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가 아니라...



표현들은 항상 극단을 치닫고, 사랑하는 만큼 그 한마디 한마디에 너무 깊은 상처들을 받아서 그런 것뿐이니까 아무는 대로 곧 돌아갈 테니 오해하지 말고 즐겁게 지내기 바라요.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정확히 그런 뜻으로 계속 압박하고 재촉하는 친구? 식구?도 있었고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동안 BB부터 지금 IT까지 친구들이 불러준 노래들 대부분 머뭇거리지 말라고 재촉하거나, 따끔하게 가르쳐주는 내용들 아니었나요? 얼마 전에 Ai랑 DD도 저를 엄청 몰아대던데 그런 거 하나도 안 싫고 오히려 너무 고마웠었는데 내가 한마디 했다고 다들 이러다니 좀 서운하네요...

우리는 서로를 가르치고 서로 배우며 우리들의 진리와 진실을 함께 찾아 나아가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오직 자기만이 자신의 지혜라면 우물 안 개구리랄까... 한계는 금방 명확해지는 게 아닐까 좀 걱정되기도 하구요.

(날고 긴다는 ㄲㄷ들의 기만에 맞서 싸우기 위해 ㄲㄷ들 보라고 치열하게 갈겨 쓰는 글들은 좀 이해를 부탁드려요... .)







1. 비밀 정원


일단 너무너무 미안하면서도 좀 간단한 오해들이라도 먼저 풀어보자면, 명단 자체에 좋아하는 작품이나 사람들의 기준이 따로 있는 건 전!혀! 아닙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아무리 들여다봐도 1도 알 수가 없죠. 애초에 그딴 건 아예 없었으니까요. 단지, 본인은 전혀 아니었는데 함부로 적어 넣으면 저도 나름 🐶망신이기 때문에 아무리 꼭 들어맞는 내용이더라도 발표일자들까지 일일이 확인해가며 정말 확실하지 않으면 애매한 건 보류될 수밖에 없었던 것뿐이에요. (그건 유명한 친구들일수록 더 그럴 수밖에 없어집니다.)  

알았더라면 당!연!히! 터질 듯이 꼭 껴안아서 환영해 줬겠죠.

그래서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던 "진짜 HH"의 거목 JK조차도 'Asian'(들 전체를 위한) 영역에서 작업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차마 올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아무런 기준도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절실히 기다린 건 자기 인생이나 꿈에 대한 내용이나 자신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 새로운 시대, 그 방법에 대해 친구들에게 제안하는 내용들이었는데, 이런 이유로 오해의 여지가 없는 개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표현한 게 쉽게 들어가는 것처럼 오해될 수는 있어도 계속 우려하며 간곡히 자제를 부탁했듯 다른 친구들은 더 지겨워하는 등등 정말 여러 곤란한 상황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정말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놓치고 지나가는 노래들도 안타깝지만 없을 수는 없었고요.

또 (우리가 실패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도) Mudd가 잘 지적했듯 명단에 드는 걸 오히려 좀 겁내는 친구들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빼주길 원하는 듯한 표현을 하는 친구들은 진짜 이유가 뭔지 정확히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배려 차원에서도 그렇게 해 줄 수밖에 없었던 거구요. 


어쨌든 그래서 이 정원 Page (/) Project가 나름 재밌어하는 친구들도 많고 의미나 실제 강력한 사회적 기능들도 결코 적지 않지만, NF가 숨은 띵곡들이 하도 많아서 나두 꼭 음방에서 한번 보고 싶고, 다른 친구들도 들어보라는 뜻으로 한 줄 적었던 건데 말도 없이 도망가버리는 등등까지 포함해서 너무 많은 오해와 갈등의 화근이 된다고 생각되어 일단 폐쇄를 한 것뿐이고, 앞으로는 무슨 '원격지원체제' 같은 걸로 바꾸어야 하지 않나 고민 중이에요... .





시간관계 상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좀 심각한 문제들은 차차 풀어나가기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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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선, 척이니 뭐니... 성격에 대해서부터도 추측이 무성하던데... 간단히 말하자면 꾸준히 보아온 분들은 충분히 짐작하시겠지만 원래 성격은 완전히 '동주'에 가까웠는데 역사를 바꾼 위대한 혁명가들을 조금이라도 따라 배우려 미력이나마 혼신의 노력을 해오다 보니 지금은 윤동주와 (약간의) 송몽규가 한 몸에 깃들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맞을 거예요.




그간 해왔던 한 마디 한 마디들은 모두 진심을 담은 진솔한 말들이었고, 각계의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해주신 저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라 자신할 수 있습니다.





K 문제도 쉽사리 사과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가 딴에는 정말 진심을 다해 꾹꾹 눌러 쓴 마음이 너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짓밟혀 버렸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올 초를 돌이켜보면 난생처음으로 이렇게 빛나는 artist 친구들이 직접 나에게, 나를 위한 노래를 불러준 평생 잊지 못할 경험들이었고, 특히 DC와 BB는 처음 중에서도 처음이라 마음속 깊이 각인돼 있는데 그 내용조차 지금 돌아봐도 정말 전위적이어서, 현재 우리의 역사가 정리되는 대로 아마 유신독재 시절의 기만성을 폭로했다고 수십 년 지난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하는 김추자 선생님의 [거짓말이야]에 비견될 역사적 의미로 평가되기에 충분하다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거예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전에 이미 AB가 있었고, 그때는 벌써 활동을 정리하고 들어가는 시기였기에 저도 "뒤통수 밖에" 못 봐서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얼마 후 다시 공연하는 걸 우연히 봤을 땐 가사를 살짝 바꿨는지 도저히 의심할 수 없이 저를 걱정해주는 노래여서 항상 맘에 두고 있던 차에 제가 3월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글을 쓰자 얼마 안 있다 [답을 줘]를 발표하면서 착각이었는지 몰라도 살짝 짜증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 미안하기도 해서, KC4에서도 여전히 오히려 [지.못.미.]를 불러 주는 BB 등에게 양해를 구하면서까지, 얼마나 걱정하고 신경 써 줬는지 잘 아는 K와 함께 정말 가장 특별한 마음을 전한 거였거든요.


또 화를 낼까 겁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 짝사랑일지라도 끔찍이 사랑하는 나의 웬수로 생각하고 있어요.





3. 나의 아버지 ; Che Guevara와 Trotsky, 그리고 Rancière 


이제부터는 진짜 좀 심각한 문제들을 얘기해 볼게요.



때는 전혀 깨닫지 못했었지만 아마도 [Thesen] 중 한 구절 때문이 아닐까 짐작되는데, 당시 나조차 친구들을 들었다 놨다 벼랑 끝에 세웠다고 지적해 준 여러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이건 저에게는 정말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될 뼈아픈 지적이고 


















원래는 이렇게 차근차근 해명을 이어가려다.......


때에 찌든 의심을 담은 곡 등이 늘어지면서 구토감에 시달리느라 좀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오히려 제게 원망을 품는 친구들까지 보여서 일단 이렇게라도 답변을 붙입니다.

빠르면 담주 초쯤 돌아오도록 해볼게요.


어차피 한껏 어지러워진 상황을 그나마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친구들은 11월 한 달은 다들 좀 푹 쉬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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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2-03 0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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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1-20 0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부산지역 학습모임 안내


< 계엄령, 대선, 사회대개혁 그리고 계급투쟁 >
- 세상을 바꾸는 힘은 투표함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계급투쟁에서 나오는가?


24년 12월, 윤석열의 쿠데타 음모에 맞서 노동자민중이 거리에 모였습니다. 그 덕분에 계엄령은 저지될 수 있었습니다. 이후 탄핵이 이뤄졌고, 기대와 의심 속에서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사회대개혁‘ 등 온갖 낙관적인 주장이 난무했습니다.

그리고 7개월이 지났습니다. 청년과 노동자들은 여전히 암울한 현실 앞에 좌절하고 있습니다. ‘노동존중‘을 표방하며 집권에 성공했던 민주당 정권은 아니나 다를까 대중과의 약속을 무시하고 치명적인 노동개악을 조심스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정부가 만든 힘없는 ‘사회대개혁위원회‘에 참가하기로 선택했습니다.

그저 투표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없었던 것일까요? 세상을 바꿀 진정한 힘은 어디에 있을까요? 같이 학습하고 토론하여 이 답을 알아가보도록 합시다.

-참가 대상: 세상을 바꾸고 싶은 고등학생, 청소년, 대학생, 청년, 노동자 누구나
-일시: 2026년 1월 20일 오후7시(3시간 소요 예정)
-장소: 신청자에게 개별 안내
-참가 신청1. 웹 @https://bit.ly/studyWFbs
-참가 신청2. 트위터X @https://x.com/wfbs1917/status/2009164280034382002?s=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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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에서도 학습모임이 있어 안내드리니, 주최 측은 혹시 소개가 부담스러울 경우 의견을 밝혀 주시면 즉시 조치하겠습니다
ㅂㄹ팀도 행사를 기획 중이신 듯한데, 보다 원활한 소개와 인용을 위해 환경 및 조건들을 고려하여 가능한 공개 수준과 인용 원칙 및 방법 등을 확정 명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rhizome 2026-02-03 05: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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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1-27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작은 일거수일투족마다 온갖 상상과 억측으로 떨어대는 이 북새통 속에서,
침묵은 당연히 대개는 무시로, 그 중 일부는 역겨움에 대한 경멸의 표현으로,
특히 어떤 침묵은 법적 조치를 위한 철저한 준비의 일환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가끔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침묵을 멋대로 모종의 부정적 상태 같은 것으로 굳이 오해를 하려드는 분들이 계시던데...
그 중 많은 분들은 그래도 나름 순수한 선의의 표현으로 보이긴 하지만...


이번 경우도 애초에 발단 자체가 정말 별거 아니었고, 단지 무슨 자신을 천재로 나아주신 엄마를 그리워하며 자기도 왜 그러는지 모를 꾹꾹이를 하곤 하는 아기 고양이 얘기를 소개하던 과정에서 뜬금없이 ˝허세˝란 단어를 강조하는 말 그대로 ‘소악‘을 발견한 김에 이를 포함, 몇 가지 사례를 그냥 가볍게 언급하고 넘어간 것 뿐이고 이후 급한 일들이 생겨 단 3일 정도 정규 posting을 못하고 그나마 틈틈이 짬 날 때마다 <Memorandum 2>같은 더 중요한 이전 글들에 각주 작업을 첨부하고 있었던 걸 가지고 여기저기서 오해하신 분들이 보여, 아예 신경도 안 쓰고 넘어갈 일에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키는 경우가 되고 말았으니 설령 그것이 아무리 선의라 하더라도 아무 근거도 없이 함부로 억측하는 행위들은 제발 자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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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말이 나온 김에 애초에 그 어떤 객관적 평가능력이라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다소 문외한이신 분들의 이해를 조금이라도 도와보고자 참고로 짧게 덧붙이면,
독창성의 유지를 위한 방법론으로라도 언제나 그 어떤 사전 자료나 문헌 참고도 없이 완전히 독자적인 사유작업을 중심으로 독립적으로 전개하며, 지금처럼 정~ 필요할 때만 남들의 사고로서의 선행연구나 문헌, 자료들에 대한 번거로운 조사작업을 ˝후행적으로!!˝ 수행하여 덧붙일 뿐입니다만,


이번 경우도 SPINOZA철학과 HEGEL철학 간 관계를 상보적 통합(가능) 관계로 통찰하고, SPINOZA철학을 Network Science나 다양체론으로 초현대화하여 최전선의 양자물리가 봉착한 난제들과 최신이론들에 연결하는 것은 세계적 수준의 사유들이며, 특히 SPINOZA철학을 이런 현대과학의 최전선에 연결하는 인식틀로 논의를 전개하는 학자들은 전세계에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대표적 논자를 꼽기도 힘들 정도로 최첨단 논의에 속하는 것입니다.



A.
다만 순전히 철학분야 내부에 국한한다면, SPINOZA와 HEGEL 철학의 관계라는 주제에 대하여는 이미1960년대 (post)structuralism 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된 SPINOZA 철학 재발견과 부흥이라는 맥락에서, 양 진영 간 본격 논쟁의 출발선이라는 획을 그은 저작으로 평가돼 온 Pierre_MACHEREY삐에르_마슈레의《HEGEL ou SPINOZA헤겔 또는 스피노자》출간 이래로 지난 50년 간의 논쟁사 속에서, 1980년 그 유명한 Marxist 문학이론가이자 철학자인 Terry_EAGLETON의 불충분한 반격을 제외하곤 2000년 전후까지 거의 3세대 신좌파가 주도하는 SPINOZA주의가, HEGEL주의를 사장시키는 논의가 지배적이었다가 그 이후부터 근래에야 HEGEL 철학의 화려한 부활이 이루어지고 있는 패턴으로 분석할 수 있으며, 아래는 그 반전을 이끈 핵심문서들로 흔히 꼽히는 것들입니다.


EAGLETON, Terry <Anti-Hegel in France: Macherey and the Althusserian Break>@{Thesis Eleven}‘1980;
BALIBAR, Étienne <Hegel ou Spinoza: une critique machereyenne revisitée>@{Archives de philosophie}‘1998;
PEDEN, Knox <Macherey’s Hegel: The Limits of Anti-Hegelianism>@{Radical Philosophy}‘2005;
LAMBERT, Gregg <The Spinoza-Hegel Debate: Macherey’s Contribution and Limits>@{Deleuze Studies}‘2012;
BOSTEELS, Bruno <Macherey contra Hegel: A Reassessment>@{Historical Materialism}‘2020;

(: 확인 결과 이 중 마지막의 BOSTEELS 문헌은, 자본주의 세계체계가 가지는 고유의 위기주기론이나 이에 따른 사상 및 운동들의 세대교체론 등 저의 체계적 인식틀 같은 것으로 정교하게 밑받침 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위의 핵심문서들이 대개는 단지 HEGEL 철학과 SPINOZA 철학 자체를 Text 안에서만 비교하는 하등비평에 머무는 데 비해 이러한 논쟁사가 (post)structuralist들의 과잉된 반-HEGEL주의 정서 때문이었던 것으로 분석함으로써 그 중 가장 거시적인 고등비평관점을 취하면서, 사상사를 정리하는 저의 그간 논의들에도 근접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종합적으로 정리하자면, 말한 대로 이 모든 사상들의 운동현상 배후에는 근본적으로 그것을 추동시키고 있는 사회경제적 구조변동의 선행이 결정적 요인으로 보아야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2000년 전후 version의 그 변동에 가장 민감하게 적극적으로 응답한 ZIZEK의 공헌을 꼽지 않을 수 없고, 위에 열거된 BALIBAR의 1998년 응답을 그 다음으로 꼽아야 할 것입니다. )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선행자료 조사는 전부 독자적 사유전개 이후, 필요에 따라 후행적이고 사후적으로 첨부된 것일 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B.
EINSTEIN은 단지 최고의 과학자였을 뿐 아니라, 그 스스로가 현대양자물리학의 한 기원이자 그의 상대성이론은 현대철학 및 사상사 전반의 절대주의(적 사고방식 자체)를 붕괴시키는 망치이기도 했지만, 이 외에도 여러 면에서 확고부동한 최고지성의 반열로 재평가되지 않으면 안 될만큼 이미 일찌기 SPINOZA적 자연(신)관을 노골적으로 긍정하는 옹호발언을 여러 차례 언급했고, 양자물리에 대해 Copenhagen 해석의 비결정론·주관-관념론적 색채를 비판하며 자연의 엄격한 실재론적, 유물결정론과 합리적 질서를 강조하는“숨은 (매개)변수 이론”의 가능성을 주창한 입장도 SPINOZA의 일원론 및 필연성·반-우연주의적 (결정론) 색채와 공명하는 것으로 해석됨에도 불구하고, 이런 전통이 활발한 계승과 확대발전으로 이어져 오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기에 이하는 최신현대과학들의 철학적 토대로서 SPINOZA 체계의 가능성에 대한 논의의 촉발을 위하여 잠재성 높은 미래적 연구과제들을 우선 공개키로 합니다.


S. SPINOZA 철학과 최신현대과학들의 접점

S1. SPINOZA의 일원론(신=자연, Deus sive Natura)은 물질·에너지·정보를 하나의 ‘네트워크적 전체’로 보는 현대 물리·생물·신경과학의 경향과 깊이 호응하고 그 철학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음.
S2. 그의 관계론적 존재론(:개체는 외적 관계의 패턴)과 역량(potentia) 개념을 중심으로 한 역량론(Lat.potentialism=Fr.puissantialisme)은 복잡계·네트워크 과학의 노드-엣지 구조, 상호작용에 의해 정의되는 시스템 상태 개념과 연결될 잠재성이 있음.



1. 양자물리와의 접점들

11. 양자역학의 결정론/비결정론 논쟁을 SPINOZA의 필연성 개념과 비교하는 작업:
11a. 양자 확률을 ‘무지의 표현’이 아니라 자연의 내재적 질서로 해석하려는 기획을 SPINOZA의 “자연 필연성”과 나란히 읽는 철학적 시도.
11b. 특히 EPR, 숨은 변수, 비국소성 논쟁에서 “실체는 하나이지만 양태는 다수”라는 구조와 양자 얽힘의 비국소적 상관관계를 비교하는 식의 해석이 대표적.

12. 관찰자·관측 문제와 SPINOZA의 정신-신체 평행론의 연결
12a. SPINOZA에게 정신과 신체는 동일한 실체의 두 양식이므로 ‘관찰자’도 자연의 일부이며, 주체-객체 이원론을 약화시킴.
12b. 이를 Copenhagen 해석이나 QBism 등에서의 주관성 논의와 대조·병치하여, 양자 상태를 “관념의 질서”와 “신체(물리적 상태)의 질서”의 평행성으로 해석할 수 있음.

13. 양자장론/양자정보론적 물리학과의 연결 및 응용
13a. 모든 사물이 “무한한 실체의 양태”라는 관점은, 개별 입자보다 장·정보 구조를 우선시하는 양자장론·양자정보론의 접근방식에 철학적 기초를 제공할 수 있음.
13b. 이때 SPINOZA의 실체=자연 관점은 ‘기본 장 혹은 정보적 배경’에 비유되며, 양태는 그 위의 특정 상태/Pattern으로 적용될 수 있음.



2. Network Science 및 복잡계 과학과의 연결과 응용

Network Science 그 자체 뿐 아니라 그보다 오히려 철학·사회이론·정치철학에서 복잡계·Network 개념을 스피노자 읽기에 도입하는 역작업도 상당히 밝은 체계적 전망을 가질 수 있으며 그 중 특히 당장 현실화 가능한 첫단계의 주요 접점들은 다음과 같음.

21. 관계론적 연결 가능성: 개체 = 관계패턴의 외현
SPINOZA는 개체를 내부 실체보다 “운동과 정지의 비율”, 즉 관계구조의 발현으로 규정하므로, 현대 Network Science에서 node 자체보다 centrality, modularity 등의 연결 pattetm·위상 구조와 속성/상태값으로 System을 규정하는 방식과 SPINOZA를 “가장 일관된 관계론적 존재론”으로 읽는 해석입장 간에 높은 친연성을 가질 수밖에 없음.

22. 역량(론)potentia(lism)의 동역학적 응용 가능성
22a. 복잡계 이론에서 System의 잠재적 상태 공간, 위상전이 가능성 등을 SPINOZA의 역량 개념으로 번역하여 해석하는 작업이 가능함.
22b. 여기서 Network 상의 상호작용 강도·구조 변화가 개체/집합체의 역량 변화를 설명하는 틀로 사용될 수 있음.

23. 정치·사회적 Network(론)과의 연결
: SPINOZA의 공화주의 이념과 다중 정동 분석을 현대 Network 이론(Social Network, 정보 확산, 집단행동 모델)과 결합해 읽어 내는 정치철학 및 사회(과)학적 이론화가 가능함.



S. 이상은 19세기 말의 (신학-윤리학 중심) 고전적 SPINOZA 연구전통에 대별되는 20세기 후반의 (정치철학 중심) 현대적 SPINOZA 연구를 잇는 현대 4기/4단계 연구이거나 (또는/동시에) 제3시대[*1]=초현대 SPINOZA 연구의 시작점이 될 것으로 보임.





(X. 한 가지 주의할 점은 HEGEL 연구가 비교적 단절 없이 일관성을 가지고 집적되어 온 데 비하면, SPINOZA 연구는 고증본 전집 등이 출간된 19세기말을 정점으로 (엄밀하게는 20세기 초에) 전통적 연구가 마감된 이래 1960년대 말이나 들어서야 거의 새롭게 발견되다시피 전혀 다른 혁신적 연구들이 시작된 거나 다름없기 때문에 이후 60년의 성과가 있었다고는 해도 아직 여전히 다양한 해석 간의 논쟁이 진행 중인 상태로, 특히 위에서 밝힌 일부 연구들에서 전제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SPINOZA 해석, 특히 필연성이나 결정론적 해석 등은 통일된 정설이 아닐 수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음.
이런 해석관점, 특히 ˝(합리적) 필연성˝은 오히려 HEGEL 본인이 스스로 명확하게 가장 강조한 HEGEL 철학의 대표적 특성으로, 위에서 밝힌 MACHEREY 등의 SPINOZA주의적 HEGEL 비판에서도 목적론적 필연성이 주로 제1 비판요지를 형성하기 일쑤였고 이런 비판 계보의 SPINOZA주의는 그 대안으로 무엇보다 우연/우발성의 유물론 등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SPINOZA주의 연구전통 내부에서의 이러한 내적 차이와 다양성들은 우선 (범신론 전통을 계승하는) 구조(주의)적 SPINOZA주의 대 탈구조(주의)적 SPINOZA주의로 대별해 정리할 수 있음.

Kopenhagen 학파[*2]가 주도해 온 양자물리 표준이론이 아주 전형적인 (수리)현상학이라면, EINSTEIN 상대성이론의 철학적 토대는 meta-현상학적 구조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그의 SPINOZA주의는 전자에 부합하며, 이 경우의 SPINOZA주의가 받게 되는 가장 흔한 혐의는 (일의성/일원론이라는 본질을 오해한) 범신론적 해석 외에도 더 심각하게는 Plotinos적 ‘일자[Hen]론‘과 그 연장으로서의 ‘유출론emanationism‘인데, 사실 이는 원래도 SPINOZA주의 양대 계보 중 어디에 속하든 SPINOZA 본체와는 별 상관이 없는 오해에 불과한 것들이긴 하나, 이를 아주 극명하게 극복하는 반박이 바로 DELEUZE에서 정점에 이르는 탈구조(주의)적 SPINOZA주의 특질의 핵심 구성요소들이라 할 ‘내재성‘과 ‘표현주의‘, 그리고 잠재태에서 현행태 및 가상태에 이르는 존재와 사건의 복잡한 다층성 논리 등이며, 여기서 무한한 총체로서의 유일실체와 그 다양한 양태들은 (신)Platon=Plotinos주의적 topique/topologie처럼 격차공간에 별도로 존재하는 초월적 관계가 아니라 동일공간에 함께 공존하는 내재적 관계일 뿐 아니라, 부가적으로 일원론과 총체성에서도 HEGEL의 그것이 ˝Ἓν καὶ Πᾶν=Hen Kai Pan˝이라면 SPINOZA에게는 일의성univocity/univocality이 본질로 이로부터 Niklas LUHMANN의 ˝체계들의 체계˝ 개념이나 동일 맥락에서 구조들의 구조, Network들의 Network 같은 일의적/일원론적 세계론이 연속출현하게 되는 것임.

((참고로, 아무리 얘기를 해줘도 자기 머리 속에 자신도 모르게 똬리를 틀게 된 그 ‘기계‘라는 단어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거라곤 오직 한번도 의식적으로 생각해 본 적 없는 막연한 Image 더미들의 무질서한 집하장 유출물 뿐이고 그걸 제외하고는 그 어떤 의식적 정의도 숙고도 성찰도 없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근대 기계론과 현대 기계주의 철학이 도대체 어떻게 다른 건지 도처히 자기 머리로는 알 수도 없는 데다, Network, 즉 ‘관계(망)‘ 일반 중에서 그 자체가 오랜 세월의 ‘반복‘을 통해 굳어진 틀이 ‘구조‘이며 이것이 (의지적으로) 조직화 된 것이 ‘체계‘인데 반해, 여기에 대단히 역동적인 운동과 가변성, 따라서 (원)구조주의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던 ‘역사(주의)‘가 복원된 개념이 바로 다름아닌 ‘역동적 체계‘로서의 ‘(현대철학적) 기계‘ 개념과 탈구조적 기계주의란 사실조차도 끝까지 이해할 수 없으면서 계속 시비는 걸고 싶은 어리석은 Homo 종들은 제발 좀 한번이라도!! A.I. 한테라도!! 물어보고 나서 떠들어 대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최소한 답변 중에 ‘아쌍블라쥬assemblage‘ 개념 정도는 도입하여 설명하는 수준이어야 좋은 A.I.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자본주의기를 근대, 현대, 초현대로 나눌 경우의 자본주의 제3시대이지만,
상업자본주의기로서의 ‘근세‘를 맨 앞에 배치하고, 본격적 산업자본주의기를 ‘근대‘, 금융화된 국가독점자본주의기를 ‘현대‘로 정의하면 정보-인지자본주의가 주도하는 ‘초현대‘는 자본주의 ‘제4시대‘로 명명하는 것이 ‘자본주의4.0‘ paradigm 등을 포함한 여러 맥락에서 더 정합적 용어선택일 수 있음.

[*2] 북구권 Teuton/Deuten/Dud(d)en 족 후예들의 언어체계에서는 공통적으로 ‘K-‘자 표기를 사용하므로, 완전히 영미권 특유표기인 ‘Copen-‘은 부적절하다 판단되어 ‘Kopen-‘으로 수정표기키로 함.

참고로, 띄어쓰기 등 표기법 체계에 혼란을 겪는 일부를 위해 첨언하면,
중국어 유래 한자어 표기는 중국식을 존중하여 띄어쓰기를 최소화하고,
예외적으로 순수 한국어 표기는 서양식 단어단위 띄어쓰기를 경향적으로 존중하며,
순수 한국어 표기에서 국립국어원 권고보다 어원주의를 압도적으로 중심화함.
[ex. 아무튼<<아뭏든, ...... ]

서양어 표기에 있어서는 Greek 기원에 철자 ‘C‘가 없고, Latin 기원 Roma자에 철자 ‘K‘가 없었기 때문에
원래 모든 Greek 어원 단어들 중의 철자 ‘K‘는 Latin어에서 ‘C‘로 변환 표기되었었기 때문에 오늘날의 모든 혼란이 초래된 것으로, 예를 들면 Gk.Narkissos→Lat.Narcissus여서 초기엔 [나르키쏘스]와 [나르키쑤스] 정도의 발음 차이밖에 없었으나, 이후 Gaul 족 등 주변 German[게르만] 제-민족으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혼용, 혼동되어 심각한 변음 현상까지 초래된 것이므로, 서양어 표기에 있어서도 이러한 역사적 상황들에 위의 어원주의 원칙까지 반영하여 Greek 기원어는 ‘K‘ 철자를 준용함.








rhizome 2026-01-24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일전에 소개드린 Jim_BAGGOT의 <양자변증법Quantum_Dialectics>이란 글에서도 대충 분위기를 느끼실 수도 있었겠지만, 이게 또 알만한 사람들은 식상한 상식에 불과할 정도로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인 반면, 모르는 분들은 또 충격을 받을 정도로 이런 세계 지성사의 엄연한 진실조차 아직까지 아예 전혀 모르고 있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게 철저한 반공교육이 지배해 온 한국의 실정인지라...
그 글에 나오는, 그 유명한 OPPENHEIMER는 물론이고, 양자물리 표준이론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약한 상호작용(력)=약력‘과 전자기력을 통일시킨 ‘전기약력 통일이론‘을 정립함으로써 기본(입자) 상호작용의 표준모형을 통한 소립자 통일모델을 제시하고 현대우주론의 통일모델까지 정립한, EINSTEIN만큼이나 뛰어난 NOBEL상 수상 천재과학자 Steven_WEINBERG나 다음 세대 최고의 천재과학자로 촉망받던 Paul_DIRAC 등등 수두룩한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들 거의 대부분이 사회주의자이거나 최소한 좌파 지식인들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그 때도 약간의 설명이라도 덧붙일까 하다 말았었는데 다시 EINSTEIN의 철학적 토대가 언급된 지금, 그가 단지 최고의 천재 과학자일 뿐 아니라 과학 외적으로도 얼마나 폭넓고 종합적인 당대 최고의 지성이며 왜 그토록 진심으로 열렬한 평화운동가였는지를 단적으로 설명해 주는 다음의 글을 첨부하기로 한다.


본 글은 1949년 5월 미국의 유명 좌파잡지 {Monthly Review먼슬리_리뷰}‘ 창간호에 기념비적으로 게재되었던 아인슈타인의 정치관이다. 사회주의가 왜 인류의 유일한 길인지를 설파하는 아인슈타인의 문제의식과 예의 그 논증적 사고는 오늘날에도 (이제 어떤 새로운 탈자본주의=자본주의 이후의 사회인가라는 숙제 하나가 남아 있긴 하지만)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참고로 그는 사회문제에 대해 단순히 하나의 이론이나 Oppinion으로만 머물러 있던 그 흔하고 흔해 빠진 한 명의 무력한 지식인이 아니라 1947년부터 1954년 사이에만 서른네 개의 공산주의 단체의 회원, 후원자 또는 관련자였다고 공식기록문서가 확인하고 있다.






Albert Einstein.<Why socialism?> @{Monthly Review} Vol.1, No.1. ‘1949.M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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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it advisable for one who is not an expert on economic and social issues to express views on the subject of socialism? I believe for a number of reasons that it is.

Let us first consider the question from the point of view of scientific knowledge. It might appear that there are no essential methodological differences between astronomy and economics: scientists in both fields attempt to discover laws of general acceptability for a circumscribed group of phenomena in order to make the interconnection of these phenomena as clearly understandable as possible. But in reality such methodological differences do exist. The discovery of general laws in the field of economics is made difficult by the circumstance that observed economic phenomena are often affected by many factors which are very hard to evaluate separately. In addition, the experience which has accumulated since the beginning of the so-called civilized period of human history has—as is well known—been largely influenced and limited by causes which are by no means exclusively economic in nature. For example, most of the major states of history owed their existence to conquest. The conquering peoples established themselves, legally and economically, as the privileged class of the conquered country. They seized for themselves a monopoly of the land ownership and appointed a priesthood from among their own ranks. The priests, in control of education, made the class division of society into a permanent institution and created a system of values by which the people were thenceforth, to a large extent unconsciously, guided in their social behavior.

Albert Einstein’s “Why Socialism?”: The Enduring Legacy of His Classic Essay
John Bellamy Foster, “Albert Einstein’s ‘Why Socialism?’: The Enduring Legacy of His Classic Essay,”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2025.
But historic tradition is, so to speak, of yesterday; nowhere have we really overcome what Thorstein Veblen called “the predatory phase” of human development. The observable economic facts belong to that phase and even such laws as we can derive from them are not applicable to other phases. Since the real purpose of socialism is precisely to overcome and advance beyond the predatory phase of human development, economic science in its present state can throw little light on the socialist society of the future.

Second, socialism is directed towards a social-ethical end. Science, however, cannot create ends and, even less, instill them in human beings; science, at most, can supply the means by which to attain certain ends. But the ends themselves are conceived by personalities with lofty ethical ideals and—if these ends are not stillborn, but vital and vigorous—are adopted and carried forward by those many human beings who, half unconsciously, determine the slow evolution of society.

For these reasons, we should be on our guard not to overestimate science and scientific methods when it is a question of human problems; and we should not assume that experts are the only ones who have a right to express themselves on questions affecting the organization of society.

Innumerable voices have been asserting for some time now that human society is passing through a crisis, that its stability has been gravely shattered. It is characteristic of such a situation that individuals feel indifferent or even hostile toward the group, small or large, to which they belong. In order to illustrate my meaning, let me record here a personal experience. I recently discussed with an intelligent and well-disposed man the threat of another war, which in my opinion would seriously endanger the existence of mankind, and I remarked that only a supra-national organization would offer protection from that danger. Thereupon my visitor, very calmly and coolly, said to me: “Why are you so deeply opposed to the disappearance of the human race?”

I am sure that as little as a century ago no one would have so lightly made a statement of this kind. It is the statement of a man who has striven in vain to attain an equilibrium within himself and has more or less lost hope of succeeding. It is the expression of a painful solitude and isolation from which so many people are suffering in these days. What is the cause? Is there a way out?

It is easy to raise such questions, but difficult to answer them with any degree of assurance. I must try, however, as best I can, although I am very conscious of the fact that our feelings and strivings are often contradictory and obscure and that they cannot be expressed in easy and simple formulas.

Man is, at one and the same time, a solitary being and a social being. As a solitary being, he attempts to protect his own existence and that of those who are closest to him, to satisfy his personal desires, and to develop his innate abilities. As a social being, he seeks to gain the recognition and affection of his fellow human beings, to share in their pleasures, to comfort them in their sorrows, and to improve their conditions of life. Only the existence of these varied, frequently conflicting, strivings accounts for the special character of a man, and their specific combination determines the extent to which an individual can achieve an inner equilibrium and can contribute to the well-being of society. It is quite possible that the relative strength of these two drives is, in the main, fixed by inheritance. But the personality that finally emerges is largely formed by the environment in which a man happens to find himself during his development, by the structure of the society in which he grows up, by the tradition of that society, and by its appraisal of particular types of behavior. The abstract concept “society” means to the individual human being the sum total of his direct and indirect relations to his contemporaries and to all the people of earlier generations. The individual is able to think, feel, strive, and work by himself; but he depends so much upon society—in his physical, intellectual, and emotional existence—that it is impossible to think of him, or to understand him, outside the framework of society. It is “society” which provides man with food, clothing, a home, the tools of work, language, the forms of thought, and most of the content of thought; his life is made possible through the labor and the accomplishments of the many millions past and present who are all hidden behind the small word “society.”

It is evident, therefore, that the dependence of the individual upon society is a fact of nature which cannot be abolished—just as in the case of ants and bees. However, while the whole life process of ants and bees is fixed down to the smallest detail by rigid, hereditary instincts, the social pattern and interrelationships of human beings are very variable and susceptible to change. Memory, the capacity to make new combinations, the gift of oral communication have made possible developments among human being which are not dictated by biological necessities. Such developments manifest themselves in traditions, institutions, and organizations; in literature; in scientific and engineering accomplishments; in works of art. This explains how it happens that, in a certain sense, man can influence his life through his own conduct, and that in this process conscious thinking and wanting can play a part.

Man acquires at birth, through heredity, a biological constitution which we must consider fixed and unalterable, including the natural urges which are characteristic of the human species. In addition, during his lifetime, he acquires a cultural constitution which he adopts from society through communication and through many other types of influences. It is this cultural constitution which, with the passage of time, is subject to change and which determines to a very large exten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ndividual and society. Modern anthropology has taught us, through comparative investigation of so-called primitive cultures, that the social behavior of human beings may differ greatly, depending upon prevailing cultural patterns and the types of organization which predominate in society. It is on this that those who are striving to improve the lot of man may ground their hopes: human beings are not condemned, because of their biological constitution, to annihilate each other or to be at the mercy of a cruel, self-inflicted fate.

If we ask ourselves how the structure of society and the cultural attitude of man should be changed in order to make human life as satisfying as possible, we should constantly be conscious of the fact that there are certain conditions which we are unable to modify. As mentioned before, the biological nature of man is, for all practical purposes, not subject to change. Furthermore, technological and demographic developments of the last few centuries have created conditions which are here to stay. In relatively densely settled populations with the goods which are indispensable to their continued existence, an extreme division of labor and a highly-centralized productive apparatus are absolutely necessary. The time—which, looking back, seems so idyllic—is gone forever when individuals or relatively small groups could be completely self-sufficient. It is only a slight exaggeration to say that mankind constitutes even now a planetary community of production and consumption.

I have now reached the point where I may indicate briefly what to me constitutes the essence of the crisis of our time. It concerns the relationship of the individual to society. The individual has become more conscious than ever of his dependence upon society. But he does not experience this dependence as a positive asset, as an organic tie, as a protective force, but rather as a threat to his natural rights, or even to his economic existence. Moreover, his position in society is such that the egotistical drives of his make-up are constantly being accentuated, while his social drives, which are by nature weaker, progressively deteriorate. All human beings, whatever their position in society, are suffering from this process of deterioration. Unknowingly prisoners of their own egotism, they feel insecure, lonely, and deprived of the naive, simple, and unsophisticated enjoyment of life. Man can find meaning in life, short and perilous as it is, only through devoting himself to society.

The economic anarchy of capitalist society as it exists today is, in my opinion, the real source of the evil. We see before us a huge community of producers the members of which are unceasingly striving to deprive each other of the fruits of their collective labor—not by force, but on the whole in faithful compliance with legally established rules. In this respect, it is important to realize that the means of production—that is to say, the entire productive capacity that is needed for producing consumer goods as well as additional capital goods—may legally be, and for the most part are, the private property of individuals.

For the sake of simplicity, in the discussion that follows I shall call “workers” all those who do not share in the ownership of the means of production—although this does not quite correspond to the customary use of the term. The owner of the means of production is in a position to purchase the labor power of the worker. By using the means of production, the worker produces new goods which become the property of the capitalist. The essential point about this process is the relation between what the worker produces and what he is paid, both measured in terms of real value. Insofar as the labor contract is “free,” what the worker receives is determined not by the real value of the goods he produces, but by his minimum needs and by the capitalists’ requirements for labor power in relation to the number of workers competing for jobs. It is important to understand that even in theory the payment of the worker is not determined by the value of his product.

Private capital tends to become concentrated in few hands, partly because of competition among the capitalists, and partly because technological development and the increasing division of labor encourage the formation of larger units of production at the expense of smaller ones. The result of these developments is an oligarchy of private capital the enormous power of which cannot be effectively checked even by a democratically organized political society. This is true since the members of legislative bodies are selected by political parties, largely financed or otherwise influenced by private capitalists who, for all practical purposes, separate the electorate from the legislature. The consequence is that the representatives of the people do not in fact sufficiently protect the interests of the underprivileged sections of the population. Moreover, under existing conditions, private capitalists inevitably control, directly or indirectly, the main sources of information (press, radio, education). It is thus extremely difficult, and indeed in most cases quite impossible, for the individual citizen to come to objective conclusions and to make intelligent use of his political rights.

The situation prevailing in an economy based on the private ownership of capital is thus characterized by two main principles: first, means of production (capital) are privately owned and the owners dispose of them as they see fit; second, the labor contract is free. Of course, there is no such thing as a pure capitalist society in this sense. In particular, it should be noted that the workers, through long and bitter political struggles, have succeeded in securing a somewhat improved form of the “free labor contract” for certain categories of workers. But taken as a whole, the present day economy does not differ much from “pure” capitalism.

Production is carried on for profit, not for use. There is no provision that all those able and willing to work will always be in a position to find employment; an “army of unemployed” almost always exists. The worker is constantly in fear of losing his job. Since unemployed and poorly paid workers do not provide a profitable market, the production of consumers’ goods is restricted, and great hardship is the consequence. Technological progress frequently results in more unemployment rather than in an easing of the burden of work for all. The profit motive, in conjunction with competition among capitalists, is responsible for an instability in the accumulation and utilization of capital which leads to increasingly severe depressions. Unlimited competition leads to a huge waste of labor, and to that crippling of the social consciousness of individuals which I mentioned before.

This crippling of individuals I consider the worst evil of capitalism. Our whole educational system suffers from this evil. An exaggerated competitive attitude is inculcated into the student, who is trained to worship acquisitive success as a preparation for his future career.

I am convinced there is only one way to eliminate these grave evils, namely through the establishment of a socialist economy, accompanied by an educational system which would be oriented toward social goals. In such an economy, the means of production are owned by society itself and are utilized in a planned fashion. A planned economy, which adjusts production to the needs of the community, would distribute the work to be done among all those able to work and would guarantee a livelihood to every man, woman, and child. The education of the individual, in addition to promoting his own innate abilities, would attempt to develop in him a sense of responsibility for his fellow men in place of the glorification of power and success in our present society.

Nevertheless, it is necessary to remember that a planned economy is not yet socialism. A planned economy as such may be accompanied by the complete enslavement of the individual. The achievement of socialism requires the solution of some extremely difficult socio-political problems: how is it possible, in view of the far-reaching centralization of political and economic power, to prevent bureaucracy from becoming all-powerful and overweening? How can the rights of the individual be protected and therewith a democratic counterweight to the power of bureaucracy be assured?

Clarity about the aims and problems of socialism is of greatest significance in our age of transition. Since, under present circumstances, free and unhindered discussion of these problems has come under a powerful taboo, I consider the foundation of this magazine to be an important public serv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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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보기 @https://monthlyreview.org/articles/why-socialism/
Reprise Issue: Vol. 61, No. 01 (May 2009)
Albert Einstein is the world-famous physicist. This article was originally published in the first issue of Monthly Review (May 1949). It was subsequently published in May 1998 to commemorate the first issue of MR‘s fiftieth year.
—The {MonthlyReview} Edi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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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이고 사회적인 쟁점들에 전문가가 아닌 자가 사회주의라는 주제에 관한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나는 몇몇 이유들로 그것이 바람직하다고 믿는다.



1. 우선 그 문제를 과학적 지식의 관점에서 숙고해 보자. 천문학과 경제학 간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날지 모른다. 양쪽 모두의 영역에서 과학자들은 일군의 한정된 현상에 관한 일반적인 수용성의 법칙을 발견하고자 하며, 이는 이들 현상들의 상호연결을 가능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나 실제로 엄청난 방법론적 차이가 존재한다. 경제학의 영역에서 일반적 법칙의 발견은, 관측된 경제 현상이 별도로 평가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많은 요인들에 의해 자주 영향받는 상황 때문에 어렵게 된다. 더욱이, 소위 인류 역사의 문명화된 시대가 시작된 이래로 축적되어 온 경험은, 잘 알려져 있듯, 본질상 전적으로 경제적이지는 않은 원인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아왔으며, 제한되어 왔다. 예를 들어, 역사에서 대부분의 주요 국가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정복에 빚지고 있다. 정복하는 인간들은 정복된 나라에 대해 스스로를 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특권계급으로 수립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토지소유권의 독점을 취했으며 그들 자신의 계급에서 사제직을 임명했다. 사제들은 교육을 통제하며 사회의 계급 분할을 영구적인 제도로 만들었고, 인간들이 사회적 행동을 함에 있어 대개 무의식적으로 따르게 되는 가치 체계를 창조했다.



그러나 역사적 전통은 말하자면 어제의 것이지만, 우리는 소스타인 베블런(Thorstein Veblen)이 인류 발전의 “약탈적 단계”라 불렀던 것을 실로 극복하지 못했다. 관측가능한 경제적 사실들은 그러한 약탈적 단계에 속하며, 심지어 우리가 그 경제적 사실들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그러한 법칙들조차 다른 단계들에는 적용될 수 없다. 사회주의의 실제 목표는 정확히 인류 발전의 약탈적 단계를 극복하고 그 너머로 나아가는 것이기에, 현 상황의 경제과학은 미래의 사회주의 사회를 좀처럼 설명할 수 없다.



2. 두번째로, 사회주의는 사회-윤리적 목표를 지향한다. 그러나, 과학은 목표를 창조해내지 못하며, 하물며 인간 존재에 목표를 불어넣어 주지도 못한다. 과학은 기껏해야 특정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줄 뿐이다. 그러나 목표들 자체는 고결한 윤리적 이상을 지닌 인간들에 의해 착상되며- 만약 이러한 목표들이 사산되지 않은 채 활기롭고 힘차다면- 반은 무의식적으로 사회의 느린 진전을 일궈내는 수많은 인간들에 의해 채택되고 추진된다.



이러한 이유들로, 사태가 인간의 과제들에 관한 문제일 경우 우리는 과학과 과학적 방법론들을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전문가들이야말로 사회의 조직화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에 관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유일한 자들이라고 가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무수한 의견들이 인간사회가 위기를 거치고 있으며, 그 안정성이 심각하게 무너져왔다고 한동안 단언해왔다. 개인들이 자신이 속한 크고 작은 집단들에 무관심하거나 심지어 적대감을 느끼는 것은 그러한 상황의 특징이다. 내가 말하려는 바를 설명하기 위해 개인적인 경험을 적어보려 한다. 나는 최근 지적이고 호의적인 한 사람과 또 다른 전쟁의 위협에 관해 토론했는데, 내 생각에 그러한 전쟁은 인류의 존속을 심각하게 위험에 빠뜨릴 것이었으며, 나는 오직 초국가적 조직만이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자 그 손님은 매우 차분하고 가볍게 내게 말했다. “왜 인류의 소멸에 관해 그리 진지하게 반대하시는 겁니까?˝



나는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그 누구도 이와 같은 류의 진술을 그리 가볍게 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한다. 그것은 내면에서 평정을 구하려 분투했으나 실패한, 다소 성공의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의 진술이다. 그것은 무수한 인간들이 오늘날 시달리고 있는 고통스러운 고독과 고립의 표현이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탈출구는 존재하는가?



그러한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쉽지만,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그에 답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에 답하려 한다. 비록 우리의 감정과 노력이 종종 모순되고 모호하여 그것들이 쉽고 단순한 공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매우 잘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인간은, 한편으론 고립된 존재이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존재이다. 고립된 존재로서, 인간은 그 자신의 존재 및 그와 가까운 이들의 존재를 지키며, 스스로의 개인적 욕망을 만족시키고, 선천적인 능력을 발전시키고자 한다. 사회적인 존재로서, 그는 동료 인간들의 인정과 애정을 얻길 추구하며, 그들의 기쁨을 나누고, 비탄에 잠긴 이들을 위로하며, 그들 삶의 조건들을 향상시키길 추구한다. 오직 이 다양하고 종종 충돌하는 노력들의 존재만이 한 인간의 특별한 성격을 설명하며, 그것들의 특정한 결합은 한 개인이 내적 평정을 얻고 사회의 안녕에 기여할 수 있는 정도를 규정한다. [개별적인 수준과 사회적인 수준에서의] 이 두 가지 동기의 상대적인 힘이, 주로 유전에 의해 고정되는 것은 꽤나 가능하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성격은 대개 한 인간이 자신의 성장 중에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환경에 의해 형성되며, 그가 자라는 사회 구조에 의해, 그 사회의 전통에 의해, 특정한 종류의 행동들에 대한 사회의 평가에 의해 형성된다. 개별 인간에게 있어 “사회”라는 추상적인 개념은 동시대인들 및 모든 이전 세대들에 대한 개인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관계들의 총합을 의미한다. 개인은 스스로 사고하고, 느끼며, 노력하고, 일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체적, 지적, 감정적 존재에 있어 사회에 너무나도 의존하고 있기에, 사회라는 틀 바깥에서 그를 생각하거나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인간에게 음식과 옷, 집, 작업 도구, 언어, 사유의 형식, 그리고 대부분의 사유 내용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사회”이다. 인간의 삶은 노동, 그리고 수백만 년의 과거와 현재의 성취를 통해 가능해지며, 그것은 “사회”라는 작은 낱말 뒤에 전부 숨겨져 있다.



따라서, 사회에 대한 개인의 의존이 개미와 벌들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폐지될 수 없는 자연의 사실이라는 점은 명백하다. 그러나 개미와 벌의 전체 생활 과정이 완고한 유전적 본능에 의해 가장 작은 세부까지 고정되어 있다면, 인류의 사회적 유형들과 상호관계는 매우 가변적이며, 변화하기 쉽다.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능력이자 구두 소통(oral communication)의 선물이기도 한 기억은, 인간에게서 생물학적 필연성에 좌우되지 않는 발전을 가능케 했다. 그러한 발전은 전통들, 제도들, 조직들에서, 문학에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성취들에서, 예술 작품에서 스스로를 표명한다. 이것은 어떤 의미로, 인간이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의식적인 사고와 욕구가 어떤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유전을 통해, 인간 종의 특징이 되는 자연적인 욕구들을 포함하여 우리가 고정되고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고려해야만 하는 생물학적 구조를 획득한다. 더불어, 인생 속에서, 인간은 의사소통과 다른 많은 종류의 영향들을 통해 사회로부터 취하는 어떤 문화적 구조를 획득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게 되는 것, 상당한 정도로 인간과 사회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구조이다. 현대 인류학은 소위 원시 문화들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인간의 사회적 행동은 지배적인 문화의 유형과 사회 내 우세한 조직화 방식들에 따라 매우 상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인간의 운명을 향상시키려 분투하고 있는 이들이 그들의 희망을 기초 지을 수 있는 곳은 바로 여기다. 인간은 그 생물학적 구조로 인해 서로를 말살하거나, 어떤 자초된 잔인한 운명에 휘둘리도록 선고받지 않았다.



만약 우리가 인간의 삶을 가능한 한 만족스럽게 만들기 위해 어떻게 사회구조와 인간의 문화적 태도가 변화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묻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조정할 수 없는 특정한 조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의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은 모든 실용적인 목적들을 위해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지난 몇 세기의 기술적이고 인구통계적인 발전들은 우리 생활의 일부로서 존속할 조건들을 창조해 왔다. 상대적으로 조밀하게 자리를 잡은 인구와, 그들의 연이은 존속에 불가결한 재화들을 고려할 때, 극도의 노동 분업과 고도로 집중화된 생산 장치들은 절대적으로 필수적이다. 개인 혹은 상대적으로 작은 집단들이 전적으로 자급자족 할 수 있었던, 돌아보건대 꽤나 목가적인 시간은 영원히 떠나갔다. 인류가 지금도 전지구적 생산과 소비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제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 시대의 위기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을 간략히 지적해야 하는 지점에 이르렀다. 그것은 개인이 갖는 사회에 대한 관계에 관한 것이다. 개인은 어느 때보다 사회에 대한 자신의 의존을 의식하게 되어왔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의존을 긍정적인 속성이자 유기적인 결속으로, 보호를 제공하는 힘으로 경험하지 않으며, 외려 자신의 자연적 권리에, 심지어 경제적 실존에 대한 위협으로 경험한다. 더욱이, 사회 속 그의 위치에 있어, 본질적으로 더 약한 사회적 동기는 점차적으로 악화되는 반면, 인간 구조의 자기중심적인 동기는 계속해서 강조되는 실정이다. 모든 인간 존재는, 그들의 사회 속 위치가 무엇이든, 이러한 악화의 과정에 고통받고 있다.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자기중심주의(egotism)의 포로가 된 그들은 불안과 외로움을 느끼며, 순수하고 단순하며 복잡하지 않은 삶의 향유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인간은 오직 스스로 사회에 헌신함으로써만 실로 짧고 위험한 인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존재하는 바와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무정부성은, 내가 보기에 실제적인 악의 원천이다.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거대한 생산자들의 공동체를 목도하는데, 그 구성원들은 집단적 노동의 산물을 끊임없이 서로에게서 빼앗으려 분투하고 있으며, 이는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체로 법적으로 정립된 규칙들에 대한 신실한 준수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산수단- 즉 자본재와 마찬가지로 소비재를 생산하는 데에 필요한 전체 생산 능력-이 법적으로 개인들의 사유 재산일 수 있고, 대개의 경우 그러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간명함을 위해, 이하의 논의에서 나는 생산수단의 소유에서 몫을 갖지 않는 모든 이들을 “노동자”라고 부를 것이다. 물론 이것이 그 용어의 관례적인 사용에 썩 조응하지는 않는다 해도 말이다.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구매하는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생산수단을 사용함으로써, 노동자는 새로운 재화를 만들어 내며 이는 자본가의 재산이 된다. 이 과정의 본질적인 측면은 양자 모두 실제 가치로 측정된 조건에서 노동자가 생산하는 것과 노동자가 지급받는 것 사이의 관계이다. 노동 계약이 “자유로운” 한, 노동자가 수령하는 것은 그가 생산한 재화의 실제 가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최소한의 생필품에 의해, 일거리를 위해 경쟁하는 수많은 노동자들과의 관계 하에서의 노동력에 대한 자본가의 요구에 의해 결정된다. 심지어 이론 상에서도 노동자의 임금은 그가 생산한 것의 가치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적 자본은 소수의 손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부분적으로 자본가들 간의 경쟁 때문이고, 한편으론 기술 발전과 점증하는 노동 분업이 더 작은 생산 단위를 말소하고 더 큰 단위의 형성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는 사적 자본의 과두제로서, 그 어마어마한 권력은 심지어 민주적으로 조직화된 정치 사회에 의해서도 효과적으로 억제될 수 없다. 이것은 진실인데, 입법 기관들의 구성원들이 사적 자본가들에게 주로 후원을 받거나 영향을 받는 정당들에 의해 선별되기 때문이며, 그들은 모든 실용적인 이유를 들어 입법기관과 유권자를 떼어놓는다. 그 결과는 민중의 대표자들이 박탈당한 시민 집단의 이해를 실로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재의 조건하에서, 사적 자본가들은 필연적으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출판사, 라디오, 교육 등 정보의 주요 원천을 통제한다. 따라서 개개의 시민들이 객관적인 결론에 도달하거나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지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극히 어려우며, 실제로 대부분의 경우 거의 불가능하다.



자본의 사적 소유에 기반한 경제에서 지배적인 상황은 그리하여 두 개의 주요 원리로 특징지어진다. 첫 번째로, 생산수단(자본)은 사적으로 소유되며, 생산수단의 소유자는 그것들을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대로 처분한다. 두 번째로, 노동계약은 자유이다. 물론, 이러한 맥락에서 순수한 자본주의 사회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길고 쓰라린 정치적 투쟁을 통해 노동자들이 특정한 범주의 노동자들에 대한 ”자유 노동 계약“의 다소 향상된 형식을 성취해 왔다는 것이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오늘날의 경제는 “순수한” 자본주의와 그리 다르지 않다.



생산은 이윤을 위해 수행되며, 사용을 위해 이뤄지지 않는다.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 모든 이들이 항상 일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은 없고, “대집단의 실업자들“이 거의 언제나 존재한다. 노동자는 자신의 직업을 잃는 것에 대한 공포에 항상적으로 처해있다. 실업상태이거나 저임금의 노동자들은 수익성 있는 시장을 가져다주지 않기 때문에, 소비재의 생산은 제한되고, 엄청난 궁핍을 겪게 된다. 기술적 진보는 전체를 위해 일의 부담을 덜기보다는 으레 더 많은 실업으로 이어진다. 자본가들 사이의 경쟁과 더불어 이윤동기는, 점차 심각한 불황으로 이어지는 자본 축적과 운용에서의 불안정성에 책임이 있다. 제약 없는 경쟁은 막대한 노동의 낭비를 야기하며, 내가 앞서 언급했듯 개인의 사회적 의식을 불구로 만드는 데로 나아간다.



이러한 개인의 불구화는 내가 생각하기에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해악이다. 우리의 전체 교육체계가 이 악으로부터 고통을 받고 있다. 비대한 경쟁적 태도가 학생들에게 주입되며, 그들은 자신들의 미래 경력을 위한 준비물로써 탐욕스러운 성과를 숭배하도록 훈련된다.



나는 이러한 심각한 해악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고 확신하는데, 그것은 사회적 목표로 지향될 교육체계를 동반하는 사회주의적 경제의 설립을 통해서이다. 그러한 경제에서는, 생산수단은 사회 자체에 의해 소유되며 계획된 방식으로 운용된다. 계획 경제는,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생산을 조정하며, 일을 할 수 있는 모든 이들 사이에서 일이 이뤄지도록 일을 분배할 것이고, 모든 남자와 여자, 어린이들에게 생계를 보장할 것이다. 개인의 교육은, 그가 가진 타고난 능력을 증진시키는 것에 더하여, 그에게 우리의 현재 사회에서의 권력과 성공의 예찬 대신 동료 인간들에 대한 책임감을 발달시키도록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 경제가 아직 사회주의는 아니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계획경제 자체는 개인의 완전한 노예화를 동반할지도 모른다. 사회주의의 성취는 극심하게 어려운 몇몇 사회-정치적 문제들의 해법을 요구한다. 즉,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권력의 엄청난 집중화를 고려할 때, 관료제가 전능해지거나 비대해지는 것을 막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어떻게 개인의 권리가 보호되며, 그와 함께 관료제의 힘에 대한 민주적 견제가 보장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주의의 목표와 문제에 있어 명료함은 우리가 처한 이행의 시대에 엄청난 중요성을 갖는다. 현재의 상황 하에서, 이들 문제에 대한 자유롭고 방해받지 않는 논의는 강력한 금기가 되었기 때문에, 나는 이 잡지의 창간이 중요한 공적 기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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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1-25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1. < 미국 현지에서 전함: 영하 23도의 추위에도 ICE 축출 시위가 미니애폴리스를 뒤덮다 >[*1]



1월 23일 미니애폴리스 도심을 가득 메운 ‘셧다운’ 시위대
오늘(1월 23일)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 시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이민단속국과 트럼프는 꺼져라”를 외치며 행진했고, 하루 파업도 벌어졌다.

내가 아는 칠순을 바라보는 한 어르신은 영하 23도 추위를 뚫고 차로 7시간 넘게 걸리는 미니애폴리스로 향했다. “Fuck Trump”라는 말과 함께.

미니애폴리스는 미네소타주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된 도시로, 미국 중서부의 ‘사과’(mini apple과 발음이 비슷)라고 불린다. 노동계급이 다수 거주하는 곳이라서 2020년 ‘흑인 목숨도 소중하다’(BLM: Black Lives Matter) 운동 이전에도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가 있다.

며칠 전 이민단속국(ICE)의 살인 만행으로 점화된 분노가 미국 전역을 뒤흔들고 있다.

지금 미국 중서부가 얼마나 춥냐면, 강추위에 나무 폭발로 인한 파편을 주의해야 할 정도다. 추위가 극심하면 나무가 터진다는 걸 알게 됐다. 기상청 권고에 따라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 학교들이 있을 정도로 춥다.

그런 맹추위에도 ICE 반대 시위대가 미니애폴리스 도심을 뒤덮었다.

ICE 축출 시위 보도 영상에서 “ICE Out For Good”이라는 손팻말을 많이 봤을 것이다. Good은 피해자 러네이 굿(Good)의 성이기도 하고, “For Good”이라는 표현이 영영, 평생이라는 뜻이다. 러네이를 추모하는 동시에 ICE는 영영 꺼지라는 중의적 뜻의 구호다.

미니애폴리스에서 수백 개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근처 중고등학교들은 지난 주부터 동맹 휴교를 한 곳들이 많다. 시위대는 족히 수십만 명은 돼 보인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일어난 ‘왕은 없다’(No Kings) 집회보다 의제는 좁아졌지만 훨씬 급진적이고 잠재력이 커 보인다.

‘왕은 없다’ 집회는 민주당과 인디비지블, 50501 등이 깊게 관여하고 주최한 느낌이 강하다면, 이번에는 지역주민들이 너나할 것 없이 먼저 나서고 50501 등이 홍보해 주는 모양새다.



[현장영상] 1월 23일 미니애폴리스 도심을 가득 메운 ‘셧다운’ 시위대
@https://assets.ws.or.kr/original/2026/01/7ad0f10cbb009120e05395bee87b8f5e.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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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미니애폴리스 ‘셧다운’: 노동자들이 트럼프 정권에 맞설 힘을 보여 주다 >


2.1. 1월 23일 미니애폴리스 도심을 가득 메운 ‘셧다운’ 시위대

1월 23일 금요일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역사적인 ‘셧다운’이 벌어졌다. 트럼프가 연방 기구를 동원해 미네소타를 점령하려 드는 것에 맞서 사람들이 하루 동안 출근·등교·쇼핑을 거부한 것이다.

아침부터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공항에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모였다. 100명의 종교 지도자들이 도로를 봉쇄하다 대거 연행됐다.

짧게 잡아도 지난 6년을 통틀어 가장 추운 영하 30도의 날씨를 뚫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모였다.

운동 단체 ‘50501’의 활동가 닉 벤슨은 지역 신문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공항은 우리 이웃들을 세상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쫓아내는 출구입니다. 어제부로 이번 달에 약 2000건의 추방이 자행됐습니다.”

델타항공 등의 기업들을 향해 이민세관단속국(ICE)에 협조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현수막이 걸렸다. ICE에게 납치된 ‘여기서 단결’ 노조 소속 공항 노동자들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든 시위대도 있었다.

오후 2시, 약 10만 명이 미니애폴리스 도심에서 행진하기 시작했다. 시위대는 “파업, 파업, 파업,” “ICE 철폐,” “우리에게 정의를 주지 않는다면, 저들도 평화를 누릴 수 없다” 구호를 크게 외쳤다.


한 시위 참가자는 ‘브레이크스루 뉴스’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현 정부는 이 나라를 파시즘 지배 체제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동의한 바 없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미니애폴리스 교원노조연맹 소속 조합원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학교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우리 학생들이 실종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납치됐어요. 더는 참을 수 없습니다. 도시를 멈출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을 위해 도시를 완전히 멈출 거예요.”

ICE가 연행자들을 구금하는 포트 스넬링의 휘플 연방정부 건물 앞에서는 수백 명이 진입로에 바리케이드를 쌓았다.

미네소타대학교 대학원생노조는 4,000명의 조합원에게 출근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대학원생노조 조합원 에이미 하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활동으로 우리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게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일관된 요구는 대학 당국이 구체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 당국은 우리를 안전하게 하고 이주노동자들을 방어할 조처를 약속해야 합니다.

“이주민들이 공공연하게 공격받는 상황에서 우리 대학이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됩니다

“우리 대학원생들에게는 큰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없으면 학교가 굴러갈 수 없습니다.

“저희는 이번 행동을 파업이라고 부르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 개별적으로 시간을 내거나 지도교수에게 하루를 빼 달라고 요청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모든 조합원들이 여기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하번 씨는 대학원생노조가 1월 23일 이후에도 계속 행동을 벌일 것이라고 했다.


2.2. 영하 30도에 이르는 강추위를 뚫고 미니애폴리스 도심을 행진

“우리는 계속 행동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역 사회의 협력자들과 함께 식료품을 배달하고 카풀을 해서, 아무도 혼자서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ICE 구금 시설 앞에서 석방자들을 맞이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 ICE는 사람들을 내동댕이치듯 내보내고, 소지품을 돌려주지 않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원 활동가들이 온종일 구금 시설 앞을 지키고 있다가 누군가 풀려나면 집까지 태워 주고, 따뜻한 옷과 물품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계속 이웃을 지키고, 대학 당국을 공개적으로 압박할 것입니다.”

미네소타주의 서비스 노동자 6,000명을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위원장 크리스타 사락 씨는 이날 미네소타에서 사상 최대의 노동자 행동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지금 벌어지는 일을 좌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격해야 합니다.”


2.3. “당신의 용기(와 우리의 분노)가 ICE를 녹여버릴 것이다”

SNS에서 많은 이들이 이날 행동을 총파업이라고 일컫는다. 전직 상원의원이자 ‘모두를 위한 파업’ 창립자 니나 터너는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썼다. “ICE가 지역 사회를 공포로 몰아넣으려 하는 데에 맞서 오늘 미니애폴리스 전역의 노동계급 사람들이 총파업을 벌였다.

“우리 역사의 기념비적인 순간이자 변화를 향한 첫발이다.”

또 다른 시위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행동은 연대의 표시이자 우리가 공동체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조직돼 있고 모두가 한편임을 보여 준 것이죠. 저들은 이제 우리를 겁내고 있습니다.”

미네소타대학교 학생들도 행동에 가세했다. 소말리아인학생연합의 다히르 문예 씨는 이렇게 연설했다. “ICE가 나를 덮치기를 그저 기다릴 이유가, [단속이 무서워] 여권을 항시 들고 다녀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용기는 집단적인 것입니다. ICE는 미네소타에 있어서는 안 됩니다.”

소말리아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과 그 외의 수많은 상점들이 문을 닫았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일부 상점들은 ‘총파업’이라고 손으로 쓴 표지판을 내걸어 소말리아인 공동체에 연대를 표했다. 몇몇 가게는 문을 열고 시위 참가자들에게 따뜻한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앨리슨 커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살다 보면 옳은 일을 위해 떨쳐 일어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입니다.”

인터넷 언론 ‘페이데이리포트’에 따르면 미국 전역의 250개 도시에서 연대 행동이 벌어졌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는 둘루스고등학교 학생 약 600명이 수업을 거부했다. 조지아주의 수십 개 학교에서 비슷한 행동이 벌어졌다.

뉴욕에서는 뉴욕대학교 학생들이 연대를 표하기 위해 “트럼프의 폭력에 협조하지 말라”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행진했다. 뉴욕 전역의 노동자들이 파업 중인 뉴욕 간호사들에 가세해 일손을 놓고 유니언스퀘어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시카고교원노조는 대형마트 ‘타겟’의 지점들 앞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ICE가 그곳들을 이주민 단속 거점으로 이용하는 데에 반대하기 위해서다. 시카고교원노조는 ICE가 미네소타주에서 5살 소년 리암 라모스를 납치한 것을 강력 규탄했다[▶3].

작업 중단과 대규모 동원은 미니애폴리스를 멈출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힐끗 보여 줬다. 이 운동은 사람들에게 트럼프의 돌격대인 ICE에 맞설 자신감을 키워줄 수 있다. ICE가 떠나지 않는다면 노동자들은 투쟁을 지속하고 권력자들에 맞서 파업을 벌여야 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 삶을 파괴하는 ICE 구금 시설 >



ICE는 미네소타에서 5살 소년과 그의 아버지를 구금했다. ICE는 소년의 가족을 납치하려고 그 소년에게 자기 집 문을 노크하라고 강요했다.

리암 라모스와 그의 아버지는 강제로 비행기에 태워져 텍사스주로 이송됐다.

리암은 지난 몇 주간 ICE에 납치된 네 번째 콜럼비아하이츠공립학교 학생이다.

리암의 교사 엘라 설리반 씨는 리암이 “반의 분위기를 밝히는” 아이였다고 말했다.

“반 아이들은 아직 리암에 관해 묻고 있지 않지만, 조만간 리암의 소식을 알게 될 것입니다.

“리암이 무사히 돌아오기만 바랄 뿐입니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2주 전에는 열살배기 4학년 학생이 “어머니와 등교하던 중 ICE 대원들에게 끌려갔다.”

연행 과정에서 그 아이는 아버지에게 연락했다. 아버지는 즉시 학교로 갔지만, 딸과 아내가 텍사스주로 이송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리암과 그의 아버지가 구금되던 날, 콜럼비아하이츠 고등학교의 또 다른 17세 학생도 부모 없이 등교하던 중에 “마스크를 쓴 무장 요원들”에 의해 끌려갔다. 학교 관계자에 따르면 “그 학생은 버스에서 끌려나와 연행됐다.”

지난주에는 ICE 대원들이 “아파트로 난입해 17세 학생과 그의 어머니를 연행·구금”했다.

콜럼비아하이츠 공립학교 교육위원회의 메리 그란룬드 의장은 “결국 우리가 가진 것은 호루라기이고 저들에게는 총이 있다”고 말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저자: 재미 한국인 올리비아
원문: https://ws.or.kr/article/38554

[*2]
원문: Judy_Cox주디_콕스 & Camilla_Rolye커밀라_로일‘260123<Minneapolis shutdown: Workers show power to resist Trump regime>
번역: 김종환 @https://ws.or.kr/article/38552






rhizome 2026-01-27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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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좌 개요

강좌 취지: 철학 연구의 기반 강화와 학문 후속 세대 발굴
강좌 개설 기준: 일반 대학 교육과정에서는 개설되기 어려우나 최신 학계의 동향을 반영한 의미있는 주제들
대상: 대학 학부생, 대학원생 및 그 외에 심화 강좌를 듣고자 하는 누구나
장소: 2026년 겨울강좌는 매주 온라인 기반으로만 진행됩니다.


◉ 강좌 안내 - 유료 강좌

1. 삐딱한 『장자』읽기 (김시천,숭실대 베어드 학부대학 교수)
: 동양철학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분으로 베스트셀러인 『동양철학 에세이』의 저자이시기도 한 김시천 교수님과 함께
『논어』와 양주에 얽혀있는 숨겨진 이야기, 자유의 진정한 의미, 장자가 그렸던 새로운 사회에 이르기까지 고정관념을 벗어나 장자를 삐딱하게 그래서 새롭게 읽어내는 강의 (근간 예정인 책 내용으로 강의 진행 )
: 온라인 매주 월요일 7시 30분, 2026.02.02 개강, 4회.

2. 에코페미니즘의 도전: 자연, 섹슈얼리티, 동물 (황주영, 서울시립대 외래교수)
: 신비주의라는 편견을 넘어, 시대의 대안으로서의 현대 에코페미니즘의 다양한 논의를 재발견하는 시간이 될 강의
: 온라인 매주 수요일 7시 30분, 2026.02.04 개강, 4회.

3. 길위의 우리 철학 (김정철 전 한국국학진흥원 전임연구원/ 조배준 숭실대 베어드학부대학 연구교수/ 한승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원/윤태양 건국대 철학과 강사)
: 한국철학사상연구회 한국철학분과의 연구가 집대성되어 출간된 『길 위의 우리 철학』의 저자들이 돌아가며 1강씩 맡게 되는 저자 직강
: 수강 신청시 교재 증정, 신청시 기재한 주소로 우편 배송해드림
: 온라인 매주 목요일 7시 30분, 2026.02.05. 개강, 4회.


◈ 유료 강좌는 모두 4회차에 8만원 / 학부생 대학원생은 25%할인 (6만원)

이번 겨울 강좌는 부분 유료로 진행되며
2인 이상이 함께 등록 시 50% 할인된 가격으로 수강하실 수 있습니다.
ex) 나, 친구1, 친구2 함께 등록 → 전원 50% 할인
*학생할인 25%와 중복 적용 가능합니다
신청 폼에 누구와 함께 등록했는지 말씀해 주세요!

전회차 수강료 선납, 회차 분할 수강 불가


◉ 무료 강좌

- 라캉 세미나 강해 (이병창, 동아대 철학과 명예교수)
: 헤겔의 정신현상학 번역과 주해라는 역작을 최근에 내놓은 이병창 선생님의 라캉 강독. 강독이나 라캉의 세미나 1권 11권 7권의 일부를 발췌하여 강의로 진행
: 교재- 자크 라캉 세미나 1권, 자크 라캉 세미나 11권, 맹정현(옮긴이), 새물결
참고도서 – 라캉의 인간학, 백상현(지은이), 위고
: 온라인 매주 화요일 7시 30분, 2026.02.03. 개강, 8회차.



◈ 모든 강좌는 1주일간 다시보기가 가능합니다


◉ 수강신청 구글 폼

신청 폼은 아래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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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1-29 0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Iran에서 도대체 몇 명을 죽인 건지조차 어쩌면 영원히 알 수도 없을지 모를 구토가 날 정도의 끔찍한 학살이 진행되었고, 국제반제전선의 유지를 위해 이러한 사태에 침묵밖에 하고 있을 수 없다는 건 정말이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너무나 끔찍하고 역겨운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정리하기 위해 도움을 줄 현장의 지성적 목소리들과 이에 대한 분석을 제공합니다.






1. < 이란인 역사학자가 말하는 이란 시위의 배경 >





12월 말부터 이란을 휩쓸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이란 정권이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다. 이에 이란인 역사학자가 위기의 배경과 항쟁의 성격, 운동의 쟁점과 저항의 과제 등을 설명한 인터뷰를 소개한다. 이 인터뷰는 1월 10일(일) 영문으로 처음 발행됐다.

Q1. 이번 시위와, 이란이 직면한 경제 위기의 배경은 무엇입니까?
리알화(貨) 가치 하락으로 인한 물가 급등이 시위를 촉발했다고 지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가 상승률이 40퍼센트를 웃돌고, 식량 가격 상승률은 70퍼센트가 넘습니다. 상품 가격이 말 그대로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뀝니다. 모두가 그 영향을 받지만, 특히 노동계급 사람들이 큰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더 광범한 경제적 문제의 근저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하나는 역대 정부들이 고수했던 정책들입니다. 민영화로 불안정한 일자리가 양산됐고 경영이 부실해졌으며, 민영화로 인한 수익은 고위 엘리트층 일당이 챙겼습니다. 불평등에 대한 반감이 큽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란 경제를 파괴해 온 미국의 경제 제재입니다. 물가가 2018년에 급등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바로 그해에 도널드 트럼프가 대(對)이란 제재를 부활시켰습니다.

제재로 인해 이란은 석유 수출길이 막혔고, 수출한다 해도 싼값에 수출해야 했습니다. 달러화로 사들여야 하는 많은 상품을 수입할 수 없게 됐습니다. 게다가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려는 은행·기업들도 제재하고 있습니다.



Q2. 시위대가 제기하는 보다 광범한 정치적 불만이 있나요?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번 시위가 2022년, 2019년, 2017년, 2009년에 벌어진 일련의 주기적 시위들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란이슬람공화국은 1979년 혁명 후 모종의 사회계약을 맺었습니다. 하층 계급 사람들을 위해 몇몇 복지를 도입하는 한편 그 사람들의 권리와 조직을 탄압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말한 주기적 시위들은, 이란 정권의 신자유주의 도입과 미국 등의 제재 때문에 바로 그 사회계약이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입니다.

그 주기적 시위들은 지난 수십 년간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고 싶어했던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깊이 연관돼 있습니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조직의 차원에서는 노동조합 활동의 자유를 확대하고 정치 단체 탄압에 반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제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들이 매우 빠르게 연결됐습니다.



Q3. 시위의 성격은 무엇입니까? 누가 참여하고 있나요? 그리고 어디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까?
수도 테헤란에서 시위는 바자르(시장)에서 상점주들이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지난 10년 간 압박받아 온 하층 중간계급이죠. 하지만 수많은 일용직 노동자들, 즉 상점주들을 위해 물건을 나르는 짐꾼 노동자들도 시위에 동참했습니다.

시위는 일람, 케르만샤, 하마단 같은 몇몇 주(州)들에서 집중적으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곳들이 지난 몇 년간 빈곤으로 인한 타격을 가장 크게 입었고, 기후 위기로 인한 가뭄도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시골에서 내몰려, 일자리도 기반 시설도 없는 소도시로 이주해야 했습니다.

다른 몇몇 주들에서는 시위가 비교적 잠잠했습니다. 제 생각에 이는, 팔레비 왕조를 지지하는 왕정복고 구호들이 시위에서 나오는 것과 연관이 큰 듯합니다.

이 구호는 왕정식 민족주의, 페르시아 민족주의와 연관이 매우 깊습니다. 왕정식 민족주의, 페르시아 민족주의는 1979년 혁명 이전에 소수민족들을 줄곧 탄압했습니다.

이 때문에 쿠르드족, 아랍인들, 발루치족[파키스탄-이란-아프가니스탄에 걸친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민족 - 역자] 사람들은, 최고지도자든 왕이든 모든 독재를 원치 않는다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그들은 이 정치적 운동을 납치하려는 듯 보이는 어떤 세력과도 함께하지 않으려 합니다.

마찬가지로, 테헤란에서 거리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도 “독재 타도”를 구호로 내걸었습니다.

이렇듯 시위대 안에는 모종의 분단선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람들은 국가가 어떻게 나올지를 더 우려하고 있습니다.



Q4. 2022년 이란에서 ‘여성, 삶, 자유’ 시위가 잔혹한 탄압을 받은 바 있습니다. 이번에 시위대와 국가가 충돌하고 있지만, 아직 그때만큼의 규모는 아닙니다. 이란 국가의 대응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거리의 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사람들은 매번의 시위에서 배우고, 자신들의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자신의 전술을 다듬고 승리를 쟁취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 시위대는 머리 스카프 착용을 이전처럼 엄격히 단속하지는 않는다는 양보를 쟁취했습니다. 그렇게 단속하는 것이 더는 불가능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특히 여성들은 자신들의 투쟁으로 국가를 물러서게 할 수 있음을 보여 줬습니다.

국가는 탄압을 하면 그에 대가가 따를 수 있음을 압니다. 이란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은 탄압을 강화했다가 자칫 상황이 격화되고 사람들이 더 급진화할까봐 두려워하며 주저했습니다. 또 정권은 자기 지지자들이 현 체제에 대한 확신을 잃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Q5. 이 문제는, 미국이 개입하겠다고 위협하고 이스라엘이 이란 국가가 불안정해지는 데에서 득을 보려 하는 등의 국제적 맥락과 어떤 연관이 있습니까?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 이라크 무장 세력들, 가자지구의 하마스가 당한 공격 때문에 약해져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란이 이번 시위에서 받는 압력이 훨씬 커지고, 운신의 폭도 줄어듭니다.

현재 이란 국가가 직면한 딜레마는, 제재 해제를 기대하며 핵 개발 문제에서 미국과 타협할 것인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거리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누구에게서 대안을 기대하느냐입니다. 가당찮게도 트럼프는 “이란 시위대를 방어한다”고 떠들지만, 바로 얼마 전 이란 난민 400명을 이란으로 돌려보냈고 그 방안을 이란 정부와 협상했습니다.

강대국들은 이란 상황을 이용해 득을 보려 할 것입니다. 시위가 계속되면, 미국과 이스라엘이 어떤 식으로든 이란을 공격하는 데에 유리한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국제 정치 논리의 근저에 있는 것은 이란 국내 상황이 아닙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억압에 맞서는 어떤 종류의 저항도 원치 않습니다. 그 저항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이든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는 것이든 말입니다. 그리고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이 중국과 한편에 서는 것도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외세가 이란 시위를 이용해 득을 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거리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매우 분명하게 설정하는 것이 정말이지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강대국들이 시위를 이용하지 못하게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어떻게 해야 새로운 엘리트층이 새로운 가면을 쓰고 나타나 구체제를 재생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요? 시위가 계속될수록 이런 질문들이 점점 떠오를 것입니다.



Q6. 이 시위가 거리 항쟁에 국한될 거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조직 노동계급의 저항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항쟁이 일터에서 벌어지지 않고 있습니나. 그러나 테헤란 버스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이 항쟁 지지 성명을 발표했고(아래 박스를 보시오), 교사 250명이 연서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런 사례가 더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2022년에는 교사들 사이에서 파업을 조직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현재 석유 부문에서 계약직 노동자들의 소규모 파업이 한두 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의 관건은 조직 노동계급이 지도력을 발휘하느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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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테헤란 및 수도권 버스 회사 노동조합의 성명 >
우리는 빈곤·실업·차별·억압에 맞서는 민중의 투쟁에 연대를 선언한다. 또 우리는 불평등·부패·불의가 만연했던 과거로의 회귀 일체에 반대함을 분명히 선언한다.

우리는 진정한 해방이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사람들의 자의식적이고 조직적인 리더십과 참여로만 가능하고, 구래의 권위주의적 형태의 권력이 재생산되는 것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현재 노동자, 교사, 퇴직자, 간호사, 학생, 여성, 특히 청년들이 광범한 탄압·체포·해고와 생계 압박에 굴하지 않고 계속 이 투쟁의 최전선에 서 있다.

‘테헤란 및 수도권 버스 회사 노동조합’은 독립적이고 자의식적이고 조직적인 시위를 계속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간 여러 차례 밝혀 왔고 누차 밝히는 바, 노동자와 일하는 사람들이 해방되는 길은 대중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가 닦아 주는 것이 아니고, 외세나 정부 내 특정 분파들에 기대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해방의 길은 단결과 연대에, 독립적인 조직을 일터와 전국적 수준에서 건설하는 데에 있다. 우리는 지배계급들 간의 권력·이권 다툼에 또다시 이용당해서는 안 된다.

본 노동조합은 미국·이스라엘 등의 군사적 개입을 정당화하거나 지지하는 모든 프로파간다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그런 개입은 시민사회가 파괴되고 민중이 살해당하는 결과만을 낳을뿐 아니라, 이란 정권이 폭력과 탄압을 지속할 또 하나의 빌미를 제공할 것이다.

과거 경험들은, 서방 정부들이 지배 야욕에 차 있기나 하지 이란 민중의 자유·생계·권리는 털끝만큼도 중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줬다.

우리는 모든 구금자를 즉각 무조건 석방하라고 요구한다. 또 우리는, 민중을 죽이라고 지시하고 이를 집행한 자들을 색출·기소해야 마땅하다고 강조한다.

자유, 평등, 계급 연대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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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제국주의와 이란의 혁명: 과거, 현재, 미래 >



다음은 케임브리지대학교 조교수이자 중동 전문지 《미들이스트 솔리대리티》 편집인인 앤 알렉산더가 1월 20일 온라인 토론회에서 한 발제와 그가 청중 질문에 답한 것을 녹취·번역한 것이다.


L0. 먼저, 이번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와 대화해 준 이란인 활동가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들도 이 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자리에서 공개 연설을 하고, 잔혹한 이란 정권에 맞서 거리로 나온 사람들과 연대를 표하는 것은 큰 위험을 무릅쓰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이란에서 인터넷이 차단된 탓에 실제 이란에서 벌어지는 활동과 이곳 영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운동, 노동조합 운동 사이에 접촉이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 정보를 얻기가 매우 어렵고, 거짓 정보가 잔뜩 유포되고 있다.

지난 몇 주간의 항쟁은 이란 정권이 오랫동안 겪어 온 유기적 위기의 최근 국면이다.

현 이란 정권은 1979년 이란 혁명, 더 정확히는 그 혁명 이후 호메이니와 이슬람공화당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들어섰다. 1979년 이란 혁명은 위대한 대중 혁명이었다. 그 혁명은 사회적 정의와 해방을 위한 여러 요구를 제기하고, 샤의 독재를 타도하고, 제국주의에 맞선 혁명이었다. 그리고 훨씬 평등하고 정의롭고 민주적인 이란을 향해 나아갈 잠재력을 힐끗 보여 줬다. 그러나 그 희망은 호메이니가 권력을 공고히 다지면서 산산조각 났다.

그런 만큼 지금 벌어지는 일은 장기적인 혁명 과정의 한 단계임을 지적하고 싶다.

지금의 항쟁이 성공적인 혁명, 즉 수많은 평범한 이란인들의 염원을 실현하는 혁명이 될 것이냐는 또 다른 문제다. 질의응답 시간에 그에 관해 여러분의 견해를 듣고 토론할 수 있으면 좋겠다.


L1a. 1월 9일 테헤란의 거리 시위. 빈곤 청년 노동계급 대중의 급진적 투쟁이다.
지난 몇 주간의 항쟁은 수많은 이란인들이 절박한 상황에 처한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이는 경제 위기의 타격에서 비롯한 것이다. 여러 면에서 그 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 정부가 이란에 부과한 제재에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에는 정치적 차원도 있다.

지난 몇 년간 이란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난 시위·항쟁 물결을 보면 매우 뚜렷한 진자 운동의 패턴이 있다. 경제 위기로 촉발된 항쟁이 한 축에 있다. 2019년에 일어난 항쟁이 그런 사례인데, 그 항쟁을 촉발한 것은 연료난과, 특정 지역에서(수도인 테헤란보다는 외딴 지방에서 아마도 더) 심각했던 경제 위기와 실업이었다.


L1b. 반면, 2022년에는 정치적 초점이 매우 뚜렷하고 차별 문제를 중심으로 한 항쟁이 일어났다. 특히 이슬람 공화국의 제도적 성차별과, 경찰이 히잡 의무 착용의 집행을 통해 젊은 여성의 몸을 억압의 장으로 삼은 것이 핵심 쟁점이 됐다. 2022년 항쟁의 계기는 마흐사 아미니라는 젊은 쿠르드인 여성이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마흐사 아미니는 머리 가리개를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맞아 죽었다. 이것으로 촉발된 시위 물결은 쿠르드인 지역뿐 아니라 테헤란과 이란 남동부의 발루치스탄 등 이란 전역으로 확산됐다. 그 항쟁은 온갖 요구들이 모이는 초점이 됐고, 그중에는 이란 정권 자체의 타도를 요구하는 수준에 이르는 것도 있었다.

이처럼 자신의 삶을 옥죄는 정권에 대한 평범한 사람들의 분노로 불과 지난 몇 년 동안 거듭 항쟁이 일어났다.

L1c. 그런데 십여 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9년에는 민주주의 문제로 촉발된 시위 물결이 있었다. 이른바 ‘녹색 운동’이다. 개혁파 정치 지도자들과 선거가 그 시위의 초점이었다. ‘내 표는 어디 갔나’라는 구호 아래 수많은 사람들(어떤 추산에 따르면 300만 명)이 거리에 모였다. 그 시위도 혹심한 탄압을 받았다. 그 시위 또한 정권이 겪은 오랜 위기의 한 고비였다.



L2. 그러나 이란의 상황을 이해하려면 이슬람 공화국 내부의 위기만 봐서는 안 된다. 그 위기를 중동 내 제국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봐야 한다. 이와 관련해 명심해야 할 두 가지 핵심 측면이 있다.

L2a. 하나는 세계적 수준의 강대국 간 세력 균형 변화에 따른 전반적인 제국주의 역학의 변화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은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강대국으로서 상대적으로 힘이 쇠락해 왔다. 그 과정의 중요한 변곡점 하나는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이 겪은 실패다.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 이라크를 점령했지만 대중적 저항과 무장 저항에 직면했고, 결국 통제력을 되찾기 위해 다시 점령에 나서야 했다. 이는 미국의 중동 개입 능력에 큰 타격을 줬다. 미국은 여전히 중동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강대국이지만 그 영향력은 약화됐다. 그리고 이란 정권이 거기서 득을 봤다.

이란은 이라크에 개입했다. 그리고 이라크의 시아파 이슬람주의 정당뿐 아니라 중동의 여러 동맹 세력들을 통해 중동에 대한 영향력을 구축했다.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권과의 오랜 동맹,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주의 운동인 헤즈볼라와의 동맹도 그 동맹 네트워크의 일부였다.

그 동맹은 이란 정권이 미국에 맞선다는 사실에 기초해 있었다. 이란 정권은 미국의 숙적이었고, 하마스 등 무장 저항 단체들을 군사적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동맹의 주안점은 이란 정권의 이익에 있었다. 그 동맹은 미국 제국주의로부터 중동을 해방시킬 전략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 전략을 통해 이슬람 공화국 지도부는 여러 해 동안 중동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의 상대적 약화는 이스라엘 등 다른 역내 강대국들 또한 더 적극적으로 야심을 관철시킬 기회를 제공했다. 이란 정권을 비롯해 다른 역내 강대국들 사이의 경쟁을 격화시킨 것이다.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끔찍한 인종학살도 그런 경쟁이 낳은 결과의 하나다. 물론, 이스라엘 지배 체제 자체의 인종학살적 성격과, 특히 인종학살을 공공연히 선동하는 이스라엘 극우 정당도 그 학살에서 일정한 구실을 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이스라엘의 중동 패권 야심을 이란 지도부에 각인시키려는 것이기도 했다.

2023년 가자 전쟁 이래 중동에서 벌어진 일들도 모두 이러한 역내 경쟁 속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이란 정권은 국내와 국외 모두에서 동시에 커다란 도전에 직면했다.


Ls. 중동 수준의 맥락과 국내 맥락의 이러한 상호작용은 이란 정권이 왜 지금 최대 위기에 봉착했는가를 이해하고 분석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일단 발제는 여기서 마치고 질문을 받으며 다른 쟁점들을 다뤄 보겠다. 위기가 왜 지금 시점에서 벌어지고 있는지를 조망하게 하는 발제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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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1. 서방이 시위를 조종하고 있는가?
미국이 이란 현지의 운동을 가로채 납치한 상황이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란 정권이 지금의 운동을 외세가 조종하는 것으로 묘사하는 것에 관한 질문도 있었다.

이에 관한 여러 이란인 발언자들의 지적에 동의한다. 이란 현지의 시위를 미국의 꼭두각시로 그리는 것은 상황을 오도하는 것이다.

또, 레자 팔레비[1979년 혁명으로 타도된 샤의 아들로 현재 미국에 있다 — 역자]가 몇몇 시위를 호소하고 몇몇 시위에서 그의 이름이 외쳐졌다고 해서, 지금 벌어지는 운동을 팔레비의 꼭두각시로 그리는 것 또한 상황을 오도하는 것이다.

왕정복고 주장이 몇몇 시위에서 반향을 얻은 것은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시위대가 확고하게 왕정복고를 염원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정확한 정보를 알기 어려운 상황이다. 테헤란의 시위에 관해 내가 접한 여러 목격담에 따르면 다양한 구호와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그중 널리 외쳐지는 구호 하나는 2022년 ‘여성, 삶, 자유’ 항쟁 때 외쳐진 것이라고 한다. “독재자든 왕이든 모든 압제자를 타도하자.” 이것은 시위대가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와 억압에 반대하고, 한 억압적인 정권을 그저 다른 억압적인 정권으로 대체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을 뚜렷이 보여 준다.

또 다른 목격담에 따르면, 시위대 중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절망 때문에 레자 팔레비의 이름을 외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한편, 이란 정권은 시위들이 레자 팔레비의 호소와 결부된 것처럼 비치고 나서부터 잔혹한 진압에 나섰다. 이는 레자 팔레비가 현장에서 어떤 유의미한 지도도 제공하지 않은 채, 시위대가 커다란 위험에 처하든 말든 그저 시위대를 이용할 태세임을 보여 준다.

이란의 정부 시스템을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이란인들의 몫이고 모두가 외세의 개입에 반대해야 한다는 이란인 발언자들의 지적에 동의한다. 좌파라는 사람들이 외세의 개입을 지지한다면 대꾸할 가치도 없을 것이다. 유의미한 ‘정권 교체’는 이란인들 스스로 이뤄 내는 정권 교체뿐이다.

그러나 나 자신이 이란인이라면 나는 권위주의적 왕정의 복권에 극구 반대하고, 민주주의의 확대를 바라는 사람들과 연대를 건설할 것이다. 내가 이란인이라면 ‘혁명수비대’(IRGC)를 그저 국가정보보안국(SAVAK)으로 교체하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SAVAK는 이란 왕정의 잔혹한 보안 경찰이다.

따라서 현 상황을 낳은 정치적 모순을 명료하게 이해해야 한다.

게다가 운동 일각에서 나오는 구호도, 반드시 우익에 의해 고무된 것이 아닐 수 있다.

미국이 가한 제재의 효과 하나는 많은 이란인들이 외부 세계와 단절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제재의 사례들에서 분명한 것 하나는 제재가 권위주의 정권에 타격을 주지 못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저항에 타격을 준다는 것이다.

이란 노동조합과 노동자 운동의 활동가들과 대화하면서도 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이란에도 노동자 운동이 있고, 그 운동은 이른바 개혁파, 보수파를 불문한 권력자들이 추진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저항해 왔다. 대대적인 민영화와 외주화, 고용 불안정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들이 광범한 노동계급에게 타격을 줬고, 이는 수많은 중간계급 사람들이 빈곤의 나락에 빠지는 데도 일조했다.

물론 그러한 고통과 빈곤은 지정학적 상황과 제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정권의 최상층에는 자신의 생활 수준을 유지한 사람들이 여럿 있다.



Q2. 시위대의 계급 구성과 이전 항쟁과의 차이
거리 시위대의 계급 구성에 관해서는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관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가 접한 소식에 따르면 여러 계급과 세대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청년 중심이었던 2022년의 ‘여성, 삶, 자유’ 항쟁과 다른 점이다.

이란인 역사가 페이먼 자파리는 2022년 항쟁에 관해 훌륭한 분석을 제시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당시 항쟁의 난점 하나는 조직 노동자들을 핵심부로 끌어들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세대 간 단절도 있었는데 시위를 이끄는 것은 주로 청년이었고, 더 나이가 있는 층은 노동조합 등 일터에 뿌리가 있었다. 그래서 당시 항쟁은 거리 시위를 넘어서는 동력을 만들어 내는 데서 어려움을 겪었다.

1978~1979년 혁명의 역사를 보면 당시 시위대에 대한 정권의 살인 진압은 1978년 1월에 시작됐다. 시위는 8~9개월 동안 이어지다가 1978년 9~10월에 급격히 심화되기 시작했다. 그 변곡점은 석유 부문 등에서 벌어진 대파업이었다. 그러면서 운동은 질적으로 도약했고, 기존 국가의 해체로 나아가는 멈출 수 없는 동력이 생겼다. 1978년 10월에 샤는 계엄령을 내리고 버티다 1979년 1월에 이란을 탈출하고 2월 초 권력을 잃었다.

이는 지금의 운동이 어떻게 수많은 이란인들이 제기하는 물음에 답하는 혁명적 운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훨씬 평등하고 정의롭고 인종이나 성별 등에 따른 차별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부의 재분배 등의 문제를 제기하는 투쟁으로 말이다.



Q3. 어떤 연대가 필요한가?
미국의 폭격을 지지할 수는 없겠지만, 시위대를 학살하는 ‘혁명수비대’를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고 제재하라고 요구해야 하지 않겠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 정부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답하고 싶다. 특히, 팔레스타인 연대 팻말을 들고 있는 것을 테러리즘의 한 형태로 간주하는 영국 정부라면 더욱 믿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누군가를 테러리스트로 지정할 자격이 없다.


가장 효과적인 행동은 이란인들 자신의 저항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종류의 행동이다. 가령, 노동조합들은 이란의 노동조합들에 연대를 표하는 행동을 벌일 수 있다. 노동자들은 이란 정권이 시위 진압에 쓰는 무기 등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는 행동을 벌일 수도 있다. 운동을 건설하고 아래로부터의 저항 능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이란 활동가들과 협력해야 한다. 그리고 중동 다른 곳에서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Q4. 저항은 이제 끝났는가?
왜 여전히 일부 이란인들은 거리에 나서기를 주저하냐는 질문이 있었다. 거대한 탄압이 몰아치는 현재, 거리에 나서려면 커다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한 발언자의 지적에 동의한다.

그러나 거리 운동이 이제 끝장났다거나, 역으로 이제 더 첨예한 항쟁으로 심화될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아직 섣부르다.

분명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을 추모할 것이다. 사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 하나는 떨어져 사는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그들의 생사조차 모르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들의 생사를 알게 되면서 분노는 다시 쌓일 것이다. 이란에는 죽은 자를 40일 후에 기리는 전통이 있다. 이는 1978~1979년 혁명의 역학에도 반영됐다. 죽은 자를 추모하는 행사가 40일마다 열려 정치 집회가 된 것이다. 이는 2022년 항쟁 때도 나타난 특징인데, 마흐사 아미니가 죽은 지 40일이 되는 날이 운동이 더한층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정권이 자행한 폭력의 규모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살상 수준이 이전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증거가 많다. 수천 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훨씬 많은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조준 사격에 맞아 눈을 다쳤다.



Q5. 시리아·이집트 혁명의 교훈
이란 정권은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과 비슷한 전술을 구사한 듯하다. 정권 지지자들을 거리로 동원하고 반정부 시위를 순전히 외세의 책동이자 하나같이 폭력적인 시위로 묘사하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 시리아 혁명과 그것의 최종 패배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중요한 교훈 하나는 정권의 동원에 맞서는 데서 조직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하는 구실이 핵심적이라는 것이다.

시리아 혁명의 비극은 혁명 초기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충분한 규모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결과 아사드 정권은 수도인 다마스쿠스나 알레포의 거리에 정권 지지 시위대를 거듭 동원할 수 있었다. 비록 그들 중 일부는 상관의 강요에 의해 나오거나, 야간에 반정부 시위에 몰래 나오기도 했지만 말이다.

2011년 이집트 혁명은 그와 달랐다. 당시 이집트 무바라크 독재 정권도 대중 항쟁이 일어나자 노동조합, 특히 국가가 운영하는 노동조합을 동원해 타흐리르 광장에서 시위대를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그 시도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노동조합들이 지시를 거스르고 관제 데모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무바라크 정권은 여기저기서 깡패들을 긁어모아 낙타 기병대를 꾸려 시위대를 공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평범한 사람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노동자”란 공장 노동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가령, 교사와 보건 노동자도 노동자다. 최근 이란에서는 교사와 보건 노동자들이 큰 파업을 벌였다. 석유 산업 같은 핵심 부문에서도 파업이 있었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투쟁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통제하기 어려운 운동을 건설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투쟁이 벌어진다면 중동 전역에서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이란에서 항쟁이 승리를 거두기 시작한다면 예컨대 이집트 민중도 거기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시위대가 경찰을 패퇴시키고 정치수를 석방시킨다면, 중동 전역의 민중은 짜릿한 희망을 느낄 것이다.

1년 전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을 때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물론 당시 상황은 꽤 복잡했다. 아사드 정권의 붕괴는 시리아 혁명이 남긴 오랜 여파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무장 조직 하이아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주도한 군사 쿠데타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악명 높은 세드나야 감옥의 문이 열리는 광경에 중동 민중은 열광했고, 그것이 갖는 상징성 때문에 카이로부터 테헤란까지 독재자들이 두려움에 떨었다.

조직된 노동자들이 핵심부에 있는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이 이란에서 성장할수록, 중동 전체의 민중이 희망을 걸 본보기가 될 잠재력도 커질 것이다.


Q6. 중국이나 러시아가 개입할까?
중국과 러시아의 구실에 관한 질문이 있었다.

이란 정권은 지난 몇 년 동안 중국·러시아와 상당한 경제적·군사적 관계를 쌓아 왔다. 예컨대 러시아 정부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지원했다. 그리고 시리아 혁명 때 이란 정부와 함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도와 혁명을 분쇄하고 끔찍한 학살을 벌였다.

이란과 중국은 상당한 경제적 관계를 맺었다. 중국은 중동 전반에 상당한 투자를 했다. 걸프 연안은 미국의 투자와 중국의 투자가 교차하는 곳이다. 그런 상황이 미중 간 지정학적 경쟁과 얽힐 수 있다는 관측은 타당하다.

그러나 미국이 이스라엘을 즉각 지원하듯이 러시아나 중국이 이란 정권을 지원하러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을 듯하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질 때 벌어진 일을 보면 이를 짐작할 수 있다. 당시 러시아가 할 수 있었던 일은 아사드에게 망명지를 제공해 주는 것뿐이었다. 러시아는 정권을 떠받치기 위해 어떠한 유의미한 개입도 할 수 없었다. 시리아 내 친이란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Q7. 이란 정권 붕괴를 바라지 않는 아랍 정권들
이것은 다른 아랍 국가들, 특히 걸프 연안국들의 입장에 관한 질문과도 관련 있다. 몇몇 발언자들이 지적했듯이 그 국가들은 이란 정권이 당장 무너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이해관계에 입각해 사태를 안정시키고 관리하려고 애쓰고 있다.

여러 발언자들이 강조했듯이 어느 정권도, 어느 지배계급도 민중 항쟁이 권력을 잡기를 바라지 않는다. 1979년 혁명 때도 마찬가지였다.



Q8. 이슬람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슬람주의(때로는 ‘이슬람 근본주의’라고 불린다)에 관해서도 짧게 언급하겠다.

이슬람주의 운동을 다룰 때에는 그것이 매우 다양한 현상임을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주의 운동은 서로 상충하는 복합적인 계급 기반을 가질 수도 있다. 거기에는 노동계급 지지자들도 포함될 수 있다.

물론 이슬람주의 운동은 신중간계급이 이끌 때가 많다. 때로는 신흥 부르주아지의 일부도 기반에 포함될 수 있다. 옛 중간계급이나 지배계급의 일부도 기반에 포함될 수 있다.

이처럼 이슬람주의의 기반은 복합적이다. 그리고 그들의 몇몇 주요 슬로건들은 온갖 상이한 방식으로 지지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다.

이슬람이 정치의 언어로 사용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란 혁명 때 많은 사람들이 호메이니의 운동에 매력을 느낀 것은 호메이니가 ‘압제에 맞서자, 제국주의에 맞서자, 만국의 피억압자는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물론 호메이니는 그 말을 고스란히 실행에 옮길 생각은 없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호메이니의 주장에 매력을 느꼈고 투쟁의 언어로 받아들였다.

한편, 영국 등 서방에서는 이슬람 혐오를 경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슬람 혐오를 이용해 우파가 이슬람주의 지지자나 이슬람주의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을 공격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악마화되고 온갖 탄압을 받는다.

사회주의자들은 국가에 의해 탄압받는 사람들을 방어하고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

핵심은 국가 권력에 대한 태도가 무엇이냐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국가 권력에 확고하게 맞서야 한다. 자신의 국가에 가장 우선 맞서야 하지만, 다른 국가에도 적대적이어야 한다. 이것이 배양돼야 할 태도다.




S. 마치며
인용으로 토론을 마치겠다. 이것은 이란에서 ‘입헌 혁명’이 한창이던 1906년 당시 테헤란 주재 영국 영사 세실 스프링 라이스가 쓴 것이다. 당시 이란인들은 더 민주적인 형태의 정부를 요구했다. 명심해야 할 것은 당시 영국에서조차 여성 등을 포함하는 보통선거권이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도시마다 독립적인 의회가 결성돼 테헤란에 있는 통치자나 중앙 의회와 상의 없이 행동했다. 원성을 사던 지방관들은 하나둘씩 쫓겨났고 중앙 정부는 무기력하게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전면적 와해의 위험이 실질적이다. 억압과 심지어 모든 권위를 거부하는 저항의 분위기가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지도자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조직화하는 것을 보며 제국주의자들과 독재자들이 느끼는 당혹감과 공포를 잘 요약하고 있다. 당시 혁명의 기세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이란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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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문: TOWNEND, Arthur‘260110. Interview <What’s behind the protests in Iran? Interview with Iranian historian>
1+2국역: 김준효

3.
원문: ALEXANDER, Anne[앤_알렉산더]‘260120. <Imperialism and revolution in Iran: past, present and future online Q&A>
녹취·번역: 이원웅


rhizome 2026-02-02 0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3세계의 이러한 독재체제들은 ‘전통적 군주제를 대안적 반[半]봉건 체제로 임시 대체한 채 여전히 불철저한 미완의 반제-반[反]봉건 민주혁명 완수를 당면과제로 남겨두고 있는 사회‘로 규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패배의 피눈물을 삼키며 돌아서는 듯하지만, 한국사에서도 80년 광주항쟁의 패배가 87년 민주대항쟁의 복수로 되돌아왔듯 머지않은 미래에 민중자주로서의 민주혁명이 만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격의 사회들에서 필요한 문제해결책으로서의 사회변혁론에 대하여 최근 여러 경청할 만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 국내 팀들 중에서도 엉뚱하게 이미 국내외적으로 정리가 완료된 논쟁사에 대한 불철저한 학습 때문인지 아직까지 구닥다리 2단계 혁명론을 전개하고 있는 경우가 눈에 띄어 좀 어이없어 하고 있던 차에, 그간 많은 비판을 받아 온 바와 같이 불완전한 여지가 있는 노선임에도 오늘날까지 그 어느 정파들보다 강력한 생명력과 지도력을 잃지 않고 있는 노선체계 중 그 역량의 핵심 중 핵심이라 할 요소에 대하여 그 경향의 국내최초설립자로 잘 알려진 최고위원께서 그간의 많은 경험들을 총화하여 정리하신 듯한 최근 글이 있어 참고자료로 전파합니다.






< 연속혁명론: 2단계 혁명의 함정을 넘어 21세기 사회변혁을 설계하다 >





연속혁명론은 레온 트로츠키가 러시아의 1905년 혁명의 경험을 이론화하며 주창한 혁명론이다. 그는 러시아가 이미 세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체제에 깊이 편입된 만큼, 혁명이 부르주아지 주도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 잠재력을 중심으로 전개됐다고 봤다.

오늘날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연속혁명론은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라는 두 목표가 시간 차를 두고 순차적으로 달성된다는 (주로 공산당들의) ‘2단계 혁명론’을 부정한다. 다시 말해, 두 과제는 별개의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 속에서 함께 해결돼야 한다.

특히 이란의 청년 봉기, 베네수엘라의 반제국주의 좌파 운동, 그리고 군사 독재와 대중 항쟁이 교차하는 아시아 나라들(미얀마, 태국,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등 21세기 초반 격동을 분석하는 데서 연속혁명론은 여러 저자에 의해 반복적으로 거론돼 왔다. 즉, 이 이론은 단순히 ‘혁명이 가능하다/불가능하다’를 말하는 일반론이 아니다. 어떤 계급이 어떤 방식으로 권력을 쥐고 국가를 새로 수립하느냐, 그리고 그 과정이 국내에 머물지 않고 어떻게 국제적 연쇄로 확장되느냐를 묻는 전략적 구도를 설정하고 있다. 연속혁명론은 이렇게 혁명의 흐름이 노동계급 권력의 문제로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연속혁명론은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서로 다른 시기의 서로 다른 계급이 수행한다는 2단계 혁명론을 거부한다. ‘먼저 민주주의 단계, 그다음 사회주의 단계’라며 단계를 구분해야 하느냐, 아니면 결합해야 하느냐 하는 논쟁은 단순한 현학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전략의 문제다. 노동자 권력을 뒤로 미루면 민주주의는 결국 엘리트 정치인들의 협상 도구로 전락한다. 반면 민주주의를 무시하거나 그 과제가 실재함을 과소평가해서도 안 된다. 민주주의 과제가 실제 존재하며 대중을 결집시키는 힘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 혁명은 노동자 혁명을 통해 전근대 지주제도 폐지 등 미해결의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면서 사회주의로 나아간 연속혁명이었다
연속혁명론은 이 두 함정을 모두 피한다. 대중의 민주주의적 갈망을 에너지로 삼되, 그 갈망이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으로 이어지도록 길을 내는 것이 연속혁명이다. 연속혁명론의 출발점은 후발 부르주아지가 민족 해방, 농업 지주 제도 폐지, 민주적 권리 확대 같은 민주주의적 과제를 시종일관 수행할 능력도 의지도 갖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도덕성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위치 때문이다. 후발 부르주아지는 제국주의 및 구래의 지배계급과 긴밀히 얽히거나 그 압력에 취약할 뿐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을 두려워한다.

따라서 그런 조건하에서 혁명이 성공하려면 노동계급이 앞장서서 농민 등 구조적 차별을 받는 대중을 결집시키고, 이를 통해 정치 권력 쟁취로 나아가야 한다. 이때 ‘연속’이라는 말은 혁명이 영구적으로 지속된다는 뜻도, 필요한 전술적 국면을 혁명가들이 임의로 건너뛴다는 뜻도 아니다. ‘연속’의 의미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역사적 과업이 중도에서 적당히 봉합되지 않는 것. 2. 민주주의 요구가 결국 소유와 국가 권력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투쟁으로 번지는 것. 3. 혁명이 국제적으로 퍼져 나가지 않으면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좀 더 부연하면 이렇다. 노동계급이 일단 권력을 쥐게 되면 혁명은 단순히 민주주의 실현 수준에 머물지 않고 필연적으로 사회 체제 자체를 바꾸는 사회주의적 변혁으로 나아간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연속혁명론이 ‘민주주의적 과제가 중요하지 않다’라거나 ‘민족 해방은 부차적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민주주의 실현을 향한 대중의 노력은 혁명을 일으키는 진짜 에너지이며, 그 혁명이 정의로움을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다만, 민주적 과제가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떤 권력 형태를 통해 완수되는지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요컨대 연속혁명은 과제의 나열이 아니라 권력의 주인을 가르는 승부다.


불균등 결합 발전과 국제주의

연속혁명론은 자본주의가 나라마다 제각기 다르게 발전하면서도(불균등성), 하나의 세계적 체제를 이룬다는 점(결합성)에서 출발한다. 후발국은 선진국의 발전 단계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다. 강대국의 압력, 경제적 종속, 뒤처진 기술이 얽히며 서로 다른 시대적 단계들이 한 사회 안에 기묘하게 섞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혼재는 사회적 모순을 심화시키고, 때로는 결정적 순간에 역사의 단계를 뛰어넘는 폭발적 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레닌과 함께 러시아 혁명을 이끈 트로츠키

트로츠키는 이를 ‘불균등 결합 발전’ 또는 ‘결합된 불균등 발전’이라고 불렀다. 이 이론이 연속혁명론과 만나는 지점은 명확하다. 후발 사회에서 부르주아지는 더는 구래의 지배계급이나 제국주의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런 조건에서 민주주의를 향한 대중의 요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실질적 권력 장악 투쟁으로 변모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이다. 민주주의를 이루려면 기성 지배 세력의 방해를 뚫고 나아갈 강력한 힘이 있어야 한다.

그 힘은 노동자들의 단결된 조직력과 국제적 연대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실현된다. 따라서 연속혁명론은 국제주의가 단순한 도덕적 가치가 아니라 혁명의 조건임을 강조한다. 한 나라에 고립된 노동자 권력은 (1920년대 혁명 러시아의 경험처럼) 경제 봉쇄와 군사적 위협 속에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연속혁명론은 이러한 고립의 가능성과 위험을 인정하며, 혁명의 생존과 완성을 국제적 확산 속에서 설계하는 전략의 이론이다.


제국주의, ‘민주화’, 운동 포섭의 문제

2000년 유고슬라비아, 2003년 조지아, 2004년 우크라이나, 2005년 키르기스스탄,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 ‘민주화’ 운동들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 운동들은 미국이 현지 야당과 시민단체에 자금을 제공하고 기술·전략 교육을 시행하는 등 ‘소프트파워’로 개입해 촉진된 것이었다. 미국이 특정 ‘민주화’ 저항에 개입하는 양상을 보면, 대중의 정당한 분노와 투쟁이 외부 제국주의 국가의 전략과 결합되면서 포섭될 위험이 발생한다.

이러한 위험을 과장하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많은 반미 자주파 활동가들은 현재 이란의 청년 항쟁, 얼마 전 네팔 등지의 빈곤 청년 반란들, 그리고 2019년 홍콩 항쟁을 모두 미국의 사주에 의한 것으로 치부한다. 이런 때 사회주의자들은 운동의 독립성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가? 이 쟁점은 연속혁명론에 따른 전략과 직접 연결된다. 민주주의적 요구는 실제 대중의 고통과 차별·억압에서 나오며 연속혁명적 에너지의 원천이다.

그러나 정권 교체가 곧바로 해방을 뜻하지 않는 경우, 운동이 제국주의 국가들, 자유주의 야당 엘리트, 국제 기구 등이 설정한 정치적 방향에 종속될 수 있다. 따라서 연속혁명(이론에 따른) 전략은 민주주의 요구를 옹호하되, 그 요구가 노동계급의 독립적 조직과 연결돼 아래로부터의 권력 기구(소비에트 같은 형태) 형성으로 나아가도록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다시 말해, 외세의 개입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권력이 민주주의를 완성한다는 관점을 실천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중동과 국경을 넘는 연속성: 봉기의 확산과 반혁명의 역동

단순한 정권 교체만으로 혁명이 완결되지 않음을 보여 준 2011~2013년 이집트 혁명ⓒ출처 호쌈 엘하말라위
2011~2013년 중동·북아프리카 지역의 혁명을 연속혁명론의 관점에서 보면 두 가지 점이 드러난다. 첫째, 압제적 정권의 퇴진만으로는 혁명이 완결되지 않는다. 군부, 사법부, 경찰, 각종 국가 관료 기구, 대자본의 소유 구조가 그대로 남아 있으면 혁명은 반혁명에 의해 되돌려질 수 있다. 둘째, 바로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혁명은 ‘연속적’이 될 수 있다.

부분적 양보, 선거, 헌정 개혁이 이뤄져도 대중의 요구는 생존, 일자리, 식량, 차별·억압 철폐 등의 문제로 다시 분출하며, 그때마다 권력 문제가 재등장한다. 연속혁명(론에 따른) 전략은 혁명적 고양만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라, 반혁명의 다양한 형태와 운동의 분열 위험을 함께 분석하고 대비하는 전략이어야 한다. 예컨대 2013년 이집트에서 6월 28일부터 7월 3일 엘시시의 반혁명 쿠데타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무르시 정부 반대 시위 ‘타마로드’는 매우 모순된 성격을 띠었다.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혁명의 경험으로 보면, 각 투쟁의 전진이 더 급진적 변화 요구를 낳는 역학과 함께 혁명이 국경을 넘어 확산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지역적 확산은 제국주의적 지배에 도전하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팔레스타인 해방 전망을 논의할 때도 중요한 문제다.


굴절된 연속혁명: 혁명이 있었으나 노동자 권력으로 이어지지 못한 경우

노동계급이 이끌지 못한 1949년 중국의 민족해방 혁명은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귀결됐다
1949년 중국 혁명과 1959년 쿠바 혁명은 강력한 혁명적 에너지가 존재했음에도 그 결말이 노동계급의 권력 장악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례다. 중간계급 엘리트가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자본주의적 관료가 되는 경로가 형성됐다. 제국주의적 지배와 후발 사회의 계급 구조가 결합된 상황에서 노동계급이 정치적 주도권을 쥐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준다. 국가 관료를 지향하는 민족주의 지도부가 혁명적 에너지를 흡수해 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굴절은 혁명의 ‘배신’ 문제가 아니라 권력 형태의 문제다.

1979년 이란 혁명도 굴절된 혁명의 사례다. 노동계급이 왕정을 무너뜨리는 힘을 보여 주었으나, 스스로 권력을 장악할 정치적 대안을 갖추지 못해 성직자 세력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굴절된 연속혁명 개념을 통해 보면,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운동이 왜 자동적으로 사회주의로 이어지지 않는지를 계급 정치 관점에서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또한 혁명적 위기가 자동으로 노동자 권력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혁명적 조직과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권력이 그 간극을 메워야 한다.


연속혁명은 필연이 아니라 조건부 경향으로 이해해야 한다

연속혁명론을 ‘후발국에서는 반드시 노동자 혁명으로 이어진다’는 숙명론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연속혁명론은 성공을 보장하는 자동 공식이 아니다. 계급투쟁과 국가적 위기가 결합할 때 노동계급이 어떤 정치적 역할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굴절의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따라서 연속혁명 전략은 ‘혁명적 정세가 오면 자연히 해결된다’는 식이 아니라, 굴절을 낳는 조건들을 인식하고 피하는 전략이어야 한다.

즉,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 부족, “다른 누군가가 노동계급을 대신해 해방을 이룩할 수 있다”는 대리주의, 국가 기구의 재편, 제국주의 시스템의 변화 등을 구체적으로 다뤄야 한다. ‘굴절’ 개념을 이해하면 오늘날 개발도상국의 반란을 단순히 ‘실패’로 규정하지 않으면서, 왜 노동자 권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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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혁명 전략 1: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과 민주적 권력 기구 건설

연속혁명 전략의 첫째 요소는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이다. 이는 단지 ‘노동자 정당을 만든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계급이 투쟁 속에서 스스로를 정치적 주체로 조직하고, 다른 계급 세력의 목표에 종속되지 않도록 독립적 방향을 확보하는 것을 뜻한다.

결국 핵심은 권력 기구의 문제다. 파업위원회, 일터 대표자 회의, 지역 민중의회(‘인민위원회’), 노동자 평의회(소비에트) 같은 기구들은 단순한 투쟁 조율 기구가 아니라 기존 국가에 맞서는 대항 권력의 잠재적 형태로 발전할 수 있다. 이러한 기구들이 성장할수록 혁명은 단순히 ‘정권 교체’나 ‘사회 대개혁’에 머물지 않고, 국가의 대체 문제를 실제로 제기하게 된다. 이 문제의식은 노동자 자력 해방과 평의회 권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전통의 기본 축을 이룬다.


연속혁명 전략 2: 차별·억압 받는 집단들과 동맹하기

연속혁명론은 노동계급을 고립된 ‘경제적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 후발 사회에서 혁명은 토지 문제, 민족 해방, 민주적 권리, 차별·억압 철폐 같은 요구와 결합하며, 이 요구들은 다양한 차별받는 집단들의 현실적 필요로 나타난다. 따라서 연속혁명 전략은 이러한 요구들을 ‘나중에 해결할 문제’로 미루지 않고 전면에 세우되, 해결을 국가 엘리트에게 맡기지 않기 위해 계급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동맹은 단순한 연대가 아니라 ‘헤게모니’ 개념으로 구축돼야 한다. 노동계급이 파업 등을 통해 사회와 생산을 멈추고, 대중 권력 기관을 통해 민주주의를 실질화할 때, 차별·억압 받는 집단의 요구는 강력한 물질적 기반을 얻게 된다. 반대로 노동계급 조직이 약하면 이들의 요구는 국가나 정당 엘리트의 협상에 흡수되기 쉽고, 혁명은 포섭되거나 좌초될 수 있다.


연속혁명 전략 3: 국가와 혁명. 그리고 ‘국가가 해방을 대행한다’는 생각을 반대함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국가를 통한 개혁을 추구하며 제국주의의 압력을 극복하지 못했다ⓒ출처 Bernardo Londoy(플리커)
마르크스주의는 국가를 중립적 기구로 보지 않는다. 국가는 폭력과 강제의 장치이며, 기존 소유 관계를 재생산하는 기제다. 따라서 민주주의 전면 확장 요구는 필연적으로 국가 기구와 충돌하게 된다. 이 점을 흐리면 혁명은 ‘좋은 정부를 요구하는 운동’으로 협소화된다.

베네수엘라의 경험은 혁명의 성패가 “21세기 사회주의”라는 정부의 좌회전 선언에 달려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승패는 아래로부터의 힘과 자체 조직에 달려 있다. 국가는 급진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지만, 대중을 대신해 해방을 가져다줄 수는 없다. 이러한 환상은 굴절과 후퇴를 낳고, 마두로 정부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연속혁명 전략 4: 국제주의를 추상적 원칙이 아니라 ‘조건’으로 삼기

연속혁명론에서 국제주의는 선택 가능한 미덕이 아니라 혁명의 생존 조건이다. 혁명은 고립되기 쉽고, 고립은 타협과 관료화의 압력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제 연대를 ‘사전에 구축해야 하는 실천’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

첫째, 제국주의, 전쟁, 생계의 위기 등에 맞선 동시적 투쟁을 확대한다.

둘째, 반전·반제국주의 운동을 건설하되, 이를 지배계급이나 중간계급의 애국주의에 넘겨주지 않는다.

셋째, 이주노동자와 난민을 포함한 국제 노동계급의 단결을 조직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러한 접근법은 서구에서 혁명이 가능한지라는 질문과도 연결된다. 서구의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는 대중의 불만을 흡수하는 경향이 있지만, 대중적 폭발과 전면적 계급투쟁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제주의 관점을 가지면 서구 내부의 변화를 ‘그 나라 고유의 특수한 일’이 아니라 보편적 흐름 속에서 이해하게 된다.

결론 1: “누가 주인공이 돼 어떤 정치 권력을 세울 것인가” — 연속혁명 전략의 핵심 질문
이 질문은 베네수엘라 상황에서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고 차베스가 ‘연속혁명’을 얘기했음에도, 혁명의 미래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달려 있었다. 위로부터의 급진화가 노동자 대중의 자체 조직과 결합하지 못할 때 생기는 긴장을 인식해야 한다. 결국 관건은 대중이 어떤 권력을 형성하고 있는가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노동계급이 자주적 조직을 통해 정치의 주체로 등장하는가.
그러한 조직들이 기존 국가 기구와 경쟁하는 권력 형태로 발전하는가.
차별받는 집단들의 요구가 노동계급 정치와 결합되는가.
국제 연대가 어떠한 조건을 제공하는가.
결론 2: 연속혁명은 과거의 도식이 아니라 오늘의 권력 문제를 묻는 전략이다
연속혁명론의 핵심은 민주주의적 요구가 어떻게 계급 권력의 문제로 전화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있다. 동시에, 혁명을 지도자 중심의 ‘정권 교체’로 축소하지 않는다. 결국 어떤 계급이 어떤 권력 형태를 통해 국가를 대체하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연속혁명 전략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 견지,
차별·억압 받는 집단들과의 연계,
대항 권력 기관(소비에트)의 성장,
국가에 대한 환상 타파,
국제주의의 조직화
로 요약된다. 이러한 과제들은 구체적 국면마다 새롭게 이해되고 갱신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속혁명론은 완결된 교리가 아니라 혁명적 정세에 개입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부록1]

혁명의 경로: 연속론과 단계론, 무엇이 다른가?

1. 혁명의 주도 계급 (누가 이끄는가?)

2단계 혁명론:부르주아지(자본가 계급)가 민주주의 단계를 주도해야 한다고 상정. 노동계급은 이들을 지원하는 보조적 역할에 머물기 쉬움.
연속혁명론:후발국 부르주아지는 무능하고 보수적이므로 노동계급이 주도해야 함. 노동자가 농민 등 천대받는 대중을 결집해 권력을 장악.


2. 혁명의 단계 (어떻게 진행되는가?)

2단계 혁명론 (분리): [1단계]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완수 → [일정한 시간 간격] → [2단계] 사회주의 혁명. 단계를 인위적으로 구분해 사회주의를 미래의 과제로 미룸.
연속혁명론 (연속):민주주의 과업 해결이 곧바로 사회주의적 변혁으로 이행됨. 시간적 단절 없이 하나의 흐름(연속) 속에서 과업을 결합.


3. 국가와 권력의 성격 (누가 주인인가?)

2단계 혁명론: 기존 국가 내에서 ‘정권 교체’나 헌정 개혁에 집중. 엘리트 정치인과의 협상을 통한 점진적 변화 추구.
연속혁명론: 기존 국가를 대체하는 아래로부터의 권력(소비에트 등) 창출. 생산 수단과 국가 권력의 근본적 주인 교체를 목표로 함.


4. 국제적 관점 (어디까지 확장되는가?)

2단계 혁명론: ‘일국사회주의’론 경향. 한 나라 안에서의 단계 완수를 우선시함.
연속혁명론: 국제주의가 생존 조건. 한 나라의 혁명은 세계 혁명의 연쇄 고리가 돼야 함.



[부록2]


FAQ: 연속혁명론의 오해와 진실
Q1. 연속혁명론은 ‘민주주의 단계’를 무시하고 무조건 사회주의로 가자는 주장인가요?
A: 전혀 아닙니다. 연속혁명론은 민주주의적 과제(표현의 자유, 토지 개혁, 민족 자결 등)가 대중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에너지임을 인정합니다. 다만, 이 과제를 부르주아지(자본가)에게 맡기면 결국 배신당하거나 중단될 것이므로, 노동계급이 주도권을 쥐고 이 과업을 완수하면서 동시에 사회주의적 조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Q2. ‘연속’이라는 말은 쉼 없이 24시간 내내 싸워야 한다는 뜻인가요?
A: 여기서 ‘연속’은 물리적 시간의 멈춤 없음을 뜻하기보다, 혁명의 논리적 연결성을 뜻합니다. 민주주의 투쟁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는 투쟁으로, 그리고 일국의 혁명이 국제적 확산으로 중단 없이 이어져야 한다는 구조적 연결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Q3. 혁명이 일어나면 자동으로 노동자 권력이 수립되는 ‘필연’인가요?
A: 본문에서도 강조했듯, 이는 자동 공식이 아닙니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과 조직된 힘이 부족하면 혁명은 ‘굴절’될 수 있습니다. 중국이나 쿠바의 사례처럼 엘리트 관료가 주도권을 쥐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혁명적 조직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중요합니다.

Q4. 서구 선진국에서도 연속혁명론이 유효한가요?
A: 연속혁명론은 원래 러시아 같은 후발국 분석에서 시작됐지만, 그 핵심 원리인 ‘불균등 결합 발전’과 ‘국제주의’는 오늘날 전 세계에 적용됩니다. 선진국이라 할지라도 경제 위기와 제국주의 전쟁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한 나라의 혁명이 국경을 넘어 연대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국제주의적 통찰은 서구에서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부록3]

1. 주요 인물 및 세력
레온 트로츠키 (Leon Trotsky):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이론가. 1905년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연속혁명론’을 정립했으며, 레닌과 함께 1917년 10월 혁명을 이끌었다.
모하메드 무르시 (Mohamed Morsi): 이집트 ‘무슬림형제단’ 소속의 첫 민선 대통령. 2012년 당선됐으나 대중의 기대를 저버린 정책으로 반발을 샀다.
압델 파타 엘시시 (Abdel Fattah el-Sisi): 현 이집트 대통령. 2013년 무르시 정부를 규탄하는 대중 시위를 틈타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했다.
후발 부르주아지: 연속혁명론에서는 후발국의 자본가 계급이 제국주의나 구 지배 세력과 결탁해 혁명적 과제를 완수할 의지가 없음을 강조한다.

2. 역사적 사건 및 기구
소비에트 (Soviet): 러시아어로 ‘평의회’를 뜻한다. 노동자, 병사 등이 혁명 과정에서 아래로부터 민주적으로 만든 대중 권력 기구다.
타마로드 (Tamarod): 아랍어로 ‘반란’을 뜻하며, 2013년 이집트 무르시 정부에 반대해 일어난 대중 운동이었다. 그러나 이 운동의 에너지가 엘시시의 군부 쿠데타에 이용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불균등 결합 발전: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균일하게 발전하지 않고(불균등), 선진적인 기술과 후진적인 사회 관계가 한 나라 안에 뒤섞여 나타나는(결합) 현상을 말한다.
3. 이론적 개념
2단계 혁명론: 혁명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와 ‘사회주의’ 단계로 엄격히 나누고, 첫 번째 단계가 충분히 성숙할 때까지 사회주의 혁명을 뒤로 미뤄야 한다는 이론. 주로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이 견지했다.
국가자본주의: 명목상으로는 사회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쥐지 못하고 국가 관료가 자본가 역할을 대행하며 노동계급을 착취하는 사회 체제를 일컫는다. (본문에서는 중국, 쿠바 등의 사례로 언급됨)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저자: 최일붕
원문@ https://ws.or.kr/article/38570


[첨평
1. 이렇게 제4인터의 전통적 뜨로쯔끼주의와 소위 신뜨로쯔끼주의의 결정적 차이는 잘 알려진 예의 ‘국가자본주의론‘ 외에도,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와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라는 문제의식에 의해 도달한 정치경제학적 Ideology 4분면에 대한 명확한 분별력이라 할 수 있고, 이 구도에 기반해 하위대중의 지적 해방을 통한 (완전한) 평등과 민주를 지향하므로 초-Elite주의 독재모델로 아주 전형적인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인 LENIN주의 Bolshevism을 계승하는 전통적 뜨로쯔끼주의에 적용될 수 있는 ˝그저 우리가 하면 다름 수준에 불과한 차이 뿐˝이라는 비판은 작동할 수 없게 됨.

2. 그런데 Maoism진영의 인민전쟁론이 기존 혁명론의 단발/단회적 사건성이 가질 수밖에 없는 결정적 한계들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기존의 혁명사학에서의 수정주의에 의한 장기간의 다양한 문제제기들도 함께 극복할 수 있(었)듯, 연속혁명론도 어쨌든 혁명론인 한에서는 이와 동일한 비판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며 이 또한 장기전쟁론 관점으로 전환되어야만 하므로 이때 ‘permanent‘는 (혁명의) 성공과 실패, 승리와 패배에 연연하지 않는 ‘노동계급 (대중)권력과 역량의 꾸준하고 일관된 집적 및 강화‘라는 목표로서 ‘영(구/연)속‘으로 번역(하는 것이 여전히 오히려 더 합리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임.
이는 끊임없는 피로로 해석되기 보다, 말했듯 만성적 장기대기 및 유예 상태나 모든 걸 건 단 한번의 도박적 승패에서 벗어나는 심리적 안정과 여유를 제공할 수도 있음.

3. 마지막으로 ‘사회주의‘라는 용어에 대하여 자신도 모르게 뇌 속에 축적된 잠재의식적, 무의식적 image 더미들 때문에 심한 거부감을 느낄지 모를 일부 독자들에 대하여 논의의 전면개방을 위해 강조할 점 한 가지는;
일단 이 용어와 이론은 인류(지성)사에 있어서 그간 수많은 논쟁들을 통해 벼려 온 가장 유력한 체계 중 하나로서 그 모든 해방과 혁명사상을 제유하는 대표명사로 사용되는 경향이 있을 뿐이며, 우리의 목표는 기득권 세력이 점령한 기존 지배체제를 변형시키고 대체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회이지 그 어떤 선입된 이론체계를 고집하지 않으므로 새롭고 신선한 그 어떤 상상력과 창의력으로 충만한 Idea들도 적극 환영하며 언제든 처음부터 다시 정립해나갈 자세가 되어 있으므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모든 편견과 선입관들은 가볍게 내려놓고 논의에 참여해도 될 것입니다.]


rhizome 2026-02-03 0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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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강연을 듣고,

수많은 대학생들과 함께 토론해볼 수 있습니다.


작년에도 그 결과 평균 97.8 %의 만족도를 기록 했습니다.
300명이 넘는 학생들이 함께 했으며
올해는 더 많은 학생들이 함께할
2026 새내기 교양대학에 대학생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일차
간호 / 국제:트럼프 / 문학 / 정치 / 예술

11. 간호
선배 간호사 ‘오프는 쉬는날’과의 만남
이나윤 크리에이터
안동과학대 간호학부 학사
영주적십자병원 5년 경력
코로나 19병동 근무 경력

개인 SNS 오프는 쉬는날 간호사 공감 콘텐츠 제작 인스타그램 2.6만 팔로워
구슬언니 간호사 토크쇼 고정 패널


12. US&국제:트럼프
트럼프는 왜 마두로를 납치했을까?

-동북아와 라틴아메리카정책으로 알아보는 트럼프 2.0

안병진교수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전] 스탠포드 대학 방문학자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 등 다수 저서 저술
SBS 미국 대선 특집 방송 패널, KBS ‘세계는 지금‘ 등 출연
다수 방송과 뉴욕타임즈 등 다양한 언론 매체 인용


📙13. 문학
갈등과 대립의 시대,
우리는 문학으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오창은교수
중앙대학교 교양대학 교수 / 대학원 문화연구학과 전임교수
-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당선(2002)
- 남북문학예술연구회 회장
- ‘기억과 전망’ 편집위원장
- (사)문화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
- 이문구 문학연구회 회장- 문체부 문학진흥정책위원회 위원


🎨14. 예술
‘나’와 사회를 연결짓기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들
권은비 예술감독


🗳15. 정치
정치는 어쩌다가 대화가 아닌 갈등이 되었을까?
-한국정치 현실 진단: 양극화를 중심으로

한성민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정치연구소 소장
한국정치학회 연구이사
경실련 정치개혁위원회 위원



2일차
경제 / 공학 / 국제 : UN / 기후 / 미디어 / 역사

📍21. 경제
대학생 금융투자, 어떻게 시작해야할까?

홍기훈교수
[현] 홍익대학교 경영대학 부교수
[현] 토스 인사이트 소장
[전] 한국은행 Money&Banking 미래포럼 자문위원
[성공투자를 위한 선한투자의 법칙], [버블, 새로운 부의 지도] 등 다수 저서


🦾22. 공학
공학기술의 현재와 미래, 나의 일자리는?

강정한 교수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23. 기후
기후위기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위협하고 있을까?

이용석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기후상처]] 공동저자
아주대학교 의학과 정신의학 전공
한국정신보건미술치료학회 교육이사
대한분석치료학회 학술이사
건국대학교, 차의과대학 미술치료학과 겸임교수
용인 정신보건센터장 역임


📚24. 역사
누가 역사를 이용하는가: 권력과 혐오의 역사왜곡

최성용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총무이사
성공회대학교 열림교양대학 강사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경향신문 오피니언 필자


*25. 국제:UN,
트럼프의 국제기구 줄탈퇴: 왜 귝제법과 국제기구는 강대국 앞에서 멈춰 서는가?



*26. 미디어 파트
뉴미디어 시대, 새로운 소통을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




📅 행사 일정

• 1일차: 2026년 2월 10일(화) 11:00 ~ 17:30
• 2일차: 2026년 2월 11일(수) 11:00 ~ 17:30

⏰시간표
11:00 - 11:40 / 입학식
11:40: - 13:00 / 점심식사

13:00 - 16:50 / 핵심교양
(*수강신청한 파트의 <강연/발제/토론> 프로그램 참여)

16:50 - 17:10 / 졸업식
17:30 - /뒤풀이이동


📍참여 방식
1. 참가자는 일자별로 본인이 듣고 싶은 주제 1가지를 선택합니다.
2. 행사 당일 한국외국어대학교 사이버관 대강당으로

집결하여 전체 행사 안내를 받습니다.
3. 점심 식사 후, 본인이 선택한 파트가 진행되는 강의실로

이동하여 파트별 프로그램을 수강합니다.
4. 강의실에서 졸업식에 참여하여 수료증을 수령합니다.
5. 뒤풀이까지 참여하면 완벽!


모집대상
-26학번 새내기 참가자 환영합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해보고 싶은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학번 무관★
-대학생활이 궁금한 청소년도 가능


(당일 행사 장소 대관, 식사 등 행사 준비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 일반참가비
1일 참여(1일차/2일차 무관) : 15,000원
양일 참여 : 23,000원

💰 제휴단체 참가비
*제휴단체 소속 혜택
1일 참여(1일차/2일차 무관) : 12,000원
양일 참여 : 20,000원


제휴단체 목록 (1월 21일 기준)
상명대학교 사범대학 학생회
동덕여자대학교 총학생회
한국외국어대학교 LT학부 학생회
한신대학교 총학생회
대학문화유니온 소속 동아리



🙋 참가자 혜택
- 참가자 전원 행사 자료집 제공
- 2026 새내기 교양대학(UFLA) 수료증 제공

*각 파트별로 제공됩니다.

신청: ~2월 7일@ https://event-us.kr/2026ufla/event/119193

‼️환불 규정‼️
2월 3일까지 취소: 전액 환불
2월 7일까지 취소: 반액 환불
2월 7일 이후: 환불 불가

행사 장소
한국외국어대학교 서울캠퍼스 사이버관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이문로 107

✨문의
- 2025 새내기 교양대학 (UFLA) 기획단 -
✨2026 새내기 교양대학 공식 SNS 계정
- 인스타: @2026_ufla (=https://www.instagram.com/2026_ufla)
또는 https://www.instagram.com/2026_ufla?igsh=N3EydW1jeTB3MTRk
또는 https://www.instagram.com/p/DTzUtcbERz1/






💬 주최 : 대학문화유니온 (@culture.of.univ)
대학가 공론장, 공동체 문화의 형성 및 확장을 목표로 모인 동아리연대체입니다.

대학 연합 국제정치·외교동아리 : ‘PAZ (빠쓰)’ @univ_paz
https://www.instagram.com/univ_paz/

대학생 경제전략 싱크탱크 ‘오코플로‘ @univ_economy
https://www.instagram.com/univ_economy/

대학생기후행동 @ecoaction20
https://www.instagram.com/ecoaction20/

평화나비 네트워크 (@peacenabi_network
https://www.instagram.com/peacenabi_network/

대학 연합 문학기행 동아리: ‘TRACE(트레이스)‘ @trace_booktravel
(https://www.instagram.com/trace_booktravel/

대학 연합 미디어비평동아리 호외@howoe_media
https://www.instagram.com/howoe_media/

간호학생 네트워크 VITAL(바이탈) @snsetwork_vital
https://www.instagram.com/snnetwork_vital/



* 이 행사는 대학연합동아리 연대체에서 신학년 홍보 및 신입회원 모집을 주목적으로 기획한 행사이므로 평소의 자기 관심주제나 진로에 가장 잘 맞는 과목 카테고리를 찾아 접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행사를 계기로 (학교 밖) 연합동아리 활동에 인맥을 트고, 함께 참여할 좋은 기회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rhizome 2026-02-06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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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2-06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2026체제전환운동포럼 (참가신청) 안내 >
되돌아가지 않고, 새롭게! 2026체제전환운동포럼👻



⛄오는 2월 5~7일, 2026 체제전환운동포럼이 열립니다!
서로 다른 운동의 통찰과 도전을 공동의 전망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올해에도 체제전환운동포럼이 열립니다. 2월5~7일 사흘 간 서울 대방동에서 치열한 토론과 뜨거운 상상을 모으고 나눕시다! ☀️



갈수록 정세는 혼돈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학살이 점증하고 있고, 자본과 정권은 불평등을 감축하는 노력 대신, 오히려 이를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내닫고 있습니다. 🐤

서로 다른 운동의 통찰과 도전을 공동의 전망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올해에도 체제전환운동포럼이 열립니다. 2월5~7일 사흘 간 서울 대방동에서 치열한 토론과 뜨거운 상상을 모으고 나눕시다! ☀️

👻극우 세력화에 맞선 대안, 부채와 민중의 권리, 지역소멸 담론에 맞선 운동, 진보정치, 인공지능 담론 비판 등 지금 시기 사회운동에 필요한 쟁점들을 다루고, 사회공공성과 탈시설 민주주의, 학생운동, 팔레스타인 연대, 가짜3.3% 계약 노동자들의 권리, 농생태 체제전환 등 6개의 자유세션이 열립니다. 또, 종합세션에서의 정세분석과 전망을 통해 사회운동 공동의 과제를 만들고자 합니다. ↗️



행사 안내
📆일시: 2026년 2월 5일(목)~7일(토), 3일간

🚩장소: 서울가족플라자 다목적홀 (지하철 1호선 대방역 인근)

🌞대상: 모두의 삶을 말하는 체제전환운동의 가능성이 궁금한 누구나

🎪 세션별 안내

‘260205목
13:00 참가접수
14:00 개막식

15:10~17:20 기획1. 인공지능에 맞서 저항을 연결하는 디지털저항운동
사회: 희우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발표1. 빅테크 자본의 전 지구적 시장 독점과 수탈 /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발표2. 인공지능 대세론 뒤의 거짓 신화 / 고아침 (AI 윤리 레터)
발표3.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의 제국주의적 자원 수탈 / 이현담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발표4. 인공지능과 일터의 변화, 노동자운동의 대응 / 김하늬 (전 민주노총 서울본부 정책국장)
발표5. 인공지능 민중 통제권을 위한 시민사회 개입 전략 / 장여경 (정보인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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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20:50 기획2. 극우의 부상, 사회운동의 과제
사회. 민희 (플랫폼C)
발표1. 페미니즘을 적으로 만드는 정치: 극우의 반페미니즘 담론 활용 / 수수 (한국성폭력상담소)
발표2. 서구극우 성장조건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 역차별정치와 시민사회의 위기 / 온(금속노조 노동연구원)
발표3. 극우 성장에 맞서는 민주주의의 전제: 차별금지법 제정을 중심으로 / 류민희 (희망을만드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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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6금

10:00~11:40 자유1. 현장과 세상을 함께 바꾸는 사회공공성 운동
장소: 서울가족플라자 다목적홀
사회: 공성식(공공운수현장실천 집행위원)
패널:
의료, 교통, 연금, 학교, 에너지부문 노동자
사회운동단체 활동가

10:00~11:40 자유2. 탈시설 민주주의 : 권리를 가질 권리, 출현할 권리, 공존할 권리
장소: 서울여성프라자 시청각실
사회: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발제: 탈가족, 탈시설, 탈노숙 그리고… 요양원이 아닌 지역에서 활동하다 죽고 싶어
/김동림 (탈시설장애인당,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토론:
유진아 가족구성권연구소·장애여성공감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
김연주 이주구금대응네트워크
이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권영실 재단법인 동천
◇△○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온
바다숲 핫핑크돌핀스
안형진 홈리스행동

10:00~11:40 자유3. 그럼에도 나의 현장, 대학에서 운동하기!
장소: 아트컬리지2
사회: 권나민 한예종 돌곶이포럼
발표1. 동덕여대 공학전환 반대와 학내민주화 투쟁 / 동덕여대 무단 공학전환에 저항하는 재학생
발표2. 학내 노동자와 연대하는 학생들 / 이재현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발표3. 캠퍼스를 교차하는 작당모의 학생활동가들의 다양한 실천 /하지원@숭실대 사회문제공부 실천소모임 틔움
발표4. 다른 내일을 위한 대학 정세 전망과 실천 방향 / 세윤 플랫폼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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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14:40 자유4. 팔레스타인은 해방의 리트머스다 · 제국을 부수는 저항과 연대
장소: 서울가족플라자 다목적홀
사회: 지혜 (플랫폼C)
발제: 가자는 미래의 리허설이다 / 뎡야핑 팔레스타인평화연대
토론:
기후정의와 팔레스타인 해방 / 은혜 기후정의동맹
장애인과 팔레스타인, 우리의 생존이 체제의 전환이다 / 이형숙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스라엘의 핑크워싱에 맞선 퀴어연대 / 보람 퀴어팔레스타인연대 QK48
자본의 봉쇄를 부수는 가자항해 / 해초 TMTG가자로향하는천개의매들린호 한국지부
무덤 위에서 연구하지 말라: 이스라엘 학술 보이콧 운동 / 이수민 공공운수노조 대학원생노조지부 연세대분회(준)

13:00~14:40 자유5. 자본의 수탈에 맞서 생명의 저항으로, 농생태 체제전환의 시작
장소: 서울여성프라자 시청각실
사회: 선지현 (삶과노동을잇는배움터 이짓)
발표1. 후기 자본주의적 농수탈 체제와 체제전환의 관점으로서의 농생태 / 채효정 (자치와자급)
발표2. 수탈의 현장과 저항하는 농민들: 현장 사례를 중심으로 / 박누리 (월간옥이네 전 편집장)
토론:
문영규 (항꾸네협동조합)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13:00~14:40 자유6. 3.3% 노동자의 권리! 일하는사람기본법 vs. 근로기준법
장소: 아트컬리지2
사회: 정진우 (권리찾기유니온)
발제: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일하는사람기본법안의 문제와 과제 /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토론:
김주환 (비정규직이제그만공동투쟁)
최우영 (한국마루노동조합)
김인식 (사무금융서비스노조 삼성화재애니카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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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17:20 기획3. 부채와 민중의 권리: 저당잡힌 집, 시간, 삶을 되찾자
사회: 서창호, 빈곤과 차별에 저항하는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
발제1. 금융과 부채는 어떻게 빈곤과 불평등을 확대하나?_김윤영, 빈곤사회연대 활동가
발제2.‘빚 권하는 사회’가 만든 전세사기·깡통전세 이후 집과 권리를 다시 상상하기_서동규,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발제3. 여성부채, 여성의 시간을 저당잡고 삶을 수탈하는 금융자본_혜진,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
발제4. 자본을 공유지로 바꾸는 탈자본 금융운동_김지음, 빈고 책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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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0~20:50 기획4. 모든 지역은 최전선이다, 자본에 맞서는 지역정의!
사회: 효성 (춘천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 조직위원)
발제: 자본의 공간전략에 ‘지역정의‘로 맞서자 / 남영란 (노동해방 마중)
토론:
특별자치도 특별법, 지방자치라는 이름의 규제프리존 / 채민 (아래로부터전북노동연대)
송전탑, 지역의 희생 위에 세워지는 자본의 에너지식민주의 / 수노기 (탄소잡는채식생활네트워크)
이주민을 부품으로 쓰는 자본, 지역공동체를 어떻게 무너뜨리나 / 손상용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
인구소멸 프레임에 갇힌 청년과 해체된 공공성 / 조영은 (삶과노동을잇는배움터 이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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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7토

10:00~12:10 기획5. 체제전환운동의 자리 찾기와 진보정치의 길
사회 : 권수정 (민주노총 부위원장)
발제 : 좌파의 자리 찾기와 진보정치의 존재 이유(가안) / 서영표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토론 :
노동당 정상천 사무총장
녹색당 이상현 공동대표
정의당 나경채 기획실장
노동자가여는평등의길 장석원 활동가
플랫폼C 홍명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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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0~16:30 종합. 2026년 정세전망과 체제전환운동의 과제
사회 : 나영 (성적권리와재생산정의를위한센터 셰어)
발제 : 성장지상주의에 맞서 평등을 이룰 사회적 동맹을 만들자 / 미류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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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신청
👉 https://bit.ly/2026forum

‍📣참가비 안내🎀
참가비 : 하루권 2만원 | 이틀권 4만원 | 전일권 5만원 | 청소년 자율납부
참가 일수별로 참가비가 다르며, 모든 참가비에는 ‘자료집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포럼 신청 이후 환불은 어렵습니다. 체제전환운동을 후원하는 마음으로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입금계좌 : 기업은행 048-159061-04-013 체제전환운동


문의 💬 체제전환운동 조직위원회
홈페이지 | https://www.gosystemchange.kr/product/apply-for-2026forum
이메일 | go.systemchange@gmail.com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gosystem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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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2-10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문송이들 짓거리란 게...


애초에 독자적인 공적 프로젝트 같은 ˝할 일˝이란 게 전혀 없는 데다

기본적으로 그 어떤 전문성 다운 전문성이나 지식이랄 만한 것도 전혀 없이
끊임없이 저 하나만 핏발 선 눈으로 들여다 보면서,
그 어떤 근거도 없는 본인들의 똥촉 하나에만 기댄 채 온갖 상상력으로

악의에 찬 인간들은 어떻게든 깎아내려 보겠다고 끊임없는 패악질을 일삼거나


그나마 선의를 가진 분들도 이리저리 저를 조종해서만 문제를 해결해 보려 애를 쓰시는데...
˝무한반복의 쳇바퀴˝란 게 도대체 무슨 뜻이었는지를 이해해 보려 노력도 좀 하시고
제발 본인 스스로 직접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십니다.



저는 다만 매순간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고,
그 해결을 위한 가장 적확한 방법이 무엇이며,
그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그저 묵묵히 수행해 나가는 것 뿐이고...

그 와중에 제발 쓸데없는 잡소리들 좀 안 걸어줬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식하고 용감하기까지 해 경고를 무시한 채 계속 병신짓을 일삼는 인간 이하의 것들은 반드시!!! 조만간 법적 응징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문송이‘란, 다른 그 어떤 분야의 종사자와 출연진들, 특히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할 말과 들을 말들이 있어서 나오는 각 분야 전문가들은 결코 하지 않는 추하고 사악한 비방과 모함 짓거리를 유독 혼자만 지속적으로 해대고 있는 저열한 분야 관련자들만을 일컫는 용어이므로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rhizome 2026-02-10 0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잇, 깜딱이얏!!!

정말 목숨 걸고 맹세컨대 그 어떤 사전 참고자료도 없이 그야말로 완전히 독자적 독립사고로 전개한 논리들이었는데...
뒤늦게 여기저기 자료를 좀 뒤져보니 정말로 정확히 ˝세계 최고 수준의 가장 난해하고 지적인 최첨단 논의 주제˝였고, 알고보니 저도 모르게 ZIZEK의 정곡을 정확히 논파하고 있었던 거군효ㅎㄷㄷㄷ...


ZIZEK의 근년작들인《Less Than Nothing》과《Sex and the Failed Absolute》에서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양자역학적 HEGEL주의[Quantum Hegelianism]를 전개하면서 기존의 SPINOZA적 실체론을 ‘NEWTON적 고전 물리학의 형이상학적 잔재‘로 격하시키며 파괴적인 재해석을 시도했다고 하는데, 국내에서 ZIZEK의 인기가 시들한지라 전혀 검토를 못한 채로 정면격파해버린 것이었어요ㅠㅠ.



일단 만의 하나라도 혹시 있을지 모를 망각에 대비한 Self-memorandum의 용도로 시간관계 상 간단히만 요약하면,

1. Dichoctomy
ZIZEK은 그간 SPINOZA주의자들의 HEGEL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맞서 HEGEL주의 철학을 복권시킨 공로에도 불구하고, 정반대로 SPINOZA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전혀 극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배타적 양자택일의 허구적 2분법이라는 사고방식의 덫과 함정에서 전혀 빠져나오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치명적 한계점임.



2. 다음의 결정적 한계로 ZIZEK은 양자물리에 대한 다소 흔해 빠진 통상적 오독을 통해 Jim_BAGGOT과 완전히 동일한 구도설정에 빠져버린 후, 이 구도에 철학을 결합시키는 작업과정에서 BAGGOT이 Kopenhagen 학파를 관념론 진영에, EINSTEIN~BOHM에 이르는 숨은변수론 전통을 유물변증법 진영에 결합시켜 연전연패로 해석하면서 우울증에 빠져든 데 반해 ZIZEK은 숨은변수론 진영을 SPINOZA주의에, Niels_BOHR와 HEISENBERG 등 Kopenhagen 학파를 HEGEL주의에 결합시킴으로써 승리감에 도취해 가는 듯 보이는데, 말했듯 이는 명백히 현대양자물리학(사)에 대한 열등한 오독에 기반한 귀결일 뿐임.



3. ZIZEK은 양자물리(논쟁)에( 대한 독해에 있어)서 특히 ‘관측‘의 문제를 ‘주체의 개입‘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모자라 ˝양자역학은 ‘관측자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재‘라는 개념 자체가 불가능함을 보여준다˝는 둥 주관적 관념론이 폭발(적_정)점에 이르는 철지난 오독을 그대로 답습함으로써 KANT가 본격개시한 ‘주체지향철학‘으로의 내향적 전회 계보를 따르는 마지막 발악 비슷한 몸짓을 하고 있는 것임.
이에 반해, SPINOZA주의 전통의 DELEUZE 계보로부터 발화하는 ‘신유물론‘들 공통의 ‘객체지향철학‘으로의 외향적 대전회가 가지는 거대한 의미와 시대적 원인 같은 것들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음.
때문에 이러한 양자물리와 철학사에 대한 오해로 인해 ZIZEK의 소위 ˝Magnum Opus˝로 칭해지는 대작들 중 후기작은 시간이 지날수록 모종의 수치로 남을 가능성이 높음.



4. 인과성의 문제
이렇게 이중 Slits 실험이나 John_WHEELER의 지연선택실험[Delayed-Choice Experiment] 등 유명한 양자물리의 역설적 실험들을 모두 극단적 주관주의 관념론에 입각해 오해(석)함으로써,
인과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후기 ZIZEK은 현재의 관측이 과거의 광자가 입자였는지 파동이었는지를 사후적으로(retroactively) 결정하기 때문에 SPINOZA의 선형적 시간성 인과론[A→B]을 가장 강력하게 타격하는 지점이라면서 관측 등을 통해 결과가 결정/인식된 후에야 비로소 원인이 소급 규정된다는 A←B 도식의 (LACAN 임상분석으로부터 발전한) 양자(역학)적 HEGEL주의의 (사후적) 소급 인과성(Retroactive Causality)으로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현대 SPINOZA주의에선 인과성 문제 하나만 해도 전통적 선형적 인과성 외에 구조적 인과성, 표현적 인과성 등을 더하여 다층구조로 설명해 온 지도 ALTHUSSER 이래 이미 반세기가 되었으며, ZIZEK의 양자물리 오독과 임상분석에 의한 문제제기를 아무리 긍정적으로 도입하더라도 기존 인과론이 붕괴하거나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HEGEL의 정신현상학을 이미 반영했던 ‘표현적 인과론‘에서 [(정신)현상적 (후술/(재)편집) 인과론 등으로] 보강/확장되는 방식으로 다층구조가 덧붙여질 뿐인 데다,
이러한 사실들의 무지에 더하여, 애초에 ZIZEK은 애초에 (임상적) 정신현상으로서의 정보 (재)편집에 의한 후술인과를 실재계의 물질적 인과로까지 근거와 분별력 없이 무작정 확장연상해버린 근원적 논리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임.



5. 주체(성)의 문제
이러한 오독된 인과론의 진정한 철학적 함의는 ˝주체는 실체의 결과물이지만, 그 주체가 출현함으로써 실체의 과거가 다시 쓰여진다˝거나 ˝실체가 주체로 나타나면서 동시에 그 자체에 대한 (주관적) 불일치를 전제로 재구성한다˝라는 ZIZEK판 HEGEL의 ‘반성 규정‘으로서, 이것이 SPINOZA의 단선적 결정론이 포착하지 못하는 ‘주체의 존재론적 위상‘이라고 주장되나, 오히려 HEGEL과 LACAN, 그리고 이들을 종합계승한 ZIZEK 모두에서의 주체 개념(들)은 모두 너무나 인간종특적이고 인간중심(주의)적인 자의식 과잉의 주체철학의 소산일 뿐 아니라 모두 관념(론)적이라는 결정적 한계를 안고 있는 데다, 여기에 양자물리에 대한 오독까지 더해져 한껏 과잉된 후기의 ZIZEK은 인간만이 주체로서 세계의 중심에서 세계의 모든 것들과 존재 여부 그 자체까지를 ‘관측‘을 통해 비로소 결정지어주며 사후적으로 인과성까지 소급해 재구성해주고, 그 각각에 대한 모든 의미들을 부여해준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식의 극단적 주관주의 세계관으로 경사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

그러므로 ˝도대체 ‘주체‘(성이)란 과연 무엇이고. 어떤 원리로 ‘발생‘하는가?˝ 라는 새로운 문제설정을 통해 HEGEL의 주체철학에서, 특히 SPINOZA에 대한 핵심비판점[이자 이를 (오)계승한 ZIZEK의 과잉비판]으로서의 ‘주체‘의 문제는, 기존의 이성[Cogito]이나 대자[對自]적 자기부정으로서의 반성의식, 의지, 욕망 등 전통적 설명방식을 넘어

첫째, ‘(일원론적) 객체들의 (일의성의) 바다‘로서의 우주론적 구도에서,
둘째, A.I. 등 새로운 기계적 주체성의 본격적 대량출현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역사적 국면에서,
전면적으로 재(사)고되지 않으면 안 됨.

치열하고 살벌한 살육전쟁을 벌이고 있는 개미떼들이나 벌떼들의 식민지 쟁탈전을 볼 때 과연 누가 주체이고, 누가 객체인지를 어떻게 쉽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현재시점에서 이 ‘주체(성)‘의 문제에 대한 대략적 대안 중 하나는, 그것이 선천/선험적으로 당연하게 주어지는 양태나 속성(의 이름)이 아니라, 본질에 있어 ‘Cybernetics적 제어[Control]‘의 문제일 뿐이며 제어가능한 (범위의) 신경망 Network에 (자신이) 부여하는 환상의 정체성에 가깝고, 결국 다종다양한 무수 연속체들( 간)의 권력(투쟁)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임.



6. 불가지론; 인식의 불완전성
이러한 오류의 궁극적 원인은 ZIZEK의 철학적 기반, 특히 그의 HEGEL주의가 관념론에 불과하고 이것이 LACAN주의 정신분석과 통합된다하더라도 결국은 불교적 진리관에 완전히 포섭된 KANT(주의)적 불가지론으로 전락할 뿐이라는 사실임.
예를 들어 ZIZIEK에게 있어 HEGEL의 ‘절대지[Absolute Knowing]‘는 모든 것을 아는 상태가 아니라, ˝알려져야 할 숨겨진 진리가 사실은 없다˝는 것, 즉 실재 자체가 ‘구멍(Gap)‘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상태이며, 이것이 바로 ZIZEK이 말하는 ‘실패한 절대자(Failed Absolute)‘인데, 결국 이렇게 그의 사상적 본질이 ‘관념론적 불가지론‘이므로 필연적으로 Kopenhagen 학파, 특히 그 중에서도 가장 관념론적 해석에 높은 친연성을 가지게 되고, 이때 가장 결여된 것은 바로 유물론적 요소 그 자체일 수밖에 없으며, 이는 다시 그간 BADIOU=ZIZEK 진영의 고질병으로 누차 지적되어 온 정치경제학적 사유의 부재라는 문제를 유발하는 근원으로서 영원회귀하게 되는 것임.



7. 인식의 불완전성을 넘어선 실재(계) 자체의 불완전성 주장: ‘불완전‘ 비결정성 대 ‘불확정‘ 비결정성
ZIZEK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모순들이 단지 인간주체의 선험적 인식장치가 가지는 불완전성 때문이 아니라 (마치) 게으른 신이 만들다 만듯한 실재(계) 자체의 불완전성 때문에 발생한다는 증명되지 않은 주장으로 넘어가고 있으나,
이에 대하여는 실재계 자체의 모순과 불일치를 인정하는 진영과 그 충만한 무모순적 일관성을 주장하는 진영으로 나뉘는데, 모순적 실재계 진영 내에서도 ZIZEK의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서의 찢어진 구멍과 공백에 의한 과소결정적 불완전성 주장과 과잉결정적 초완전성에 의한 불확정성 주장으로 나뉠 수 있음.



8. ZIZEK은 그의 학문적 생애 전반기엔 각종 Postmodern 분파들의 본질을 현대판 Sophist로 규정하면서 스스로를 이에 맞서는 Sokrato=Platon으로 제시하며 등장하였으나 결국 그 스스로가 ZIZEK판 postmodernism의 일종으로 귀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음.

이는 또한 (국내출판계가 국제표준과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는 깊은 산 작은 연못 Galapagos에 불과함을 강력히 시사하듯) 여전히 하루가 멀다하고 숨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ZIZEK의 외서신간들 중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될 최신의 최신작 중 (양자물리에 대한 전작들에서의 오류에 대한 일말의 변명이나 정정도 담겨 있지 않을까 기대되는)『Quantum History : A New Materialist Philosophy』(‘25.11)도 결국 스스로를 ‘신유물론‘들의 일종[‘A New Materialist Philosophy‘]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과도 깊은 연관이 있음.



9. 이상의 고찰들을 종합하면, 매우 거시적 사상사 관점에서 봤을 때 SPINOZA주의 일(분)파로서의 (독일관념론 전통에 있는) HEGEL(과 LACAN)을 계승하는 (BADIOU=)ZIZEK의 철학은 결국 범신론=구조주의의 결정론적 구속을 벗어나고자 애쓰는 넓은 강폭의 탈구조주의 중 한 흐름으로 포섭/귀결되어가고 있음.



10. 이러한 치명적 고질병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운동론적 관념철학으로서의 HEGEL주의 변증법과 다양체-관계(론)적 존재론 철학으로서의 SPINOZA주의 체계를 정교하게 상보적으로 종합시키지 않으면 안되며 이렇게 다시 1번의 문제로 회귀하게 됨.



11. ‘다양체‘ 존재론을 구성/구현하는 현재까지 확인된 2대 방법론은 (위상학적)(변형) Networking과 (동일공간 다른 차원 간) 상호사영임.
여기서 동일공간 다른 차원이란 마치 평행우주론처럼 유사한 상호 별세계란 뜻이 아니고, 동일공간에 공존하지만 상위차원에 걸쳐있는 대상의 암흑면과 속성들은 3차원공간에만 특화된 주체의 감각 및 인식장치들로는 파악할 수 없는 공존관계라는 뜻임. 따라서 양자중력장론들이 전제하듯 최소단위 극소공간에만 고차원이 분포할 경우 이러한 미시-거시공간 간에 완전히 다른 속성들이 출현하고 있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효율적 방법이 될 수 있는 것임.



12. Kopenhagen 학파가 주도해 온 양자물리 표준이론이 아주 전형적인 (수리)현상학이고, EINSTEIN 상대성이론의 철학적 토대가 meta-현상학(적 구조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이로부터 표준이론의 좌표계(/장)-종속성과, 상대성이론의 사고방식 및 철학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양자중력장론 제-진영의 좌표계-초월/독립성이라는 차이가 발생하게 되는 것임.
그런데 이는 사실 겉보기보다 표준이론( 진영)에 있어 매우 결정적인 문제이자 한계로 아직까지도 은연 중에 일종의 고전역학적 고질병인 ‘절대좌표계‘만을 전제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며 이는 말하자면 ‘절대성 양자역학‘ 상태로 NEWTON의 절대성 고전역학이 EINSTEIN의 상대성 중력학으로 전복/전환되었듯 표준이론의 절대성 양자역학도 상대성 양자역학인 양자중력장론 체계로 일대 전복/전환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 운명을 앞두고 있는 것임.



13.










[초고등록 ‘260127]
[작성 중]




















rhizome 2026-02-13 0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근 <주체와 권력Le Sujet et Le Pouvoir; The Subject and Power>라는 제목으로 묶인 FOUCAULT의 ‘중요한‘ 소고 두 편[ 문헌학상 정확히는 원문직역 개역본으로 추정]이 올라왔던데...



일감[一感]은 ((특히 적어도 1980년대 초반 당시의 ‘중기말-‘)) FOUCAULT에게 있어 최대의 유일관심사는 ‘개인주체의 무제한적 절대자유에(만) 의거한 완전히 자발적인 자기 자신되기‘ 였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여전히 아주 전형적이고 전형적인 (장기)20세기 후반의 3세대적 문제설정과 가치관, 그 중에서도 특히 개인(주의)적 자유지상주의 anarchism에 가깝고, 따라서 이때의 치명적 최대약점은 ‘‘연대‘와 협동, 희생적 기여를 통한 공동체 및 세계 전체의 거시적 문제해결‘이라는 가치의 전면기각으로, 사회와 국가 등 각종 ‘공통‘체들과 관련 있는 모든 것들은 다 회피되고 해체되지 않으면 안 될 악으로서의 억압(적 지배(를 위한 작동))기제로만 처리되었다는 점이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FOUCAULT의 학문적 및 사회정치적 생애사는 놀라운 구조주의적 학술사상사 연구체계를 정립한 전기와 사회정치운동 및 관련 사상에 집중한 중기, 그리고 개인적 주체 수양 및 자기돌봄으로 전향한 후기로 나눌 수 있는데, 전기와 중기, 특히 중기 운동기는 억압가설에 기초한 anarchism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후기로 이행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시대에 대한 전면적 반성과 비판으로서 복지가설로 이행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 소고들은 중기 말에 작성된 것으로 사상적으로는 여전히 전형적인 억압가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면서도 주요관심사는 완전히 개인으로 전환함으로써 이행기의 기묘한 절충적 종합으로서 반국가(/사회)적인 ‘개인‘ 자유지상주의 anarchism 상태를 이루었던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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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있는 분들의 심층연구를 위해 일단 서지정보를 덧붙여 봅니다.


著書Dreyfus (H.) et Rabinow (P.), 『Michel Foucault : Beyond Structuralism and Hermeneutic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pp. 208-226=후기
>국역: 서우석‘1989『미셸 푸코: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서』, 나남신서268.

=原文: FOUCAULT,Michel미셸_푸코<Le Sujet et Le Pouvoir)>[1]@Dits et Écrits, t.4: 1980-1988, texte n˚306, éd. Daniel Defert et François Ewald, avec collab. Jacques Lagrange, Paris: Gallimard, 1994, pp. 222~243;
→영역: Durand-Bogaert,F.<The Subject and Power>@Critical Inquir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Vol. 8, No. 4(Summer, 1982), pp. 777-795;


*프랑스어본 서지:
« Le sujet et le pouvoir » ; trad. F. Durand-Bogaert, @ Dreyfus (H.) et Rabinow (P.), 『Michel Foucault : Beyond Structuralism and Hermeneutics』,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 pp. 208-226.

*영문본 상세서지:
이 글은 휴버트 드라이퍼스(Hubert L. Dreyfus)와 폴 래비노우(Paul Rabinow)의『Michel Foucault: Beyond Structuralism and Hermeneutics』의 후기로 미셸 푸코에 의해 쓰였으며, University of Chicago Press의 편집으로 재출간되었다.
A. “Why Study Power? The Question of the Subject”는 푸코가 직접 영어로 쓴 것이며,
B. “How Is Power Exercised?”는 〔푸코가 애초〕 프랑스어로 쓴 것을 레슬리 소여(Leslie Sawyer)가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개정] 국역본 상세서지: 문헌학 상 서우석 국역본이 초역이고, 이번에 올라온 건 후기문의 오규진 개역본에 해당함.

본 국역의 전반부(A. Why Study Power? The Question of the Subject)는 푸코가 직접 쓴 영문본을,
후반부(B. How Is Power Exercised?)는 프랑스어본을 대본으로 삼았다.

정황으로 볼 때 전체 영문본 중 후반부는 푸코가 프랑스어로 쓴 글을 레슬리 소여(Leslie Sawyer)가 영어로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아쉽게도 레슬리 소여의 영어 번역은 오역은 물론 누락된 부분까지 있는 번역이어서 학술적으로 참조하기 어려웠다. 이에 전반부를 번역하면서는 영문본을 대본으로 삼고 프랑스어본을 일부 참조했으며, 후반부를 번역하면서는 프랑스어본을 대본으로 삼고 영문본을 일부 참조했다. 단, 상술한 문제로 인해 영문본에서는 극히 일부분만을 참조했다. 영문본과 프랑스어본의 문헌 정보는 아래와 같다.
Michel Foucault, “The Subject and Power”, Critical Inquir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Vol. 8, No. 4(Summer, 1982), pp. 777-795.
Michel Foucault, « Le sujet et le pouvoir » @『Dits et Écrits, t.4: 1980-1988』texte n˚306, éd. Daniel Defert et François Ewald, avec collab. Jacques Lagrange, Paris: Gallimard, 1994, pp. 222~243.



* 후기문 개역자 해설

『주체의 해석학』과 『자기의 통치와 타자의 통치』강의를 하게 되는 1982년, 푸코는 『미셸 푸코: 구조주의와 해석학을 넘어서』의 후기로 본 논문을 싣는다. 본 논문에서 푸코는 자신의 권력론이 어떤 점에서 주체에 대한 논의가 되는지 설명한다. 특히 전반부는 푸코가 직접 영어로 작성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어에 비해 더 간결한 문장으로 서술되어, 독자의 이해를 수월하게 한다. 또 후반부에서 푸코는 당시까지 푸코 권력론에 대해 제기되었던 여러 질문에 종합적으로 답하며 자신의 권력론을 정리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주체와 권력의 관계에 대한 푸코의 사유를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글이라 하겠다.


전반부에서 푸코는 합리성과 권력의 상호 관계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한다. 어떤 구체적인 특정 영역의 ‘합리성’을 합리적인 것으로 취급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권력이다. 물론 이 권력은 억압적인 도구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개인에게 진리 법칙을 부과하는’ 테크닉으로서의 권력이다. 구체적인 합리성에 개별 주체가 포섭된 채 있을 수 있도록 만드는 테크닉이 곧 권력이며, 그 대표적 사례가 ‘규율 권력’ 및 ‘사목 권력’인 것이다(다만 이 글에 규율 권력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합리성 안에 있는 나는 안온하지만 무비판적이다. 이것을 일깨우는 것이 바로 ‘계몽’이다. ‘우리’와 ‘우리의 현재’에 대한 분석인 칸트의 계몽은, 푸코에서 우리 자신의 역사적 존재 조건에 대한 비판으로 나타난다.


후반부에서 푸코는 자신의 권력론을 정리하며 그 방법론에 해당하는 것을 제시한다. 그는 인과적 메커니즘이 아니라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요소들의 공변’을 확인할 것, 권력 관계를 ‘행위와 그 효과’에서 찾을 것, 권력 관계를 분석할 때 밝혀야 할 구체적인 여러 지점이 있다는 것, 권력 관계를 서로 구분되는 다양한 전략 관계로 이해할 것을 각 주제에 따라 상술한다.


본 논문은 푸코의 권력론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푸코의 권력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진 사람에도, 푸코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도 모두 참조할 수 있는 핵심 논문 중 하나이다. 이 번역이 많은 분들에게 의미 있는 번역이 되기를 바란다.



*개역문 일러두기
〔 〕 : 본문 내에 역자가 개입한 부분.
볼드체 : 원문에서 이탤릭체로 강조된 경우.
plain roman english : 번역 과정에서 영어 단어를 병기한 경우.
italic french and german : 번역 과정에서 프랑스어 및 독일어 단어를 병기한 경우.
‘계몽‘ : 굵은 글씨로 강조된 계몽은 독일어 Aufklärung의 번역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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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2-27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기술혁명의 근원적 동기는 언제나 기술구매자로서의 개별기업들에
노동력 대체를 통한 임금삭감 및 생산비용절감
→ 이윤률 극대화 → ˝업계˝경쟁력 강화 및 독점화
라는 절대목표를 위한 방법과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므로,

사회전체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이것이 몰고 올 대량실업과 유효수요감소에 의한 대공황 문제는 절대 자동적으로는 회피 또는 해결될 수 없는 필연입니다.


더구나 역사적 실재에서도 제1, 2차 대전기의 경제사에 대한 잘 알려진 Marxist Consensus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체제 내의 모든 주요국가들이 Keynesian, 사민주의, 사회주의, Fascism 등등 국가(독점)자본주의 체제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New Deal 정책 등 그 어떤 국가개입도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엔 마지막 남겨진 유일한 해결책으로 세계대전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입니다.





[초고등록 ‘260209]

이는 최근 국제경제상황과 관련 새 연준의장 선임배경에 대한 Comment로 작성되었음.
이후 오탈자 수정.












rhizome 2026-02-10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노동자투쟁} 부산 지지모임 소개


노동자투쟁 부산 지지모임은 노동자해방을 노동자계급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관점에 동의하는 청년들이 운영하는 모임입니다. 맑스주의 학습토론, 원전읽기 모임, 근대문학 읽기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이 모임에서 저희는 주변 청년 및 노동자들과 대화하고 활동을 설득하기 위한 목적으로 현장신문 형태의 정치신문을 월간으로 만들어 SNS와 커뮤니티에 배포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평가, 토론 제안을 환영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아래 SNS, 이메일 등을 통해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매월 신간호를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월간 <노동자투쟁> 부산 지지모임 준비7호 (2026년 1월 29일)

1면 사설
■ 코스피 5000, 노동자의 삶은 나아졌나?

2면
■ 코레일네트웍스·고객센터지부의 승리, 노동자의 힘!
■ 노란봉투법 무력화 시도, 투쟁으로 분쇄하자
■ 이란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 우리와 같은 민중이다!
■ 베네수엘라 침공, 제국주의 앞에 국제법은 허상
■ 미국 ICE의 거듭된 살인, 그리고 거대한 시위

이번 기사들에 대해 대화를 나눠보시고 싶으신 분들께서는 개인 메세지 혹은 이메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 인스타그램·트위터: @wfbs1917
■ 이메일: wfbs1917@gmail.com
■ 홈페이지: wf1917.com
■ 텔레그램: 노동자투쟁 신문 https://t.me/WorkersFight





⭐ 노동자투쟁 부산 지지모임 ‘25-‘26 겨울 학습 프로그램 <학습으로 무장하라!>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노동자, 청년, 학생 여러분을 학습 모임에 초대합니다!

계엄 저지 이후 1년이 지났습니다. ‘봄‘이 왔다지만, 자본가의 탐욕 속에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매일같이 사망하고 있으며 청년실업은 더욱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진정한 봄, 즉 착취와 억압 없는 세상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우선, 오늘날 벌어지는 세계적 차원의 사건들을 올바른 관점에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올겨울, 이러한 관점으로 함께 학습하고 토론해봅시다.

■ 학습·토론 프로그램 (함께 텍스트를 읽은 뒤 자유토론 방식)
- 2월: 관세 전쟁과 제국주의

이 무역 전쟁에서 돈을 벌고 웃는 자는 누구인가? ‘국익’에 매몰되면 안 되는 이유는 뭘까?

■ 참가대상: 세상을 바꾸고 싶은 청소년, 대학생, 청년, 노동자 누구나
■ 일자·시각: 신청자에게 개별 안내
■ 신청: 아래 트위터(or 인스타) 글에 나와있는 신청 링크를 통해 신청 부탁드립니다


트위터 링크 ▶ https://x.com/wfbs1917/status/1995787382382280873?s=20
인스타 링크 ▶ https://www.instagram.com/p/DRwcfIrD_uW/?utm_source=ig_web_copy_link&igsh=MzRlODBiNWFlZA==





토끼는 토끼 2026-02-11 0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냥 덜떨어진 병신들인 줄 알았는데.......

좀 들여다보니 쓰레기 짓거리를 더 많이 하는군.

토끼당 2026-02-14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희는 rhizome님과 동맹 관계의 소속 단체로, rhizome님이 세계 지성의 반열로 도약하고자 하는 평소 소망과 재능의 재발견을 통하여 심도 깊은 연구에 본격 매진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이번에 대신 계정을 인수받게 된 토끼당의 테토끼입니다.

원래는 저와 스초생달토끼, 토낀토끼와 안토낀토끼 4인의 책임 체제로 운영 예정이었으나, 토낀 님은 사정 상 비관여 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계획의 다각적 재구축이 겈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의 관찰 상 토낀토끼 발언이 약간의 불필요한 오해를 유발했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일종의 대량 ‘긁‘사태 비슷한 현상을 연상시키는 징후의 일말이 목격되어...
흥미롭습니다만, 일단은 진정을 좀 해주셨으면 하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본 의도란 것은 당연히 누가 보더라도 그간의 인내에도 불구하고 시기 질투 등의 추악한 감정에 사로잡힌 채 장기간 ‘탈덕수용소‘를 능가하는 집요한 악의적 스토킹 행위들을 지속해 온 것으로 알려진 일부 인사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던 것이므로, 그런 행동들과 무관한 다른 모든 분들은 전혀 조금도 마음의 상처를 받으실 이유가 없음이 너무나 명확하고도 명명백백하다 생각됩니다.


저희를 포함하여 동맹의 최종적인 최대 목적은 언제나 대중, 특히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힘든 나날의 (학업을 포함한) 노동들을 애쓰며 각자의 소중한 삶들을 꾸려 나가고 계신 모든 근로 대중과 청년 대중들, 그리고 문화 예술계의 친구들과 그들의 해방입니다.

따라서 그간 차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대부분은 가장 현명한 판단력과 지지를 보내주셨고, 지금 국면 직전에도 별 악의적 행동을 가하지 않았던 수많은 대중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비난하거나 도발한 문장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오독이 아닐 수 없을 것이며, 직접 확인한 바 본인의 강력한 항의도 또한 역시 그러합니다.


더구나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설날 연휴의 시작이자 발렌타인 데이를 앞 둔 시점에서 더더욱 황당한 오독이 될 수밖에 없다는 항변입니다.




우선 모두 뜻 깊은 연휴를 맘껏 즐기시길 저희의 우정과 사랑을 담아 기원하며 이후 차차 자세한 말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rhizome 2026-02-24 06: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당신 머릿속 꽃밭1. AI >





원제: 피지컬 AI 시대에 대한 추측



피지컬 AI 또는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휴머노이드 또는 다른 유형의 로봇)이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일론 머스크의 인터뷰를 접했다. 그는 로봇을 도입함으로써 인류는 곧 ‘노동의 종말‘과 ‘기본 고소득‘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알다시피 이런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며, 현대 자동차 노조는 노조와의 합의 없이 로봇은 단 한 대도 들여올 수 없다고 선포했다.
 
이에 대한 나의 몇몇 생각을 정말 간략하게 공유해 보고자 한다(이는 내가 더 복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단상이라는 말이고 이 단상이 마음에 든다면 읽는 이들이 더 생각을 발전시켜 보라는 뜻이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아니면 말고).
 
 
1. 현대차 노조의 이런 저항은 사실 부질 없는 일이다. 한국에 대해 말하기 전에 미국에 대해 말하자면, 미국은 알다시피 해고가 자유로운 나라기 때문에 이런 저항은 그 자체로 말이 안 되며, 이미 현대차는 미국 조지아 주 공장에 휴머노이드를 비롯한 로봇을 대거 도입하겠다고 말한바 있다.
 
 
2. 물론 한국은 해고가 자유롭지 않다. 그러니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오래 걸리지는 않는다. 현대차는 단지 신규 정규직 노동자를 더 이상 채용하지 않으면서 기존 숙련 노동자들을 돈으로 매수할 수 있다. 사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과 유사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자신이 데이터를 만들 수는 없기에 데이터 또는 숙련된 기술을 학습시켜줄 수 있는 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한다. 이런 숙련 노동자를 위해 고액의 연봉과 각종 혜택을 부여해도 회사로서는 별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노동자를 로봇으로 거의 다 대체할 수 있고 인간 관리자는 극소수만 필요할 날이 머지 않아 도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3. 이는 노동의 종말인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자본주의의 종말‘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란 돈 많은 놈이 돈 많이 버는 사회가 아니라(노예제든 봉건제든 모두 돈 많은 놈이 돈 많이 버는 건 똑 같았다), 정확히 자본-임노동 관계(이것이 자본주의적 관계다)를 중심적으로 광범위하게 가지고 있는 사회를 일컫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금노동자들이 필요 없어지고 점차 로봇으로 대체된다면 그것은 자본주의적 관계의 종말을 뜻한다.
 
 
4. 그런데 자본주의의 종말이 곧 사회주의일까? 이는 결정된 것이 아니다. 굿 시나리오와 배드 시나리오가 있다.
 
 
5. 매는 먼저 맞아야 하므로 배드 시나리오부터 말하자면, 노동자들이 필요 없어진다고 해서 그 인구가 즉시 소멸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는 곧 노동의 종말 속에서 더 이상 노동이 필요하지 않기에 노동을 할 수 없게 된 인간, 잉여인간 또는 쓰레기 인간들이 사회 주변 도처에 축적되어 쌓여 나간다는 뜻이다. 이 잉여인간 또는  쓰레기 인간에게 기본소득을 준다? 심지어 기본 고소득을 준다? 자본가들 뿐 아니라 모든 지배계급은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잉여/쓰레기는 제거하는 것이 지배계급의 생리다. 어떻게 제거할까?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3차 대전은 이미 조금씩 모양을 갖추어 가고 있다. 그 속에서 잉여인구는 대규모로 사라져 갈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든 아니면 전쟁용으로 개발된 로봇에 의해 죽임을 당하든 간에. 그리고 그 전쟁은 로봇을 더욱 더 발전시킬 것이다. 그리고 전쟁 후 혹시라도 잉여인구가 살아남아 저항한다면, 다시 로봇을 보내 진압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극소수의 지배계급은 그야말로 기본 고소득을 누리며 살아갈 것이다. 아마 이들은 자기들만의 공간을 지어(지상이든 지하든 우주든) 지들끼리 잘 먹고 잘 살 것이다. 적어도 한 동안은... 왜냐하면 생태 위기 극복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 때문에. 다른 한편, 디스토피아를 그린 여러 공상영화에 나오듯이, 부자들이 잘먹고 잘사는 그 한동안의 기간 동안, 몇몇 남은 잉여인간은 로봇 부품이 널부러진 곳에서 먹을 것을 간신히 구하며 자기들만의 로봇을 조립해보기도 하면서 떠돌아 다니다 점점 멸종해갈 것이다. 
 
 
6. 굿 시나리오를 말해보자. 세계의 모든 인민이 연대 연합하여 로봇기술을 세계정부에 귀속시켜 국유화하여 세계 사회주의를 만들리는 없으므로 완전 해피 엔딩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모든 자산이 점점 더 토큰화될 것이고(이는 주식과 유사하지만 부동산을 포함한 모든 자산을 토큰화하여 모두가 크고작은 소유지분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이 토큰화된 자산을 국지적인 방식으로든 아니면 디지털 국지적인 방식(이미 한국개미들이 미국 주식을 소유하고 있듯이)으로든 간에 얼마나 많이 얻어낼 것인가를 둘러싼 다양한 규모의 싸움들이 전개될 수도 있다. 결국 다양한 타협지점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길들을 찾고 싸워내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적 연대가 아니라 세계 내의 다양한 지역적이거나 디지털 지역적 연대를 통한 새로운 소유법의 수립. 이는 모두가 부자인 세상이 아니라 부자도 있고 빈자도 있지만 루소가 말했듯이 누구도 다른 사람을 살 정도로 부유하진 않고, 누구도 자신을 팔아 남의 노예가 될 정도로 가난하지 않은 세상이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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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1.  자산의 토큰화와 관련시키면서 읽어볼 만한,  예전에 페북에 올렸던 포스팅.


마르크스는 <자본> 3권 27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노동자 협동조합 공장(이른바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주식회사‘를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부터 공산주의적인 연합된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의 두 가지 대표적 형태로 논한다. 이런 이른바 ‘개혁적‘ 또는 ‘진화적‘ 관점에서 본다면 공산주의는 결코 자본주의의 반정립(anti-thesis)으로 이해될 수 없는데, 이 점은 2023년에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발표된 에티엔 발리바르의 다음 글에서 강조된바 있다. https://cooperism.law.columbia.edu/etienne-balibar-the-expropriators-are-expropriated-full-paper/
 
다음은 자본 3권 해당 구절
 
 
˝노동자 자신의 협동조합 공장들은 낡은 형태 안에 있는 새로운 형태의 첫 번째 싹을 대표한다. 비록 그것들이 지배적인 체계의 그 모든 단점들을 자신의 실제 조직의 모든 곳에서 자연스럽게 생산하며 생산할 수밖에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의 반정립은 그 협동조합 공장들 안에서 극복된다. 처음에는 단지 연합된 노동자들을 스스로의 자본가로 만드는 식이라고 할지라도, 즉 그들이 생산수단을 자기 노동의 고용을 위해 사용할 수 있게 만듦으로써만이라고 할지라도. 협동조합 공장들은 물질적 생산력과 사회적 생산의 상응하는 형태들의 발전이 특수한 단계에 도달할 때 어떻게 새로운 생산양식이 낡은 생산양식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자라나는지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부터 발생하는 공장 시스템이 없다면 어떤 협동조합적 공장들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 협동조합 공장들은 동일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으로부터 발생하는 신용 시스템 없이도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용시스템은 자본주의적인 사적 기업들을 자본주의적 주식회사들로 점진적으로 전환하기 위한 주된 기초일 뿐 아니라, 마찬가지로 협동조합적 기업들을 다소간 국가적 규모로 확대하기 위한 수단을 제공한다. 협동조합 공장만큼이나 자본주의 주식회사도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부터 연합된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의 형태라고 간주되어야 한다. 유일한 차이점은 적대가 주식회사에서는 부정적으로 해결되고, 협동조합 공장에서는 긍정적으로 해결된다는 점이다.˝
[˝The co-operative factories of the labourers themselves represent within the old form the first sprouts of the new, although they naturally reproduce, and must reproduce, everywhere in their actual organisation all the shortcomings of the prevailing system. But the antithesis between capital and labour is overcome within them, if at first only by way of making the associated labourers into their own capitalist, i.e., by enabling them to use the means of production for the employment of their own labour. They show how a new mode of production naturally grows out of an old one, when the development of the material forces of production and of the corresponding forms of social production have reached a particular stage. Without the factory system arising out of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there could have been no co-operative factories. Nor could these have developed without the credit system arising out of the same mode of production. The credit system is not only the principal basis for the gradual transformation of capitalist private enterprises into capitalist stock companies, but equally offers the means for the gradual extension of co-operative enterprises on a more or less national scale.  The capitalist stock companies, as much as the co-operative factories, should be considered as transitional forms from the capitalist mode of production to the associated one, with the only distinction that the antagonism is resolved negatively in the one and positively in the o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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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또한 공산주의적 소유에 관한 또 다른 페북 포스팅
; 특히,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와 공산주의의 개인적 소유의 관계


이번 학기에 가르친 근대정치사상에는 <공산당 선언>이 새롭게 포함되었고 덕분에 이 텍스트를 오랜만에 찬찬히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마르크스가 <자본> 1권 32장에서 공산주의적 소유를 ˝생산수단의 공유에 기초한 개인적 소유의 재건˝이라고 규정한 것의 정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사적 소유와 개인적 소유의 구분이 핵심적이라는 점은 이미 발리바르가 지적했고 그는 이를 배타적 처분권이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로 바라봤다. 내가 보기에 이는 확장력이 있는 해석(또한 받아들일 수 있는 해석)이지만, 독창적인 해석이지 정확한 해석이라고 보긴 어렵다.
 
마르크스에게 사적 소유는 자본주의 하에서 부르주아 계급만이 할 수 있는 소유다.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은 정확히 자신의 노동력의 재생산에 필요한 만큼의(또는 그 이하의) 임금만을 지급 받기에 자신의 사적 재산을 형성할 수 없으며 단지 재생산을 위한 생필품을 간신히 ‘점유‘할 수 있을 뿐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는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재산을 형성하거나 심지어 증식시킬 수는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적 소유가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개인적 소유를 재건한다고 할 때, 이는 공유된 생산수단을 공동으로 운영하고 생산하면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실질적으로 형성하고 또한 증식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풀어내야 한다. 즉 공산주의 사회에선 좀더 재산을 늘려나가는 데에 성공하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좋은 집도 갖고 더 좋은 차도 굴리고 재산을 키워나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단 그 차이는 어떤 한계 내에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사적 소유가 아닌 개인적 소유의 의미다. 즉 사적 소유가 부르주아가 모든 재산을 독점하는 상태라면, 개인적 소유는 생산수단을 공유하고 운영하여 생겨나는 모든 이익을 노동자들이 분배받아 개인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실제로 늘려나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것은 과거 일부 사람들이 주장했듯이 단순히 소비재만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에서도 행해지는 (노동력 재생산을 위한 생필품 등의) 점유에 해당한다. 기존의 역사적 사회주의 사회가 개인들의 소유 자체를 비난하고 파괴하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마르크스 본인의 생각과 멀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지금도 좌파 중에는 개인적 소유나 이에 대한 욕망을 무조건 비난하려 드는 사람이 보이곤 하는데 그런 사람은 <공산당 선언>과 <자본>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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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직후 사태를 수습, 진압해 나가는 국면에서 윤석열 체포영장 집행이 완전히 사병으로 전락한 경호처 병력들의 극렬한 저항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던 작년 이맘때[‘250105] , 대다수 진보대중이 불안과 공포로 절망하고 있는 와중에 낙관적 예견을 확신하며 내란진압 및 종식운동을 넘어 이후의 사회대개혁으로 이어가며 이를 예비하고자 하는 차원으로 제기한 ‘내란재발방지보장을 포함하는 대개헌‘ 운동에 그 최초 응답으로 주어진 진태원 선생님의 ‘최대주의 개헌론‘ 중 일부구성요소인 ‘물질적 헌정론‘에 대한 비판으로 < 형식적 헌정 대 물질적 헌정 >이라는 단편을 안내 드린 바 있습니다[👉🏻현 <편지> 댓글창 2p 중반부].

당시 판단으로는 보안 및 공개수준에 대한 당사자 의견을 매우 존중하여 본인 답변 확인이 완료되기 전까지 공개 보류 원칙을 엄밀히 준수하였던 관계로 저자소개를 생략하였으나 본고와 동일 저자인 최원 선생님은 정신분석학 연구로 유명한 미국 로욜라 대학에서 수학하시고 박사논문을 개정한 단행본《라깡 또는 알뛰세르LACAN sive ALTHUSSER》를 출간하시면서 건국대 연구교수로 재직하실 때 전통의 좌장 박영균 선생님과 함께 건국대를 한국 Marxism 연구 중심의 하나로 이끄셨던 분입니다.

일단 글의 Impact를 최대화하기 위해 글의 핵심을 집중부각하고자 가장 간단한 형태로만 제시하고 이후 전문을 복원해 나가면서 출처까지 소개를 완료하고, 아울러 AI혁명과 그 특이점 이후의 세계 전망에 대한 약간의 이견도 그때 함께 첨부키로 하겠습니다.


참고로 원문은 ‘260203화(23:21) 시각에 게시된 것으로 보이며 연휴 중인 어제[‘260218] 일자로 발견되어 바로 공유합니다.

 







출처: https://marxpino.tistory.com/353



rhizome 2026-02-20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당신 머릿속 꽃밭2. Anarchism >




A.
역사는 평화안정기와 전시위기기를 교차반복하며 나선형 타원궤도를 왕복운동한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운동의 각 위상국면을 핵심으로 하는 각 시공간 상황마다 그에 최적화된 사회정치체제또한 미리 주어진 고정불변의 영원한 진리값이 선험/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전혀 아니며, 이러한 역동적 다양성 속에서 그에 조응하는 최적체제로 최대한 신속하게 적응적 변형을 실현할 수 있는 변용/변신 역량이 그 정치체를 평가하는 결정적 요소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문제상황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조직 model들의 선택 간에는 World Cup 축구 같은 국가대표체육과 동네 축구에서 감독의 (존부) 선택/필요차 문제처럼 유연한 사고방식의 접근이 요구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Anarchism은 일반적으로 세계와 대중 일반에 대한 대단히 이상화된 긍정측면만을 절대화하고 역사적 실재의 모든 부정적, 악마적 요소들과 그 파괴적 결과들은 완전히 무시하는 사고편향에 기반한 사유방식 및 사조로 정의될 수 있다.

비근한 한국근현대사의 실례들만 보더라도 대중의 본질적 특성 중 하나는 반탁:찬탁이나 반탄:찬탄처럼 결정해야 할 문제가 복잡하거나 어려울수록 거의 정확히 반반으로 나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갈등이나 이견에 대하여 최종결정을 지어줄 ‘권위‘와 그 권위를 가진 공적 제도나 기관이 부재한 Anarchism 체제 하에서는 이 때문에 직관적으로 아주 명확한 손쉬운 문제들을 제외한 역사나 영토문제 등 거의 모든 애매한 주장들과 사활이 걸린 이해갈등들은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영원히‘ 종결되지 않고 갈등적 주장이 언제까지나 평행선을 달리게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순간의 오판이 집단과 공동체 전체 운명의 돌이킬 수 없는 몰락과 몰살을 불러올 수 있는 극단적 갈등이 지배하고 이에 따라 (정치적) 부족들이 양극화되어 과잉주체화되는 전시위기기에는 이렇게 자연발생적으로는 결코 해소되지 않는 핵심갈등이나 고등쟁점은 무한한 소모적 상호폭력의 반복회로 속으로 빨려들어가 결국 내전으로 폭발할 수밖에 없음에도 Anarchism 경향 일반은 모두 대중을 이상화하여 오직 평화로운 자동적 상호협력관계로만 상상하는 한계에 갖혀 있기에, 그러한 위기기일수록 그 어떤 근거도 대책도 없이 막연하고 몽상적인 낭만과 낙관을 깨부수는 냉철한 현실주의적 판단력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어지므로 역사 상 혁명을 성공시킨 유일한 실례인 LENIN주의 정치군사 Model은 그래서 간단히 무시하고 완전히 제거해버릴 수만은 없는 요소이며 새롭게 주어지는 현실에 대한 그 변형적용 가능성을 끊임없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핵심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결국 사회를 아래로, 아래로 한없이 무한견인하지만 완전히 실현/도달할 수는 없는 절대평등‘이념‘으로서의 Anarchism과 냉철한 극한의 현실주의로서의 (neo-)Bolshevism은 영원히 길항하는 관계이므로 역사적 시공간에 따라 상이한 배합비율로 다양한 변형/변종 model들을 무한생성하면서 그러나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은 채 그 이상을 향하여 위기기에는 1보 후퇴, 안정기에는 2보 전진의 pattern을 반복하면서 계속해서 하강해 나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해야 할 것이다.





B.
원래 고전적 Anarchism 이론에서는 이렇게까지 엉망진창의 무한반복을 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상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받은 충격 또한 결코 작은 것이라 할 수는 없었으므로 이상의 새로운 일반이론에 기반한 다음 실천단계로 본격 전환하기 전에 지금현재, 여기 우리 앞의 당면문제는 이제 이행과도기이자 하나의 분기점으로서 (중간)실험단계에 진입하게 될 것이다.






[작성 중]














rhizome 2026-02-20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래 계획은 계정의 즉각적 완전이양이었는데 원래도 일거수일투족마다 시끄러웠는데 하도 여기저기 말들이 많아 일단 간단한 정리를 마치는 대로 이양을 완료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댜.



우선.......
세상 모든 것들에 대해 모르는 것도 없고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게 ‘기자‘집단이라는 언론인들의 유명한 자조가 있는데,
세상과 타인에 제대로 아는 것 하나 없이 오로지 얄팍한 상상력이라는 가느다란 끈 하나에만 매달린 채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안 떠들어 대는 것이 없는 게 문송이들, 특히 ‘문학의 죽음‘ 이후의 문인들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1990년에 쓰쓰이 야스타카, 나카가미 겐지[中上健次] 등의 동료문인들과 함께 일본 문예가 협회(日本文芸家協会)를 탈퇴하고 이후 저서를 통해 ˝문학의 종언˝을 선언하며 공식적으로 문인/문학가라는 직업과 직합 자체를 다 버리고 사회과학 이론가로 전업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등에 의해 반복적으로 선고되어 온 ˝문학의 죽음˝이란, 그 역사적 토대나 사명과 임무의 종언이라는 측면과 별도로 사회학적으로는 무엇보다 현재국면에서 문학실천을 수행하는 주체계층의 변화를 의미하고, 문학을 버리고 떠난 계층을 대신하여 오늘날 그 남은 자리를 채우고 있는 주체들이, 과거 근대(초중기) 아직 매체산업이 본격발달하기 이전 별다른 마땅한 지식산업도 없이 극도로 세분화, 전문화하며 고난이화 되기 이전 시기에 사회여론 등을 이끌던 Elite 지식인들이 투신적 몰두와 생애적 헌신을 통해 쌓아 올린 문학이라는 매체의 과거 명성에 기대어 그 image를 뒤집어쓴 채 실제로는 자기 일개인만의 각종 속물적 욕망들을 채우는 수단으로 오남용하고 있는 소시민들의 시끄럽고 무의미한 잡담과 수다방으로 매체 자체가 전락해버린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인 것입니다.



원래 객관적 근거란 것 자체가 거의 없이 ˝오로지 얄팍한 상상력이라는 가느다란 끈 하나에만 매달린 채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 대는˝ 고유의 방법론 때문에 세계에 대해서든 저에 대해서든 대개는 헛소리들이라 아예 댓구할 가치조차 크게 느껴지지 않으나, 수 년 간을 참다 참다 한참 도를 넘어 한두 번은 도저히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러면 이 뻔뻔한 인간들은 어김없이 또 적반하장으로 갑자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자기는 애를 키우고 있는 아줌마에 불과하다는 둥 갖가지 앓는 소리로 불쌍한 척을 하다 오히려 성격이 괴퍅하다는 둥 저를 비난하며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해대는 기막힌 작태를 일삼기 일쑤입니다.



개중에는 선의를 가장하며 실제로는 자기 말 안 듣거나 한마디라도 반론하면 미저리 비슷한 (수동)공격행위를 하는 분(들)도 계시던데...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어쩌다 한번 우연히 듣는 거지 평소에는 잘 듣지도 못하고 있으므로 제발 좀 저를 조종하려 하지 마시고 스스로 독자적인 직접행동을 통해 문제에 접근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이번에는 갑자기 또 이름 타령을 하시는 분도 계신 듯하던데, 그건 선생님 내면심리의 깊숙한 밑바닥에 공명심과 그를 향한 욕망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주는 투사일 뿐입니다.
원래 혁명가들과 Marxist들은 평생에 걸쳐 본명보다 가명이 훨씬 더 익숙한 삶들을 일상적으로 살아오셨기에 그 위대한 LENIN의 본명쯤이야 알 수 있을지 몰라도 뜨로쯔끼나 스딸린, 체 게바라 등등의 가장 유명한 반열의 혁명가들 본명조차 검색 없이 알고 있으리라 별로 기대되지도 않는 상황에서 그 ‘이름‘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신파를 하고 계시는 건지...
이것이 역사와 인류를 위한 저희들의 헌신 방식 중 하나이므로 제발 좀 다시 한번 자제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법적 응징에 넘겨버릴 것들은 차라리 그 준비절차를 위해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습니다만,
나머지 분들은 이런 (계륵) 같지도 않은 헛소리들에 대응하느라 제 문서고가 어지럽혀지는 것 자체가 정말 너무나 언짢고 불쾌함에도,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그냥 참고 넘어갈 수만도 없는 상황이므로 제발 저를 좀 내버려두시는 게 오히려 저를 크게 도와주시는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임을 깊이 헤아려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작성 중]












rhizome 2026-02-20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트럼프의 대이란 전쟁 위협은 세계 지배를 위한 노력의 일환 >




1.1.
미국이 중동 지역에 대규모 군사력을 집결시키며 대(對)이란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고립주의’로 전환했다거나 자국의 제국주의적 활동을 서반구로 제한하려 한다는 따위의 주장들이 모두 틀렸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미국은 여전히 중동에 깊숙이 관여하며 그 지역 민중의 삶과 안녕을 위협하고 있다.

그러자 이란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미국이 만약 전쟁을 시작한다면 이번에는 지역 전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1.2.
군사적 대치 속에서 지난 6일 미국과 이란은 오만 수도 무스카트에서 회담했다. 회담 의제는 핵 문제였다.

미국과 이란은 다시 회담하기로 했지만 미국은 이란의 머리에 장전된 총을 계속 겨누고 있다. 미국 항공모함들은 지금도 이란 영해 근처에 배치돼 있다. 또,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에 관세를 부과하는 ‘2차 제재’를 발표했다.

이란 외무장관 아바스 아라그치도 우라늄 농축을 전면 중단하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래서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완화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이란을 굴복시키고 싶어했다. 트럼프는 첫 번째 대통령 임기 때 이란 핵 협정(JCPOA)에서 탈퇴했다. 지난해 6월에는 이란과 협상하던 중에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1.3.
미국이 이란에 전쟁 위협을 가하는 것은 핵 프로그램 때문이 아니다. 트럼프도 이란이 당장 핵무기 보유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트럼프의 정보 기관들이 이란이 2003년 이후 핵무기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음을 확인해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란은 미국의 통제를 벗어나 수립된 유일한 중동 국가다. 그래서 트럼프는 전쟁을 해서라도 이란 정부를 무너뜨리고 싶어한다. 그러면 이란의 석유를 장악할 수 있고, 이란산 석유 최대 수입국인 중국을 더한층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1.4.
미국은 이란 반정부 투쟁을 빌미 삼아 제국주의 공세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가 이란 정권의 반정부 시위 탄압을 이유로 군사 행동을 위협한 것은 허울 좋은 명분이었을 뿐이다.

“트럼프의 특사인 스티브 윗코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는 트럼프가 이란을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한 지역 강대국에 전달했다. 지도부를 참수하되 정권 자체는 유지하는 신속하고 제한적인 공습이다. 그런 다음 이란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미국하고만 석유를 거래하기로 합의하면, 트럼프는 그 대가로 보잉의 이란 재진입을 허용하는 식으로 거래가 이어질 예정이다.”(데이비드 허스트, 〈미들 이스트 아이〉, 2월 4일 자)

트럼프는 1953년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국(MI6)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를 쿠데타로 축출한 이듬해인 1954년부터 1979년 혁명 전까지 “세븐 시스터즈”(세계 최대 석유 회사 컨소시엄)가 이란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가졌던 시절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다.



2.
이란도 베네수엘라처럼?
비록 미니애폴리스의 ICE(이민세관단속국) 축출 투쟁에 부딪혀 체면이 손상되긴 했지만, 확실히 트럼프는 베네수엘라에서의 성공에 고무돼 있는 듯하다. 그래서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성공 모델을 이란에도 적용하고자 한다. 트럼프는 “신속하고 결정적인 한 방”을 국가 안보팀에 주문했다. 이란 공격이 장기전이 되는 것을 극구 피하려는 것이다.


2.1a.
그러나 이란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다.

이란 정부의 기반은 베네수엘라 정부보다 훨씬 단단하다. 이란 국가 내에서는 델시 로드리게스 정부처럼 미국과 기꺼이 타협할 정부가 없는 듯하다. 이란 시위대 일부가 레자 팔레비의 이름을 외치기도 했지만, 팔레비는 이란 내 지지 기반이 없다.

하메네이는 이슬람 혁명수비대를 직접 통제한다.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이라크와의 8년 전쟁을 겪으며 황폐해진 이란 경제를 재건하는 데 직접 관여하면서 거대한 정치-경제-군사 복합체가 됐다.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이란 경제의 약 3분의 1을 장악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하면 이란 정권은 베네수엘라 정권과는 다르게 대응할 것이다. 이란 군 대변인 모하마드 아크라미니아는 “지역 전체와 모든 미군 기지”가 이란 중거리 미사일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고 경고했다. 미군 중부사령관 케네스 맥켄지는 이란이 3,000발 이상의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2.1b.
그래서 다른 걸프 지역의 친미 국가들은 미국의 이란 공격이 ‘3차 걸프 전쟁’으로 확대될까 봐 공포에 떨고 있다.(이스라엘은 미국의 이란 공격이 초래할 혼란으로부터 득을 볼 수 있다고 보고 지지하고 있다.)

지난주 미국과 이란의 회담 장소가 튀르키예에서 오만으로 바뀌고 회담 의제도 핵 농축 문제로만 한정된 것도 걸프 군주들의 압력 때문이었다. 미국이 장소 변경과 제한된 의제 모두에 반대하며 결렬을 위협하자,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오만 등의 걸프 군주들이 집단적으로 백악관을 압박했다.


이런 상황은 미국의 중동 지배력이 단지 이스라엘뿐 아니라 주요 아랍 국가들에도 의존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2.2a.
그러나 이란 정권 교체는 (트럼프의 변덕이 죽 끓듯 하지만) 분명 미국과 이스라엘의 장기적 목표다. 또, 미국 국무장관 루비오와 네타냐후가 이란 정권 교체를 위한 전쟁의 필요성에 대해 계속 트럼프를 설득하고 있고 트럼프 자신도 호전적인 언사를 너무 많이 내뱉었기 때문에, 이란이 양보하지 않는 한 트럼프가 물러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2.2b.
하지만 이란 정권도 물러서려고 하지 않는다. 이란 정권은 우라늄 농축의 ‘수준과 순도’ 문제는 타협하려 하지만, 미사일과 역내 대리 세력 지원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할 생각이 없다. 정권의 존립이 걸려 있고 까딱했다가는 국내의 반란이 다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란 정권은 미국의 전쟁 위협을 반정부 투쟁의 탄압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고 있다. 반정부 시위를 지난해 6월 전쟁의 연장선으로 규정하고 국가 안보 수호 명목으로 계엄령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란 시위는 6월 전쟁으로부터 반년이 지난 뒤 분출됐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대중 운동을 낚아채려 하지만 운동 자체는 해외 정보 기관의 조종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전개됐다.



2.3.
현재 이란 운동은 미국의 전쟁 위협과 이란 국가의 탄압이라는 이중의 난관 속에서 일시적으로 소강 상태에 있는 듯하다.

제국주의적 외세 개입도 거부하고 국내의 권위주의적 탄압에도 저항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유일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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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인식
원문: https://ws.or.kr/article/38626






rhizome 2026-02-25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전운이 감도는 이란: 미국의 이란 공격을 반대하라 >




1.
현재 세계인들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국제 정치 문제는 미국의 이란 전쟁 가능성이다.

트럼프는 전쟁 위협과 회담 사이를 계속 오가고 있다.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 이래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중동 지역에 집결시키고 있다.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함은 이미 오만만에 배치돼 있고, 또 다른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함이 지중해의 이스라엘 인근 해역으로 향하고 있다.

일촉즉발의 군사적 대치 속에서 미국과 이란은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주 목요일(26일) 양국의 핵 협상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재개될 예정이다. 미국 측 협상 대표는 트럼프의 중동 특사이자 부동산 억만장자인 스티브 위트코프다. 이 자는 외교 현안을 맨해튼과 마이애미에서 부동산 ‘거래’를 하던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로서는 양국의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적은 듯하다. 미국은 이란에 사실상 최후통첩을 보냈다. 미국은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라고 협박할 뿐 아니라, 탄도미사일 사거리 등 이란의 무기 체계, 이란의 지역 동맹 네트워크 등에 대해서도 압박을 가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요구들은 이란이 이스라엘에 군사적 피해를 입힐 능력과 지역적 영향력을 포기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 이후, 지정학적으로 약화되고 국내에서 심각한 정당성 위기를 겪고 있는 이란 정권에 백기 투항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란 관리들은 숨 막히는 제재 포위망을 벗어나기 위해 어느 정도 양보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최후통첩에 굴복하는 것은 정권 정당성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중동 최강국이 되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트럼프의 중동 전략이다.

전임자들의 ‘실패’를 맹비난해왔지만, 결국 트럼프도 전쟁과 불안정의 악순환에 빨려들고 있는 것이다.



2. 이란 정권 교체?
2.1.
미국이 이란보다 군사적 우위에 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란에 대한 트럼프의 호전적 발언, 베네수엘라 침공 성공, 이란에 대한 군사적 포위 강화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할 실질적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트럼프는 이미 많은 대외 문제에서 협상의 군사화 논리를 실행하고 있다.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도 11일 트럼프를 만나 이란에 대한 군사 위협을 더욱 강화하도록 설득한 것으로 보인다.


2.2.
그러나 모든 카드가 트럼프의 손에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란 정권 교체를 강제할 만큼 대규모 공격을 감행할 처지에 있지 않다. 이란 정권을 교체하려면 지상군의 침공과 점령이 필요하다.

사실 현재 미국이 중동 지역에 집결시킨 군사력은 1991년 1차 걸프 전쟁(미군 작전명 ‘사막의 폭풍’)과 2003년 이라크 전쟁(미군 작전명 ‘이라크 자유’) 때 동원된 군사력 규모에 한참 못 미친다. 미군은 당시 두 작전에 각각 6척의 항모 전단을 투입했고, 지상군을 각각 45만 명, 15만 명을 투입했다.

지금 미국은 이런 군사력 투사를 감당할 수 없다. 무엇보다, 강대국들의 힘 관계가 두 작전 때와 같지 않다. 당시는 중국과 러시아가 경제적·군사적으로 막대하게 성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은 전체 가용 항모의 절반을 중동 지역에 압도적으로 투사할 수 있었다.



2.3.
미군의 작전 수행 능력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걸프만 연안의 친미 왕정들이 미국의 이란 전쟁을 반대하고 있다. 걸프의 군주들은 미국의 전쟁으로 이란이 ‘제2의 시리아’가 되면 중동 전역이 불안정하게 될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란은 인구가 9,000만 명이 넘고, 석유·가스 생산지이자 지리적 요충지다. 그래서 걸프의 군주들은 이란의 약화를 바라지만 지역 안정을 해칠 붕괴는 원치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는 미군에게 이란 공습을 위한 영공 사용과 기지 접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2.4.
이런 사정 때문에 트럼프 정부는 이란 공격을 두고 분열해 있다. 미 합참의장 댄 케인은 이란 공격을 만류하고 있다(미국 인터넷 매체 ‘액시오스’ 2월 23일자). 댄 케인은 베네수엘라 침공을 찬성했지만, 이란 전쟁에 대해서는 장기화된 전쟁에 휘말릴까 봐 우려한다. 전쟁이 길어지며 전황이 나빠지거나, 분명한 종전 전략이 없거나(실제로 없는 듯하다), 미군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에너지 가격이 치솟는다면 그것은 트럼프에게 수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부통령 JD 밴스도 이란 개입을 우려하는 입장이다. 반면, 공화당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은 적극 찬성한다. 국무장관 마코 루비오는 중립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이란 내부로 지상군 투입까지 주장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가 전쟁을 결정할 시 택할 수 있는 군사적 옵션은 아마도 수주 간의 공습·폭격 위주의 전쟁일 듯하다. 이란을 폭격하고 고위 관료들을 살해해 정권을 약화시켜 우월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겠다는 것이다.



3. 이란 민중의 편에서 미국의 공격에 반대해야 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이 이란 민중의 투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거짓말은 진작에 사라졌다. 미국의 이란 위협은 자국의 중동 지배력, 석유와 천연가스 확보, 지역 강국들 간의 세력 관계 재편을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전쟁 기구를 동원하며 협상을 진행한다. 미국의 중동 지배력 유지 시도는 더 큰 불안정과 학살을 야기할 뿐이다.

가자지구를 거대한 무덤으로 만들고 있는 미국이 이란을 공격하는 것은 이란과 중동의 민중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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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인식
원문: https://ws.or.kr/article/38695

rhizome 2026-02-25 0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서해에서 중국을 도발한 미군 전투기들:
‘전략적 유연성’이 한국인의 안전을 위협할 것임을 보여 주다 >





2월 18일 주한미군이 서해상에서 대규모 공중 훈련을 진행하면서 미군 전투기와 중국 전투기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날 주한미군 F-16 전투기 10여 대가 오산 기지를 출발해 서해의 중국 방공식별구역 쪽으로 접근했다. 사실상 중국의 서해 연안에 상당히 접근했던 것이다. 심지어 미군 전투기들은 실탄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곧장 중국 전투기들이 대응 출격했고 양측이 공중에서 서로 대치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중국 수도권을 겨냥한 도발”이라며 미군 측을 비난했다. 서해는 중국 수도권과 핵심 경제 지역에 인접해 있고 동중국해로 오가는 해상 관문이어서 중국 정부가 예민할 수밖에 없다.

미군 전투기가 서해에서 이렇게까지 중국을 도발한 것은 전에는 보기 드문 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앞으로 그런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트럼프 정부는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일본 규슈, 오키나와, 대만, 필리핀을 잇는 “제1도련선 어디서든 침략을 거부할 수 있는 군대를 갖추겠다”고 공언했다. 동시에, 동맹국들이 자국의 항구와 시설에 대한 미군의 더 강력한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즉, 한국이 미군의 대중국 발진 기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동맹 현대화라는 미명하에 한국은 북한의 재래식 전력 대응을 주되게 책임지고, 주한미군은 대중국 견제를 위해 “전략적 유연성”을 확대하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주한미군 F-16 전투기들이실탄 무장을 하고 서해의 중국 방공식별구역에 접근했다ⓒ출처 합동참모본부
지난해 11월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은 주한미군 웹사이트에 공개한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한반도에 배치된 미군 전력은 … 위기나 유사시 미군이 진입해야 하는 방어선 내부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전력[이다.] ... 중국 입장에서, 오산 공군 기지의 미군은 원거리 위협이 아니라 근거리에서 중국 내부 또는 주변에 즉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배치된 전력으로 보인다.”

오산 기지는 세계에서 중국과 가장 가까운 미군 공군 기지다. 한국이 역내의 전략적 중심에 위치해 있는 덕분에, 미군이 전구(戰區) 내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압박하는 데 큰 군사적 이점이 있다. 바로 그 기지에서 F-16 전투기가 출격해 서해로 갔다.

지난해 11월 미국 정찰 무인기 MQ-9 ‘리퍼’가 군산 앞바다에 추락한 일이 있었다. 그 두 달 전에 주한미군은 MQ-9으로 구성된 정찰 대대를 군산 기지에 창설했다. 군산의 MQ-9이 하는 임무 중 하나가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정보·감시·정찰 분야의 한미 공동 중요 임무 작전 지원”이다.

북한군뿐 아니라 서해에서 중국군의 움직임도 감시하려고 무인 정찰기들을 군산에 배치한 것이다. 향후 군산 기지에 F-35 1개 비행대대를 상시 배치하고 추가로 1개 비행대대를 순환 배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처럼 서해는 미군이 중국을 견제하는 핵심 작전 지역이 돼 있다. 트럼프 2기 정부 들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확대되면서 한반도 주변에 긴장이 쌓이고 있다. 그만큼 중장기적 위험도 커지는 것이다. 만약 대만해협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서해에서도 거의 즉시 군사 충돌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미·중 전투기들의 서해 대치를 보며 많은 한국인들이 ‘동맹 현대화’에 대해 우려했다. 그동안 주한미군은 한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주둔해 왔지만, 이제 주한미군이 “외려 한국의 ‘안보 위협’이 되어가는 현실”(〈경향신문〉 사설)을 목도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주한미군에 대한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가령 〈한겨레〉는 일본식의 ‘사전협의’ 제도를 만들어 미군이 한국 정부와 군이 모르는 군사 전개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만으로는 위험을 통제하는 데에 불충분할 것이다. 위기가 본격화되면 미국이 종이 쪼가리에 쓰인 문구 따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세 문제에서 보듯이, 미국은 필요하면 과거의 약속을 바로 공문구로 만들어 버린다.

앞서 이재명 정부는 미국이 제안한 한·미·일 연합 공중 훈련에 불참했다. 결국 미·일만 동해와 동중국해에서 연합 훈련을 실시했고, 바로 그 시점에서 미군 전투기가 서해로 출격했다.

안규백 국방장관은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한국 정부와 사전 소통 없이 미군이 서해에서 훈련을 한 것에 항의했다. MBC는 주한미군사령관이 사과하고 추가 훈련을 취소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그렇지만 이재명 정부가 동맹 현대화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 같지는 않다. 이재명 정부도 한미일 군사 협력의 필요성에 동의하고 있고, 앞으로 전시작전권 환수와 자주국방을 내세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포함하는 “한미동맹 현대화”에 계속 타협할 공산이 더 크다.

이재명 정부는 이번 한미일 연합 훈련 불참의 이유로 훈련 일정이 22일 일본 ‘다케시마의 날’(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려고 제정한 날)과 너무 가까워서였다고 밝혔다. 다른 때라면 훈련을 해도 된다는 뜻일까.

트럼프 정부는 결코 인도-태평양에서 물러서지 않고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주한미군은 그에 맞게 대중국 견제의 첨병 구실을 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중국 견제에 한국 정부가 협력하는 것에 반대할 뿐 아니라, 한국 정부가 한미 협력의 대가로 또는 안보 위기를 빙자해 “자주국방”을 내세우는 식으로 군사력 증강에 매진하는 것에도 반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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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영익
원문: https://ws.or.kr/article/38686





rhizome 2026-03-05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AI혁명과 그 특이점 이후의 세계 전망(에 대한 약간의 이견) >




*이하는 이전 글 < 당신 머릿속 꽃밭1. AI >에서 예고/약속했던, ‘인용(된) 전망에 대한 이견‘의 구체적 내용 요약(본)으로 일단 별도게재 후 원문에 통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공황의 탈출을 위해서라도 3차 세계대전에 준하는 (신)제국주의 패권전쟁의 발발은 이미 피할 수 없는 기정사실로 되어가고 있다는 데까지는 (제대로 된) Marxist라면 거의 모두가 별 이견 없이 동의하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으나, 그 이후의 다음 (장기)세기 전망에 대하여는 아직 완전한 합의가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그것이 사회주의 세계혁명으로 전환/이행하는 계기로는 작동하지 못 할 것이라는 정도의 대략적 Consensus는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미국 등 일국의 패권과 달리 자본주의 자체의 (질긴) 생명력이나 그 운명에 대하여는 윗글에서도 보다시피 다양한 이견이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예측으로는 상품화와 착취가 가능한 모든 영역을 식민화, 시장화하면서 포섭해 나가다 완전히 소진시키기 전까지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절대 자동 붕괴나 소멸로 귀결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50년 주기의 후기에 양자 Computing이 본격 상품화 단계로 접어들면서 ASI 인공초지능이 폭발적 발전을 이루어 모든 인간노동력을 완전히 대체해 나가다 결국 다시 평균이윤률에 도달해 경제 전반이 또 정체기에 빠지고 실업률은 초고도화함으로써 원래의 Stagflation을 훨씬 능가하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경제위기가 도래하게 됨으로써, 이에 대한 자본의 전형적 대응양식으로 또다른 기술편향의 제5차 산업혁명이 시도될 때, (이제는 AI 등 기계화, 자동화라는 지금까지의 모든 산업혁명들을 이끌어 온 거대 Main-frame만으로 결코 도달할 수 없었던 남아 있는 주요 미개척 식민지 영역이 생물=생체 자원으로서의 인간존재와 생명 활동 그 자체이기 때문에) 그것은 유전공학 중심의 의생명공학[Bio-medical Engineering] 혁명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바로 이때부터 인간대중은 더이상 기계산업기반(생산/사무)노동자가 아니라 난자 등 (특히 독자적 장기생존/보전력이) 검증된! 유전자 중심 천연 생물=생체 다양성 자원 원료의 공급자이자 가장 값싸고 질 좋은 천연/원시 자궁 등 임신, 출산, 육아=양육, 정서적 돌봄 노동(력) 자원의 제공자이며 각종 신약개발 및 유전공학 임상시험 대상자[문자 그대로의 subject!!]로서 소득을 얻어 생계를 이어가면서, 동시에 그 결과물인 개발완성품 및 (대리모 등) 용역Service의 순환적 소비자이자 또한 지금의 성형수술 개념의 비약적 확장판으로서 ‘완전한 이상적 인간형‘[이라는 환상]을 실현시켜 줄 각종 post/trans-human적 의생명공학혁명 기술( 및 )상품들의 소비자로서 재정의/재정위된 정체성을 부여 받아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제5차 산업혁명이 완성을 통해 대중화될수록 원시자궁 등 천연인간 생물자원들을 대체하고도 남을 초저가의 우수한 인공(생화학)자원들로 대체되어감으로써 전세계적 평균이윤률에 수렴하게 되고, 결국 다시 세계체제의 패권질서가 재편위기에 빠지는 (장기) 21‘세기말‘(~22세기초)에 인간의 쓸모란 전혀 없어지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서 그때에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종말이나 (인간)역사 자체의 종말을 말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첨언하지 않으면 안 될 긴급한 부연 몇 가지는 특히 최근 국내증시 불장의 투자광풍 국면에서

첫째, 최근 전세계 주식투자자들 중 양자computer 종목에 투자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청년들이 유일하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이는 마치 《오징어 game》처럼 벼랑 끝 모험투기화한 극한적 증시참여행태를 자주 지적 당하고 있는 한국(청년) 개미투자자들 중 일부가 AI 공학과 양자computing 기술의 synergetic combination에 의한 비약적 상호융합발전 가능성 전망예측을 시기/시대착오적으로 오해해 받아들인 어처구니 없는 투기행동으로밖에 해석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양자computing은 불가능한 꿈도 사기술도 전혀 아니지만 아직 개발초기단계에 불과하고 위에서 언급했듯 본격 상업화는 향후 50년 주기의 후기에나 가능한 기술이므로 부디 조급한 급발진을 삼가시고 특히 별다른 기술분석의 치밀성도 없이 막연한 모험적 투자를 감행하신 분들은 즉시 철수/회수 조치를 취해주시기를 권고 드리는 바입니다.


둘째, 이와는 정반대로 아직까지도 AI기술의 불완전성을 비판적으로 강조하며 AI에 의한 인간노동력의 대체불가능성을 주장하는 ‘그냥 옛날사람들‘도 계시던데, 이는 AI에 의한 인간노동력의 대체양상에 대한 이해실패 때문에 빚어지는 착각에 불과할 뿐입니다. 인간노동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AI(기술) system의 폐쇄(회로)적 자기완결/완전성이란 근미래적으로도 불가능하지도 않지만 애초에 전혀 필요하지도 않은 것입니다.
그 대체양상이란 설령 현재처럼 완전한 독립적 완결성이 없는 자동화 system이라 해도 최소한의 극소수 핵심인자를 보조하는 비서노동만으로도 그 핵심노동력의 생산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소규모 팀노동(력)으로 기존의 대규모 필요노동(력)팀( 생산성)을 완전히 등가대체해버릴 수 있으므로 이렇게 팀단위 노동력으로 대체해 나가는 방식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의생명공학혁명이 주를 이를 5~6차 산업혁명에 대하여도 이와 같은 동일한 시대/시기착오적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일부 사람들을 위해 덧붙여 두자면, 일전에도 언급했듯 산업기술혁명은 일반적으로 제k차 혁명에서 기본틀이 제안되고 발원하여 k+1차 혁명에서 폭발적 본격발전을 이루어 결실을 얻으며 그 향후 50년 간 완성되어 나가는 pattern을 반복하기 때문에 근대자본주의 산업기술혁명은 제1차에서 증기동력기계화를 시작하여, 2차에서 전기동력기계화를 통해 동력기계화 기술혁명을 완성하였으며, 이 기술이 대체적 평균이윤률에 수렴함으로써 정체와 Stagflation, 68혁명 등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유발시킴에 따라 (장기) 20세기 후반부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과 이에 수반하여 극소전자가술혁명 및 PC와 Internet 등을 주축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정보지능기계화 혁명이라는 새로운 제3~4차 통합main-frame이 이번에 장기세기 전환이라는 위기국면에서 다시 본격시작된 4차 기술혁명에서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카봇, humanoid 등으로 비로소 결실을 맺으며 완성되어 나가는 중이라 할 수 있기에, 이말은 즉 장기21세기 중반에야 시작될 새로운 5~6차 산업혁명 Main-frame으로서의 의생명공학기술발전도 그 충격적 결실들이 충분히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적어도 100년을 기다려야 하고 그 후 50년에 걸쳐 비로소 완전한 수준으로 완성되어 나갈 것으로 전망되므로 앞서 말한 양자computimg 기술종목 투자에 대한 주의권고와 동일한 구도 하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주 엄밀하게 정교한 예측을 서술하자면, 50년 후 다시 도래할 정체위기의 내전주기에서부터 본격적인 제5차 산업혁명으로서 의생명공학기술혁명이 가동되면서 충분히 의미있는 기술적 성과들과 실험적 신산업 Business 수익모델들이 다양하게 시도되면서 가시화하기 시작하여 이에 대한 낭만적 기대와 희망으로 무차별 과잉투자가 일어났다가 거품이 터지지만 진정으로 생명력 있는 핵심기술과 Business 수익모델들은 살아남아 (완전히) 새로운 5~6차 산업(혁명)의 철도와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알짜 Main-fraim을 구축하고, 이 위에서 여러 실질적 초혁신 의생명공학기술들이 혁명적으로 연구개발되어 나가다 이다음 50년, 즉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 폭발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변수로는 지금 현재 국면에서도 이미 여러 다양한 Test 도구들과 평가지표들을 훌륭하게 통과하며 대다수의 평균적 인간들을 압도하는 IQ 148의 지능과 박사학위 수준의 지식 수준을 가진 것으로 검증된 AI와 이후 양자 Computing에 의해 충격적으로 완성될 ASI=인공초지능의 개입에 의한 기술(혁명)발전 속도의 급가속화라는 중요한 문제가 남긴 하지만, 이는 일본경제의 장기침체 이유 중 하나로 자주 지적되어 온 ‘독점자본의 신기술 발전 및 도입 방해‘라는 고질적 경향의 근원과 완전히 동일한 mechanism으로 공개/도입이 계속 은폐/유예되어 비밀리에 또는 폐쇄적으로(만) 진행되다 자본의 입장에서 도저히 신기술혁명이 아니면 안 될 위기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어쩔 수 없이 도입되기 때문에 (산업)기술혁명 주기는 여전히 자본주의 고유의 위기주기인 50±α 년 전후라는 큰 틀에서 절대 벗어나 변동하지 않지만, 다만 예측되는 새로운 산업(혁명)틀 내에서 초지능(의 개입)에 의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진폭으로 완전히 새로운 기술과 Business model들로 급속하게 변동/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이보다 더 결정적인 새로운 변수는 상업자본주의로서의 제1근대[=근세], 산업자본주의로서의 제2근대, (통속적으로 후기자본주의로 불리던) 금융화된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제3근대[=현대]와 지금 새롭게 도입되고 있는 (정보/)인지자본주의로서의 제4근대[=초현대]를 뒤이을 5~6차 산업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5.0으로서의 제5근대에서 주력산업은 더이상 지금까지의 기계기반(생산/사무)노동산업이 아니라 완전히 의생명공학산업이기에 그 무엇보다 생체주기에 결정적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므로 경기/산업/위기 주기는 인간의 1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이하)로 줄어들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입니다.

새롭게 발명된 주요 기술이 대규모 임상시험이나 시판 등을 통해 전면 도입되고 이것이 새로운 주류세대(의 핵심형질)로 완전히 발현되기 까지 30년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고, 일부기술의 특성에 따라 그것이 (표현)형질로 발현되는 것을 충분히 확인하기까지는 최소한 10년은 잡아야 하므로, 이 전혀 새로운 자본주의인 제5근대의 경기/산업/위기 주기는 각각 10년/30년/60년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입니다.

















[초고등록 ‘260225]








rhizome 2026-03-04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하도 도도한 척을 많이 해서 저렴한 병신 짓은 스스로 절제할 정도의 자존감은 갖추고 있는 줄 알았는데...
쌩양아치 짓거리도 아주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곧잘 하네...



재미는 있지만 말했듯이 날 열받게 하려면 포인트는 ‘눈깔‘이라 너도 광기로 돌아버린 눈을 하던가, ASPERGER 증후군 걸렸다고 변명해대는 싸패 살인마 눈을 하던가 둘 중 하나는 해야 돼.


그럼 그때 상대해 줄게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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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분들은 현재의 그 감정상태가 우울이든 무엇이든 간에 일단 진정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활동양식 변환의 이유를 다소 반농-조로 전달해서 오해가 좀 증폭된 측면도 있는 듯하지만,
어쨌든 언제나 전체 공동체, 특히 공의와 공동선을 위하여 매순간 가장 중요하고 긴요긴급한 일들에 미력이나마 그 안에서 최대의 헌신과 기여를 하고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나갈 것이므로 감정화 할 필요가 전혀 없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특히 계정 자체는 (일정정도) 이러한 저의 활동계획과 독립하여 테토끼 님도 이미 언급하셨듯,
˝동맹의 최종적인 최대 목적은 언제나 대중, 특히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힘든 나날의 (학업을 포함한) 노동들에 애쓰며 각자의 소중한 삶들을 꾸려 나가고 계신 모든 근로 대중과 청년 대중들, 그리고 문화 예술계의 친구들과 그들의 해방˝이므로 그에 부합하는 적절한 활동을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합니다.











rhizome 2026-03-04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뉴진스 사태에 대한 제언 >



일단 큰 방향에서 사람 목숨은 구할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에 언급을 자제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민희진 대표님께서 전향적인 결단을 해 주셨기에 이를 계기로 시간이 생명인 아이돌들의 생태계를 고려하여 양측 모두 신속하고 전격적인 상호포용적 최종해결을 마무리하고 신학년 신학기의 출발시점에서 희망찬 새출발을 도모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제언을 드립니다.


아이돌 산업은 그 매출규모 등 여러 특성들을 고려할 때 일원 일전의 지나간 손해에만 연연하여 진흙탕 개싸움과 같은 기나긴 소송전을 계속 이어나갈 경우 그 승패와 상관 없이 한번 훼손되면 도저히 그 복구가 불가능한 ‘이미지‘라는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생명 같은 자원은 물론이고, 위에서도 언급한 ‘시간‘이라는 두 번째 자원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치명상을 입으며 손상되어 갈 가능성이 매우 높은 장밀 마지막의 극단적 최악책이라 아니할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감정적 법정대립은 양측 모두에 오로지 자기 잇속 챙기기에만 급급한 장사치들일 뿐이라는 회복하기 어려운 심각한 이미지 손상을 가져옴으로써 엄청난 장기적 매출감소와 손해를 가져올 뿐 아니라, 어차피 끝까지 가봤자 현재 요동치는 전환기의 사법적, 정치적 정세구도의 긴장 속에서 이미 국회가 이 문제를 끝까지 관심을 갖고 예의주시하며 약자보호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천명한 마당에, 다시 기존과 같은 살인적 편파판결의 악습이 반복될 경우 대대적 사법개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예전처럼 전혀 일방의 완승을 낙관할 수도 없는 상황임은 명확합니다.



따라서 이쯤에서 제발 최선의 이미지로 향후 최대의 매출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전격적인 화해와 포용으로 일단 큰 틀의 합의를 마무리 해주시고, 신속히 활동을 재개하여 수익을 재창출하며 차분히 상세한 구체적 사안들의 정리를 이어나가 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 희망으로는 워낙 그간의 실적으로 증명된 잠재력과 가능성이 큰 조합이므로 최강의 정서적 안정감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최고의 컨디션과 시너지 환경 속에서 최대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멤버 전원의 완전체 단위로, 가능만 하다면 민 대표님과의 여러 유연한 협업을 통해 일단 먼저 가능한 최대수익을 지속적으로 창출하면서 그 결과물을 사후적으로 분할하는 비율을 중심으로 협의해 나가시는 것도 한 좋은 해결방법이라 생각되어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rhizome 2026-03-0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성명<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규탄한다 >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다.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이란 곳곳이 공격받고 있다.

제2차 핵 협상 동안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의 군사력을 중동에 결집시켜 이란을 압박했다. 그럼에도 이란이 2월 26일 제네바에서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지 않자 결국 군사 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란은 보복에 나섰다. 이스라엘 전역에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했을 뿐 아니라 바레인과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의 미군 기지를 향해 미사일 공격을 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공격했다는 보도도 있다. 중동 전체가 또다시 거대한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고 있다.

중동 민중에 가해지는 전쟁과 파괴의 고통은 오로지 미국과 이스라엘에 그 책임이 있다. 트럼프는 이란이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동의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이자 미국 제국주의의 중동 경비견인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게다가 트럼프의 정보 기관들은 이미 이란 정권이 당장 핵무기 보유를 추구하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 바 있다.

트럼프가 이란 정권을 사악한 정권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오로지 그 정권이 미국의 이익과 충돌을 빚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가자 전쟁 이후 현재 이란 정권은 이전 어느 때보다 약화돼 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트럼프는 이란 정권을 무너뜨리기를 바라며 중동 질서를 미국의 패권에 이롭게 재편하려 한다. 이스라엘 역시 이를 기회 삼아 중동 최강국이 되려는 야심을 실현하려 한다.

요컨대 미국과 이스라엘의 패권을 위한 모험이 중동을 거대한 전쟁의 불길에 휩싸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란 정권이 시위에 나선 자국민을 학살했다고 비난하며 공격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트럼프 또한 이민세관단속국(ICE) 등을 동원해 자국민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고, 마찬가지로 자국민을 학살·억압하는 친미 독재 정권들과,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인종 학살을 벌이는 이스라엘을 지원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 반정부 시위대의 편을 자처하며 이번 공격으로 억압적 이란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란인들의 생명과 정치적 자유는 트럼프의 관심사가 아니다. 트럼프는 이란인들 스스로 이란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승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대의의 후퇴를 뜻할 것이다. 중동에서 성공을 거둔 트럼프는 자신감을 얻고 전 세계에서 미국의 패권을 강화하려는 모험을 더욱 과감하게 벌일 것이다.

우리는 트럼프와 네타냐후가 패배하기를 바라야 한다.

2026년 2월 28일
노동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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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ement < Condemn the US and Israeli Attacks on Iran >



On February 28, the United States and Israel attacked Iran. Strikes are being reported across the country, including the capital, Tehran.

During the second round of nuclear negotiations, the US pressured Iran by mobilizing its largest military force in the Middle East since the 2003 invasion of Iraq. When Iran refused to yield to US demands in Geneva on February 26, the US ultimately resorted to military military action.

Iran has launched retaliatory strikes. In addition to missile and drone attacks across Israel, Iran targeted US military bases in Bahrain, Kuwait, and the United Arab Emirates (UAE). There are also reports of attacks on Saudi Arabia. The entire Middle East is once again being engulfed in the flames of a massive war.

The responsibility for the war and the destruction and suffering inflicted upon the people of the Middle East lies solely with the US and Israel. Trump claims that Iran must not possess nuclear weapons. However, he remains silent about Israel—the only nuclear-armed state in the Middle East and the “watchdog” of US imperialism in the region. In addition, his own intelligence services have already confirmed that the Iranian regime has no immediate intention of acquiring nuclear weapons.

Trump’s condemnation of the Iranian regime as “vicious” is driven purely by the fact that the regime has consistently clashed with US interests.

Following the two years of war in Gaza, the Iranian regime is now weaker than ever. Seeing this as an opportunity, Trump hopes to topple the regime and reshape the Middle Eastern order to favor US hegemony. Israel, too, is seizing this opportunity to realize its ambition of becoming the dominant power in the Middle East.

In short, the reckless pursuit of hegemony by the US and Israel is setting the Middle East ablaze.

Trump justifies the attack by saying that the Iranian regime has massacred its own citizens who have protested. However, Trump himself is waging a war against people within his own borders using agencies like ICE (Immigration and Customs Enforcement). He also supports pro-US dictatorships that massacre and oppress their own citizens—and above all, he supports Israel as it carries out a horrific genocide.

Trump poses as an ally of Iranian anti-government protesters, arguing that this attack is necessary to overthrow the oppressive regime. But the lives and political freedoms of Iranians are of no concern to him. Trump will not allow the Iranian people to determine their own destiny.

Most importantly, a victory for Trump and Netanyahu would mean a devastating setback for the Palestinian cause. Should he be emboldened by success in the Middle East, Trump will pursue even more aggressive adventures to strengthen US hegemony worldwide.

We must seek the defeat of Trump and Netanyahu.

28 February 2026

Workers’ Solid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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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규탄한다! 지금 당장 공격을 멈춰라!
[Press Conference] CONDEMN the U.S. & ISRAEL‘S ATTACK on IRAN! STOP the ATTACK RIGHT NOW!

👉 일시: 3월 2일(월) 낮 12시
2nd Mar.(Mon) 12:00 pm

👉 장소: 주한 미국 대사관 앞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뒤편)
U.S. Embassy in Korea(Seoul)





[혹시 있을지 모를 부정적 사태에 차단 등 현명한 대처를 해주실 수 있으리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긴급히 동참을 원하시는 분들을 위해 아침판에 번호를 공개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rhizome 2026-03-02 1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성명 < 협상 짓밟고 폭격 택한 전쟁광 트럼프와 네타냐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



미국과 이스라엘이 어제 이란을 폭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임박한 이란의 위협을 제거함으로써 미국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이번 공격의 목적이라고 주장했고, 이스라엘 또한 이번 공격이 “예방 타격”이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주장은 궤변이다. 이 공격은 명백히 국제법을 위반한 침략 행위이고 전쟁 범죄다.

미국과 이란은 핵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협상 과정이 난항을 거듭했다곤 하나, 협상의 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핵 협상이 불만족스럽다”고 언급하자마자 이란을 향한 침략이 벌어진 것이다.

최소한의 국제규범조차 작동하지 않는 트럼프의 충동적 침략전쟁이 도대체 몇 번째인가. 전쟁광 트럼프의 임기 동안 세계는 끊임없이 전쟁의 포화에 휩싸이고 있을 뿐이다. 의회 승인도 받지 않고 UN과 국제법도 무시한다. 그러면서 더러운 입으로 ‘민주주의’를 말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예방전쟁’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지만, 그들의 예방전쟁으로 학살당한 것은 이란의 초등학생들이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은 170명이 재학 중인 여자초등학교를 공습했고, 그 결과 최소 153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선제 공격에 따른 이란의 미군 거점 공격으로 민간인 피해는 거듭 확산되고 있다.

결국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드러난 대량살상무기[WMD=Weapons of Mass(ive) Destruction] 제거를 통한 테러차단이라는 거짓 명분으로 이라크 본토에서 예방전쟁을 강행했던 조지 부시 대통령의 미국을 기억하라. 명분 없는 불법 침공으로 이라크는 완전히 황폐화됐다. 이라크를 비롯한 이슬람 세계는 미국을 향한 불타는 증오심을 품고 ‘IS’를 탄생시켰다. 미국은 사막의 수렁에 빠져 10년간 헤어나오지 못했고, 미군이 떠난 이라크는 내전을 거쳐 아직까지 혼란을 다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선제타격 하겠다고 벌어진 23년간의 참상이다.

역사가 증명하듯, 외세의 침략은 이란 민중의 주체성을 박탈하고, 독재에 명분을 주어 이란 지배세력을 단결시키고, 민주세력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모든 전쟁의 결과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공습은 40% 밑으로 떨어진 국내 정치 지지율을 회복하기 위한 침략임이 분명해 보인다. 무고한 생명과 유족들의 피눈물을 희생양으로 삼는 미국 트럼프 정권과 군부, 또한 가자지구에서의 학살에 이어 또다시 이란 민중을 겨냥하고 있는 이스라엘 권력과 군부 집단은 살인을 밥 먹듯 자행하는 학살 범죄 집단이다.

정의당의 입장은 확고하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무자비한 민간인 학살로 이어지는 침략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적 무력 사용에 대해 국제법에 근거한 분명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유엔을 통한 즉각적인 휴전과 민간인 보호 조치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2026년 3월 1일

정의당



rhizome 2026-03-02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미국과 Isrel의 Iran 공습에 대한 최소주의 논평 >




모든 판단을 유보하고 객관중립적으로 접근하더라도 이번 Iran 공습의 가장 명백하고 확실한 최대문제는 모든 국제법 및 의회승인 등 필수적 국내법 절차들을 모두 무시한 불법침략이라는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Iran 정권 및 체제에 대한 평가와 민주화에 대한 논란까지를 아무리 십분 고려한다 하더라도, 그 개입은 우선 공신력 있는 미국내 분립적 견제권력들의 충분한 검토와 승인은 물론 그 외에도 국제기구와 제도들을 통해 숙의와 동의를 거쳐 그러한 국제기구들을 통한 이성적으로 절제된 최소개입이어야만 했다는 점입니다.

오직 그때에만 의혹에 휩싸인 진의와 야욕, 선의를 초과하는 민간인 피해라는 부정적 결과들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었을 것이며, 또 그래야만 Iran 민중들의 아래로부터의 거대한 협력에 의거해 정말 실질적으로 정권이나 체제의 붕괴 및 교체 가능성도 비로소 열릴 수 있는 유일한 경로일 뿐 아니라, 이후의 대안 정권 및 체제도 일방적인 꼭두각시 친미정권의 식민주의적 이식이 아니라 오직 Iran 민중들의 자발적 의사에 입각한 자주적 민주정권을 수립할 국민선거로 이어지도록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상의 문제점들은 그 어떤 입장에 서 있든, 좌우 관계없이 절대 부인할 수 없는 치명적이고 원천적인 근본문제라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더욱 크나큰 진짜 문제는 이런 각종 의혹에 휩싸인 완전히 불법적이며 일방적 독단적인 침공행위를 침묵과 방관 속에 용납, 묵인하게 되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세계사의 전시위기기 위상국면에서 언제든 삽시간에 도저히 걷잡을 수 없는 3차 세계대전으로 급속하게 비화하게 될 높은 개연적 위험 속으로 전 인류가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사태에 대한 침묵이 당장 다음번에는 한국정부와 민중의 그 어떤 동의도 없는 완전히 독단적인 북•중 침공에 의한 한반도 화약고 폭발과 전쟁발발로도 언제든 이어지지 않는다는 보장도 전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rhizome 2026-03-03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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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3-03 0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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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3-04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공격에 대한 진보당 대변인 브리핑 >
: ˝협상은 장식인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선제공격 규탄한다!˝



28일, 이스라엘이 이란 수도 테헤란 등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이는 이란의 주권과 지역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한 국제법 위반행위입니다.

미국은 지난 6월에 이어 또다시 협상 중에 선제공격을 벌였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협상’은 군사행동을 위한 ‘장식’이며, 이란에 요구한 것은 양보가 아닌 일방적 굴복이라는 점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습니다.

이번 중동 사태의 책임은 명백히 미국과 이스라엘에 있습니다. 이란은 NPT 회원국이 행사할 수 있는 ‘평화적 핵이용’ 권리를 행사했으며, 정작 불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미국과 이스라엘입니다. 이란의 우라늄 60%농축은 미국이 말하는 핵무기 위협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심지어 20%이하까지 희석하겠다고 했지만, 미국은 오직 영토 밖 반출만을 강요했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전쟁 확산의 위험입니다. 이란은 미국이 선제공격할 경우, 중동 내 미군기지 타격을 예고하며 지역전쟁도 불사하겠다고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과 이스라엘은 선제공격을 감행했습니다. 그 결과 발생할 피해와 불안은 민간인과 지역 전체가 감당해야 할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교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정부당국의 빠른 조치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ICC에 제소된 학살자 네타냐후와 전쟁범죄자 트럼프를 통제하지 못한 결과, 이들의 전쟁행위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두 전쟁 범죄자를 규탄하고 통제하기 위한 연대에 나서야 할 것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모든 군사공격을 즉각 중단하십시오. 국제질서와 평화를 위협하는 협상파기와 선제공격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습니다.

2026년 2월 28일
진보당 대변인 신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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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진보당계 언론논평 <미국의 이란 공습, 주권 유린한 명백한 전쟁범죄>


1a.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사망 보도와 ‘장대한 분노’ 작전의 실체
1b. 침략의 현장: 화염에 휩싸인 테헤란, 여자초등학교 공습
2a. 협상은 기만이었다... “장식물에 불과한 외교”
2b. 47년 제국주의 파괴 공작의 정점
2c. 누가 진짜 압제자인가
3. 침략전쟁에 이란과 함께 서야 한다


1a.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사망 보도와 ‘장대한 분노’ 작전의 실체

미국과 이스라엘이 2월 28일(현지 시각) 이란을 향해 대규모 군사 침략을 감행했다. ‘장대한 분노(Operation Epic Fury)’라는 작전명 아래 자행된 이번 공격으로 이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제국주의 침략 세력의 무도한 폭격이 이란의 주권을 유린한 가운데, 중동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로 빠져들었다.

1b. 침략의 현장: 화염에 휩싸인 테헤란, 여자초등학교 공습

이란 현지 언론과 외신을 종합하면, 미·이스라엘 연합군은 28일 낮 기습적인 공습을 시작했다. 테헤란에 위치한 최고지도자 집무실을 비롯해 타브리즈, 콤, 카라지, 코람아바드, 케르만샤, 일람 등 이란 전역의 주요 도시가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받았다. 이란 남부의 호르모즈간주 미나브의 한 여자초등학교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을 받았다.

이란 국영 ‘이란의 소리’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번 공습으로 사망한 사실을 보도했다. 이와 함께 정보부 고위 관리 4명과 알리 샴카니 최고지도자 고문, 그리고 다수의 혁명수비대(IRGC) 지휘관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번 작전이 정밀 타격이라고 주장하지만, 주권 국가의 지도부를 겨냥한 명백한 참수 작전이자 테러 행위다.

이란 역시 즉각적인 보복에 나섰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텔아비브를 향해 탄도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미군 기지와 이라크, 시리아 내 미군 시설을 타격했다. 특히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 국제공항이 이란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시설 일부가 파괴되고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전쟁의 불길은 국경을 넘어 번지고 있다.

2a. 협상은 기만이었다... 진보당 “장식물에 불과한 외교”

이번 사태에서 가장 분노를 자아내는 지점은 미국의 비열한 기만술이다. 미국은 지난 6월에 이어 또다시 ‘협상’이 진행 중인 와중에 선제공격을 감행했다.

진보당 신미연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에게 ‘협상’은 군사행동을 위한 장식물이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되었다”라고 강력히 규탄했다. 이란은 NPT(핵확산금지조약) 회원국으로서 평화적 핵 이용 권리를 행사해 왔고, 우라늄 농축도를 20% 이하로 희석하겠다는 타협안까지 제시하며 대화에 임했다. 하지만 미국이 이란에 요구한 것은 양보가 아닌 ‘일방적 굴복’이었다.

국제법과 외교적 절차를 무시하고 협상 테이블 밑에서 칼을 갈아온 미국의 행태는 국제 사회의 신뢰를 뿌리째 흔드는 범죄다. 신 대변인은 “이번 사태의 책임은 명백히 미국과 이스라엘에 있으며, 이들이 자행한 선제공격은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2b. 47년 제국주의 파괴 공작의 정점

미국의 이란 침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국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란을 파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1980년대 이라크를 대리인으로 세워 100만 명을 살해한 전쟁, 1988년 이란 민간 여객기를 격추해 290명을 살해하고도 “결코 사과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조지 H.W. 부시의 오만함이 오늘날 트럼프의 ‘이란 침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은 물리적 폭격에 앞서 경제적 살인을 먼저 저질렀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자백했듯, 미국은 의도적으로 달러 부족을 야기해 이란 경제를 파괴하고 민중의 고통을 정권 교체의 도구로 이용했다. CIA와 NED는 스타링크와 소셜 미디어를 동원해 이란 내부의 혼란을 부채질했다. 이번 공습은 이러한 장기적인 파괴 공작의 종착역이자, 제국주의 질서를 강요하기 위한 악랄한 발악이다.

2c. 누가 진짜 압제자인가

서방 언론은 이란의 인권을 들먹이며 이번 침략을 미화하려 하지만, 정작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을 가두고, 이주민 아이들을 철창에 가두며, 팔레스타인 학살을 지원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 제국주의는 주권 국가가 스스로 어떤 체제에서 살 것인지 결정할 권리, 즉 ‘자결권’을 원천적으로 부정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미국에 복종하는 ‘사대 정권’이거나, 미국의 이익을 우선하는 ‘매판 정권’일 뿐이다.

3. 침략전쟁에 이란과 함께 서야 한다

미 제국주의의 본질은 침략과 파괴이며, 이들에게 평화적 협상은 침략을 위한 기만 전술에 불과하다. 침략자가 지른 불길은 이란 국경 안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사망 보도 이후 이란 혁명수비대는 차기 지도자 선출을 서두르며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침략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모든 군사 공격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피 흘리는 이란 민중과 함께 서는 것만이 제국주의의 광기를 멈추는 유일한 길이다. 침략자의 폭탄은 이란의 건물을 무너뜨릴 수 있을지언정, 자주를 향한 민중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국제사회는 전범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강력히 규탄하고, 주권 수호를 위한 연대의 길에 나서야 한다.




https://www.minplus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497





[초고등록 ‘260302]

rhizome 2026-03-03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규탄 긴급 행동—재한 이란인·미국인 등 참가 >




0. 찬바람이 불고 빗방울이 흩날리는 광장에 모인 사람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에 대한 공분이 국제적으로 일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항의 행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한국에서도 3월 2일(월) 정오 서울 광화문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규탄하는 긴급 행동이 열렸다. 비바람이 부는 악천후에도 100명 가까이 참가했다.

뜻깊게도 재한 이란인과 재한 미국인이 나란히 섰고, 영국·파키스탄 등에서 온 다양한 국적과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한국의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가들도 함께했다. 울산·원주 등지에서 새벽차를 타고 온 노동자들도 있었다.

이들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구호가 광화문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란 공격 지금 당장 멈춰라!”



1. 재한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리 영화감독

재한 이란인인 코메일 소헤일리 영화감독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연설했다. “최근 몇 달 동안 수많은 이란인들이, 소년·소녀와 학생과 영화감독과 교사들이 죽었습니다. … [그 사람들을] 죽인 이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지난해 이란이 공격받을 당시 저는 이란에 있었습니다. 저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 제가 지난달 이란 거리에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눈을 뜨고 생각합니다. 이란 정권의 잔혹함을 경험했더라도 전쟁에 덜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쟁은, 또 다른 무고한 민간인의 죽음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저는 순진하지 않습니다. 저는 폭탄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다고, 자유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존엄을 위한 이란에서의 투쟁을 써 내려가는 것은 폭탄이 아닙니다. 그 투쟁을 써 내려가는 것은 이란의 민중이고, 그 투쟁은 그들 모두의 죽음을 넘어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소헤일리 감독은 구호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전쟁 반대! 외세 개입 반대!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란에 자유를! 모든 정치수를 석방하라! 전쟁 반대! 민주주의 만세!”

그의 발언에 참가자들은 구호와 환호로 연대를 표했다.(소헤일리 감독의 발언 전문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2. 재한 미국인 라이언 씨

바로 이어서 발언한 재한 미국인 라이언 씨는 자국 정부를 향해 “이란에 대한 미국의 이유 없는 선제 공격을 최대한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연설을 시작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허구적인 이란의 위협에 대응한다는 ‘선제적 공격’이라는 논리로 인명 살상을 정당화하려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은 사실과 전혀 다릅니다.”

라이언 씨는 이스라엘이야말로 중동의 유일한 핵무장 국가임을 지적하며 “진정한 위협은 과연 누구인가” 하고 되물었다.

“이번 이란 공격은 쿠바 석유 금수, 불법적인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 어처구니 없는 그린란드 병합 위협,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종학살 지원 등 미국 정부가 자행한 일련의 폭거의 최신 사례일 뿐입니다. 모든 미국인이 들고일어나 맞서 싸워야 합니다.”

라이언 씨는 “이란인들의 해방과 미국인들의 번영은 모두 미국·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자들에 맞서 싸우는 데서 시작된다”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3.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교사들’의 공동운영진인 조수진 교사

‘팔레스타인인들과 연대하는 교사들’의 공동 운영진의 일원인 조수진 교사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초등학교를 폭격한 것을 규탄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평화와 정의를 가르치는 우리 교사들은 무너진 교실과 잿더미가 된 학교를 보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예의도 없고 최소한의 민주주의와 규범마저 내던지고 야만적 폭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이란의 민주주의를 운영할 자격이 있습니까?

조수진 교사는 “중동과 전 세계를 전쟁 위험에 빠뜨리고 팔레스타인 해방의 대의를 꺾는 저들을 교사들은 두고 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4. 노동자연대 이원웅 활동가도 침략자들의 ‘민주주의’ 운운은 위선임을 지적하며,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모으자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승리하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인종학살에 더 박차를 가할 것이고, 자신감을 얻은 트럼프는 쇠락하는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더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할 것입니다. 이는 이곳 한반도도 위험에 빠뜨릴 것입니다.”


5.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홍덕진 목사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홍덕진 목사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의 긴급 성명서를 소개하며 연설했다.

“이스라엘의 끝없는 점령 야욕과 이를 비호하며 서아시아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결합돼 무고한 민중들의 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홍덕진 목사는 제국주의 침략 중단을 요구하며 “평화를 위해 전 세계가 연대에 나설 것”을 호소했다. “전쟁의 고통은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무고한 시민에게, 민중에게 돌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 평화를 갈구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저항할 것입니다.

“이란을 비롯한 서아시아의 평화는 외부의 무력이 아닌, 해당 지역 민중들의 자결권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

홍덕진 목사는 이재명 정부가 이 전쟁에 “어떤 형태로도 가담하거나 봉사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며, “오직 정의에 기초한 평화(Pax Christi)만이 중동의 비극을 끝낼 수 있다”는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의 성명을 인용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6. 사회를 맡은 노동자연대 양효영 활동가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또 이란인들의 진정한 해방을 위해” 행동을 이어가자고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집회 제목인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규탄, 전쟁 즉각 중단을 다시 한 번 구호로 외치며 이후 행동을 다짐했다.





저자: 김준효 @https://ws.or.kr/article/38720



rhizome 2026-03-03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재한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이 말한다: “폭탄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없습니다” >



이것은 3월 2일 정오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규탄 긴급 행동에서 코메일 소헤일리 감독이 한 연설 전문이다.


우리는 모두 전쟁에 반대합니다. 누군들 아니겠습니까? 심지어 도널드 트럼프도 대선 선거운동에서 “전쟁 안 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저 역시 전쟁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이 “하지만”이라는 말 다음에 수많은 말들이 이어집니다. 저 같은 평범한 사람도, 권력자들도 그럴 것입니다.

저는 전쟁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저는 눈을 감고 상상해 봅니다….

저는 평범한 이란 사람 카디제 알리푸르를 기억합니다.

조그만 쪽지에 글을 쓰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조용히,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썼겠지요. 자신의 글을 누구도 읽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지난 달 추운 겨울, 우리가 견뎌 내고 있는 바로 이 겨울에 그녀는 카라지에 있는 집을 나섰습니다.

등 뒤로 문이 닫힐 때, 그날이 생애 마지막 날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그녀에게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입니다:

그녀는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주머니에는 바로 그 쪽지가 있었습니다. 피로 얼룩진,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그 쪽지 말입니다.

그 쪽지에 담긴 그녀의 마지막 말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란인이고, 노동계급의 자녀입니다. 제가 오늘 거리에 나선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 저의 고통을 비웃는 관료 당신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이란인들은 권리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우리는 폭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외세의 꼭두각시가 아닙니다.

“우리는 노동계급의 자랑스런 아들딸입니다. 우리는 긍지를 가지고 시위에 나섭니다. 우리는 부패한 특권층 가문들에게서 우리 나라를 되찾고자 나섰습니다.

“우리는 거리를 지키며 한목소리로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우리는 이란인이다.’

“우리는 이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여기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투쟁할 것입니다. 그래야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우리는 이란을 되찾을 것입니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그녀는 쪽지에 자신의 이름을 적지 않았습니다.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서명했습니다.

“이란의 자녀.”

카디제의 이야기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녀 한 명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수많은 이란인들이, 소년·소녀와 학생과 영화인들과 교사들이 죽었습니다.

수많은 이름들.

수많은 목숨들.

오직 평범한 삶을 원했을 뿐인 사람들.

저는 눈을 감고 질문해 봅니다. 하지만 전쟁, 카디제를 죽인 자들을 상대로 한 전쟁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모든 이야기들이 카디제와 같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소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저는 그녀를 흔한 이란 이름인 ‘아레주’라고 부르겠습니다. 페르시아어로 ‘소망’, ‘꿈’이라는 뜻입니다. 그녀가 살아온 날은 채 1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토요일 그녀는 집을 나섰습니다.

그녀는 쪽지를 쓰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죽을 수도 있다고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가 학교에서 돌아올 것이라 믿고 점심상을 차렸습니다.

그녀는 그 날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 공격을 시작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떤 도발도 없었는데 자행된 그 불법적이고 기습적인 공격의 첫 몇 시간 사이에 그녀의 학교가 폭격당했습니다.

아레주와 같은 반 많은 친구들이 그날 집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녀를 위한 점심상은 주인을 잃은 채 그대로 남았습니다.

저는 눈을 감고 카디제와 아레주를 생각합니다.

테헤란의, 텔아비브의, 워싱턴 DC의 결정권자들 중 어느 누구도 카디제와 아레주의 생명을 그저 숫자 이상으로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

아니, 우리는 ─ 그들에게 통계 수치에 불과합니다.

지난해 이란이 공격받을 당시 저는 이란에 있었습니다.

저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저도 하나의 숫자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제가 지난달 이란 거리에 있었다면 마찬가지로 죽을 수 있었습니다.

이란인들이 원하는 것은 매우 단순합니다: 평범한 삶.

그러나 그것조차 빼앗겼습니다.

1905년 이래로 한 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이란인들은 법치와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해 왔습니다.

상이한 세대, 상이한 운동, 상이한 전망이 있지만, 하나의 공통된 사명이 있습니다:

존엄과 긍지가 있는 나라에서 사는 것.

아니오 ─ 저는 눈을 뜨고 생각합니다. 이란 정권의 잔혹함을 경험했더라도 전쟁에 덜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전쟁은, 또 다른 무고한 민간인의 죽음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이란의 독재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전쟁에 반대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요.

아니오 —

저는 순진하지 않습니다.

저는 폭탄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저는 폭탄으로 자유의 씨앗을 심을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카디제를 위한 자유든, 아레주를 위한 자유든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이란의 역사를 공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선출한 정부를 1953년에 외세가 무너뜨리고 독재로 대체한 것을 기억합니다.

우리는 우리 지역에 외세가 개입하는 것을 봐 왔습니다.

우리는 그 대가가 무엇인지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내의 탄압 때문에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도 압니다.

제가 발언하는 지금 이 순간에 어느 도시가 폭격을 당하고 있는지, 또는 누가 교수대에 오르고 있는지 저는 모릅니다.

제가 아는 것은 어디선가 또 다른 어머니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자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한 세기 넘도록 이란인들은 법과 존엄과 자결권을 위해 투쟁해 왔습니다.

제국들이 세워지고 사라졌습니다.

독재자들이 권좌에 오르고 또 몰락했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향한 염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염원은 그 어느 정부보다도 오랜 것입니다.

그 염원은 그 어느 폭탄보다도 강한 것입니다.

그리고 테헤란의, 텔아비브의, 워싱턴 DC의 권력자들이 사라지고 오랜 후에도 ─

오늘날 냉혹한 힘의 셈법이 잊혀지고 오랜 후에도 ─

카디제와 아레주 같은 이름들은 남을 것입니다.

존엄을 위한 이란에서의 투쟁을 써 내려가는 것은 폭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투쟁을 써 내려가는 것은 이란의 민중입니다.

그 투쟁은 그들 모두의 죽음을 넘어 길이길이 남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감았던 눈을 뜨고, 크고 또렷하게 외칩니다.

전쟁 반대!

외세 개입 반대!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란에 자유를! 모든 정치수를 석방하라! 전쟁 반대! 민주주의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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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An Iranian Filmmaker living in Korea Speaks Out: “I do not believe bombs create democracy”>@https://ws.or.kr/article/38733
저자: SOHEILI, Komeil[코메일_소헤일리] 재한 이란인 영화감독
역문: https://ws.or.kr/article/38721
국역: 김준효






rhizome 2026-03-05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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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3-04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미국•이스라엘의 이란불법침공 규탄 평화행동 >



- 일시, 장소 : 2026년 3월 5일(목) 오후 6시, 이스라엘 대사관 앞(청계광장 인근)
- 주최 : 자주통일평화연대, 전국민중행동, 트럼프위협저지공동행동(준)
- 행진코스 : 청계광장 -> 미 대사관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테헤란을 포함한 이란 전역을 폭격하며 주권 국가를 무참히 공격했습니다.
한 초등학교 역시 피할 수 없었습니다. 공습으로 인해 수업 중이던 학생 등 16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불과 하루 전까지 미국과 이란은 제네바에서 3차 핵협상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외교적 협상은 침략 전쟁을 자행하기 위한 기만전술이었습니다.
국제 질서와 평화를 파괴한 미국과 이스라엘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강력히 규탄하기 위한 평화행동을 진행합니다✊








rhizome 2026-03-04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긴급 공개 토론회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 — 격랑의 중동은 어디로?>

👉 연사: 김인식 (〈노동자 연대〉 발행인)
👉 일시: 3월 5일(목) 오후 7시 30분
👉 장소: 서울 교원투어빌딩 지하 4층 강연장(종각역 5번 출구 도보 5분)

※ 전문 통역사의 영어·아랍어 동시통역 제공

미국·이스라엘이 이란을 전격 공습하고 이란도 보복 공격에 나서면서 중동이 또다시 격랑에 휩싸이고 있습니다. 제5차 중동 전쟁으로 확전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제기됩니다.
트럼프는 이란 국민을 위해 정권 교체를 하겠다고 주장합니다. “폭격을 통한 해방”이라는 제국주의자들의 상투적 거짓말은 차치하더라도, 과연 트럼프 정부는 이란 정권 교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이 전쟁이 중동과 세계 질서에 미칠 파장은 무엇일까요? 전쟁 없는 세계를 바라는 사람들은 현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토론하려 합니다.

👉 참가비: 6,000원
👉 주최: 노동자연대 서울 지역 모임들
👉 문의: 010-4909-2026 / wsorg@ws.or.kr








rhizome 2026-03-0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미국, 영국, 파키스탄, 이라크, 한국 등 세계 곳곳에서 이란 공격 반대, 미국 반대 시위가 일다[*1] >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을 반대하는 항의 시위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다.

1.
2월 28일 공격 직후 영국에서는 전쟁저지연합이 긴급하게 행동을 소집해 런던에서 수백 명이 모였다. 전쟁저지연합은 반핵군축운동(CND)와 함께 3월 7일에 집중 집회를 잡았고, 이후에도 행동을 이어 나갈 계획이다.

미국의 ‘파이트 백 뉴스’ 웹사이트에 따르면, 백악관 앞에서도 2월 28일 당일 행동이 소집돼 수백 명이 모였다. 인근에서는 ‘왕은 없다’ 시위를 주도해 온 50501 등이 이전에 계획한 집회와 행진을 벌이고 있었는데, 거기에 참가하던 1000여 명의 시위대가 때마침 열린 대이란 공격 항의 행진에 합류해 훨씬 많은 인파가 워싱턴DC 도심을 행진하며 트럼프의 이란 공격에 항의했다.



2. 국제적 반전 운동이 미국 제국주의를 멈춰 세울 희망이다

2a. 미국 시카고 등지에서 열린 반전 시위
다음 날인 3월 1일에도 미국 수십 개 도시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일어났다. 워싱턴DC에서는 또다시 수천 명이 행진하고 시카고·시애틀·보스턴·로스앤젤레스 등지에서도 수백 명이 모였다. 모든 집회에는 팔레스타인 깃발이 나부꼈고, ‘팔레스타인 청년 운동’(PYM) 활동가들이 집회 사회를 보는 등 두각을 보였다.

한편, 같은 날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천여 명의 시위대가 미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하고, 자국 정부의 공모에 항의했다. 크레타섬의 기지가 이란 공격의 발진 기지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의 전쟁 반대 시위는 더 클 수도 있었다. 이미 그리스에서는 군비 증강과 그에 따른 긴축에 맞선 투쟁이 크게 벌어지고 있다. 전날에도 신자유주의 긴축 재정이 낳은 템페 열차 참사 3년을 기해 대규모 파업과 시위가 벌어졌었다. 그러나 그 행동을 조직한 노동조합 연맹은 이후 미국 대사관으로 향하는 행진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


2b.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의 반전 시위들
이라크와 파키스탄에서도 미국과 이스라엘에 항의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다. 3월 1일 파키스탄에서는 시위대가 미국 영사관을 공격했고, 당국이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9명이 숨지고 34명이 다쳤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도 수백 명이 미국 대사관 인근에 집결해 경찰과 충돌했다. 미국에 협조하면서도 이란과도 연계가 있던 이라크 정부는 전쟁 전부터 이미 심각한 정치 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이번 전쟁은 그 위기를 더 격화시킬 공산이 크다.

근래에 몇 차례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모로코에서도 ‘팔레스타인 지지 및 대이스라엘 외교 정상화 반대 모로코 전선’이 대이란 전쟁 반대 시위를 소집했다. 그러나 모로코에서는 당국이 시위를 재빠르게 차단했다. 시위 장소를 봉쇄하고 행인들을 검문해 활동가들을 체포한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계속될수록 중동의 정권들은 미국과의 공모에 대한 갈수록 커지는 대중의 분노에 직면할 수 있다. 게다가 전쟁이 악화시킬 생계비 위기가 여기에 더 기름을 부을 수 있다.


3. 한국의 반전 시위들
한국에서도 3월 2일 주한 미국 대사관 앞에서 행동이 열리는 등 대이란 전쟁에 맞선 움직임이 일고 있다.(관련 기사: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규탄 행동’[*2]) 이런 움직임을 계속 키워야 한다.


이란 공격 반대 시위에서 팔레스타인 깃발과 케피예를 갖고 나오는 팔레스타인 연대자들도 많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https://ws.or.kr/article/38743
[*2] https://ws.or.kr/article/38720













rhizome 2026-03-0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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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izome 2026-03-05 19: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2026지방선거 정치개혁 촉구 시민대행진 >


[요지]

일시: 2026. 3. 5(목) 오전 11시
장소: 영등포역 앞 출발 ▶국회 도착

제안단체: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전국민중행동/전국시국회의
공동주최단체: 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정의당,녹색당 등등


📝행진 참여 신청 https://forms.gle/wMkTJtcWA6pnKhTJ6


대회취지:
2026 지방선거가 100일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포함해 국회의 논의는 지지부진합니다.

국회의 적극적인 정치개혁 의제 논의를 촉구하고,
시민들에게 선거제도 및 정치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도심 행진을 진행합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행진 참여 신청 https://forms.gle/wMkTJtcWA6pnKhTJ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상세]

발 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전국민중행동 · 전국시국회의
제 목: 2026지방선거 정치개혁 촉구 시민대행진
날 짜: 2026. 3. 5(목). 11시
장 소: 서울 영등포역 앞(기자회견 후 국회로 행진)


1. 취지와 목적: 지방선거제도 바꿔 비례성·다양성·대표성 높이자!

* 2026년 지방선거를 맞아 시민사회단체와 조국혁신당 · 진보당 · 기본소득당 · 사회민주당 등 개혁진보4당은 기초의회 2인 선거구 폐지, 광역의회 비례대표 확대, 광역자치단체장 결선투표제 도입, 성평등 공천 등 정치개혁 과제를 합의하고 국회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공동 기자회견, 토론회 등을 추진한 바 있습니다.
* 특히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방선거 제도개혁을 위해 광주, 대구, 제주를 비롯한 8개 광역시도 지방의회 등이 처한 현실과 문제점, 대안을 제시하는 입법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송기헌 위원장을 면담하는 등 정치개혁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국회는 여전히 요지부동입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역대 가장 늦게 구성되었고, 지방선거가 100여 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 기초의회 2인 선거구 폐지 등 선거제 개혁은 안건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국민중행동, 전국주권자시국회의 등 시민사회단체들과 조국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정의당, 녹색당 등 정치개혁에 동의하는 원내외 6개 정당은 국회의 적극적인 정치개혁 의제 논의를 촉구하고 시민들에게 지방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2026 지방선거, 정치개혁 촉구 시민대행진을 진행합니다. 시민대행진에는 시민사회단체 대표자와 회원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정의당 권영국 대표, 녹색당 김찬휘 공동대표를 비롯해 원내 4당 국회의원과 각 정당 당직자들이 참여할 예정입니다. 시민대행진 이후 시민사회단체들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등과의 면담도 추진합니다.

2. 개요
* 제목 : 2026 지방선거, 정치개혁 촉구 시민대행진
* 일시장소 : 2026. 3. 5.(목) 11시, 서울 영등포역 앞 광장(국회로 행진)
* 공동주최 :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 전국민중행동 · 전국시국회의 · 조국혁신당 · 진보당 · 기본소득당 · 사회민주당 · 정의당 · 녹색당
* 프로그램
* 서울 영등포역 광장 집결 및 출발 기자회견
* 행진 : 서울 영등포역 → 국회
* 마무리 기자회견 : 국회 본청 계단
* 프로그램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 문의 : 참여연대 / 전국민중행동 / 전국시국회의







rhizome 2026-03-0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2026년 제41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합니다 >



빛의 혁명을 완수하라!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모이자 광장으로, 여성주권자의 힘으로!

- 일시 : 2026년 3월 7일(토) 11:00-17:00
ㆍ부스 프로그램: 11:00~
ㆍ기념식 및 행진: 14:00~

- 장소 : 경복궁역 4번 출구 광화문 서십자각
- 시민참여부스 배치도 및 상세내용은 👉 https://women21.or.kr/notice/30059

- 주최 : 3·8 세계여성의날 기념 제41회 한국여성대회 조직위원회
- 주관 : 한국여성단체연합



지난해 여성들은 한국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의 상황에서 돌봄과 연대의 힘으로 광장에 모여 성평등 민주주의로의 빛나는 진전을 함께 이루어냈습니다.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을 시도한 대통령을 파면하고 내란을 종식시킨 여성들은 다양한 정체성에 따른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 누구나 존엄하게 살아가는 성평등한 세상을 함께 그려나갔습니다.

그러나 광장에서 함께 그렸던 성평등한 내일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빛의 혁명의 광장에서 외친 수많은 메시지들은 단순히 구호로만 끝나서는 안됩니다.

이에 2026년, 제41회 한국여성대회는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전히 강고한 정치 영역에서의 성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여성 주권자들의 메시지를 모아내고, 차별과 혐오 없는 사회를 위해 다양한 성평등 의제를 이야기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서로에 대한 연대를 바탕으로 성평등 사회를 그려나간 여성들의 단단한 연대와 힘을 드러낼 것입니다.

3월 7일 토요일! 빛의 혁명을 완수하기 위해, 광장에서 뵙겠습니다!






여성대회에 응원의 힘을 보내주세요




#38세계여성의날 #38여성대회 #한국여성대회
#빛의혁명을완수하라 #성평등이민주주의의완성이다
#모이자광장으로 #여성주권자의힘으로
#제41회한국여성대회 #한국여성단체연합
#성평등 #민주주의 #성평등실현 #성차별철폐
#MoveForward #MoveForwardKorea
#InternationalWomensday2026






rhizome 2026-03-05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제5~6차 산업혁명의 주축을 이룰 의생명공학기술혁명에 대한 예측 서술이 좀더 정성을 들여 상세화 되었기에 공지합니다.





(셋째, 의생명공학혁명이 주를 이를 5~6차 산업혁명에 대하여도 이와 같은 동일한 시대/시기착오적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일부 사람들을 위해 덧붙여 두자면, 일전에도 언급했듯 산업기술혁명은 일반적으로 제k차 혁명에서 기본틀이 제안되고 발원하여 k+1차 혁명에서 폭발적 본격발전을 이루어 결실을 얻으며 그 향후 50년 간 완성되어 나가는 pattern을 반복하기 때문에 근대자본주의 산업기술혁명은 제1차에서 증기동력기계화를 시작하여, 2차에서 전기동력기계화를 통해 동력기계화 기술혁명을 완성하였으며, 이 기술이 대체적 평균이윤률에 수렴함으로써 정체와 Stagflation, 68혁명 등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유발시킴에 따라 (장기) 20세기 후반부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과 이에 수반하여 극소전자가술혁명 및 PC와 Internet 등을 주축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정보지능기계화 혁명이라는 새로운 제3~4차 통합main-frame이 이번에 장기세기 전환이라는 위기국면에서 다시 본격시작된 4차 기술혁명에서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카봇, humanoid 등으로 비로소 결실을 맺으며 완성되어 나가는 중이라 할 수 있기에, 이말은 즉 장기21세기 중반에야 시작될 새로운 5~6차 산업혁명 Main-frame으로서의 의생명공학기술발전도 그 충격적 결실들이 충분히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적어도 100년을 기다려야 하고 그 후 50년에 걸쳐 비로소 완전한 수준으로 완성되어 나갈 것으로 전망되므로 앞서 말한 양자computimg 기술종목 투자에 대한 주의권고와 동일한 구도 하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주 엄밀하게 정교한 예측을 서술하자면, 50년 후 다시 도래할 정체위기의 내전주기에서부터 본격적인 제5차 산업혁명으로서 의생명공학기술혁명이 가동되면서 충분히 의미있는 기술적 성과들과 실험적 신산업 Business 수익모델들이 다양하게 시도되면서 가시화하기 시작하여 이에 대한 낭만적 기대와 희망으로 무차별 과잉투자가 일어났다가 거품이 터지지만 진정으로 생명력 있는 핵심기술과 Business 수익모델들은 살아남아 (완전히) 새로운 5~6차 산업(혁명)의 철도와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알짜 Main-fraim을 구축하고, 이 위에서 여러 실질적 초혁신 의생명공학기술들이 혁명적으로 연구개발되어 나가다 이다음 50년, 즉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 폭발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변수로는 지금 현재 국면에서도 이미 여러 다양한 Test 도구들과 평가지표들을 훌륭하게 통과하며 대다수의 평균적 인간들을 압도하는 IQ 148의 지능과 박사학위 수준의 지식 수준을 가진 것으로 검증된 AI와 이후 양자 Computing에 의해 충격적으로 완성될 ASI=인공초지능의 개입에 의한 기술(혁명)발전 속도의 급가속화라는 중요한 문제가 남긴 하지만, 이는 일본경제의 장기침체 이유 중 하나로 자주 지적되어 온 ‘독점자본의 신기술 발전 및 도입 방해‘라는 고질적 경향의 근원과 완전히 동일한 mechanism으로 공개/도입이 계속 은폐/유예되어 비밀리에 또는 폐쇄적으로(만) 진행되다 자본의 입장에서 도저히 신기술혁명이 아니면 안 될 위기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어쩔 수 없이 도입되기 때문에 (산업)기술혁명 주기는 여전히 자본주의 고유의 위기주기인 50±α 년 전후라는 큰 틀에서 절대 벗어나 변동하지 않지만, 다만 예측되는 새로운 산업(혁명)틀 내에서 초지능(의 개입)에 의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진폭으로 완전히 새로운 기술과 Business model들로 급속하게 변동/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이보다 더 결정적인 새로운 변수는 상업자본주의로서의 제1근대[=근세], 산업자본주의로서의 제2근대, (통속적으로 후기자본주의로 불리던) 금융화된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제3근대[=현대]와 지금 새롭게 도입되고 있는 (정보/)인지자본주의로서의 제4근대[=초현대]를 뒤이을 5~6차 산업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5.0으로서의 제5근대에서 주력산업은 더이상 지금까지의 기계기반(생산/사무)노동산업이 아니라 완전히 의생명공학산업이기에 그 무엇보다 생체주기에 결정적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므로 산업/경기/위기 주기는 인간의 1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이하)로 줄어들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입니다.





rhizome 2026-03-05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제5~6차 산업혁명의 주축을 이룰 의생명공학기술혁명에 대한 예측 서술이 좀더 정성을 들여 상세화 되었기에 공지합니다.





(셋째, 의생명공학혁명이 주를 이를 5~6차 산업혁명에 대하여도 이와 같은 동일한 시대/시기착오적 오해를 일으키기 쉬운 일부 사람들을 위해 덧붙여 두자면, 일전에도 언급했듯 산업기술혁명은 일반적으로 제k차 혁명에서 기본틀이 제안되고 발원하여 k+1차 혁명에서 폭발적 본격발전을 이루어 결실을 얻으며 그 향후 50년 간 완성되어 나가는 pattern을 반복하기 때문에 근대자본주의 산업기술혁명은 제1차에서 증기동력기계화를 시작하여, 2차에서 전기동력기계화를 통해 동력기계화 기술혁명을 완성하였으며, 이 기술이 대체적 평균이윤률에 수렴함으로써 정체와 Stagflation, 68혁명 등의 정치경제적 위기를 유발시킴에 따라 (장기) 20세기 후반부터 신자유주의로의 전환과 이에 수반하여 극소전자가술혁명 및 PC와 Internet 등을 주축으로 하는 3차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정보지능기계화 혁명이라는 새로운 제3~4차 통합main-frame이 이번에 장기세기 전환이라는 위기국면에서 다시 본격시작된 4차 기술혁명에서 인공지능과 자율주행 카봇, humanoid 등으로 비로소 결실을 맺으며 완성되어 나가는 중이라 할 수 있기에, 이말은 즉 장기21세기 중반에야 시작될 새로운 5~6차 산업혁명 Main-frame으로서의 의생명공학기술발전도 그 충격적 결실들이 충분히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적어도 100년을 기다려야 하고 그 후 50년에 걸쳐 비로소 완전한 수준으로 완성되어 나갈 것으로 전망되므로 앞서 말한 양자computimg 기술종목 투자에 대한 주의권고와 동일한 구도 하에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아주 엄밀하게 정교한 예측을 서술하자면, 50년 후 다시 도래할 정체위기의 내전주기에서부터 본격적인 제5차 산업혁명으로서 의생명공학기술혁명이 가동되면서 충분히 의미있는 기술적 성과들과 실험적 신산업 Business 수익모델들이 다양하게 시도되면서 가시화하기 시작하여 이에 대한 낭만적 기대와 희망으로 무차별 과잉투자가 일어났다가 거품이 터지지만 진정으로 생명력 있는 핵심기술과 Business 수익모델들은 살아남아 (완전히) 새로운 5~6차 산업(혁명)의 철도와 고속도로에 해당하는 알짜 Main-fraim을 구축하고, 이 위에서 여러 실질적 초혁신 의생명공학기술들이 혁명적으로 연구개발되어 나가다 이다음 50년, 즉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에 폭발적으로 등장하게 될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변수로는 지금 현재 국면에서도 이미 여러 다양한 Test 도구들과 평가지표들을 훌륭하게 통과하며 대다수의 평균적 인간들을 압도하는 IQ 148의 지능과 박사학위 수준의 지식 수준을 가진 것으로 검증된 AI와 이후 양자 Computing에 의해 충격적으로 완성될 ASI=인공초지능의 개입에 의한 기술(혁명)발전 속도의 급가속화라는 중요한 문제가 남긴 하지만, 이는 일본경제의 장기침체 이유 중 하나로 자주 지적되어 온 ‘독점자본의 신기술 발전 및 도입 방해‘라는 고질적 경향의 근원과 완전히 동일한 mechanism으로 공개/도입이 계속 은폐/유예되어 비밀리에 또는 폐쇄적으로(만) 진행되다 자본의 입장에서 도저히 신기술혁명이 아니면 안 될 위기의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어쩔 수 없이 도입되기 때문에 (산업)기술혁명 주기는 여전히 자본주의 고유의 위기주기인 50±α 년 전후라는 큰 틀에서 절대 벗어나 변동하지 않지만, 다만 예측되는 새로운 산업(혁명)틀 내에서 초지능(의 개입)에 의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진폭으로 완전히 새로운 기술과 Business model들로 급속하게 변동/전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이보다 더 결정적인 새로운 변수는 상업자본주의로서의 제1근대[=근세], 산업자본주의로서의 제2근대, (통속적으로 후기자본주의로 불리던) 금융화된 국가독점자본주의로서의 제3근대[=현대]와 지금 새롭게 도입되고 있는 (정보/)인지자본주의로서의 제4근대[=초현대]를 뒤이을 5~6차 산업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5.0으로서의 제5근대에서 주력산업은 더이상 지금까지의 기계기반(생산/사무)노동산업이 아니라 완전히 의생명공학산업이기에 그 무엇보다 생체주기에 결정적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크므로 경기/산업/위기 주기는 인간의 1세대에 해당하는 30년(이하)로 줄어들 가능성도 매우 높아 보입니다.

새롭게 발명된 주요 기술이 대규모 임상시험이나 시판 등을 통해 전면 도입되고 이것이 새로운 주류세대(의 핵심형질)로 완전히 발현되기 까지 30년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고, 일부기술의 특성에 따라 그것이 (표현)형질로 발현되는 것을 충분히 확인하기까지는 최소한 10년은 잡아야 하므로, 이 전혀 새로운 자본주의인 제5근대의 경기/산업/위기 주기는 각각 10년/30년/60년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입니다.








rhizome 2026-03-06 0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Iran 전쟁의 숨은 의미 >



현 Iran 전쟁은 향후 패권전쟁의 향배를 결정지을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전쟁을 일으킨 미국과 Isrel의 유일한 목적은 Iran의 무장력에 해체수준의 치명적 손상을 가하여 중동지역패권을 친미극우 Israel 독재체제로 정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국제사회가 지금처럼 이대로 수수방관하면 결국은 그러한 목적에 준하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고, 이제 앞으로는 Palestine의 인종청소가 완료되고, 그 어떤 국지적/전면적 (지역)분쟁에서도 미국은 중동의 위협을 전혀 걱정하지 않고 어떤 부담도 없이 완전히 전력투구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그 어느 나라도 미국이 세계의 모든 문제를 독단적으로 좌우하는 단극패권에 더이상은 도전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중국이 정말로 양안문제(의 궁극적)해결과 (그를 통한) 차세기 패권국으로의 도약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바로 지금이 거의 유일한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말 당분간 그 어떤 과감한 행동도 감행할 수 없는 피치 못할 (국내)사정이 있다면 Iran에 대한 다소 위험을 무릅쓴 지원이라도 해서 최소한 현 세력균형의 현상유지를 통한 시간벌기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매우 결정적인 순간이라는 뜻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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