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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가 아니라...



표현들은 항상 극단을 치닫고, 사랑하는 만큼 그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깊은 상처들을 받아서 그런 것뿐이니까 아무는 대로 곧 돌아갈 테니 오해하지 말고 즐겁게 지내기 바라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정확히 그런 뜻으로 계속 압박하고 재촉하는 친구? 식구?도 있었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동안 BB부터 지금 IT까지 친구들이 불러준 노래들 대부분 머뭇거리지 말라고 재촉하거나, 따끔하게 가르쳐주는 내용들 아니었나요? 얼마 전에 Ai랑 DD도 저를 엄청 몰아대던데 그런 거 하나도 안 싫고 오히려 너무 고마웠었는데 내가 한마디 했다고 다들 이러다니 좀 서운하네요...

우리는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 배우며 우리들의 진리와 진실을 함께 찾아 나아가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오직 자기만이 자신의 지혜라면 우물 안 개구리랄까... 한계는 금방 명확해지는 게 아닐까 좀 걱정되기도 하구요.

(날고 긴다는 ㄲㄷ들의 기만에 맞서 싸우기 위해 ㄲㄷ들 보라고 치열하게 갈겨 쓰는 글들은 좀 이해를 부탁드려요... .)







1. 비밀 정원


일단 너무너무 미안하면서도 좀 간단한 오해들이라도 먼저 풀어보자면, 명단 자체에 좋아하는 작품이나 사람들의 기준이 따로 있는 건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아무리 들여다봐도 1도 알 수가 없죠. 애초에 그딴 건 아예 없었으니까요. 단지, 본인은 전혀 아니었는데 함부로 적어 넣으면 저도 나름 🐶망신이기 때문에 아무리 꼭 들어맞는 내용이더라도 발표일자들까지 일일이 확인해가며 정말 확실하지 않으면 애매한 건 보류될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에요. (그건 유명한 친구들일수록 더 그럴 수밖에 없어집니다.)  

알았더라면 당!연!히! 터질 듯이 꼭 껴안아서 환영해 줬겠죠.

그래서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짜 HH"의 거목 JK조차도 'Asian'(들 전체를 위한) 영역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차마 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아무런 기준도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절실히 기다린 건 자기 인생이나 꿈에 대한 내용이나 자신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 그 방법에 대해 친구들에게 제안하는 내용들이었는데, 이런 이유로 오해의 여지가 없는 개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표현한 게 쉽게 들어가는 것처럼 오해될 수는 있어도 계속 우려하며 간곡히 자제를 부탁했듯 다른 친구들은 더 지겨워하는 등등 정말 여러 곤란한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정말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놓치고 지나가는 노래들도 안타깝지만 없을 수는 없었고요.

또 (우리가 실패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도) Mudd가 잘 지적했듯 명단에 드는 걸 오히려 좀 겁내는 친구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빼주길 원하는 듯한 표현을 하는 친구들은 진짜 이유가 뭔지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배려 차원에서도 그렇게 해 줄 수밖에 없었던 거구요. 


어쨌든 그래서 이 정원 Page (/) Project가 나름 재밌어하는 친구들도 많고 의미나 실제 강력한 사회적 기능들도 결코 적지 않지만, NF가 숨은 띵곡들이 하도 많아서 나두 꼭 음방에서 한번 보고 싶고, 다른 친구들도 들어보라는 뜻으로 한 줄 적었던 건데 말도 없이 도망가버리는 등등까지 포함해서 너무 많은 오해와 갈등의 화근이 된다고 생각되어 일단 폐쇄를 한 것뿐이고, 앞으로는 무슨 '원격지원체제' 같은 걸로 바꾸어야 하지 않나 고민 중이에요... .





시간관계 상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좀 심각한 문제들은 차차 풀어나가기로 할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우선, 척이니 뭐니... 성격에 대해서부터도 추측이 무성하던데... 간단히 말하자면 꾸준히 보아온 분들은 충분히 짐작하시겠지만 원래 성격은 완전히 '동주'에 가까웠는데 역사를 바꾼 위대한 혁명가들을 조금이라도 따라 배우려 미력이나마 혼신의 노력을 해오다 보니 지금은 윤동주와 (약간의) 송몽규가 한 몸에 깃들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맞을 거예요.




그간 해왔던 한 마디 한 마디들은 모두 진심을 담은 진솔한 말들이었고, 각계의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해주신 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 자신할 수 있습니다.





K 문제도 쉽사리 사과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가 딴에는 정말 진심을 다해 꾹꾹 눌러 쓴 마음이 너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짓밟혀 버렸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올 초를 돌이켜보면 난생처음으로 이렇게 빛나는 artist 친구들이 직접 나에게, 나를 위한 노래를 불러준 평생 잊지 못할 경험들이었고, 특히 DC와 BB는 처음 중에서도 처음이라 마음속 깊이 각인돼 있는데 그 내용조차 지금 돌아봐도 정말 전위적이어서, 현재 우리의 역사가 정리되는 대로 아마 유신독재 시절의 기만성을 폭로했다고 수십 년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하는 김추자 선생님의 [거짓말이야]에 비견될 역사적 의미로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전에 이미 AB가 있었고, 그때는 벌써 활동을 정리하고 들어가는 시기였기에 저도 "뒤통수 밖에" 못 봐서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얼마 후 다시 공연하는 걸 우연히 봤을 땐 가사를 살짝 바꿨는지 도저히 의심할 수 없이 저를 걱정해주는 노래여서 항상 맘에 두고 있던 차에 제가 3월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글을 쓰자 얼마 안 있다 [답을 줘]를 발표하면서 착각이었는지 몰라도 살짝 짜증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미안하기도 해서, KC4에서도 여전히 오히려 [지.못.미.]를 불러 주는 BB 등에게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얼마나 걱정하고 신경 써 줬는지 잘 아는 K와 함께 정말 가장 특별한 마음을 전한 거였거든요.


또 화를 낼까 겁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짝사랑일지라도 끔찍이 사랑하는 나의 웬수로 생각하고 있어요.





3. 나의 아버지 ; Che Guevara와 Trotsky, 그리고 Rancière 


이제부터는 진짜 좀 심각한 문제들을 얘기해 볼게요.



때는 전혀 깨닫지 못했었지만 아마도 [Thesen] 중 한 구절 때문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당시 나조차 친구들을 들었다 놨다 벼랑 끝에 세웠다고 지적해 준 여러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이건 저에게는 정말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될 뼈아픈 지적이고 


















원래는 이렇게 차근차근 해명을 이어가려다.......


때에 찌든 의심을 담은 곡 등이 늘어지면서 구토감에 시달리느라 좀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오히려 제게 원망을 품는 친구들까지 보여서 일단 이렇게라도 답변을 붙입니다.

빠르면 담주 초쯤 돌아오도록 해볼게요.


어차피 한껏 어지러워진 상황을 그나마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친구들은 11월 한 달은 다들 좀 푹 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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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1-18 0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고려대 민주동우회와 학교 앞 인문사회 서점이 청년과 함께하는 세상읽기 무료강좌 안내 >



“세상을 이해하는 힘, 함께 배우고 함께 질문하다”
- 청년의 삶에서 출발하는 인문사회 교양 강좌

청년과 함께하는 세상읽기 강좌


■ 참여자 혜택
- 강의 참가 비용 없음
- 전체 6강 중 4강 이상 참여자에게 지담 도서상품권(2만원) 지급

■ 공동 주최
고려대학교 민주동우회 × 인문사회서점 〈지식을담다〉

■ 강의 장소
인문사회서점 〈지식을담다〉@성북구 고려대로 24가길 17
분위기 미리보기:
▶ https://m.blog.naver.com/jjoonact/223915930611
▶ https://blog.naver.com/soon5574/224060832807


■ 강좌 일정 및 내용 (총 6강)
○ 1강 | 1월 13일(화) 18:30
〈기후위기, 어떻게 할 것인가 : 기후위기의 이해와 대안〉
강사 : 이송희일
(영화감독,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 저자)
→ 기후위기를 환경 문제가 아닌, 사회·경제·삶의 조건의 문제로 이해하는 강좌

○ 2강 | 1월 20일(화) 18:30
〈대중음악으로 세상을 읽다 : 자본주의, 젠더, 그리고 우리〉
강사 : 서정민갑
(음악평론가,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 공저자)
→ 우리가 듣는 음악을 통해 자본주의, 젠더, 세대의 감정을 읽는 문화 강좌

○ 3강 | 1월 27일(화) 18:30
〈다르게 살아볼 수 있을까? : 대안사회, 연대의 상상력〉
강사 :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전 정의정책연구소 소장)
→ 경쟁과 고립을 넘어, 연대와 대안사회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강의

○ 4강 | 2월 3일(화) 18:30
〈왜 청년은 극우·혐오에 끌리는가 : 청년의 정치 성향과 갈등 그리고 치유〉
강사 :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연구교수)
→ 청년 정치의 갈등과 혐오를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치유의 가능성을 모색

○ 5강 | 2월 10일(화) 18:30
〈괜찮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는 법 : 청년의 마음을 위한 심리학〉
강사 : 백종우
(경희대 의과대학 교수, 『처음 만나는 정신과 의사』 저자)
→ 불안과 번아웃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을 위한 심리학적 이해와 회복

○ 6강 | 2월 24일(화) 18:30
〈전쟁의 시대 : 우크라이나·중동·미중 경쟁, 그리고 한국〉
강사 : 양경규
(21대 국회의원, 『이슬람주의, 와하비즘에서 탈레반까지』 저자)
→ 국제정세와 전쟁의 구조를 통해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읽는 강좌




(작은) 도서관 규모의 넓직하고 쾌적한 북카페, 스터디카페 같은 신개념 서점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강사진과 함께 세상과 자신을 공부해 볼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안내 드립니다.






rhizome 2026-01-16 0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2026체제전환운동포럼 (참가신청) 안내 >
되돌아가지 않고, 새롭게! 2026체제전환운동포럼👻



⛄오는 2월 5~7일, 2026 체제전환운동포럼이 열립니다!
서로 다른 운동의 통찰과 도전을 공동의 전망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올해에도 체제전환운동포럼이 열립니다. 2월5~7일 사흘 간 서울 대방동에서 치열한 토론과 뜨거운 상상을 모으고 나눕시다! ☀️



갈수록 정세는 혼돈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학살이 점증하고 있고, 자본과 정권은 불평등을 감축하는 노력 대신, 오히려 이를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내닫고 있습니다. 🐤

서로 다른 운동의 통찰과 도전을 공동의 전망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올해에도 체제전환운동포럼이 열립니다. 2월5~7일 사흘 간 서울 대방동에서 치열한 토론과 뜨거운 상상을 모으고 나눕시다! ☀️

👻극우 세력화에 맞선 대안, 부채와 민중의 권리, 지역소멸 담론에 맞선 운동, 진보정치, 인공지능 담론 비판 등 지금 시기 사회운동에 필요한 쟁점들을 다루고, 사회공공성과 탈시설 민주주의, 학생운동, 팔레스타인 연대, 가짜3.3% 계약 노동자들의 권리, 농생태 체제전환 등 6개의 자유세션이 열립니다. 또, 종합세션에서의 정세분석과 전망을 통해 사회운동 공동의 과제를 만들고자 합니다. ↗️



행사 안내
📆일시: 2026년 2월 5일(목)~7일(토), 3일간

🚩장소: 서울가족플라자 다목적홀 (지하철 1호선 대방역 인근)

🌞대상: 모두의 삶을 말하는 체제전환운동의 가능성이 궁금한 누구나

🎪 세션별 안내

‘260205목
13:00 참가접수
14:00 개막식

15:10~17:20 기획1. 인공지능에 맞서 저항을 연결하는 디지털저항운동
사회: 희우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발표1. 빅테크 자본의 전 지구적 시장 독점과 수탈 /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발표2. 인공지능 대세론 뒤의 거짓 신화 / 고아침 (AI 윤리 레터)
발표3.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의 제국주의적 자원 수탈 / 이현담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발표4. 인공지능과 일터의 변화, 노동자운동의 대응 / 김하늬 (전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책국장)
발표5. 인공지능 민중 통제권을 위한 시민사회 개입 전략 /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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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20:50 기획2. 극우의 부상, 사회운동의 과제
사회. 민희 (플랫폼C)
발표1. 페미니즘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 극우의 반페미니즘 담론 활용 / 수수 (한국성폭력상담소)
발표2. 서구극우 성장조건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 역차별정치와 시민사회의 위기 / 온(금속노조 노동연구원)
발표3. 극우 성장에 맞서는 민주주의의 전제: 차별금지법 제정을 중심으로 / 류민희 (희망을만드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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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6금

10:00~11:40 자유1. 현장과 세상을 함께 바꾸는 사회공공성 운동
장소: 서울가족플라자 다목적홀
사회: 공성식(공공운수현장실천 집행위원)
패널:
의료, 교통, 연금, 학교, 에너지부문 노동자
사회운동단체 활동가

10:00~11:40 자유2. 탈시설 민주주의 : 권리를 가질 권리, 출현할 권리, 공존할 권리
장소: 서울여성프라자 시청각실
사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발제: 탈가족, 탈시설, 탈노숙 그리고… 요양원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다 죽고 싶어
/김동림 (탈시설장애인당,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토론:
유진아 가족구성권연구소·장애여성공감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김연주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온
바다숲 핫핑크돌핀스
안형진 홈리스행동

10:00~11:40 자유3. 그럼에도 나의 현장, 대학에서 운동하기!
장소: 아트컬리지2
사회: 권나민 한예종 돌곶이포럼
발표1. 동덕여대 공학전환 반대와 학내민주화 투쟁 / 동덕여대 무단 공학전환에 저항하는 재학생
발표2. 학내 노동자와 연대하는 학생들 / 이재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발표3. 캠퍼스를 교차하는 작당모의 학생활동가들의 다양한 실천 /하지원@숭실대 사회문제공부 실천소모임 틔움
발표4. 다른 내일을 위한 대학 정세 전망과 실천 방향 / 세윤 플랫폼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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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14:40 자유4. 팔레스타인은 해방의 리트머스다 · 제국을 부수는 저항과 연대
장소: 서울가족플라자 다목적홀
사회: 지혜 (플랫폼C)
발제: 가자는 미래의 리허설이다 /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토론:
기후정의와 팔레스타인 해방 / 은혜 기후정의동맹
장애인과 팔레스타인, 우리의 생존이 체제의 전환이다 /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에 맞선 퀴어연대 / 보람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
자본의 봉쇄를 부수는 가자항해 / 해초 TMTG가자로향하는천개의매들린호 한국지부
무덤 위에서 연구하지 말라: 이스라엘 학술 보이콧 운동 / 이수민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조지부 연세대분회(준)

13:00~14:40 자유5. 자본의 수탈에 맞서 생명의 저항으로, 농생태 체제전환의 시작
장소: 서울여성프라자 시청각실
사회: 선지현 (삶과노동을잇는배움터 이짓)
발표1. 후기 자본주의적 농수탈 체제와 체제전환의 관점으로서의 농생태 / 채효정 (자치와자급)
발표2. 수탈의 현장과 저항하는 농민들: 현장 사례를 중심으로 / 박누리 (월간옥이네 전 편집장)
토론:
문영규 (항꾸네협동조합)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13:00~14:40 자유6. 3.3% 노동자의 권리! 일하는사람기본법 vs. 근로기준법
장소: 아트컬리지2
사회: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발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일하는사람기본법안의 문제와 과제 /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토론:
김주환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최우영 (한국마루노동조합)
김인식 (사무금융서비스노조 삼성화재애니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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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7:20 기획3. 부채와 민중의 권리: 저당잡힌 집, 시간, 삶을 되찾자
사회: 서창호,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발제1. 금융과 부채는 어떻게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하나?_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발제2.‘빚 권하는 사회’가 만든 전세사기·깡통전세 이후 집과 권리를 다시 상상하기_서동규,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발제3. 여성부채, 여성의 시간을 저당잡고 삶을 수탈하는 금융자본_혜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발제4. 자본을 공유지로 바꾸는 탈자본 금융운동_김지음, 빈고 책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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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20:50 기획4. 모든 지역은 최전선이다, 자본에 맞서는 지역정의!
사회: 효성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조직위원)
발제: 자본의 공간전략에 ‘지역정의‘로 맞서자 / 남영란 (노동해방 마중)
토론:
특별자치도 특별법, 지방자치라는 이름의 규제프리존 / 채민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송전탑, 지역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자본의 에너지식민주의 / 수노기 (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
이주민을 부품으로 쓰는 자본,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무너뜨리나 / 손상용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인구소멸 프레임에 갇힌 청년과 해체된 공공성 / 조영은 (삶과노동을잇는배움터 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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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7토

10:00~12:10 기획5. 체제전환운동의 자리 찾기와 진보정치의 길
사회 :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
발제 : 좌파의 자리 찾기와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가안) / 서영표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토론 :
노동당 정상천 사무총장
녹색당 이상현 공동대표
정의당 나경채 기획실장
노동자가여는평등의길 장석원 활동가
플랫폼C 홍명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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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16:30 종합. 2026년 정세전망과 체제전환운동의 과제
사회 :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발제 : 성장지상주의에 맞서 평등을 이룰 사회적 동맹을 만들자 / 미류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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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신청
👉 https://bit.ly/2026forum

‍📣참가비 안내🎀
참가비 : 하루권 2만원 | 이틀권 4만원 | 전일권 5만원 | 청소년 자율납부
참가 일수별로 참가비가 다르며, 모든 참가비에는 ‘자료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럼 신청 이후 환불은 어렵습니다. 체제전환운동을 후원하는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입금계좌 : 기업은행 048-159061-04-013 체제전환운동


문의 💬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홈페이지 | https://www.gosystemchange.kr/product/apply-for-2026forum
이메일 | go.systemchange@gmail.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gosystemchange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gosystem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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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sen  



1. 언론은 이미 가장 강력한 전 사회적 파급력을 갖는 명예형을 기소, 구형, 선고, 집행하는 인민법정 여론재판의 유일무이한 독점적 관할자로서 실질에 있어서 막강하고 광범한 일상 권력을 즉각적, 항상적으로 행사하고 있는 (준)사법기관의 지위에 도달했다.[1]




2. 이뿐 아니라 구조적으로 현대 언론은 주체 전체를 둘러싸고 Media Bubble 안에 가두어 버린 채 실재[2]와 주체 사이를 개입, 차단하여 주체들에게 가공의 현실[3]을 독과점적으로 제공, 통제함으로써 감각과 인식을 조작하고 인공 현실을 창조해내는, 현실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이런 자의적 가공의 가장 비근한 예로 바로 언중법 개정과 관련해서만도 YTN 등 언론 Cartel은 최근까지도 민언련과 민변이 개정을 반대하는 대표적 2대 단체라며 사실 자체를 정반대로 왜곡해 수십 차례 집요한 반복 방송을 한 반면, 자신에게 불리한 사실들은 철저히 숨기고 은폐해 버린 채 침묵으로 일관하여 국민 대다수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기독교 목회자정의평화실천연대, 대한성공회,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개혁국민운동본부, 민주언론시민연합, 사회대개혁지식네트워크, 고려대민주동우회 등 무려 140여 단체가 언론의 이런 작태와 반발을 보다 못해 개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는 사실 등등은 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마치 국내외로 압도적인 대다수가 반대를 하고 있는 듯한 착란에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런 파렴치하고 비열한 취사선택과 침묵의 담합공모가 비일비재 일상화된 것은 현재의 언론환경이 대단히 심각하고 위험한 상황에 빠져 있음을 웅변하는 징후들이 아닐 수 없다.[9]




3. 따라서 과거 권위주의 독재 정부 시대엔 물리적 폭압기구와 정보기관들이 전면에 나서 직접 국가폭력을 행사함으로써 사회를 통치해 왔지만, 형식적 절차적 민주화가 진전된 현재 국면에선 이상 변화된 사회 구조와 조건들을 적극 활용하여 Hard Power 대 Soft Power, 또는 RSA 대 ISA라는 고전적 이분법을 버리고,


   ① 폭압기관, 정보기관들은 뒤로 물러서서 자신들을 숨기고 대신 새로운 사법/사정권력으로 떠오른 언론기관을 경유해 '언론(사)의 자유'라는 오역된 구시대의 절대 가치와 취재원 보호라는 미명까지 덮어쓴 채 훨씬 더 폭넓고 자유로운 대리폭력을 행사하는 한편,


   ② gaslighting 등 정보-인지 조작 기술부터 Ideology적 문화정치까지를 통해 여론을 주조-통제하는 두 축의 강온 양면 통치술이 모두 다 언어와 정보를 주무기로, 명예를 핵심으로 하는 (정적 등 상대방의) 사회적 생명을 전리품으로, 담론장만을 주전장으로 전개-행사되는 새로운 통치 양식으로 이행했기 때문에 과거 국가폭력에 모든 감시활동의 초점이 주어졌던 것과 같이 이제는 언론폭력에도 같은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4]




4. 또한 그 주통치술의 한 축인 언론폭력 기법들도 사회발전에 따라 나날이 교묘해지고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에 혐오-차별만 해도 과거에는 인종 등 특정 minority[5] 집단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표현-행사된 반면, 현재는 집단(전체)화 사고와 고정(관념)화 사고를 조장하는 기초 방법은 여전히 동일하게 사용되나 특정 집단을 혐오-차별하고 억압하기 위해 대신 반대 집단을 일방적이고 맹목적으로 우대하고 극단적으로 과장하여 찬양미화하는 등의 간접 기법이 주로 동원되고 있으며 작금의 소위 '전문가주의' 광란은 정확히 이러한 맥락을 품고 있기 때문에 정권 전체를 위협하는 이런 엄청난 저항을 불러 일으키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날로 고도화하는 언론폭력의 새로운 기법들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 같은 그나마 가장 선진적이고 피해자 중심적인 인권의식을 가진 인사들로 엄선된 기관조차 "'보복'은 매우 주관적인..." 어쩌구 하면서 경악스러울 정도로 둔감한 감수성과 상황파악능력을 시전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인데, 그렇다면 유사한 인적 계층의 더 보수적이거나 후진적 단위일 사법부나 언중위를 상대로 과연 그 누가 도대체 어떻게 악의적 언론에 의한 고의·중과실 보도 피해를 입증해 낼 수가 있단 말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6]




5. 이러한 모든 사실과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을 완전히 망각한 채 한낱 기러기들의 이기적 이익단체로 전락해버린 언론의 광란과 폭동 사태에 의해 국민 다수 계층, 특히 청년들이 느낀 고통과 그 불의, 협잡, 기만에 대한 분노는 섣부른 상상을 초월한다.




6. 나는 이들의 간절한 호소와 지속적 호명을 통해 그 문제의 해결을 사명과 임무로 명령받았다.




7. 언론피해구제법은 이런 맥락에서 민주당(파)에게 안내한 마지막 비상탈출구였다.




8. 민주당이 제대로 된 정치적 대표체라면, 배액 청구권자에서 '전직' 공직자와 중견기업까지를 완전히 제외하면서라도[7] 원래의 개혁 의지와 국민적 염원에 굳건히 입각해 원안대로 통과시키고 나서, 상당기간 그 실제 작동 결과와 효과들을, 산출된 각종 지표와 Data로 확인한 후 최종적으로는 헌재 등등까지 포함한 다른 절차와 제도, 보완입법들을 통해 미세조정해 나가는 경로를 택해 돌파해 나아갔을 것이다.




9. 그러나 '포용'에 대해 완전히 오해하고 있는 민주당 정부의 '사면'이나 '부동산 세제[8]'에서 반복되어 온 어이없는 실책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마저 속임으로써 한 치 앞도 내다볼 능력이 전혀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저변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조차 전혀 눈치 채지 못 하는 언론의, 폭동과 광란에 뒤이은 갖은 엄살과 막무가내 식 떼쓰기에 계속 밀려 너덜너덜한 누더기가 되어버린 현재의 개정안으로는 언론에 의한 문제와 피해의 실효적 구제도, 심지어 법의 작동조차도 전혀 기대할 수 없기에 입법 통과가 되든 안 되든 일체의 상관이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10. 위와 같이 호소들은 너무나 애절하고 그 고통과 분노는 상상을 초월함에도 개정안을 통해서는 도저히 그 어떤 변화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과 언론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앞으로 우리는 다른 '무슨 짓'이라도 할 수 밖에 없게 되었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그러므로 언론중재법 강화란 다름아닌 이 새로운 사법/사정권력으로서의 인민법정에 정연한 체계와 질서를 부여하고 그 권력에 따르는 엄중한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는 필수불가결하고 당연한 과정의 첫 걸음에 불과할 뿐이다.



[2] The real.



[3] 見實; Reality (見 :나타날/보일 현).



[4]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사찰/정보기관이 숨은 매개고리를 통해 언론에 정보를 넘겨 더욱 폭넓은 대리폭력을 자유롭게 행사하는 이 통치기제'를 통해 그 기관들의 존립과 활동 근거도 유지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욱 고양, 조장되고 활성화하는 확대재생산 회로를 끊기 위해서라도, 인민법정에 체계와 질서를 부여하고 의무와 책임을 묻는 법제 도입의 핵심적 일환으로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경우에도 사실이기만 하면 무조건 면책시키기보다 '독수독과론'에 준거하여 불법적 정보획득에 대한 징벌적 규제와 피해 구제의 도입이 반드시 유지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5] 주로 '소수자'로 번역되는데, 오역에 가깝고 '약자'나 '비주류'로 번역되어야 '여성은 결코 소수자가 아니다'라는 식의 황당한 내외 반론을 없앨 수 있음.



[6] 또한 진보계도 백날 오체투지까지 해봐야 전혀 씨도 안먹히는 '차별금지법' 제정운동만을 분리단절적으로 오인하고 매몰돼 있기보다 눈앞의 언론법 개정이 바로 '혐오차별(표현(조장)) 금지법'의 시작과 단초가 될 수 있음을 직시하고 동일 관점으로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전 사회적 여론을 형성-주도하는 언론, 특히 독과점적 (준)공영 방송 언론에 의한 혐오차별 조장은 그 피해가 너무나 급속하고 광범위하기 때문에 정확히 이들에 의해 주도된 이번 언론폭동도 국민 대다수와 청년층에게 가해진 더 큰 피해는 무한반복의 '전문가'주의 광란 그 자체뿐 아니라, 이에 완전히 세뇌고무된 대중, 특히 community (/) site들에서 혐오차별적 공격표현의 폭증 때문이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7]그래도 정 어렵다면, 청구 '대상'을 규모에 따라 중상위 언론사로 제한해서라도.



[8] 최근의 경제 상황은 금융(완화)정책이 점차 그 한계 구간의 입구에 진입하고 있다는 sign과 symptom들로 해석되어야 하며, 앞으로 펼쳐질 이러한 구간에서 유일한 해법은 통화 유동성 공급은 점차 줄여 나가면서 그간의 온갖 완화 조치들의 특혜를 독식해 한껏 부풀어 버린 자산 시장의 시세 차익들을 세제로 환수하는 과정 자체에서부터 양극화도 이완하면서 이를 기반(/)자원으로 강력한 재정중심정책을 향해 신속전환해, 금융통화정책으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은 채 오히려 더욱 심화만 되어 갈 양극화 문제와 광범한 수요기반 실물경기 부양을 정밀하게 집중 표적화하여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9] 이하는 조속한 언중법 개정 통과를 촉구하는 140여 개 단체의 공동성명서 전문이다.


66

참된 언론자유는 언론의 책임으로부터!


언론중재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촉구한다!



유신과 군사독재 시절 권력의 총칼 아래 신음할 때 언론은 국민이 숨을 쉴 공간을 제공하는 탈출구였다. 그리하여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와 자유언론수호투쟁은 마침내 독재의 아성을 무너뜨린 하나의 봉홧불이었다.


그런데 왜 지금 언론개혁의 절규가 시민사회에서 분출하는가. 대한민국 언론이 그만큼 타락했기 때문이다. 자본으로부터 독립과 참된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던 선배들의 결기를 까맣게 잊고 현실에 전면적으로 투항했기 때문이다. 이제 언론은 거꾸로 독점재벌, 사법/검찰, 극우정당 등 우리 사회 과두 기득권의 이익을 앞장서서 지키는 용병이 되고 말았다.


시민의 투쟁으로 쟁취된 언론 자유는 어느덧 통제 불능의 자의적 권력으로 변질되었다. 시민의 편에서 정의를 수호해야 할 언론의 책임은 언론사주와 하수인들의 독점적 권리가 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언론 자유의 신화는 마침내 ‘타인의 인권을 침해할 자유’, ‘가짜 뉴스로 명예를 훼손할 자유’로 변신하고야 만 것이다.


현재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이 통탄할 언론현실을 개혁하는 최소한의 장치다. 책임과 자유가 공존하는 매스미디어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첫 번째 벽돌을 쌓는 것이다.


하지만 개정안의 통과가 벽에 부딪히고 있다. 극우야당의 국회본회의 통과 저지 책동 때문이다. 그들과 한 몸이 된 언론 기득권 구성원들의 저항 때문이다. 그 선두에 이른바 ‘조중동’이 있다. 언론중재법이 언론자유를 침해한다는 가짜 프레임을 극렬히 유포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개정 언론중재법이 현 집권세력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기 위한 것이며, 이를 통해 차기 정권연장을 목표한다는 강변까지 나오고 있다. 개정 법률안 발효 시점이 2022년 대선 완료 이후임을 감안할 때 기괴하기 짝이 없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허위조작 뉴스, 발행부수 조작, 불법 차명거래, 사생활 침해 기사가 있어왔는가. 이를 통해 추산이 어려운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시민 비판이 고조될 때마다 신문협회,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은 언론개혁은 자정능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과연 결과는 어떠했는가?. 우리나라의 <언론 자유도>는 3년 연속 아시아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언론 신뢰도>는 주요 40개 국가 중 5년째 최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언론자유의 적나라한 현실인 것이다.


현재 추진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그러한 참담한 언론 현실에 대한 시민사회의 분노가 임계점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법률안의 핵심으로서 “언론사의 명백한 고의 또는 중대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한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는 책임에 기초한 언론자유를 가능케 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것이다.


참된 언론자유는 언론사주와 일부 언론종사자들의 독점적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의 자유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 아래 우리 시민사회단체 일동은 다음과 같이 촉구한다.


1. 언론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도 늦출 수도 없다. 주어진 ‘자유’를 악용하여 가짜뉴스로 여론을 호도하는 행위. 허위사실임을 알면서도 언론의 이름으로 폭력적 보도를 자행하는 행위는 민주주의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1. 사회적 약자인 시민의 피해를 방지하고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악의적 가짜뉴스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것이 주권재민 국가의 기본적 장치이며 역으로 언론을 위한 최소한의 자정수단이다.


1. 정부와 여당은 시민사회의 이 같은 절박하고 엄중한 요구에 부응하여 조속히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본회의 통과를 진행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자유와 책임이 공존하는 진정한 언론개혁을 향한 첫 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2021년 8월 30일


언론중재법 개정을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 일동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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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4-01-20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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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거칠어진 어조는 대규모 법정 소송전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신호로 해석되어야 마땅하겠죠.

우선 ㅁㅁ 담당자께 경고합니다.
소설 좀 작작 쓰고 당신 정체나 좀 밝히시기 바랍니다.
소송 준비하느라 방송사 프로그램 홈페이지고 어디고 다 뒤지고 돌아다녀도 도대체 당신 이름 하나 밝히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신도 무슨 비밀 정치조직이라도 되는 겁니까?

밑도 끝도 없이 막말 쏟아댄 게 벌써 한두 번도 아니고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란 게 결국은 다른 채널들이 자중하고 있을 때조차 혼자 친한 척 계속 비벼대면서 할 말 못 할 말 무책임하게 아주 맘 편히 다 해대어 다른 모든 채널들에게 다시 용기를 주고 모함과 비방 대열에 또 끌어들이고 있는 짓거리입니다.

벌써 몇 년째 도무지 쉴 틈 없는 인격살해 시도들에 시달려 왔고 그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로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 뿐인데 그간 당신이 해 온 짓은 생각도 않고 자꾸 도대체 누가 누굴 용서한다는 겁니까??


적당히 좀 하시기 바랍니다.
당신 같은 인간들과 각종 구경꾼, 관전꾼 XXX들 때문에 참다 참다 그만 두게 되면 그 다음 벌어지는 사태들에 대해 모두 책임질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rhizome 2024-04-28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별 것도 아닌 일 하나 하나에 또 아주 난리가 났나요?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일들에 어슴푸레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 하나 얼핏 보고 오로지 억측만으로 가지가지 이야기를 지어내 떠들어 대는 인간들은 그 의도와 정반대로 그냥 딱 자기 수준만 투명하게 드러낼 뿐이라는 사실도 알 리가 없고.....

전혀 관심도 없는 무슨 얼어죽을 ‘주인공‘ 타령이나 하고 있지 않나...
생싸이비 심리분석이랍시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내키는 대로 떠들어 대고 있는 방송들은 채증과 함께 계속 모니터링을 하고 있으니 더 큰 죄 짓지 말고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EBS
대충 알아 들었으리라 믿고 한동안 신경을 안 썼더니 설마 아직도 재방, 4방을 해 가면서 지금 일주일 내내 저에 대해 되지도 않는 헛소리들을 계속하고 있는 겁니까?
GQ 선생님에 대해서도


* 기타 호사가 관전꾼 분들께 드리는 추신

‘침묵‘이라는 기표 하나조차 올바른 해석에 성공한 적이 없는 분들이 뭘 그렇게나 시끄럽고 소란스럽게 가지가지 황당무계한 입방아들을 찧어 대고 계시는 건지

일단 ‘피로‘나 ‘무기력‘과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고 차라리 이미 그간 여러 번 지적돼 온 배신들의 PTSD로서 ‘조용한 사직‘ 등에 훨씬 더 가깝다고 보는 게 그나마 정상적인 분들이겠죠.



두 번째 비밀통로 : ‘초월성‘
이 요소 단 하나 때문에라도 당신들 같은 소시민의 오로지 평범한 우물 안 일상(/)생활 감각에만 기댄 속물적 통속성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봤자 죽었다 깨어나도 애초 저에 대해 절대 뭐 하나 제대로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rhizome 2024-08-26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상대가 눈치 없어 보입니까? 당신이 위에서 말한 바보들이 아니라면 혹시 당신을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꼭 한번 생각을 해봐야만 합니다.
그걸 넘어 눈치를 밥 말아 먹은 것처럼 보입니까? 그럼 그건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당신을 경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완전한 인생 낭비라 아예 조회 자체를 안 하고 있었는데 간만에 보니, 엄밀한 조직론에 입각해 원인분석과 대책을 제시해 줄 능력도 무엇보다 진심 자체도 전혀 없으면서 드디어 복통이 해소되는 것 같다는 기대감에 마냥 신이 나서 백면문인의 법적 무지가 조장하는 용기로 가일층 비방과 책임전가에 열을 올려 점점 더 난리를 쳐 대려 들거나 아니면 자기 손으로 나무를 베어 버렸다는 악어의 눈물 같은 알량한 죄책감을 지어 보이려 애쓰는 표정의 인간들 모두가 단 한 곳만을 뚫어지게 들여다 보고 있는 그 광기 어린 충혈된 갖가지 눈들!! 그것이야말로 이 군상 영화의 진정한 공포 중 공포의 백미입니다.

자신이 뒈져 나자빠진 지 이미 오래인 줄도 모르고 한국문단이 뒤늦게 싸질러 낳아버린 위대한 시인 김 살리에리와 그 주변 인간들의 밑바닥에 대하여는 조만간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 문제만은 그간의 다른 내용들과 달리 약간의 전파율조차 전혀 안 나오고 있는 건 아닌 듯 싶어 우선 답하기로 합니다.
일단 당신 회사 법무팀에라도 제발 좀 문의를 하고 나서 행동을 하더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다른 방송사들은 왜 다들 갑자기 조용해 진 것 같습니까??

이 문제를 이렇게까지 계속 방기한 채 제대로 관리감독을 하지 않고 계시면 류시춘 이사장님도 언젠가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시면 안 될 것입니다.)


 

.



   그 이전에는 전혀 신경을 못 쓰고 그냥 지나치던 {Classⓔ} Program을 주말에라도 틈틈이 챙겨 보려 노력하게 된 최초의 계기도 김석 선생님의 Lacan 강의 때문이었는데, Butler는 여러 사람들에게 {위대한 수업Great Minds}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유인이 되기 충분할 것입니다.

세계 지성계의 지도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나 그 기여도를 고려할 때, 그래도 나름 외국 방송이라고 신경 쓰고 나오신 듯한 선택이 하필 동물피부 jacket이었다는 점이 실망스럽긴 하지만, 적잖은 분량의 강의안까지 정성스럽게 준비하신 배려심과 성실성에 대한 경의로 겨우 상감하면서 감히 드리고자 하는 간략한 제언은...



대부분의 강의가 너무 짧아 심도 확보가 전혀 안 되고 매우 단편적으로 수박 겉핥고 지나가기를 못 벗어나는 게 고질적 문제점일 것으로 보이나, 이를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서는 이번처럼 강의안을 별도로 준비하신 경우만이라도 (사전에 가능하다면 더 좋겠지만) 반드시 같이 online 배포, 공유될 수 있도록 좀 더 노력을 기울여 주실 것과 특히 성우의 dubbing diction은 국문 자막의 필요성을 현격히 감쇠시키는 게 사실이긴 하나, 여전히 난청 등등 다양한 유형의 청각 장애를 갖고 있을지도 모를 다른 동료 시민들을 위해 {Classⓔ} Program에 준하는 꼼꼼한 자막 처리를 주관 기관들에 요청드리는 바입니다.[1]


또한 더 중요하게는 출연진이 너무 영미권, 특히 미국 거주자라는 사실이 강력하게 조건지을 인식의 편향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 지역의 다양한 지성들에게도 적극적 섭외 시도를 확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미 인구의 상당수가 영미권 강의 자료엔 직접 접근할 수 있는 여러 channel들이 날로 확대되고 있는 반면, 기타 언어권은 번역, 소개 등에 공영 방송과 기관들의 개입이 더욱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될 뿐 아니라, 특히 France나 독일 등의 경우 인문사회과학 등 광범한 분야에서 영미 학계를 압도함으로써, Butler 자신을 포함해 영미권에서도 유학 등 수입 및 추종에 급급한, 뿌리와 원천이 되고 있는 석학들과 그 학통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더구나 Jacques Ranciére, Jacques Attali나 Hito Steyerl처럼 이 지역 출장이 전혀 일정에 없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Badiou[2], Balibar[3], Jacques-Alain Miller 등이나 Bourdieu 후학단, Jacques Bidet, Dominique Lecourt, Pierre Macherey 그리고 바로 이웃한 Habermas, Axel Honneth[4] 등의 Frankfurt 학파와 Negri 주위의 post±Operaisti, Slovenia/Ljubljana 학단 등등은 물론이고, 경제학만 해도 Gérard Duménil, Dominique Lévy 하다못해 Thomas Piketty 등등의 거장들이 전멸에 가까울 정도로 완전히 배제된 점[5]은 거의 지역 차별에 해당할 정도여서 정말 매우 안타깝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모쪼록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서 힘들게 애써 주시는 점 전혀 모르는 바 아니오나 기왕 들이시는 노력들이 조금이라도 헛되지 않도록 그 모든 노고에 선행하는 근본적 방향 설정의 중요성에 관해서만이라도 약간의 신경을 더 경주해 마무리 지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나중에 확인해보니 Butler까지는 재방 version에도 청각장애인용 자막지원조차 첨부되어 있지 않았음.

[2] 잘 알려진 직계제자인 서용순 선생님을 통하면 의외로 매우 빠르게 진척될 수 있음.

[3] 역시 직계제자인 배세진 선생님을 코디로 참여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매우 빨리 성사될 수 있음.

[4] 심지어 Honneth는 운이 좋으면 현재 Frankfurt( @Goethe Univ.)가 아니라 New York시( @Columbia Univ.)에 거주 중일 수 있음.
(겸직으로 되어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는 매주 화요일 11~13시를 Office Hour로 운영 중.)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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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4-05-22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2‘]&[5]
현존하는 세계최고지성이라 할 수 있는 BADIOU는 이미 만으로도 87세를 넘었으므로 언제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렇지 않더라도 정신력이 감퇴할 수 있으므로 한시라도 빨리 방송강연의 기회가 최우선적으로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될 위태로운 보석이라 아니 할 수 없음.
참고로 Etienne_BALIBAR도 이미 82세, Jacques-Alain_MILLER도 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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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 최고의 지성‘에 관해 부연하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의 탈근대 국제관계론을 정립한 [[제국Empire]]이 출간되었을 당시만 해도 Antonio_NEGRI를 ˝(MARX를 넘어선 )MARX에서부터 DELEUZE, MACHIAVELLI를 거쳐 SPINOZA 연구까지 모두 아우르는 최고의 지성˝으로 주저 없이 손꼽은 서적들이 다수 발견되나 이후 신자유주의 체계의 급격한 붕괴 과정과 이에 따른 국제 정치경제 정세의 급변을 거치며 검증된 국제관계의 실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체계론에 더욱 부합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제국은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단계가 아니라 세계체계라는 하나의 단일 구조가 국면에 따라 세기 초에는 강대국 간 갈등이 격화하는 제국주의적 성격이 전면화되었다가 점차 세기 중후반 전성기에 제국적 성격이 강화되다 100여 년에 걸친 종말기에 다시 갈등이 격해지는 제국주의로 회귀하는 관계였음이 드러나면서 지금은 BADIOU와 각축하(거나 경우에 따라 오히려 다소 열세로 평가되는 경우도 있으나 반대로 NEGRI에 비하여 BADIOU의 최대약점은 정치경제학적 사유의 부재가 자주 지적되)는 상태로 볼 수 있는데, 문제는 NEGRI가 33년생으로 곧 90세라 단연코 가장 다급하고 위태로운 Great Mind임에는 의문의 여지가 있을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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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더욱 결정적으로 현대세계사상(사)의 중심무대를 France에서 Italia로 옮겨 놓은 장본인들인 (post)Operaisti의 수장.

: 인용 따옴표 안은 일부러 연령을 수정하지 않고 처음 2023년 연초 게재 당시의 원문[*]을 그대로 재게재했는데 이유는 NEGRI 선생이 안타깝게도 그해 말인 12월 16일자에 향년 90세로 서거하셨기 때문.

세계(체계)의 위기와 봉기는 50~60년 주기로 반복되고, 지금까지는 다행히 그 격변기 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지성과 리더들이 탄생해 왔으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제 20세기 중반 혁명을 이끌었던 3세대의 빛나는 사상가들이 모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모두들 어렵겠지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부지런히 남은 분들이라도 생전에 지금 여기 우리의 문제에 대하여 더 가까운 배움을 청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최초 게재 원문 출처 : <편지> Page 덧글창
@https://blog.aladin.co.kr/rhizoma/13044350#C4041005

‘2023-04-02 12:35 최후수정 덧글 내
‘$4장. 탈주술화와 재주술화, 그리고 기계주의‘ 중
‘ [****] Alain_BADIOU‘에 관한 주해부





rhizome 2024-05-22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현대 급진주의에 대한 오해와 세대별 차이 >


0. 변별/쟁점들

0.오해1. 한미동맹


0.오해2. 사회주의


0.오해3. 평의회와 자치정부, 그리고 ((초)Elite대리주의) 정당의 존부 및 상호관계와 태도




-0. 구체적 입장의 차이


2세대.




3세대.

3a. 뿌리로서의 Mao주의
3b. ‘68혁명 사상과 (post)anarchism

: 사상사적 관점에서 3세대의 뿌리는 Mao주의와 문혁에 깊은 영감을 받아 발아하였고 이후 anarchism을 참조하면서 postanarchism으로 정립되어 간 사상운동으로서, 국내에서는 이러한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다면성에 대한 심각한 무지로 철저히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폐해에만 천착하여 Mao주의와 문혁 현상 전체를 아주 일면적으로 완전히 악마화하기에만 급급하고 있으나, 본래 그 사상철학적 이념과 목표는 ˝백화제방˝과 ˝백가쟁명˝으로 심지어 ‘광기‘까지를 포함하는 이 모든 약자 및 소수자 담론들과 인식을 사면복권시키고 담론간 평등성을 보장하려는 운동이 postmodernism 사상운동의 핵심요체였다고 정리할 수 있으며, 그 최고 지성적 형태가 그 유명한 France의 초고도 지성들 뿐 아니라, 영미 과학철학계의 별들, 특히 Thomas_KUHN과 인식론적 anarchism, anarchism적 과학철학을 정교하게 정립시키는데 성공한 Paul_Karl_FEYERABEND 등으로 완성된 것임.

FEYERABEND Bibliography

(‘1975) Against Method: Outline of an Anarchistic Theory of Knowledge. London: Verso Books.
(‘1978) Science in a Free Society. London: Verso Books.
(‘1981) Realism, Rationalism and Scientific Method: Philosophical papers, Volume 1. P.K. Feyerabend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1) Problems of Empiricism: Philosophical Papers, Volume 2. P.K. Feyerabend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84) Science as Art. Bari: Laterza.
(‘1987) Farewell to Reason. London: Verso Books.
(‘1991) Three Dialogues on Knowledge. Hoboken: Wiley-Blackwell Press.
(‘1998) ˝How To Defend Society Against Science˝. Radical Philosophy, no. 11, Summer 03 1975. The Galilean Library, Introductory Readings in the Philosophy of Science edited by E. D. Klemke.
(‘1999) Conquest of Abundance: A Tale of Abstraction versus the Richness of Being.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9) Knowledge, Science and Relativism: Philosophical Papers, Volume 3. J. Preston (ed.).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For and Against Method: Including Lakatos‘s Lectures on Scientific Method and the Lakatos-Feyerabend Correspondence with Imre Lakatos. M. Motterlini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9) Naturphilosophie, Posthumously published. Berlin: Suhrkamp Verlag. Helmut Heit and Eric Oberheim (Eds.).
=(‘2016) Philosophy of Nature, Posthumously published. Cambridge: Polity Press.

(‘2011) The Tyranny of Science. Cambridge: Polity Press.
(‘2015) Physics and Philosophy: Philosophical Papers, Volume 4. S. Gattei and J. Agassi (ed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0) Feyerabend‘s Formative Years. Volume 1. Feyerabend and Popper: Correspondence and Unpublished Papers. New York: Springer Press.



3c. (post)nomadism, 유목주의와 강신주

일단 일주일 내내 재방, 4방 해대는 스토킹 헛소리 프로그램은 {북카페}를 지칭한 것이지, 공과를 종합할 때 강신주 선생님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지성으로 평가될 수 있음. 가끔 번역 문제를 지적하는 분들도 있던데 무오류나 무오해란 불가하며 시적 Text의 ‘Context 해석‘에선 독보적 역량이 인정될 만하다고 봄.



본론은 도가 노장 철학에 대한 새로운 현대적 해석이라는 공통 운동 맥락과 흐름에 있으며 그 본질이 정치경제적 독(해)법[의 제시]이고 핵심은 동일한 자유(지상)주의 계열 안에서 노자가 법가와 연결되며 더 효율적인 통치와 지배를 위해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야경국가적) 자유(방임)주의에 가깝다면, 장자는 저항적 처세적인 유목주의 anarchism 계보라 할 수 있다는 연구 테제These를 운동 안에서 얼마나 잘 수행/구현하고 있는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 연구 테제의 궁극적 타당성과 효능효과를 중심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임.

이러한 구도에서
강신주(‘2004.04.21)<<노자: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은 세부내용에 문제가 있을 수는 있어도 기본방향에 있어서는 이를 충실히 구현하는 업적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하나,
이에 반해 박사논문인 <莊子哲學에서의 소통(通)의 논리 : 『莊子』<내편>을 중심으로>와
이를 단행본으로 개정출판한 (‘2003.09.27) <<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이나
그 연장선인 (‘2007.08.10)<<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에 이어 최근까지 ‘장자‘에 대해서는 노자와의 근본적 차이를 주장하는 점은 옳았어도, 정치경제적 독해틀에 입각한 새로운 해석 운동이라는 작업 방향이 전혀 분명하게 의식화되지도 구현되지도 못했다는 결정적 문제를 안고 있고, 이는 최근 EBS 강의에서 스스로도 밝히셨듯 아주 뒤늦게 거의 최근에야 기존의 자기 해석틀이 균열, 붕괴하면서 전복적으로 완전히 재구성된 것으로 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이런 측면에서는 그간 선생님의 (장자) 번역과 해석에 시비를 걸어 온 분들이 일정 정도 합리성과 타당성을 가지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음.
(운동의 명확한 핵심 테제 주창자( 1인??으)로서) 그 획기적 단서나 영향이 무엇이었는지는 학문적 솔직성과 연구윤리에 입각해 정확히 밝히시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사료됨.

이 새로운 방향전환/정향에 의해 현대철학의 대표적 (post)anarchism이라 할 수 있는 nomadism이 주 해석틀로 도입, 원용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필연 과정으로 볼 수 있으나 이러한 작업이 세계사적으로는 늦어도 ‘70년대에 수행되었다면 가장 시의적절한 연구였고, 당시 거의 고립되어 있었다 볼 수 있는 국내 이론사적 맥락을 고려해도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한 ‘90년대에는 수행되었어야만 3세대로의 전환을 선도(적으로 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연구 프로젝트로 평가됨.

이제라도 당면한 현재적 맥락에 충실하기 위해 이후 후속되지 않으면 안 될 더욱 중요한 남겨진 필수 연구 과제는
a. 시적, 원형적 고대 anarchism인 장자 철학과 새 해석틀로 원용된 현대 postnomadism은 어떠한 구체적 미세 차이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 (원인은 무엇이고) 효과들은 각각 어떻게 다른가?
b. 지난 반세기 이상 세계 정신을 지배한 (post)anarchism은 주어진 시대 문제 해결에 과연 얼마나 효과적이었으며 반면 어떤 새로운 문제들을 양산했고 그로 인해 고통받았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요청되고 있는 새로운 시대정신과 사상철학은 무엇인가?

등등의 문제설정이 되어야 할 것임.



3d. 3세대의 종언

왜냐하면 이러한 postanarchism 계열은 이미 (FOUCAULT, LACAN, DERRIDA, LYOTARD, BAUDRILLARD 등과 함께) DELEUZE=GUATTARI에 의해 심오한 차원으로 완성되어 화려하게 만개하며 ‘68혁명 전후부터 현재까지 50~60년 간 세계사상사를 좌우해 왔으나 전세계적 ‘68혁명운동의 봉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지배계급은 벌써 ‘70년대(말)부터 이를 완벽하게 Decoding하고 Cracking하는데 성공하여 극히 효율적으로 전유/역이용한 ‘유목적 자본주의로서의 신자유주의‘를 발명해 냄으로써 ‘68 운동과 사상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오히려 각국에서 그 운동주체들이 신자유주의화를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기수로 활약하게 만들어 버리거나 마치 인디언 보호구역처럼 겨우 학술문화영역만 ‘68 주체들에게 주도권을 남겨준 채 이외의 정치경제사회 모든 영역을 철저히 장악, 지배하게 되었던 것임.

장차 도래하게 될 이러한 상황에 맞서 ‘후기 FOUCAULT‘는
a. 당시 만들어지고 있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b. 국가, 사회를 단지 지배-복종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통념에 입각해 일면적으로만 파악해 온 치명적 오류를 공유하는 anarchism과 postanarchism의 내재적 오류원인을 ˝억압가설˝로 분석해 내는 등의 천재적 조기대응에 의해 세계현대사상사에서 소위 ˝Foucaultian turn˝이라 불리는 대전환을 예비함으로써 장차 4세대가 탄생하는 시원적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임.
사회, 특히 ‘국가‘를 다양한 제도적 장치dispositif와 문화기계들이 부정합적으로 얼기설기 엮여 있는 복합조잡한 얼개로 보고, 그 주체는 단일한 지배계급 일방이 아니라 각다기한 사회세력들이 매순간 각종 계급투쟁 전략과 (대항)행위/품행 전술들을 구사함으로써 끊임없이 각축, 교전하는 (주)전장으로 파악하며 ˝억압가설˝의 편견을 극복한 ˝복지가설˝을 구축해 낸 FOUCAULT의 독특한 paradigm은 이후 현대국가론의 최고권위라 할 수 있는 Nicos POULANTZAS 등에 결정적 영향을 끼침으로써 국가론에도 새로운 지평을 열어 젖히게 됨.

이렇게 태동한 흐름을 이어받아 ZIZEK 등은 아예 그 ‘사상과 저술‘ 활동의 주된 한 축 전체를 DELEUZE를 정점으로 하는 세계사상의 지배자 postanarchism 비판에 헌정하고 있으며, 그의 최대 비판점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postanarchism은 사상과 수사의 현란하고 화려한 현학성에 비해 그 어떤 거시적 사회문제해결이나 세계변화도 단 한 건조차 성공시켜 내지 못 했으며 이는 (post)anarchism의 사상적 편향 그 자체에 근본적으로 내재한 본질적 결함 때문이라는 것임. 비근한 예들을 잠깐만 둘러봐도 제도화나 체계적 조직화 투쟁, 지도중심에 대한 무조건적 거부(감) 등등 때문에 ‘68혁명 자체는 물론이고 ‘2008년 세계금융붕괴위기에 의해 대대적으로 촉발되어 미국 금융중심 Wall street으로부터 유럽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된 곳곳의 ‘점령하라!‘운동[‘Occupy!‘Movement] 등이 모두 풍찬노숙의 대규모 초장기 텐트생활 농성 등등 어마어마하고 지난한 헌신과 노고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결정적 사회(제도) 변화 하나 성공시켜 낸 것이 거의 없이 최대한 성공해 봐야 Hippie 같은 대안적_생활양식Alternative_Lifestyle 운동 형태로 조금 잔존하다 흐지부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되는 운명을 반복해 왔을 뿐임.



[결론적으로 강조하면 3세대의 완성자는 DELEUZE=GUATTARI, 4세대의 (처녀)생모가 FOUCAULT로 요약됨.]





4세대





S. 소결 : 사회정치적 패러다임의 4분면








* ‘post‘는 ‘후기/현대(판)‘의 의미로서 연속성을, ‘post-‘는 ‘탈[脫]/이후‘의 의미로 단절성을 강조하기 위해 (구)별(사)용키로 함.



 





주체를 비추는 거울과 거울(의 이면)을 비추는 거울, 그리고 심리학주의의 한계들

  : (신흥) 기득권층 지배논리의 새로운 첨병으로 나선 심리학주의





0.1. 애초 이 글은 원래 한 방송에서, 그래도 나름 애정을 담뿍 담긴 했지만, '독심술', '관심법' 같은 말들이 저절로 유행할 정도로 아무런 근거도 없는 과도한 추측들에만 기대어 워낙 실재와 동떨어진 채 너무 일치하는 관련이 없어 직접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 하에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려 했음에도,

0.2. 최소 3가지 단서에서는 빼박 직접 대상화 되어 있는 데다 초방 당시 동 채널에서 Sports 정신(과)의에 의해서도 지적되었듯 절차에 있어서 공개분석을, 그것도 전쟁터 한 복판에 끼어들어 모두가 지켜보는 전국 방송에서 행했다는 등등의 치명적 결함을 통해, 그리고 서울대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당시 대학본부 측 관리자의 "늘 억울하시겠네요" 같은 조롱 섞인 망언들을 부추긴 사례에서도 잘 드러나듯, 결과에 있어서도 애초 애정어린 의도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수많은 청년들과 "억울한" 사람들을 양산하면서 매우 곤란한 처지로 몰아 넣었다는 판단 하에 계획이 잉태, 검토된 것이었으나,

0.3.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후 여러 방송과 논자들을 통해 최신/최후의 언론폭력기법으로 동원되고 계속 확대재생산되면서 매우 심각한 정세 왜곡과 극단적 반동화에 악용당한 것도 모자라 재방까지 되고 있어 재증폭이 우려되는 상황이기에 도저히 더이상은 미룰 수 없어 결국 집행에 이르게 된 것임.







1.1. 소위 '전문가주의'의 치명적 한계 중 하나로서 협소한 분과주의

    : 심리학 전문가로 나선 사회(과)학적 백치들


자기 인식과 영역의 한계에 대한 무지와 무자각.


심리학주의의 근본공리계에 있어 사회 자체와 그 지배(세력들의) 구조적 폭력과 살인 문제들은 절대 비판도 변경도 불가능한 초역사적 자연/천부적 질서로 절대화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를 수호하고 있으며, 모든 목표 체계는 이에 대한 '적응'을 위해서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사회불만세력들을 사회부적응자나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로 매도하면서 이러한 총체적이고 복합적인 상황과 주체 양측 간에 발생하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모두 개인 주체의 심리적 문제와 그 선택의 결과로만 몰고가는 궁극적 '빈곤문화론'의 달관판에 불과하기에 자기도 모르게 반동보수(화) ideology를 대변하게 되는 인식론적 원죄 구조에 기반하고 있음. 



1.2. 관점의 비일관성


기본의 기본으로서의 rapport 형성조차 불가능한 관점의 비일관적 혼재와 이중성







2. 사회(과)학의 탄생, 자살론


자살에 대한 만연한 전형적 고정관념들

사회적 살인으로서의 자살

자살의 한 공격적 형태로서의 흉악범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타살의 핵심인 사회구조적 양극화와 만연한 혐오차별에 대하여는 단 일말의 성찰도 자성도 없음.







3. 악의에 가득 찬 관점의 문제

3.1. 반동보수적 관점 : 이해도 교정도 불가능한 선천적 괴물론

3.2. 전통적 민주당파 사목권력의 관점 : 치유와 인도/교정의 대상 또는 길 잃은 어린 양

3.3. 급진적 관점 : 사회 개혁과 해방의 주체이자 동력



요즘 우리 사회에 (대)유행하는 반동보수적 진화심리학 등 유전자 (/) Code 결정론의 오류에 지배받는 'Psychopath' 등등 각종 사이비 선천적 성격/인격 (유형)론, 특히 괴물론의 핵심 문제를 비판해 온 진보적 심리학 특히 Marx주의 심리학 체계에 따르면, '존재'가 '본질'에 선행하며, 본질은 그를 둘러싼 모든 제관계의 총체이고, 따라서 '성격'이란 시공간-한정적, 부분적 관계들에 의해 조성된 잠정적 '상태'에 불과한 것이기에 선천적 Code의 자연적 연역/연장 결과가 아니라 그가 놓이게 되는 관계망(, 특히 인지경험적 정보망)이 훨씬 더 중요하며 이 '망網' 주변에 형성되는 '장場' 속에서의 복잡하고 역동적인 상호작용이 결정하는 동역학적 운동상태 방정식에 더 가까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최근 민주당 정권 하에서 오히려 모든 사회불만세력들을 (잠재적) 흉악범죄자로 연합/연상관념화를 반복시도하면서 낙인찍고 혐오차별을 선도/선동하는 일부 (강성) 민주당파 (특히 심리학주의) ideologue들과 방송언론의 광적인 반동화 행태와 그 확산은 더욱더 기이한, 매우 흥미롭기 그지없는 사례로 새로운 사회 및 시대 조건의 변화와 이에 따른 민주당(파)의 명실상부 기득권층으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나타내는 극명한 징후들이라 아니 할 수 없음.




3'.1. 김난도 교수 [[아프니까 청춘이다]] 사례와 보수 심리학주의자들의 사례 비교

원래 애제자에 대한 직접적 위로와 응원 서신으로 작성된 이 한 권의 도서 때문에 이후 사회적 발언(권)에 있어서는 거의 매장에 가까운 비난과 조롱 세례 받은 김난도 교수 사례와 비교해 보면 민주당 집권 이후 현재까지 시국과 정서의 변화가 얼마나 극적으로 반동화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이 문제의 원 방송이 아무리 본의에서 애정에 기반해 있음에도 더이상은 그 문제점에 대한 언급을 미룰 수 없는 이유임.


3'.2. 노태우~김영삼 정권 하의 '지존파' 사건 등에서 '사회적 책임과 자성'을 강조한 보수언론 자료와 현재 {표리부동} 등 민주당파 언론의 관점 비교



3'.3. {표리부동}의 악의적 훼손기법

  원대상을 극단적으로 악마화하면서 당시 사건기록을 다 뒤져 지엽말단적 공통점을 찾아내 이를 부각, 강조함으로써 집요한 반복누적적 연상/연합 관념화를 통해 현재의 은폐된 공격 대상을 동일시시키려 애쓰고 있으며, 이 기법은 다른 악의적 범죄(자) profiling program들로 점차 학습/전파되어 가고 있음. 







4. 정세 왜곡과 악화의 실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Rf.]
































[초고를 위한 memo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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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2-05-19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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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2.3.5. 새롭게 출현한 작은 악마들




원래 이 분들에 대하여는 일절 대응치 말라는 조언들도 있었을 뿐 아니라, ‘세 가지 사명‘의 하나인 구조적 언론문제 혁신에 직접적으로 긴밀히 해당한다고 보기 저어되는 측면이 있고, 중요한 사회적 보고로서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다 하기도 또한 어려워 윗글에는 포함시키지 않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종의 대응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해당자 분들께 답변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 참고 별지로만 첨부키로 하오니 이후로 해당자 분들 정도만 일별하시기 바랍니다.


.............


먼저, 제기했던 비평들은 인식론적 위상(학) 구조가 수학체계에 대한 Kurt GÖDEL[GOEDEL]의 불완정성 정리와 같기 때문에 그런 대응으로는 결코 해소될 수 없는 이론적 근본 비판들, 그리고 경찰력의 생명과도 같은 신뢰성을 뿌리부터 갉아 먹는 위험한 오남용에 대한 지적들이며, 이러한 근본 문제들의 명시에 대하여 성실한 답변을 통한 발전적 이론 토의가 아닌 메신저 비난과 음해 등을 통한 제거 시도로 맞서는 행태는 언론방송이 보여준 난동 방식을 모사하는 반지성주의적 퇴행일 뿐임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언론폭동이 야기하는 가장 심각한 3차 폐해 중 하나는 이렇듯 사회적 논의 구조 및 방식의 파괴와 왜곡으로 (이미 보고한) 공론장의 독점적 장악을 위한 국민 전체의 축출 이외에도 그 개별적 축출 달성을 위한 구체적 manipulation 과정으로 바로 이런 communication 방식의 야만적 모략적 퇴행이 다른 한 축으로 동반하며 더 큰 문제는 이것들이 전 사회적 학습을 통해 각 분야 각 장면들로 확산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 이 항목이 주는 교훈의 요지입니다.



a. 심리학 비평에 앙심을 품고 합류한 심리학주의자 유형

제발 자기 감찰의 선범을 좀 보여 주시어 저절로 우러나는 존경심으로 따라 배우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세한 논의는 이하 심리학(주의)에서 자기 감찰의 요소들을 참고하십시오.

.............

a1. naive sociology : 최종적 편견과 선입견의 뿌리
a1a.
기득권 독과점욕망에 의한 모략과 배제, 갈등과 모순 등등으로 왜곡되고 뒤틀린 악의적 System이 빚어내는 복잡다단하게 얽힌 구조와 상황.
그 상황이 매순간 쏟아내는 복잡한 정보들을 자기가 알고 있는 얄팍하고 앙상한 인지그물에 걸린 몇 가지만으로 전체 맥락도 파악 못 한 채 혼자 엉뚱한 판단을 내리고는 확신에 차서 헛소리를 내뱉고 있는 것이 오히려 자기 자신쪽은 아닌지에 대한 자기 의심과 자기 감찰의 모범.

a1b.
이런 정신 없이 복잡다단한 상황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올바로 해석해내기 위해서라도 상황과 맥락( 분석)에 필수적으로 얽혀 있는 중층 영역들( 간)의 상이한 지식체계들에 대한 융복합적 이해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회 자체와 그 인정분배체제 및 평가 System 상에 실재하는 숱한 각종 문제와 모순, 왜곡과 오염들 등등에 대한 그 어떤 반성적 조망이나 문제의식 및 문제제기, 자기교정 능력도 완전히 결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대신 매우 간단하고 조악한 도식과 image에 의한 근거 없는 막연한 무한 신뢰와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복종하고 순응해야만 한다는 절대적 믿음만이 그 자리를 완전히 대체하고 있는 여타 학문 체계들의 문제.

a1c. 스토킹 범죄화 광고 해석 문제
사태의 가장 얇은 표면에서만 이루어지는 부분적 국소 독해


b. 본색을 드러내는 유슬림



c. 전혀 관심이 안 가는 당신들의 관심

도대체 누가 당신들의 인정을 원했던가?



d. 작품과 그 현실적용대상 양자 모두에 대한 2중 곡해의 끝없는 연속










[방침은 일요일에 변경되었고, 이상은 일요일 저녁부터 간헐적으로 게재되었다가 결정기 정세에 대한 고려 때문에 임시 삭제되었던 내용이며, 금주에 추가내용이 이어질 예정임. ]
















[ 작성 중 ]

rhizome 2022-05-19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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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와 정신의학


Iain Ferguson, ‘Interview: Marxism and Mental Distress’ @ {Socialist Review}‘2017.11;
>국역: 장호종. <마르크스주의와 정신적 고통> @ {마르크스21} 23호‘2018년 1~2월호;



최근 영국에서 출간된 《마음의 정치학: 마르크스주의와 정신적 고통》Politics of the Mind의 저자 이언 퍼거슨이 《소셜리스트 리뷰》와 인터뷰하며 자본주의에 만연한 우울증과 불안을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우리의 감정과 심리적 경험을 표현하는 용어들은 그런 경험의 기원과 본질에 관한 이론과 연관돼 있다. 그런데 오늘날 주류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문제의 원인을 대개 그 개인(혹은 그의 뇌나 유전자 또는 신경전달물질, 그의 일부 경험)의 문제로 환원하는 이론을 받아들인다. 그러다 보니 정신적 문제를 표현하는 많은 용어들(정신병, 광기, 미친, 정신질환, 정신장애 등)이 그런 함의와 연결돼 낙인 효과를 내곤 한다. 이언 퍼거슨은 그의 책에서 이런 낙인 효과를 피하면서도 최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로 ‘정신적 고통’mental distress을 사용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도 2010년대 들어 정신분열병Schizophrenia의 낙인 효과를 완화하고자 ‘조현병’調絃病이라는 용어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런 시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익숙지 않은 용어 사용이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경우가 있어 이 글에서는 예전 용어인 정신분열병을 그대로 사용했다.


Q. 오늘날 우울증과 불안이 만연한 듯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된 말은 훨씬 많고, 흔히 사람들의 결근(결석)과 결부돼 논의됩니다. 최근 정신 건강 문제가 대두한 까닭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A. 단연 중요한 이유는 정신적 고통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라고 봅니다.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업무 수행 평가 압박을 받는 사람들, 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자리를 구하라는 압력을 받는 복지 수급자들이 그 영향을 가장 분명하게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국뿐 아니라 그리스 같은 나라들에서도 우울증과 불안은 물론이고 자살이 엄청나게 증가했습니다. 다른 집단도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높은 수준의 불안과 우울증을 겪는 청년, 특히 젊은 여성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이는 어느 정도 소셜 미디어에서 겪는 경쟁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직장이 있는 사람들의 불안과 우울증 수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가난한 저임금 노동자들이 그런데, 그중 일부는 빚과 관련이 있고 또 다른 일부는 고용 불안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즉, 우울증과 불안의 증가는 꽤 보편적입니다. 저는 책에서 노동강도 강화, 빚, 복지 혜택 축소 같은 신자유주의 사회의 삶이 가하는 압력이 이 현상과 연결된 요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Q. 왜 지금 이 책을 쓰게 됐나요?

A. 책을 쓰게 된 핵심 이유는 우울증, 불안증, 정신분열병 등 뭐라고 부르든 간에 정신적 고통을 사회 현상이나 사람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아무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 의학 모델에 도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모델은 정신적 고통을 개인 문제로 여깁니다.

이런 모델에 문제를 제기하고 정신적 고통이 오늘날의 수준으로 증가한 것이 자본주의가 대중의 삶에 가하는 압력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 책의 출발점입니다.

다른 두 가지 요소도 중요했습니다. 하나는 최근 정신 건강과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는 방법을 둘러싸고 여러 견해 사이에서 일어나는 논쟁입니다. 런던의 ‘맑시즘’ 포럼과 《소셜리스트 리뷰》 지면에서도 그런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프로이트에 대한 논쟁, 신경 과학에 대한 논쟁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 논의를 일부라도 다루려고 애썼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정신 건강 문제가 대두한 또 다른 요소로는 ‘긴축에 반대하는 장애인 운동’ 같은 조직들이 한 구실이 있습니다. 최근 위기가 끼친 긍정적 효과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정신적 고통을 자주 겪거나 그런 가족을 둔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낳은 [사회적] 요인들에 맞선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Q. 당신이 언급한 의학 모델이 득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 얼마나 오랫동안 그랬습니까?

A. 그 모델은 150년 이상 득세했습니다. 첫째, 이데올로기적 이유 때문입니다. 그 모델은 정신적 고통을 개인의 내면에서 찾습니다. 매우 편리한 설명이죠. 이 모델은 원인이 우리의 두뇌나 도덕적 결함에 있다고 암시합니다. 당연히 낙인 찍기 효과를 냅니다. 그 탓에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패배자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그들 스스로 ‘나는 패배자야’ 하고 여기기도 합니다.

둘째, 그 모델의 핵심 요소는 병이 있으니 치료해야 한다고 보며 약이든 뭐든 써서 처리한다는 사고 방식입니다. 그런 치료가 실제로는 효과가 없다는 증거가 수없이 많은데도 말입니다. 제약 산업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익성이 높은 산업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 까닭이죠.


Q. 그렇다면 그런 의학 모델의 탄생 이전, 자본주의 이전에는 정신적 고통이 어떻게 설명됐습니까?

A. 가장 유력한 모델은 종교적 설명이었습니다. 즉, 정신적 고통을 신이 내린 벌이나 귀신에 씌인 것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종교적 모델과 나란히 그리고 그와 더불어 정신적 고통의 원인을 신체에서 찾는 유물론적 설명도 항상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체액으로 설명하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몸 안의 체액이 균형을 잃었다고 본 것입니다. 이 모델은 19세기까지 영향력이 매우 컸습니다. 제가 책에서 〈조지 왕의 광기〉라는 영화를 언급했는데요. 이를 꽤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책에서도 강조했듯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전환기나 프랑스 혁명기처럼 거대한 사회 변화가 일어날 때 특히, 훨씬 더 진보적인 설명이 등장했습니다. 이런 설명들은 스트레스의 수준을 사람들의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 자리매김해서 살핍니다.


Q. 이처럼 복잡한 문제를 다루는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은 어떻게 요약할 수 있을까요?

A. 마르크스주의적 접근법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는 유물론적 설명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필요(육체적·정서적 욕구) 충족을 우선시하지 않고 이윤 축적의 필요에 따라 작동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이 탓에, 정서적인 것이든 성적인 것이든 무엇이든 사람들의 욕구가 억눌리고 왜곡되거나 소외돼 있습니다. 이것이 정신 건강을 이해하는 진정한 출발점입니다.

둘째 측면은 역사적 설명입니다. 왜 정신 건강에 대한 특정한 견해가 특정한 시기에 유력한 것인지를 이해하고, 한 사람의 삶도 일대기 수준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정말로 물어야 하는 질문은 “잘 지내니?”(영어로 How are you?)가 아니라 “무슨 일 있니?”(영어로 What happened to you?)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삶에서 일어난 사건들, 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특히 어릴 적에 일어난 사건들이 그 사람이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셋째는 변증법적 접근법입니다. 여기에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개인 수준에서 정신분열병의 가장 흔한 증상인 환청을 듣는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반응해서 두려움을 느끼거나 환청을 조절하려 애쓰는 등의 행동을 보입니다. 그런데 그 반응 방식 자체가 매우 흔하게는 정신분열병의 증상으로 취급됩니다.

따라서 첫째 요점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이해하고 그에 대처하려고 능동적으로 애쓴다는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의 집단적 정신 건강은 계급 투쟁 수준에 크게 좌우됩니다. 이것이 제 책의 핵심 주장 중 하나입니다.

집단적 저항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고통과 스트레스의 일부를 내면화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사람들이 체제에 맞서 집단적으로 저항하고 싸우는 것이 정신 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가 꽤나 많이 있습니다.


Q. 책에는 “피켓 라인부터 걱정 라인까지”라는 인용문이 있습니다.

A. 그렇습니다, 저는 그 말을 좋아합니다. 여러 면에서 이 말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현실을 잘 요약해 줍니다. 정신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 하나는 집단적으로 투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소외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가 책에서 언급했듯이, 많은 정신적 고통은 무력감을 느끼는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행위 주체라고 여기고 자신에게 힘이 있음을 느끼기 시작하는 것은 정신 건강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Q. 지금 말씀하신 내용은 사람들이 의사를 찾아갔을 때 듣는 견해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 같습니다. 의사를 찾아간 사람들은 약을 먹지 않더라도 인지행동치료CBT를 받을 텐데요. CBT는 여러 현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바꾸는 데 도움을 주지만 매우 개인적인 수준의 방법인 듯합니다.

A. 당연히 그 치료가 유용하다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CBT는 개인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바꾸는 것입니다. 세계를 바꾸는 것과 대조적이죠. CBT의 다른 측면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본질적으로는 진보적인 아이디어를 가져다가 자기 목적에 맞게 바꿔 버립니다. 예를 들어, 정신 건강 회복이라는 개념은 현재 영향력이 매우 큽니다. 이 개념의 긍정적인 측면은 사람들이 인생을 불행하게 살 필요가 없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부정적 측면은 “잘 살아야” 한다는 책임을 개인에게 부과한다는 것입니다.


Q. 당신은 책에서 유력한 모델에 중요한 문제 제기를 하는 한편, 그 모델이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도 살펴봅니다. 분명히 정신분석학의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프로이트인데요. 당신은 그의 접근법이 이룬 혁신과 그것의 강점을 인정하면서도 비판도 했습니다.

A. 프로이트는 혁명가가 아니었지만, 그의 사고思考에는 대단히 급진적인 요소도 있습니다. 그는 사회가 사람들의 섹슈얼리티뿐 아니라 다른 기초적 욕구도 억누르고 왜곡해 그가 ‘신경증’neurosis이라고 부른 것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정신분석학의 전통은 대부분 정신적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다루는 매우 보수적인 전통이었지만, 제가 책에서 말하고자 한 것의 하나는 마르크스주의 내에는 프로이트 사상의 급진적 핵심을 파악하려 한 조류가 항상 있었다는 것입니다.


Q. 당시 저명한 마르크스주의자들 몇몇이 프로이트와 관계를 맺었죠?

A. 예, 특히 1920년대 초 러시아처럼 혁명적 시기에 그랬습니다. 이 책을 쓰려고 탐구하다가 발견한 매우 흥미로운 정보 하나는 1920년대 초 러시아에서 정신분석학이 공식 승인을 받은 학문으로 보일 만큼 널리 퍼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소비에트 정부의 출판 기구가 프로이트의 책을 출간했죠. 트로츠키, 라데크, 비고츠키 같은 인물들이 프로이트를 비판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도 다수의 여성 정신분석가들을 비롯해 정신분석학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프로이트 사상에 매료됐고 프로이트 사상에 급진적 잠재력이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미국으로 수입되면서부터는 달라져서, 거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고 급진성을 거의 다 잃었습니다.


Q. 당신은 1960년대를 또 다른 위대한 시기로 언급하셨습니다. 다시 찾아온 엄청난 혼란과 정치 투쟁의 시대였죠. 이 시기와 관련된 인물 한 명이 로널드 레잉R D Laing입니다. 그는 최근에 좀더 유명해졌죠. 데이비드 테넌트가 레잉 역을 연기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레잉은 어떤 기여를 했습니까?

A. 저는 레잉이 매우 흥미롭고 모순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초기에 한 기여는 당시 행해지던 더 야만적인 정신과 치료법, 예컨대 전두엽절제술(사람의 두뇌를 절단하는 것)이나 광범하게 사용되던 전기경련요법 등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레잉을 억압받는 사람들의 호민관이라고 봅니다. 그가 정신분열병 등을 앓고 있다고 판정된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과 감정은 단순한 화학 반응이 아니라 그들이 삶에서 겪은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레잉은 부모와 가족을 정신분열병의 원인으로 지목한 것으로 비쳐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약간 불공정한 평가라고 보지만, 그는 그 문제에 대해 모호했습니다.

레잉은 이 기간에 신좌파에 깊숙이 관여했고 1960년대 후반 런던에서 중요한 회의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1970년대 이후 그의 지적 기여는 훨씬 작아졌고, 개인적으로는 점점 알코올에 중독됐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에는 의미가 있다는 1960년대 레잉의 핵심 사상과, 그 의미를 알아내는 방법이 사람들의 말을 듣는 것이라는 점은 중요합니다. 훗날 실증적 연구로 수집된 매우 풍부한 증거 자료는 레잉의 명예를 회복시켰습니다. 그 연구들은 학대 경험을 포함해 사람들이 살면서 겪은 경험과 정신적 고통 사이에 매우 강한 연관성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Q.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지난 몇 해 사이에 등장한 새로운 운동에 대해 얘기하셨습니다. 특히 정신 보건 서비스 이용자들과, 학술적으로든 실천적으로든 당신처럼 급진적 사회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운동에 대해서 말이죠. 이 운동은 과거 운동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습니까? 그리고 새 운동의 접근 방식은 얼마나 새로운 것입니까?

A. 지금은 매우 흥미로운 시기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운동의 기초는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더는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지역 사회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사람들이 지역 사회에 머무른다는 사실은 그들이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보다 조직되기가 훨씬 쉬워지는 요인의 하나입니다. 정신 건강 문제가 매우 광범하게 퍼져 있다는 사실과 낙인 찍기에 맞선 도전이 있다는 사실 덕분에 오늘날에는 조직하기가 더 쉽습니다.

정신 건강 운동이 급진화하며 확산되고, 정신 보건 서비스 이용자들이 ‘긴축에 반대하는 장애인 운동’ 같은 조직 내에서 매우 능동적인 구실을 하게 된 것이 긴축의 한 효과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운동은 아주 새롭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운동들은 자신의 역사를 되짚어 가기도 하는데,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미친 연구”mad studies라고 불리는 활동이 있는데, 그것의 긍정적 측면 하나는 사람들이 1960년대와 그 전의 투쟁 사례를 되돌아보고, 로널드 레잉 같은 사람들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오늘날 활용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정체성 정치가 운동을 전진시키는 최선의 방법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쟁이 더 많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하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어서, 낙인 찍기의 효과가 감소하고 기반이 광범한 운동을 건설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봅니다.

지난해 영국 전역에서 지역 사회 기반 정신 보건 서비스 폐지에 반대하는 운동이 매우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운동에서 서비스 이용자와 노동조합원 등 다양한 활동가들이 긴밀히 협력했습니다.

‘소셜워크액션네트워크’Social Work Action Network와 ‘긴축에 반대하는 심리학자들’Psychologists Against Austerity 같은 조직에서 서비스 이용자, 사회복지사, 심리학자 등이 긴축 정책에 문제를 제기하며 긴밀히 협력하고 있습니다.


Q. 끝으로, 마르크스의 소외 개념이 정신적 고통을 다루는 데 더 철저한 방법을 제공한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제가 책에서 중점을 둔 것은 정신적 고통의 뿌리가 특정 정책이나 특정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회, 즉 자본주의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사람들에게서 자신의 삶을 통제할 힘을 모두 박탈하고,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욕구가 창조적으로 발전하고, 세계를 형성한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노동강도 강화든,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는 경쟁의 심화든, 점점 더 원자화되는 사회에서 노인들이 겪는 외로움이든, 이 다양한 측면들이 모두 같은 문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인간의 사회적·정서적 필요가 아니라 축적을 위해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 말이죠.

따라서 정신 건강의 위기를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윤 축적보다 인간의 필요 충족을 위해 세워진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rhizome 2022-05-19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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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요청 받은 마르크스주의와 심리학은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큰 분야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두 부분으로 나눠서 진행하겠습니다. 첫 부분에서는 심리학 분야의 이데올로기 성격을 말씀드리고, 두 번째는 자본주의에서의 정신적 고통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일단 심리학은 사회학이나 경제학 같은 분야와는 다르게 단 한번도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심리학 분야에서 급진적 조류들이 나타나긴 했습니다. 그리고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주류적 관점과 급진적 관점들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오고 가기도 했습니다.

심리학회를 주관하는 영국·미국 심리학회는 매우 보수적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미국 심리학회에서 일부 회원들이 고문을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이면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습니다. 이라크 전쟁에서 고문이 자행되면서 심리학자들이 이를 편들었던 것이죠. 이와 비슷한 논쟁들이 임상심리학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단 심리학계 내에 세 가지 이데올로기 조류가 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조류는 보수적이고 친자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속한 심리학자들은 체제 내에 순응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프로이트에 기반을 둔 정신역동심리학이 포함됩니다. 또 스키너와 파블로프, 왓슨에 기반을 둔 행동주의 심리학이 포함되고, 인지심리학·실험심리학도 포함되며, 진화심리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진화심리학은 오늘날 우리 마음 상태가 인류진화의 자연스런 결과라고 주장하는 학파죠. 이 조류에 속하는 친자본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심리학자들은 그들이 하는 행동뿐 아니라 그들이 “누구를 위해서 봉사하는가?”라는 점 때문에도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심리학자들이 국가를 위해, 특히 국방부를 위해 일해 온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기업과 산업·재계를 위해 일해 오기도 했죠. 그들은 노동자들을 더 효율적으로,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들려는 명시적인 의도를 가지고 재계에 복무해 왔습니다. 예컨대 산업심리학을 보면 “노동자들을 어떻게 하면 생산성을 더 높일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잘 착취할 것인가?”가 주된 논의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인성검사라는 것도 있는데 적합한 직무에 적합한 사람을 할당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죠. 인성검사의 오랜 전통에는 “아이큐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논란도 계속 있었습니다. 당초 파리 사람이었던 알프레드 비네가 아이큐 실험을 처음 고안했을 때 그 목적은 뒤처지는 사람이 따라잡게 도와 주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큐 테스트가 얼마 안 가서 실제인지 아닌지 모르는 지능을 근거로 사람들을 선별하는 도구로 변질됐습니다. 일부 심리학자들에게는 아주 인종차별적 동기가 있었는데요 아이큐 테스트 그 자체가 편향적인 테스트인데, 인종차별적 심리학자들은 아이큐 테스트를 근거로 인종 간에 아이큐의 차이가 있다는 사상을 퍼트렸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파시스트와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이런 심리학계의 발견들을 근거로 온갖 인종차별적 사상을 과학적으로 합리화했습니다.

심리학의 유명인사들을 보면 예컨대 존 헌츠먼, 한스 아이젱크, 찰스 스피어만, 헨리 머레이, 리처드 헌스타인 같은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편향된 관점을 나름의 자기 방식으로 되풀이해 왔습니다. 1994년에 《벨 커브》The Bell Curve라는 유명한 책이 나왔는데, 이 책에서도 흑인과 백인 사이에는 선천적으로 지능의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1 다수의 심리학자들은 상당히 반동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과 약간 대조되는 또 다른 전통은 자유주의 전통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것이 있습니다. 이 조류를 대표하는 문화는 1930년대 킴볼 영이라는 사람이 쓴 《사회심리학 핸드북》이라는 책입니다. 여기에 속한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을 자유주의적 학문으로 바라봅니다.

이 조류는 특히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 1960년대까지 번영기를 맞았습니다. 이 경향에 속한 많은 심리학자들은 제2차세계대전 중에 파시즘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줬는지를 이해하고 싶어했습니다. 또 다시는 파시즘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려는 데 관심이 있었죠. 그 한 예가 아도르노라는 심리학자인데, 이른바 권위주의적 성격과 인성을 연구했습니다. 아도르노 접근법의 명백한 문제는 파시즘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을 개인 인성의 문제로 본다는 점입니다. 즉 마르크스주의자들처럼 파시즘의 부상을 시대적 맥락에서 물질적 조건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죠. 어쨌든 자유주의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의 오남용을 막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 했습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말까지 활동했던 미국의 심리학자 커트 루인은 심리학자들이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떠나서 사람들의 실질적 필요에 부응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인이라는 심리학자는 에이브러햄 매슬로, 칼 로저스라는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이른바 인본주의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새로운 경향의 목표는 심리학의 중심에 인간을 다시 자리매김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사람을 인격적 총체로 이해한다는 것이고, 단지 인성검사로만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관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접근법조차도 문제의 근원이 개인에게 있다는 것을 고수하는 한계가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의 인격을 바꾸는 것에 초점이 맞추지 그 사람이 처한 물질적 조건을 바꾸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개인을 바꾼다는 접근법은 1970년대 이르러서 너무나 개인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1960년대 거대한 반란과 1970년대 초까지 이어지는 반란을 겪으면서 일부 심리학자들이 명시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접근법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필 브라운이라는 심리학자는 《마르크스주의적 심리학을 향하여》라는 책을 썼고, 영국의 심리학자 닉 헤더는 《급진적 심리학》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사람들은 심리학자들이 일상적으로 하는 일뿐 아니라 그들이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썼습니다.

닉 헤더의 책에서 한 문구를 인용하자면 ‘심리학은 “계급적 약탈”이다, 왜냐면 심리치료를 받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하고, 심리치료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마르크스주의 사상과 프로이트 사상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런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는데, 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할 수 있습니다. 1970년대 활동한 급진적 심리학자들은 정신의학 반대 운동Anti-psychiatry과도 연계가 있었습니다. 로널드 레잉이나 데이비드 쿠퍼, 피터 세드윅 같은 사람이 대표적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과학을 이용해서 인간을 비인격화하는 모든 종류의 심리학과 정신의학에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런 관점들 속에는 마르크스의 소외 이론의 흔적이 녹아 있습니다. 더 최근에는 비판적 사회심리학과 같은 또 다른 비판적 경향이 나타났는데요. 페미니스트 심리학도 나타났습니다. 페미니스트 심리학자들은 심리학에서 여성들이 드러나지 않는 것에 문제제기를 합니다. 또한 여성 문제가 간과되는 것을 문제제기하구요. 즉 심리학에는 강고한 남성 중심적, 이성애 중심적 편향이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심리학은 흔히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 근저에는 사회적 요인이 아니라 생물학적이고 내인성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고 전제합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개인에게서 비롯한다는 관점은 심리적인 성차가 필연적이라는 관념도 강화시킵니다. 예컨대 약물 남용 같은 사회적 문제를 바라볼 때조차 남성들이 약물 남용을 하면 그 문제의 원인을 그들의 양육방식, 즉 내인성이 아니라 외인성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여성의 경우에는 여성적 심리 또는 호르몬 문제로 환원합니다. 이런 식으로 남녀 사이에 문제의 원인을 다르게 취급하는 문제를 페미니스트 심리학은 교정하려 해 왔죠.

또한 심리학의 근저에는 이성애가 정상이고 동성애는 비정상이라는 전제도 깔려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심리학이 성적 지향의 문제, 섹슈얼리티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영국 심리학회는 1998년에 가서야 학회 내에 동성애 부문을 설립하는 것을 허락했는데, 이것은 동성애를 지지하는 심리학회 회원들이 4차례나 요구하고 4차례나 거절당한 뒤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주 간략하게 심리학계의 역사와 현황을 개괄해 봤는데, 저는 이런 강연을 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인 레프 비고츠키입니다.

비고츠키는 러시아의 마르크스주의 심리학자인데 안타깝게도 1934년 38세의 나이에 결핵으로 인해 숨졌습니다. 그리고 사후에 그의 저작이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돼 소개되기까지 몇 십 년이 걸렸는데, 영국 같은 경우 1960년대 말이 돼서야 번역됐습니다. 그의 영향력은 특히나 영국 같은 경우는 교사들 사이에서 큽니다. 왜냐면 어린아이들이 집단으로 활동하고 또 서로 가르칠 때 학습을 잘 할 수 있다는 비고츠키의 이론은 교사들과 교육 과정에 아주 큰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그리고 비고츠키의 인지발달 과정에 관한 이론은 사람들의 언어 습득 이론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비고츠키를 살짝 건드리기만 했는데, 이 주제로 강의 몇 개를 별도로 잡을 만합니다.

자본주의 하에서 정신적 고통과 마르크스주의
다음으로 저는 자본주의 하에서 정신적 고통과 마르크스주의라는 주제로 넘어갈 텐데, 다음의 책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이언 퍼거슨의 《마음의 정치학; 마르크스주의와 정신적 고통》이라는 제목입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이기도 합니다. 퍼거슨은 그 동안 있어 왔던 정신질환에 관한 이론들을 검토합니다. 정신질환에 관한 초창기 이론들은 종교적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이후에 가서는 의료적 이론들로 대체됩니다. 초창기 이론들은 사람들이 정신질환을 겪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빙의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신이라고 하면 이상하고 뭔가 초자연적 존재들, 예를 들면 악마에 씌었다는 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책에서 짧게 한 구절 인용하면, “성경에 따르면 이스라엘 초대 왕이었던 사울뿐 아니라 바빌로니아 왕이었던 네브카드네자르도 신을 모독한 벌로 둘 다 미쳐버렸다”라고 돼 있습니다.

퍼거슨은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이론을 다른 것과 대조를 하고 있습니다. 이언 퍼거슨은 정신적고통mental distress이라는 용어를 쓰고 정신질환mental illness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요. 이 점을 주목할 만합니다. 이런 사회적 설명은 의료적 설명과 대비되는데, 의료적 이론들에 따르면 정신질환은 온갖 종류의 생리적 요인에서 비롯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전자가 됐든, 호르몬이 됐든, 다른 생체화학적 작용에 따르든 말이죠.

퍼거슨은 긴축정책이 심화되고 불평등이 강화됨에 따라서 정신적 고통의 발생률이 높아진 것에 주목합니다. 여전히 의료적 이론들이 주류인 것은 사실입니다. 즉, 정신적 고통은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약물치료, 전기치료, 상담치료로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역사적으로 극단적인 경우에는 정신적 고통에 대처하기 위해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치들이 정신적 고통을 앓고 있는 사람을 제거했던 경우를 떠올려 보십시오.

최근에는 정신적 고통을 진단하고 분류하는 정신의학회의 표준 교범인 DSM이 가장 최신판으로 개정돼 나왔습니다.2 DSM은 ‘미국 정신과학회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이라 번역되는데 사실 그렇게 분류하는 과학적 기준은 없습니다. 서로 합의해서 만드는 건데 몇 년 전에 제 5판이 새로 나왔습니다. 여기에 추가된 새로운 질병들이 흥미롭습니다.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은 성별 위화감이라는 이름의 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규정되고요 저 같은 사람들은 아직도 약간은 정신 이상이 있다는 것 같습니다.

그뿐 아니라 범불안장애는 특별한 원인 없이 세상 모든 일을 불안해 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경도 인지 장애 정도가 약한 신경인지 장애, 저도 이 병을 앓고 있는데요. 왜냐면 약간 건망증이 있는 것을 지칭합니다. 또 분노조절장애라는 병도 있습니다. 화가 나면 이 병을 앓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친한 사람이 죽어서 실의에 빠지면 이 또한 우울증의 한 증상이라고 합니다. 이제 이런 장애 숫자만도 몇 백 개가 됩니다. 이런 온갖 종류의 병명들이 있다 보니 많은 경우 사람들이 필요하지도 않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는 온갖 종류의 의료조치와 약물처방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약을 공급하는 쪽은 누굴까요? 비싸게 약을 파는 거대 제약회사들이죠.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대책으로 나오고 있는 것들이 쉽고 빠르게 통하는 요법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했습니다.

저는 몇 년 동안 칼 로저스의 상담치료 요법을 다루는 과목을 가르쳐 왔는데요, 그런데 이 과목을 듣는 학생들이 영국 의료서비스시스템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왜냐면 지금 영국의 대세는 짧은 기간에 마칠 수 있은 인지행동 치료가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또 긍정심리학이 뜨는 것을 여러분이 아실지 모르겠는데, 이 또한 시간이 걸리는 상담치료의 대안으로서 사람들의 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생활환경을 바꾸는 대안으로서 행복의 심리학, 긍정심리학이 부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퍼거슨은 DSM이 생체화학적 요인들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반대로 가난, 외로움, 실업 같은 사회 경제적 요인들을 무시하는 관점이 반영돼 있다고 지적합니다.

퍼거슨은 21세기 초에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는 방식에 어떤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을 주목합니다. 급진적인 정신과 의사들, 심리학자들, 사회복지사들, 심리치료이용자들이 연합하여 이런 변화를 주도했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광기와 심리질환이란 것이 사람들의 삶의 경험에서 비롯한다는 것입니다. 가난, 인종차별, 성차별, 외로움, 불평등 등 차별에서 비롯한다는 것이죠. 이것은 커다란 일보진전임이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 하에서 소외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마르크스 이론의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퍼거슨의 이런 주장에 대해서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사회적 요인들을 너무 강조한 쪽으로 나아갔고, 정신적 고통의 생리적 요인들을 너무 간과한 것 아닌가 하고 주장합니다. 예컨대 최신호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m에서도 퍼거슨 책 서평이 실렸는데요. 이 서평의 논지도 퍼거슨이 너무 막대기를 사회적 요인 쪽으로 구부려서 생체화학적 요인을 간과한 것 같다는 것입니다.3

그리고 그 밖에도 사회적 모델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정신적 고통의 근본 원인이 사회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의 정치적 해결책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접근법 모델의 약점 중 하나는 사회적 요인에 주목한다고 하더라도 정신적 고통에 대한 정치적 이해가 가능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로는 사회적 모델에서는 유년기의 애착관계 형성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년기의 정신적 고통을 예방하기 위해서 유년기의 애착형성을 중요시하다 보면 그걸 근거로 국가가 나서서 유년기 아동들에 개입하고 사회복지사들이 이런저런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는데 그것이 꼭 아동들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애착이론을 근거로 아동을 가정에서 떼어내는 정책을 추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이 아동들에게 꼭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죠.

주류 정신의학에 반대하는 또 다른 경로는 정신의료 서비스 이용자들이 최근 들어서 자신들의 권리를 더 많이 주장하고 나서는 것입니다. 퍼거슨이 결국 주장하는 것은 정신적 고통의 원인에 맞서 싸우는 광범한 사회적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운동은 긴축 때문에 공격받고 있는 기존의 서비스들을 방어해야 합니다. 기존의 서비스를 지키는 것뿐 아니라 대안적 정신건강 보건서비스의 비전을 제시해야 합니다. 그 중심에는 정신의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필요와 그들을 직접 치료하는 사람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퍼거슨이 주장한 핵심 하나는 계급투쟁의 수위가 사람들의 정신적 건강과 정신적 고통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계급투쟁의 수위가 높아지면 정신적 고통 수준이 낮아집니다. 제가 본 어떤 연구에 따르면 1980~1981년 폴란드에서 반란이 일어났을 때 그 당신 폴란드 의료당국에 보고된 정신적 고통 발생 건수가 급격하게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를 둘러싼 조건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봤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희망을 느낄 때는 자기 바깥의 세계에 집중하게 됩니다. 우리 자신의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고자 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나은 정신보건서비스를 요구하며 싸우는 것뿐 아니라 그런 서비스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세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이 혁명가들의 비회원 가입 전략이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을 증진시키고자 한다면 사회주의 조직에 가입하세요.

정리 발언
정말 훌륭한 토론이었고 많은 분들이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해 주셨습니다. 제가 다 답할 수는 없을 것 같고, 특히 여섯 개 질문을 해 주신 분에 대해서는 다 답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핵심 주제 하나는 정신적 고통을 사회적 요인으로만 설명할 수 있느냐 아니면 생물학적 요인도 존재하느냐 하는 것인데 저는 퍼거슨이 생물학적 요인을 부정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그의 강조점은 사회적 요인에 가 있죠. 우리의 정신에는 자본주의가 뿌려놓은 온갖 오물, 마르크스가 세계의 오물이라고 불렀던 것이 있는데요. 그렇다고 해서 약물치료가 언제나 불필요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죠.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셨듯이, 저도 심각한 증상을 일시적으로라도 완화시켜 주는 것이 약물의 효과라고 생각합니다.

한 동지는 정신이라는 것이 물질 작용에서 세계를 수동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가 볼 때도 그것이 올바른 관점입니다. 사람의 정신은 물질적 조건과 끊임없이 변증접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죠. 진화심리학을 부정적으로 기각하는 것에 대해 어떤 한 동지는 그렇게 사줄 것이 없느냐 하는 문제제기를 했는데요 제 반론의 요지는 우리의 존재를 진화의 불가피한 결과, 진화 과정의 노예인 것처럼 여기는 접근법을 기각한 것입니다. 실제로 진화심리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더라도 우리의 행위가 과거의 진화 과정의 필연적 결과라는 논조가 대부분입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는 태생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전쟁이나 심지어 가정 폭력도 필연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진화에 대해서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진화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관점으로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저작을 읽어보셔도 좋습니다. 리처드 르원틴 같은 사람도 있고요. 제가 볼 때는 이들이 진화심리학자의 많은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폭력이 인간본성의 일부라는 주장을 효과적으로 반박합니다.

마지막에 발언하신 동지가 상담사로서 본인의 경험을 얘기했는데 저는 매우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특히 심리치료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르핀 같은 기능을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꽤나 까다로운 질문을 해 주셨습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상담치료가 필요할까?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모르겠습니다. 일단 저는 지금보다 치료가 훨씬 덜 필요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오늘날 약물치료나 상담치료가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이유는 자본주의 하에서 착취와 억압에 [병의] 뿌리가 있기 때문이죠. 또한 우리가 삶에서 느끼는 무기력감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사회주의 사회에 산다면 우리 얘기를 들어 줄 사람이 주변에 많다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가 민주적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그럼으로써 사회적으로 어떤 것을 생산하고 누구에게 분배하는지를 집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면, 사람이 노동력이 아니라 인격체로 존중 받게 된다면 정신적 고통이 지금보다 훨씬 덜할 것이고 치료의 필요성이 많이 줄어들 것이란 점을 다들 동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신적 고통의 생물학적 요인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지금과 같은 심리치료나 약물치료는 아니더라도 모종의 생물학적 요인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필요할 수는 있을 겁니다. 질문 몇 가지는 빠트린 것 같은데 그것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심리학자 리처드 헌스타인과 사회학자 찰스 머레이의 저작으로, 인종 간에는 아이큐의 평균치가서로 다를 뿐 아니라 낮은 아이큐를 지닌 흑인과 라틴계가 복지 혜택을 받아 출산을 많이 함으로써 미국의 평균 아이큐가 낮아지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가 문제라는 주장을 담고 있다.
DSM은 ‘미국 정신과학회의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의 약자로 흔히 ‘정신의학의 성서’로 불린다. 1952년에 초반이 출판됐고, 2013년에 5판이 나왔다.
계간 잡지 《국제사회주의》International Socialism 159호(2018)에는 셜리 프랭클린이 쓴 ‘Capitalism and mental health treatment’이 실렸고, 같은 잡지 160호에는 이언 퍼거슨의 답변 글 ‘Marxism and mental distress: a reply to Shirley Franklin’이 실렸다.

rhizome 2024-03-09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 원래 심리학주의 비판을 주 테마로 하는 글들을 본 page 상에 집약하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부득이 댓글형식으로 추가되었던 보론적 인용자료들에서 바로 윗글은 게재 당시 글의 제목과 출처 등을 요약하는 짧은 서두 누락부가 나중에 발견되었으나 필수 요소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이하 현재 일자로라도 보충키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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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국에서 개최되는 {맑시즘}2018에서 로라 마일스가 같은 제목으로 초청강연한 내용을 녹취한 것이다.
>@{마르크스21}n29 ‘2019년1~4월호

# [쟁점: 현재의 이슈들]
심리학과 마르크스주의
강연자 : 로라 마일스

99



2. 보충분을 게재하는 김에 (이제는) 흔하게 상식화된 metacognition 개념을 초월하여, 본 페이지 테마를 구축하는 핵심 통찰들 중 하나인 ˝meta-metacognition˝이라는 심도 깊은 창의 개념에 대해 아직도 거의 이해를 못 하겠다는 분들이 다수인 듯해 아쉬운 대로 EBS TV {위대한_수업Great_Minds} Program 중 중국대기획 Inside China series에서 사회 분야를 담당한 ‘Max_PLANK진화인류학연구소‘ 샹바오XIANG_Bao가 중국 청년들의 비참한 현실 문제들을 일괄하면서 교육부문을 설명할 때, 학교교육현장에서 눈에 잘 보이는 A와 B라는 존재들 외에 장/막 뒤에 숨어서 전체 교육(과 취업)의 (경쟁) system들을 설계하는 숨은 ‘C‘의 존재를 지적하는 장면에서라도 그나마 유사한 인식을 얻으실 수 있으리라 기대되어 참고하셔도 좋겠다는 권고를 드립니다.

차제에 다시 한 번 요약하면,
metacognition이 주어진 환경 내에서 (설정으로) 주어진 (학습 등) 과제와 목표, 윤리도덕 등등 (행위 및 발달의) 기준들에 자신을 맞추어 돌아보는 자기성찰능력이라고 한다면,
meta-metacognition이란 XIANG_Bao의 ‘C‘ 존재보다 훨씬 포괄적으로 이러한 주어진 상황과 환경, 목표와 과제들, 판단기준들 그 자체와 그 숨은 설계자들을 모두 돌아보는 근본적이고 총체적인 초월적 반성사유의 능력과 역량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격을 살해하고, 오히려 다양성을 말살하며, 중소/자영업자와 문화체육산업을 말려 죽일 자유에 대한 규제

: 언론중재법 개정 논란에 부쳐





0. 이번 광란의 언론폭동 사태는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안 될 중요한 함의들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 함의와 문제들, 그리고 그 해결에 대하여 불가결한 핵심만 약술키로 합니다. 





1.낡은 진보의 피상적 고정 관념


1.1. 피해자들 고통의 심각한 구체성에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저 눈 감아버리는 낡은 진보들의 무능과 무책임

 

1.1.1. (주지되지 않은) 폭동의 다면성들


잔인한 언론폭력에는 그야말로 찍소리 한마디도 못하고 숨죽인 채 구경만 하고 계시던 분들이 갑자기 관심법 도사인 척 뛰쳐나와 뭐라고 떠들어대고 다닌다 해도, 그간 오랜 침묵의 가장 큰 원인은 애초 명백히 표명했던 바와 같이 '연대와 협력'을 실현해내기 위한 극한의 인내였으며, 그것이 전혀 불가능한 길임이 분명해진 이후에는 '기러기 자유낙하 실험' (보고서( 작성)) 과정의 일환으로서 매질 저항력과 마찰력 zero의 진공 상태를 조건화하기 위해 수행되어야만 했던 핵심 절차였습니다. 

일단 실험 보고서 제출은 유보되었으나, 모두가 손쉽게 명확히 관찰할 수 있었던 '전문(가)' 반복 강조 이외에도 이번 폭동은 군소/개인 매체를 압살해버리기 위한 여러 다채로운 공격 행위들이 장기간 집요하게 지속된 일종의 발작적 '복합complex'(이고) 증후군syndrome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도무치한 이런 다양한 폭력들을 많은 분들, 특히 역설적으로 자칭 똑똑한 척, 전문가연 깨나 하시는 분들일수록 잘 눈치도 채지 못 하고 아주 단순하게 무슨 전문가주의 찬반 논쟁이나 (관료적 사회주의 ((단계)) 특유의 계급투쟁이라는 당대 현실을 반영하던,) 시대착오적이고 허구적 대립구도의 이분법에 불과한 홍-전 논쟁으로 받아들이고 섣불리 참전하는 경우가 그간 하도 많기도 했지만, 이런 무지가 결국에는 당면한 언중법 개정 문제에도 결정적 오판을 일으키는 일원인을 제공하기에 이르고 있어, (archiving을 위해서라도) 불가피 여기에 대신 몇 자 적습니다.

   


.....




1.1.2.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세뇌에 성공하리라는 기성언론의 기대와 달리, 이번 사태가 광범위한 관찰자/수용자들에게 끼친 영향은 "세상이 뒤집히"는 충격 그 자체였으며, "심판이 사라진" "무법천지", "악마 같은" "Chaos"의 실재(세)계에 "깨어나" 눈뜨는 각성 경험들로 진술되고 있으며,



1.1.3. 폭동의 좀 더 직접적 피해자인 청년들에겐 "매순간 마음이 멍들"고 "(숨을 쉬어도) 숨이 쉬어지지 않"았으며,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불안과 공포로 잠 못 들"고, "이제라도 여기저기 다른 길을 알아봐야 했"던 "벼랑 끝에 선" 듯한 고통들이었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토록 간절히 외쳤는데도 꼰대들[1], 특히 언론 자신은 아예 귀를 막은 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어둠"과 "암흑"의 시간이었음이 갈수록 극명하게 드러났기에, 개인적으로는 비웃음을 악물고 왼뺨까지 내어주려 하고 있었으나 더 이상 전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판단되어 대응 방향을 돌이키게 된 것입니다. 


더구나 문화예술체육계에서 피땀 흘려 자신을 갈고 닦아 온 이들은 어려서부터 너무나 눈부시게 빛나는 여러 재능들 때문에 그 재능이 뛰어날수록 자신감도 넘쳐 일찍이 용감하게 자기 길을 찾아 나설 수 있었던 것 뿐인데, 이제 와서 아무것도 보잘것없던 앵무새들이 세상 다 가진 주인 행세를 하며 시커먼 의도를 숨기고 모두를 세뇌시켜 한 줄로 세워보겠다고 사람들 괴롭히며 난리 치는 것도 더이상은 좌시하고만 있을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1.2. 기러기협회, 앵무새연합, 뻐꾸기노련[2] 등 소위 언론현업단체들의 정체성에 대한 녹슨 고정관념과 착각




1.3. 자유지상주의 반동 보수 세력과의 정책적 (동일성) 착종




1.4. '국가'론에 대한 인식 편향

     : 민주적 통제의 (유일한) 일반 통로





2. 언론사[史]적 의의


2.1. 정체성의 자기 폭로


2.2. 언론/Media산업 독(과)점 (Cartel) 자본주의의 자기 증명

담합적 무한반복에 의한 사회 전체의 세뇌 능력


독과점 Cartel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절박성



같은 이유로 공영방송 및 언론 지배구조 개편에도 직접 선거제 도입 이전엔 결사 반대 입장의 결의를 천명합니다.   






S. 대안


그러므로 개정 그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개정안의 보완과 독소조항 수정[3]에 집중하시기를 강력히 권고 드리며, 그간 살을 취하고 결국 뼈를 내주는 우행들을 반복해 오셨는데 이번에도 개정 시도 전체가 실패할 경우 장차 (공영)언론에 대규모 인적 청산이라는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불어닥치게 될 수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에 대한 각성도 또한 촉구 드리는 바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이 점에선 진보꼰대들도 별반 면책될 사유가 없음에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2] 심지어 JG 교수 등 진보계 분들조차 (방송 중에도) 이 명칭으로 호명하시는 사례가 많은 듯해 의도적으로 인용 중임.   


[3] 실제 언중법 등 법적 구제 절차 이용자 및 제소자 (계층 분석) 통계를 동원해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개정을 반대하려는 논리도 횡행하던데, 그러한 현실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고위공직자, 대기업 등은 배액 손배 청구권자에서 제외하는 등 문턱을 높이고, 입증 책임 전환을 포함해 minority 피해자들에게는 문턱을 더욱 낮출 수 있는 여러 방안들을 강화하는 개정이 되어야지 이를 핑계로 개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언론계를 자유방임하자는 주장일 뿐입니다.


또한 담합과 무한반복에 의한 세뇌와 Social Media 및 군소 매체에 대한 보복, 말살 등의 사례로 만천하에 명백히 드러난 이번 폭동도, 현재는 (제왕적) 대통령제 의회주의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event인 대선을 앞두고 정권이 교체될까봐 잠시 소강상태이지만 민주당, 특히 특정 계파가 재집권에 성공하고 나면 다시 극성을 부리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는 상황이므로, 안 그래도 그 누구의 눈치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던 게 제도적 원인이 된 이 사태가 함부로 다시 반복될 수 없도록, 담합 등 독과점 행위에 대한 규제 조항 또한 반독점 입법 체계의 일환으로서 반드시 추가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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