를 읽을 때마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감상]
하이쿠 시인들 중 '바쇼'라는 시인은 일본인이 자기 나라의 문학을 말할 때 맨 먼저 언급하는 인물중 한 사람이라고 한다.
하급 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인간 세상에 회의를 느껴 방랑시인의 길을 걸었고, 전국을 여행하며 하이쿠와 산문을 썼다고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단순히 시만 읽는 것이 아닌 시인 인생의 일부도 같이 볼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해설中]
바쇼풍의 시 세계를 확립한 작품으로 '하이쿠의 역사가 움직였다'고 할 만큼 바쇼 자신에게나 하이쿠 역사 양쪽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이쿠에 대한 이해는 바쇼의 이 하이쿠를 이해하는것에서 시작된다고 할 정도로 가장 알려진 작품이다.
[해설 中]
바쇼 이전시대의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 야마자키 소칸. 그는 무사집안에서태어나 젊어서부터 쇼군 옆에서 궁중 서예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쇼군이 젊어서 병사하자 생의 덧없음을 느끼고 출가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았기에 궁핍했으며 불안정한 정신의 소유자였다는 설이 있다. 그럼에도 이 하이쿠에서 보듯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투지가 빛난다.
책을 보면 대표적으로 소개되는 하이쿠도 좋았지만, 해설 집 안에 같이 소개되는 하이쿠들도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것이 많았다. 예로 소칸의 시다. 꽃의 향기를 훔쳐서 달아나는 폭풍우여라 눈을 감고 몇번이고 읊으니 하이쿠의 시가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해설]
바람에 잘 찢기는 나팔꽃의 꽃말은 '덧없음'이다.
모리타케의 사세구이다. [사세구란, 죽으면서 마지막으로 남기는 시를 말한다.]
734페이지나 되는 방대한 두께에서도 마음에 드는 시 몇 구절을 소개하였다.
하이쿠의 시는 해설을 보면 더욱 재미와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 단순히 시만 읽는 것이 아니라 해설까지 꼭! 챙겨봐야 한다.
가령,
시드는 빛은
무엇을 근심하는
살구꽃인가
-데이토쿠
[해설]
살구와 근심하다의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해 시인은 근심에 잠긴 여인의 낯빛을 살구꽃의 시드는 색감에 교묘히 중첩시켰다.
세차게 내리는 소리 아프다고 말하는 겨울비
[해설] 여기서도 '아프다'와 판잣집','말하다'와'저녁'의 발음이 같은 것을 이용하고 있다.
[해석] 세차게 내리는 소리 판자 지붕 때리는 저녁 가을비
데이토쿠는 고전에 능통한 학자로 하이쿠 규칙을 정리하고 문하에 많은 시인을 배출했다. 그의 등장으로 하이쿠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그는 죽기 전에 이렇게 썼다.
내일은 이렇겠지 어제 생각한 일도
오늘 대부분 바뀌는 것이 세상일이라
-데이토쿠
데이토쿠의 제자인 니시와키 데이시쓰는 '하이쿠는 먼 것을 연결하고 가까운 것을 분리시켜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라고 했다. 그는 시 이론에서 다른 시인들과 충돌이 잦앗고 죽기 전에 자신이 쓴 책을 다 불태웠다.
녹아서
서로 화해했구나
얼음과 물
-데이시쓰
그 많은 시와 시인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시인은 나 역시도 '바쇼'였다.
바쇼는 '통곡의 시인'이라 불릴만큼 하이쿠에는 울음과 눈물이 많다고 했고, 시인은 구원자가 아니라 함께 울고 슬퍼할 뿐이라고 했다.
무덤도 움직여라
-바쇼
시적 재능을 갖추었으나 젊은 나이에 병사한 고스가 잇쇼의 죽음을 애도하며 지은 바쇼의 하이쿠 시.
이 책의 장점은 류시화 시인의 해설이 같이 쓰여져 있어 시인의 시선으로 시를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이나, 역사가 변하면서 하이쿠 시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친절히 설명되어 있고(에도시대와 에도시대 후의 차이?) 시적으로 쓰이는 표현들이 왜 그렇게 표현되었는가 [예를 들어 일본 시에서 꽃이라고 하면 에도시대에 벚꽃 구경이 많이 생겨나 '벚꽃'으로 해석되고 그 이전에는 꽃이라고 함은 '매화'로 여겼다는 것이다.]도 알 수 있다. 기본적인 시의 이해도가 높아졌다. 물론 하이쿠에 극한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지만...
책 한권을 다 읽었을 떄쯤 일본이 좀더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시가 똑같겠지만 한번이 아닌 두번 세번 좋았던 구절은 포스트 잇에 써서 붙여 놓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에게 하이쿠는 금새 마음에 와닿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더불어 일본 문학에 푹 빠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
무로 돌아가네
서리와 눈
개의치 않는 곳으로
-다다토모[사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